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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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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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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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40)

DUMMY

* * *

아리엘은 주인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전 주인보다도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벨린은 펠리페 총사연대에 온 이후에도 그녀를 가혹하게 부려먹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리엘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는 주로 벨린을 위해 일상적인 시중을 해줄 뿐이었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옷을 빨아주고, 방을 정돈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 일은 주인의 가문에서 중노동을 했던 다른 노예들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녀는 부인들이 지내는 곳에서 하루의 반을 지냈다. 그곳의 부인들은 제각각 다른 태생이었다. 히스파니아 출신도 있었고, 다니치 혹은 란툰 반도의 출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 가운데서 아리엘처럼 노예 출신인 여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아리엘은 그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때까지도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노예제도라는 것이 서쪽 에우로파에는 없다는 것을, 오직 란툰 반도와 동부 다니치 일대에만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와 같이 지낸 여자들은, 그녀가 노예라고 눈치 채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까살라에서 순찰을 돌던 병사들이나 스피놀라 정도야 까살라의 악독한 노예시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팔뚝을 보고 노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허나 서 에우로파의 대다수 사람들은 노예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것은 과거 봉건제도 시대의 자유민들이 이룩한 유산이었고 이것은 아직도 노예들을 부리는 가문이 있는 동 에우로파와 큰 차이를 보였다. 심지어 어떤 부인은 아리엘의 팔뚝에 찍힌 인두자국을 보고 너 혹시 감옥 갔다 들어오지는 않았냐고 물어볼 정도니, 다니치의 좋은 귀족 가문에서 순진한 노예로 자랐던 그녀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엘은 여전히 순종적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주인이 잘 적응됐기 때문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할 일만 다 한다면 그녀의 주인은 그녀를 자유로이 내버려두었다. 게다가 밥을 굶거나 잠을 못자는 것도 아니라서 그녀는 지극히 현 생활에 만족을 하고 있었다. 옛 주인은 그녀가 실수라도 한다 치면 밥을 굶기는 것은 예사였고 때리기까지 했지만, 벨린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지극히 자유로이 대했던 것이다.

그렇게 근 2주일을 자연스럽게 보내고 나니, 그녀는 문득 벨린이 자신의 구세주는 아닐까 고마운 마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예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 그녀에게 의복과 일용할 양식에다 자유시간까지 주는 주인은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이 당한 가혹한 고역을 떠올리자면 이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괜찮은 생활을 누리고 있을 무렵, 벨린은 새로 온 신참 총사들을 중대로 편성하고 사열하는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그 일은 총사대가 전장에 투입되는 이주 내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 일은 무척 편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주 동안 전투를 위한 마지막 휴식을 갖추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총사들은 대다수가 실전경험이 있는 용사들이었기 때문에 신병들처럼 어영부영하지도, 헤매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치 스스로가 판단력을 갖춘 능동적인 집합체처럼 움직이면서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다.


주말이 되자, 벨린은 주안 스피놀라와 함께 저녁 술 자리를 가졌다. 아리엘은 일주일 동안 부인들과 지내다가 벨린의 전용 막사가 구축되자 그 자리로 와서 지내던 차였다. 그녀는 막사 밖에서 숯불로 여러 가지 요리들을 만들어냈다. 히스파니아식 햄 요리와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 만든 볶음밥 등이었다.

스피놀라는 술자리를 위해 다니치의 란첸베르크에서 나는 적포도주를 몇 병 가지고 왔다. 그러나 다니치의 와인은 그리 품질이 좋은 것이 아니었던 터라, 이 술은 단지 맛을 음미한다기보다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들었다. 아리엘은 주인을 위해 정성껏 계속 맛있는 요리들을 만들어냈고, 벨린이 이제는 자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고 나서야 막사의 구석에 자신의 침낭을 펼치고서는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 스피놀라가, 문득 아리엘이 자는 쪽을 한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노예를 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 번거로운 거 싫어하는 자네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닌가.”

벨린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꽤나 과음을 했던지라 웬만해서는 취하지 않는 그도 오늘은 얼굴이 점차 붉어져갔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했다.

“하던 일이 지루해지다보면 좀 새로운 것도 하고 싶기 마련이죠.”

“그렇다면 앞으로도 저 여자를 계속 데리고 살건가?”

“일단은 시종으로 부리려구요. 그건 그때 봐서 생각할 일입니다.”

“알다가도 참 모를 일이군.”

스피놀라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까살라에서 자네가 활약한 것을 들었네. 나는 도저히 자네가 옛날에 무엇을 사냥하다 왔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네는 곰이나 늑대 같은 맹수를 사냥했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벨린은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아리엘이 요리한 닭고기를 뼈째 한 입 물어 뜯어먹고서는 마치 어제 잡은 짐승에 대해 이야기하듯 한마디 했다.

“사냥을 좀 하다 보면 때로는 짐승이 인간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저는 그래서 때로는 인간보다 짐승을 신뢰하죠.”

그 말에 스피놀라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벨린은 만취한 스피놀라를 무사히 그의 막사에 돌려보내놓고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그 또한 오랜만에 대취해 있었다. 둘이서 포도주 상자를 네 상자나 비웠으니 그렇게 잔뜩 취한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내일은 마지막 휴식일이었다.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전투는 다음주에 있을 예정이었다. 아마 신교도들의 마지막 병력들이 진을 치고 그들을 마중 나와 있을 것이다.

벨린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잠시 아리엘이 있는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곤히 자고 있던 아리엘의 어깨를 대뜸 잡았다. 그 손길에 깊은 잠에 빠져있던 그녀가 잠에서 깨었다.

아리엘은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아래로 짓누르려는 주인에게 무서움을 느꼈다. 벨린은 어느새 그녀를 아래에서 단단히 깔고서는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주, 주인님?!”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는 들은 채 만 채, 만취한 벨린은 그녀의 가녀린 한쪽 팔목을 잡고서는 그녀의 머릿수건을 단번에 풀어내었다. 그 바람에 그녀의 긴 갈색 머리는 단번에 풀어져 산발이 됐고, 그녀의 모습은 머리는 처음 그녀를 노예시장에서 봤을 때의 모습과 유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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