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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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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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43)

DUMMY

21장 - 감정이 원하는 대로


주안 스피놀라 중령은 총사대장 집무실 앞에 당도했다. 총사대 본부 곳곳에는 혁명군에 가담한 총사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스피놀라 중령은 일부러 인사권을 활용하여 이 혁명에 가담한 총사들만을 총사대 본부에 남겨놓았다. 이사벨 여제는 이들을 반역자라 하겠지만, 오늘의 승리를 누가 쟁취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그들은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복도에 자리 잡은 자명종 시계가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 시간이라.”

그가 초조한 기색으로 콧수염을 손으로 꼬았다. 흉갑기병대와의 전투가 벌어진지 세 시간이 지난 뒤에야 황궁은 혁명군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도 훨씬 늦었다. 아스티아노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에는 더더욱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애당초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던 헌병군의 출동 때문임이 밝혀지자, 이 변절한 총사대 중령은 이 사실을 주스티안 데 모리체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화약무기가 발산하는 폭음은 황궁 안이 아닌 황궁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휘관들을 구금했음에도 헌병군이 움직였다는 것은, 누군가 그들을 선동하고 지휘체계를 장악했다는 뜻이었다. 이는 혁명군에게 결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가 문을 두드리려는데 누군가 먼저 문을 열었다. 가발을 쓴 땅딸막한 늙은 신사가 걸어나왔다. 중령은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이사벨의 측근 가운데 하나였던 상원의회의 의장, 호아킨 마르티네스 자작이었다. 이사벨이 부재한 동안 도시를 통치하기로 되어 있던 의회의 수장이 구금된 것이었다.

주스티안의 동방회사군이 그의 어깨를 양옆에 잡고 인솔했다. 상원의회 의장은 우울한 얼굴로 중령을 흘깃 보더니 어디론가 떠났다.

“주안 스피놀라 중령.”

스피놀라가 문가를 바라보았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였다. 여유만만한 얼굴로 그가 뒤로 물러나 길을 내주었다.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돈 주스티안.”

그가 제 멋대로 총사대장의 의자에 앉아서는 두 다리를 태연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으면 좋겠군.”

주스티안이 대꾸했다. 중령이 나지막이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잖습니까. 하나는 아스티아노를 장악하는 것이고, 둘째는 제2황녀를 황제 자리에 올리는 거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아스티아노를 접수해야….”

“계획이라고?”

주스티안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변화무쌍한 법이야. 스피놀라. 자네는 느끼지 못했나?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웠든 간에 중요한 순간이 되면 흐트러지게 되어 있다는 걸.”

“하지만 그건 큰 문제입니다. 돈 주스티안.”

스피놀라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내뱉었다.

“우리는 그 변화하는 계획을 무마할 정도로 세력이 강대하지 못합니다. 해외에서 회군한 동방회사군과 빌랜드군이 우리를 지원하려고 상륙했지만, 그들은 톨레도 백작이 이끄는 제국군을 상대해야 합니다. 거기에다 우리가 함정으로 몰아넣은 이사벨이 살아남으면 어떡하려구요. 즉 아스티아노를 점령해서 새 황제를 옹립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대의명분을 가져다 줄 거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아스티아노를 점령하지 못했고, 디에네 데 아라고른 황녀와 추기경이 가지고 있던 ‘크라우네 데 엠페라도’도 확보하지…”

“그 중 하나는 이미 가지고 있네.”

낯선 목소리가 말했다. 스피놀라는 어느 어두운 구석에 낯선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려한 에메랄드빛의 정장을 입은 마법사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붉은 머리 사내였다. 특이하게도 둥그런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스피놀라는 그 전까지는 안경이라는 물건을 쓴 사람이라고는 자코모 다빈치밖에 본 적이 없었다.

“비어든 박사를 소개하지. 중령.”

주스티안 데 모리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 사내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사내가 한 손에 작은 지팡이를 쥔 채 잔을 받았다.

그 지팡이를 보고서야 스피놀라는 깨달았다.

“당신이 그 빌랜드 마법사군요. 우리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자, 빌랜드 국왕의 충성스런 신하.”

