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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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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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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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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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30)

DUMMY

벨린은 이달고 소령이 발급한 병력 동원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 총사대 소위에게 패잔병 일개 분대를 골라 지휘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패잔병들은 다시 전투장으로 돌아갈 의향이 없었다. 그들은 전의를 상실해 있었고, 자신의 연대를 박살낸 헤카펠 녀석들에 대한 복수는커녕 도리어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그런 패잔병들을 달래어 전장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꽤나 어려웠다. 복수심에 불타 있는 유격병들이 그들을 설득하려 했는데, 처음에는 말로 잘 호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구타가 병행되는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그들은 마침내 벨린의 차분한 구슬림에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애당초 머스킷총 사수들을 설득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적에 가까운 헤카펠 기병을 잡는다는 목적이 허무맹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벨린은 결국 그들을 잘 설득해냈고, 그것은 바로 벨린이 그들에게 설명한 계획과 열의 덕택이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튄다. 낄낄”

결국 그들은 술김에 맹약을 맺었고, 유격병들과 함께 연대를 위한 복수를 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벨린 데 란테의 사냥꾼들은 아틸 연대의 머스킷총 사수들을 완전히 포섭한 것이었다.

이로써 벨린의 병사들은 그 수가 서른두 명으로 늘었다. 아틸 연대의 머스킷 중보병이 총 열 스물다섯 명, 사냥꾼 유격대와 히스파니아 총사가 총 일곱 명. 이렇게 벨린이 헤카펠 사냥을 위해 급조한 일 개 소대는 점차 함정을 준비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보조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병들을 유인할 함정을 준비하기 위해 이틀 동안 전장을 헤매고 다녔다. 곳곳에서 포탄이 빗발치고, 전방 이백 미터에서는 머스킷총의 일제 사격이 벌어지고 있는 판국이었지만, 벨린 데 란테는 자신의 병사들을 꿋꿋이 데리고 다니면서 계획을 설명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벨린이 포탄 구덩이를 피해가며 말했다.

“맹수를 사냥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아나?”

“글쎄요. 발톱을 피하는 건가요?”

“아니. 자연스러운 함정을 만드는 거지.”

지도를 보던 벨린이 손가락으로 어느 지형을 가리켰다. 갈대가 모여 있는 들판이었다. 때가 마침 가을이라 온통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저곳은 평야야. 모두들 저런 곳으로 도망치는 얼간이는 없다고 생각하겠지. 헤카펠 놈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놈들에게 저곳은 평야나 다름없으니 만약에 우리가 지속적인 도발을 펼친다면 도리어 안심하고 뛰어들 거다.”

조안이 말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평지니까 우리를 단번에 아작 낼 작정으로?”

“맞아.”

“그렇다면 저 보잘 것 없는 갈대들 가지고 어떻게 함정을 만들지? 기병들을 저지하는 데는 도움이 전혀 안 되겠는데.”

“바닥을 보도록 해.”

그들은 이미 갈대숲까지 도착해 있었고 벨린은 태연히 바닥을 가리켰다. 발을 움직이기가 편치 않았다. 진흙이었다. 갈대숲 아래로 온통 끈적끈적한 진흙들이 허벅지 높이 만큼 고여 있어, 보통 신발을 가지고는 헤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거운 말이라면 더 빠져나오기 힘들겠지. 우리는 이곳이 멀쩡한 평지인 것처럼 녀석들을 속여야 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조안이 갈대 속에서 허둥거리며 간신히 발을 빼려고 애썼다. 알레한드로는 더 허둥거렸다. 그는 이미 몸무게 때문에 발이 허벅지까지 빠졌고, 주변의 머스킷 사수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멀쩡한 평지로 나올 수 있었다.

그가 투덜거렸다.

“제길, 이런 데선 우리도 싸우지 못할 것 같은데!”

벨린은 그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마법의 신발이 있지.”


그들은 하루 종일 벨린 데 란테를 도와 신발을 만들었다. 이 신발은 란테 지방에서 샤우코스라 부르는 특별한 신발로, 눈이나 진흙탕을 재빨리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죽신이었다. 이 신발은 나뭇가지와 가죽 장화만 있으면 쉽사리 만들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장화의 징에다가 정교한 나뭇가지 빨판을 달아 압력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벨린은 그 신발을 능숙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사냥 계획을 이야기해주었다.

“총이 없을 적에 내 고향에서는 곰을 이런 식으로 잡았지. 간혹 겨울잠을 자는 곰이 굴뚝처럼 생긴 썩은 고목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잘 때가 있다네. 그런 고목은 꼭대기에서 김이 올라오곤 했지.”

“그런 곰은 어떻게 잡지?”

“일단 고목의 윗구멍을 돌덩이로 틀어막아. 그런 다음 고목의 허리 부분을 도끼로 쳐서 구멍을 뚫는 거야. 그럼 멍청한 곰은 그 구멍으로 발을 하나 내밀고, 이를 기다렸다 도끼로 발목을 찍는 거야. 그럼 곰은 찍힌 발을 거두고 다른 발을 내밀지. 그런 식으로 네 발을 모두 자르면 아주 쉽게 잡히는 거야.”

벨린은 완성된 신발을 신어보았다. 장화에 타원형 모양의 빨판을 단 모양새였다. 그는 그 신발을 신고 근처의 진흙 구덩이로 들어가 몇 발자국 걸었다. 허벅지까지 들어갔던 아까와는 달리 발이 진흙탕에 깊숙이 빠지지 않았다. 벨린은 그 상태로 걸어보기도 하고 뜀박질도 해봤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가능했다.

이윽고 모두가 쓸 수 있는 신발이 완성되었다. 모두들 신발을 신고서는 진흙 벌에서 테스트를 해봤다.

