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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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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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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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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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28)

DUMMY

총사들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대열이 갖춰지지 않은 유격병들에게 기병은 저승사자였다. 아마 다니치군은 자신들의 장교를 저격하고 도주하는 적병을 잡기 위해 기병을 매복시킨 모양이었다. 저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돌진한다면 10여 초 내에 언덕 위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뛰어!”

벨린 데 란테를 비롯한 총사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재빨리 뒤로 뛰었고, 벨린은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유격병들을 뒤로 밀치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러자 유격병은 총을 버리고 서둘러 총사들을 따랐고, 언덕 위로 도주하는 그들의 등 뒤로 말발굽소리가 점점 더 소름 끼치도록 가까이 울려 퍼졌다.

그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기병들이 그들을 난도질하기 전에 아군의 대열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언덕 넘어 아군 측 진영에는 밀집대형을 갖추고 총검으로 무장한 히스파니아 보병부대가 있었다. 밀집대형을 갖추고 총검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경기병도 상대하기가 녹록치 않았다.

뒤를 돌아볼 필요 없이 깜냥 것 뛰는 것이 최선이었다. 총사들은 부라냐케 언덕을 다 올랐고, 아군이 위치해 있는 히스파니아군 대열을 향해 부라냐케 뛰어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자, 세 총사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참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약 스무 기 정도 되는 철제 투구를 쓴 기병들이 유격병들을 말발굽으로 치어버리는 광경이었다. 한 유격병은 돌진하는 블론드혈통의 말에 치여 저 만치로 튕겨버렸고, 또 한 명은 기병이 휘두르는 기병도에 등을 맞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버렸다.

나머지 네 명의 유격병들은 무사히 언덕 위까지 도주해서는 총사들 곁에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넷은 그러지 못했다. 헤카펠 기병 분대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까지도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헤카펠 기병은 마치 야수처럼 사냥꾼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들은 초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더 이상 따라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세 총사와 네 명의 유격병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북에우로파 기병들의 활약에 다니치 군대는 사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환호성을 질렀고, 헤카펠 기병이 처치한 비열한 적들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어댔다.

헤카펠 기병들은 유격병들의 머리를 기병도로 잘라서는 전리품으로 챙기며 히히덕거렸다. 그것은 다니치군이 그렇게나 고대하던 유령의 실체였고, 헤카펠 기병은 그 유령을 사냥한 공로로 모든 신교 병사들에게 추앙을 받을 터였다.

기병들은 전리품을 챙기고 돌아갔고, 그들이 싸우던 언덕 아래에는 목이 잘린 유격병들의 시체만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언덕 아래에 숨어있던 사냥꾼들은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그들은 모두 망연자실해보였고 일부는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다니치군의 환호성을 받으며 승리의 질주를 하는 기병들을 바라보았다. 기병들은 헤카펠 기병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휘날리며 자신들의 승리를 멋지게 자축하고 있었다.

벨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헤카펠 기병의 깃발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심이나 애환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표정함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표현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 * *

이달고 소령은 새 유격병을 뽑아주겠다며 위축되지 말라고 격려했지만 그의 약속은 전선의 여러 상황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사냥꾼들의 사기는 침체되었고, 기병의 견제만이 유격병들을 잡는 좋은 방법이란 사실이 다니치군에게 알려지자 그들의 활동은 큰 위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적에는 상관없이 두고두고 적들을 사냥했다. 어떤 때는 한 놈도 쏘아 죽이지 못하고 헤카펠 기병들에게 도망쳐야 할 때도 있었지만 이달고 소령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당초 유격병을 운용하는 것은 적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사한 세 유격병의 시신은 야음을 틈타 수습되었다. 유격병들은 전우를 양지바른 땅에 매장했고 벨린과 알레한드로, 조안이 그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종군 신부가 와서 간단한 장례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끝났다. 하루에서 시체가 수백 구는 계속 생겨나는 판이었기에, 그들은 거창한 장례를 진행할 여력이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자, 총사들과 유격병들은 무덤가에 앉아 포도주를 마셨다. 모두들 별 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은 대화를 하려고 술을 마신 게 아니라 그저 침묵을 유지하게 위해 술을 마신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자, 조안이 분위기를 환기할 겸,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힘들 내자고. 어쩔 수 없었잖아. 그날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놈들에게 복수를 해주자.”

알레한드로가 문득 제안했다.

“언제까지 그 놈들한테 쥐새끼처럼 튈 생각이야? 우린 제국 총사들이야. 사내라면 사내답게 녀석들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줘야지.”

“에이, 알레한드로.”

조안이 곤란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건 무리야. 우리라도 무사히 살아남아서 임무를 계속하려면 녀석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안 돼. 보병이 기병한테 정면으로 맞선다는 건 자살행위라고.”

“우리가 먼저 선방을 날리면 되지! 제깟 놈들이라고 강선총의 총탄을 피할 수는 없어!”

“그런 일에 목숨 거는 것은 무모한 짓이야. 우리가 아무리 몇 놈을 쏘아 죽인다 해도, 다른 놈들이 우리를 단번에 박살낼 거란 말이야. 벨린, 말 좀 해봐.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벨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포도주를 꿀꺽꿀꺽 마셨고, 풀이 죽어 있던 유격병들은 복수를 한다는 말에 다시 눈빛들이 살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벨린은 잔을 내려놓으며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가능성이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 원래 사냥이 그런 법이지. 때로는 사냥꾼이 사냥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니까.”

모두가 말없이 벨린을 바라보았다. 결국 모든 결정은 대장인 그가 내리는 것이다.

벨린이 피식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말이야. 적을 만들면 아작을 내지 않고 못 배겨. 술맛이 나지 않거든. 지금 이 술맛은 정말 최악이군.”

“그렇다면….”

조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벨린이 말을 이었다.

“맹수를 잡으려면 철저히 계획을 세워야 하는 법이야. 녀석들은 보통 맹수가 아니지. 아마 매우 견고한 함정을 파야할 거야. 그래도 놈들의 검은 군기를 빼앗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모험은 해 볼만 하지. 마침 내 주인에게 바칠 거창한 사냥감을 물색하던 차였거든.”

모두들 침을 꿀꺽 삼켰다. 홧김에 복수하자는 말을 내놓은 알레한드로마저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격병이 헤카펠 기병을 사냥하다니.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그 일을 벨린이 구상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반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벨린 데 란테에게는 여지 껏 한번 한다면 보기 좋게 성공해버릴 것 같은 알 수 없는 신뢰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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