“그러는 당신은 황녀를 배반했다는 그 히스파니아 총사가 아닌가?”

스피놀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주스티안이 웃으며 거들었다.

“스피놀라 중령, 아니 좀 있으면 신임 총사대장이 될 테지만, 그는 우리 거사의 가장 큰 공로자요. 그가 없었다면 여우처럼 간교한 제1황녀를 속일 수 없었을 테지.”

비어든 박사가 적포도주를 마셨다. 스피놀라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혐오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마법사가 스피놀라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벨린 데 란테 대위의 전우였다는 소리를 들었지.”

스피놀라가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요. 박사.”

비어든 박사가 웃어보였다.

“굳이 그 점을 속이고 싶지는 않소. 솔직히 말하건대, 그를 우리에게 넘긴다면 이 모험에 대한 대가를 당신들이 지불할 필요가 없을 정도요.”

“그런데 둘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니요? 돈 주스티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주스티안이 데스크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은빛 왕관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크라우네 데 엠페라도. 스피놀라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주스티안이 말했다.

“추기경은 크라우네 데 엠페라도를 산 호라티오 요새에 숨겨놓고 있었네.”

“그 정치범들의 감옥 말입니까?”

“우리의 비어든 박사께서 그것을 찾아오셨지.”

비어든 박사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스피놀라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스티아노 북쪽 근교의 산 호라티오 요새에는 중무장한 헌병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주스티안이 어떻게 그 관을 확보하나 걱정한 것은 사실이나, 이런 식으로 그 황제의 관을 미리 확보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스피놀라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당신이 그렇게 여유 있는 이유가 있었군요. 돈 주스티안.”

주스티안이 의자에 편히 기대었다.

“비어든 박사께서 계시다면 아무 문제도 없어. 이사벨 데 아라고른을 따라간 자코모 다빈치가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모를까. 그를 대적할 마법사는 이곳에 없네.”

갑자기 문이 열렸다. 예고 없이 열린 것이라서 모두들 놀란 듯이 문가로 눈을 돌렸다. 붉은 제복을 입은 빌랜드 총사가 서 있었다. 그 총사가 모자를 벗고 비어든 박사에게 절했다.

“어서 오게, 안젤라. 용케 살아 있었군.”

“예스, 마이 로드.”

그 총사가 말했다. 여린 듯한 목소리에 주안 스피놀라가 그 총사의 얼굴을 보았다. 놀랍게도 갈색머리를 묶어 리본으로 끝을 장식한 여자 총사였다. 전투를 치르고 막 다녀온 듯, 뺨에는 긁힌 자국이 나 있었고 목덜미 부분이 무언가에 졸린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주안 스피놀라가 진정 놀란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이, 그가 평소 보아왔던 누군가와 쌍둥이처럼 닮았기 때문이었다.

스피놀라가 속으로 되뇌었다.

‘벨린 데 란테의 그 여자 노예?’

그러나 그 놀라운 사실을 그는 내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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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받은 메일)


<img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2/06/55/b0054255_4939494a50974.jpg">


안녕하세요 XXXXXXXXX 편집장 XXX입니다.

귀하신 원고를 저희 출판사에 투고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고를 신중히 검토하느라 답변이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귀하의 원고를 검토해본 결과, 아쉽게도 상업적 측면에서 저희 출판사가 내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원고를 반려드립니다.

저희 XXXXXXXXX를 사랑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XXX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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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쓴 잔입니다. 요즘들어 세상이 자꾸 저를 거부하네요.

제가 한번 투고를 해본 N자로 시작하는 회사에서 온 메일이에요. 예상은 했습니다만 뻔하죠.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출판사에 내는 것을 꿈으로 지난 2년간의 군생활을 버텼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또 한번의 망상이 헛되이 꿈이 됐네요.


응원해주신 분들께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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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베나레스의 총사(132) +15 08.11.04 2,736 10 8쪽
133 베나레스의 총사(131) +13 08.11.02 2,932 1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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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베나레스의 총사(127) +16 08.09.28 3,186 15 7쪽
128 베나레스의 총사(126) +25 08.09.20 3,242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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