신발은 놀라울 정도로 잘 작동했다. 병사들이 신이 나서 진흙벌에서 히히덕거리며 발을 놀리는 가운데, 벨린은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와 알레한드로, 조안이 놈들을 유인하면, 모두들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거야. 이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나 돌덩어리로 구멍을 틀어막는 일이 될 테지.”

유격병들이 모두들 결연에 찬 눈길로 벨린을 응시했다. 아틸 연대의 머스킷 사수들은 여전히 약간 의기소침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막상 상황에 마주치고 나면 눈에 불을 켜고 싸우리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는 적에 대한 공포가 용기로 돌연 변환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럴 경우 의기가 충만한 병사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는 했던 것이다.


사냥의 날이 밝았다. 벨린과 조안, 알레한드로가 미끼가 되어 기병들을 유인하기로 했다. 나머지 유격병들은 전선 맨 앞에서 망원경으로 적의 대열을 정찰하다가, 깃발 신호를 통해 헤카펠 기병의 척후대를 포착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타바스테스후스 연대의 헤카펠 기병들은 벨린의 사냥꾼들을 난도질한 이후로 꾸준히 전장에서 척후 임무를 맡아왔다. 그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유격전을 펼치던 히스파니아 유격병을 더 많이 사냥했고, 그러한 전과 때문인지 사기가 충만하여 거만할 정도로 의기양양하던 차였다.

검은 깃발을 든 헤카펠 기병의 척후대가 유격병들의 눈에 포착되었다. 유격병들은 즉각 총사들이 있는 쪽으로 붉은 깃발을 흔들어댔다. 기병대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유격병들은 갈대 숲 쪽으로 먼저 뛰어갔다. 이제는 세 총사가 저들을 함정까지 유인해야 한다.

세 총사는 일부러 언덕 기슭 잘 보이는 곳에서 무릎쏴 자세로 강선총을 들고 있었다.

“시작하자.”

벨린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조안과 알레한드로가 적의 보병 부대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기병대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타앙!

벨린이 가장 먼저 총을 쏘았다. 목표는 170미터 떨어진 기병 대열에서 맨 마지막에 뒤따라온 녀석이었다. 그와 동시에 조안과 알레한드로도 총격을 가했다.

대열의 마지막 기병이 말 위에서 쓰러졌다. 벨린이 명중시킨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두 총사들은 맞추지 못했다. 애당초 적을 사살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가 없었다. 애당초 그들의 사격은 그저 적들을 철저히 약 올리기 위한 기만 공격에 불과했다.

총성이 울리면서, 헤카펠 기병이 총사들의 존재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들은 돌격 나팔을 불었고, 기병도를 뽑으며 총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전 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한편 총사들은 팽창 탄환을 사용하여 10초 만에 장전을 끝내고 다시금 기병들에게 총을 조준하는 중이었다.

총성이 또 한번 울려 퍼졌다. 맨 앞에서 함성을 지르던 기병 하나가 총에 맞아 낙마했다. 하지만 헤카펠 기병들은 이미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고, 이제 총사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전속력으로 갈대숲을 향해 뛰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패잔병 행색을 하고 도주한 덕분에 헤카펠 기병들은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기병들은 저들이 며칠 전부터 아군 장교를 사살하고 도주한 그 자들인 것을 눈치 챘고, 이번에는 반드시 전부 박살내기로 단단히 벼르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총사들은 평소처럼 언덕 위가 아니라 갈대가 허리 길이로 난 들판으로 뛰고 있었고 그것은 기병들에게 죽기로 자처한 것만큼 멍청한 짓으로 보였다.

총사들은 전속력으로 함정을 향해 뛰고 있었지만, 헤카펠 기병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제는 겨우 40미터였다. 헤카펠 기병들은 권총을 발사하며 전 속력으로 추격했고, 마침내 그들과 거리가 20미터 이내로 좁혀졌을 무렵, 총사들은 병사들이 매복한 함정으로 일제히 뛰어들었다.

그러나 계속 달려야 했다. 놈들을 완전히 유인하려면 이곳이 마치 평야인 것처럼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기병들은 고스란히 속아 넘어간 듯했다. 그들은 자만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먼 거리라서 식별하지 못했는지, 세 총사가 특수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아무런 주저 없이 말을 뛰어오르게 해서 갈대숲으로 일제히 뛰어들었고 거기서부터 복수극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다. 말은 갈대숲으로 그들이 뛰어들었는데도 5미터 정도는 더 전진했다. 허나 그 이상은 가지 못했다. 블론드종의 준마가 진흙탕을 견디지 못하고 멈칫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미 갈대숲으로 달려든 기병들은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설마 멍청하게 늪지 속으로 기어들어간 것인가.

만약 그들이 말의 체력을 미리 소모하지 않았다면, 그 강인한 말들은 거뜬히 갈대로 가려진 늪지대를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들은 그 안으로 들어온 이상 이미 히스파니아 병사들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린 격이었다. 그들은 장기간의 순찰 때문에 말의 체력을 상당히 허비한 상태였고, 거기다 세 총사를 쫒기 위해 순간적인 돌격까지 감행했으니, 말들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은 벨린이 미리 계산해둔 결과였다. 당황한 기병들은 추적을 포기하고 말을 몰아 돌아가려고 했다. 그들은 말머리를 간신히 돌려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움직임이 지극히 느려졌다.

바로 그때, 갈대 속에 숨어 있던 머스킷총이 일제히 발포되었다. 갈대 속에 숨어 있던 삼십 명의 병사들이 튀어나와 함성을 질렀고, 그들은 총검과 장창을 이용하여 뒤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헤카펠 기병들의 가슴을 가격하여 쓰러뜨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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