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 총사(27)
* * *
카사도르스(사냥꾼들).
이것은 이달고 소령이 명명한 유격대의 암호명이었다. 대머리에 키까지 작고 애꾸눈인 이 소령은 그 바람에 지독히 못생긴 인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유머감각이나 센스는 무척 뛰어난 편이었다.
그는 벨린 데 란테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자 무척 기뻐했다. 지금껏 총사연대의 병력을 사용할 수가 없어, 이런 작전을 구성하지 못했는데, 상부의 도움으로 이제야 유격부대의 운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었다.
작전을 끝내고 온 총사와 유격병들에게 이달고 소령은 술을 베풀었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그날의 전투도 막바지로 다다르고 있었다. 한 가지 아군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아군이 유격병들의 활약으로 더 많은 전장을 확보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들은 히스파니아 진형에서 모닥불을 앞에 두고 축배를 들었다. 다만 복귀 내내 부들부들 떨던 호라시오 소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냥꾼을 위해.”
이달고 소령이 건배를 하고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가 전상의 흉터가 남아 있는 얼굴을 모닥불 불빛으로 들이대면서, 마치 해골 같은 얼굴로 웃어보였다.
“데 피사로 원수께서는 아마 귀관들을 귀신처럼 부려먹을 것이다. 저 야만인들이 우릴 비신사적이라고 비난해봤자 우리는 꿈적도 하지 않을 거야. 지금은 거창한 명분이 살아 숨쉬던 전쟁 초기도 아니야. 다들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려고 안달이지.”
“대단했습니다. 적들은 아마 귀신이 쏜 줄 알 겁니다.”
유격병들은 총사대의 귀신같은 총 솜씨를 웃고 떠들며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새로운 열의가 서려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국을 위해 이 정체된 전쟁을 타파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힘을 얻은 듯했다.
알레한드로나 조안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벨린 데 란테는 무표정했고 조용했다. 그는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며 술만 마셨다.
포도주 몇 잔이 오간 후, 그들은 다음 임무를 위해 각자의 숙영지로 돌아갔다. 소령은 똑 같은 임무를 내릴 심산이었다.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는 뜻일 게다.
다른 이들이 모두 돌아간 가운데, 이달고 소령은 벨린 데 란테만 따로 불렀다.
그가 활짝 웃으며 포도주를 한 병 꺼냈다. 싸구려 물건이 아니었다. 드라고니스 여관에서도 구하기 힘들었던 고급 백포도주였다.
소령이 포도주의 코르크 마개를 따면서 말했다.
“앞으로 우리 ‘사냥꾼’이 잘 되길 비는 뜻에서, 사냥꾼과 숲지기끼리 따로 건배를 하지.”
벨린은 잔을 들었다. 이달고 소령이 웃으면서 그와 잔을 부딪쳤다.
두 사람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고, 벨린은 입을 닦으며 입맛을 다셨다. 약간 쓰면서도 시큼한 맛이 났다. 하지만 달콤한 맛은 전혀 나지 않았다.
소령이 말했다.
“자네는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어. 총사들이라고 모두 이런 임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세. 직업적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는 흔치 않아.”
벨린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제 역할에 맞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래, 자네는 위대한 황녀 마마의 사냥꾼이지. 하지만 자네는 총사이기도 하네. 총사와 사냥꾼은 같아 보이면서도 언뜻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지.”
벨린은 잠시 소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검은 안대를 쓴 소령의 애꾸눈에 고정되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 뿐이었다.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벨린이 모자를 벗어 예를 표했다. 이달고 소령이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잘 가게, 소위. 아 참, 내가 깜빡하고 하지 않은 말이 있는데, 자네를 따라 공증을 하러 갔던 호라시오 소위는 신변의 문제 때문에 이 임무를 자진 사퇴하기로 했네. 그러므로 앞으로는 자네와 나 사이에 더욱 정직한 관계가 성립되어야 할 걸세.”
“원하신다면.”
벨린은 대답을 마치고 주저 없이 자리를 떠났다.
* * *
그들의 임무는 계속되었다. 벨린과 두 총사가 사냥꾼이라면, 그들 휘하의 유격병들은 충직한 사냥개였다. 그들은 벨린과 계속 움직이면서 적을 공평한 상대라고 보기 보다는 사냥감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유격병들의 임무를 아는 주변 군인들은 그들을 노골적으로 피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사람을 사냥하는 자를 군인들은 결코 전우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눈부신 전적으로 이런 편견과 멸시를 통쾌하게 날려버리고는 했다. 그들은 매번 다른 루트를 통해 적의 장교를 저격하고, 사냥이 끝나는 대로 도주하는 수법을 썼다. 일이 이렇게 되니, 신교 측의 적군들 사이에서는 하루가 갈수록 무시무시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탄을 지닌 유령이 장교들만 저격하고 다니면서 살아남은 장교들이 앞 다투어 귀신 쫒는 부적을 사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소문은 바로 매번 저격을 당해 첫 번째로 쓰러지는 장교는 미간에 총탄을 맞고 죽는다는 것이었는데, 전자는 확실히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후자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위기가 없을 리 만무했다. 사냥은 항상 위기가 뒤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벨린이 총을 쏘았다. 표적은 대열의 맨 뒤에 숨어 있는 다니치군 하급 장교였다. 그는 병사들의 틈에 숨어 총탄을 피하고자 했지만, 벨린이 쏜 총탄은 보기 좋게 병사들의 틈을 스치고 지나 장교의 미간에 명중해버렸다.
“갈수록 애를 먹이는군.”
알레한드로가 총을 쏘고서는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소문이 단단히 퍼지면서 장교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고, 병사들의 틈에 꼭꼭 숨어 살아남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물론 벨린의 경우에는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나머지 두 총사들의 총탄은 종종 빗나가버리고는 했다.
이런 경우, 그들의 사격은 아무 목표물이나 노리는 자유 사냥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무작위 적으로 가장 허술한 사냥감을 골랐고, 그 일은 적들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선사했으므로 적의 증원을 지연시키는 데는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유격병들이 일제히 총을 쏘았다. 그 사격에 맨 앞에서 밀집대형으로 전진하던 다니치군의 검은 제복 병사들이 상당수 쓰러졌다. 유격병들의 사격은 비록 활강 총으로 쏘는 것이었지만 발군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그들은 적들이 90미터 거리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리다가 일제 사격으로 한방 먹이는 것을 즐겼다.
총성과 함께 다니치군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뒤에 숨어 있던 다니치군 장교가 언덕에 숨은 적들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다니치군이 언덕 위를 향해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다니치 병사들이 지닌 머스킷총은 그곳까지 총탄을 맞출 위력이 없었고, 기세가 등등해진 유격병들은 다시금 한 차례 사격을 가하려고 총강 속에 탄약을 쟁여 넣는 중이었다.
장전을 끝낸 벨린이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려던 참이었다. 문득 그의 뇌리에서 섬뜩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벼운 떨림과 함께 땅을 짓밟는 것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기병대!’
상황이 순식간에 돌아갔다. 다니치군의 대열 틈에서 말을 탄 기수들을 헤쳐 나오기 시작했다. 경 기병대였다. 깃털 달린 삼각모에 기병도와 권총으로 무장한 기병들이 벨린과 유격병들이 자리 잡은 언덕 위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기병대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니치군 소속의 기병대원들이 일제히 기병도를 뽑더니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하카아아 푀알레!! (hakkaa päälle)”
그들의 성난 목소리가 언덕 위까지 찌렁찌렁 울려 퍼졌다. 순간 유격병들은 멈칫했고, 강선총을 장전 중이던 알레한드로가 벌떡 일어나서는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헤카펠 기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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