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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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작품등록일 :
2021.05.12 12:03
최근연재일 :
2021.08.04 15:21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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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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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증명(9)

DUMMY

지명수배 메세지가 뿌려진 직후임에도 거리는 여전히 평화롭다.


거리에 늘어선 점포들은 평소와 다름 없이 평범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고. 길가를 지나는 커플, 학생들의 얼굴에도 활기가 넘쳤다.


그만큼 길드와 모험자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다소 안전불감증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거나 동쪽지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끊이질 않았다.


그 분위기에 편승되어, 잠시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밀크 쉐이크를 테이크아웃. 에머리 씨에게 밀크 쉐이크를 건내줬다.


길안내에 대한 내 자그마한 성의였다.


"감사합니다. 염치도 없이 또 얻어먹게 되는 군요."


언제나처럼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매번 그러시면 제가 더 부담스럽거든요?


빨대를 입에 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에이.. 그래봤자 고작 밀크쉐이크일 뿐인데요?"


"뭐든지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하하.."


변함없는 예의 바름에 다시 어색한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이래서는 꼭 데이트를 하는 커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힐끔 에머리 씨의 옆얼굴을 훔쳐본 다음 주변을 둘러봤다.


한가로운 오전 시간. 출근과 등교 시간은 이미 지난 후였고, 길거리에는 당연히 다정하게 붙어있는 커플들과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커플들이 남녀노소 불구 모두 에머리 씨를 흘겨본다. 에머리 씨의 아름다운 외모가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는 모양이다.


주변 분위기가 이러하니 괜히 나까지 평소보다 더 에머리 씨를 의식하게 된다.


복장은 나나 에머리 씨나 모험자 그 자체를 몸소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둘이 함께 레더 아머를 입고 있는 중이고, 에머리 씨는 허리에 레이피어를 나는 등 뒤로 창대를 메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지..


단순 모험자 동료로 생각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그림이 아닐까. 남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비춰질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에머리 씨는 장수종인 엘프이기는 하지만 겉모습은 어디까지나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게다가 지금은 어쩌다보니 나란히 붙어서 길가를 걷고 있는 상황. 남들의 오해를 사기엔 충분한 그림일 것 같았다.


에머리 씨는 태연한 표정으로 길가의 점포를 구경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에머리 씨를 힐끔힐끔. 이러고 있으면 정말..


"꼭 커플이라도 된 기분이군요."


"네!?"


쿨럭 쿨럭.


이런 커피가 기도로 들어가버렸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훅이 너무나 강력했다. 에머리 씨의 이런 화법에는 늘 당하기만 한다니깐.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냥 제 기분을 말했을 뿐인데."


"아,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커플이 우리를 보며 웃었다.


'풋풋하네~' 등등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냥 못 들은 척 하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머리 씨도 딱히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


여기서 만족하기로 하자.


"그런데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 길입니까?"


햇빛에 반짝이는 분수대 근처를 지날 때, 그제야 에머리 씨가 슬쩍 물었다.


빨대에서 입을 떼고 파란 하늘을 잠깐 올려봤다.


"원장님이요."


"원장님이라면, 혹시 에스더 씨가 계셨던 고아원 원장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살짝 놀랐는지 에머리 씨의 푸른 눈동자 동그래졌다. 귀까지 움찔 삐쭉이는 것을 보면 이럴 때는 에머리 씨도 정말 귀엽단 생각이 들고 만다.


"네, 얼마 전에 저 몰래 이사를 왔다는 모양이에요. 남쪽 대로에 벌써 가게까지 차려놓고서 말이죠."


정말 어이없지 않나요? 설명과 함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에머리 씨도 이 대목에서는 살짝 웃으셨다.


"그 원장님이라는 분은 에스더 씨를 정말 사랑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럴까요?"


"물론이지요. 또 굳이 제게 묻지 않으셔도 그건 에스더 씨가 더 잘 알고 계실겁니다."


푸른 눈동자가 완만하게 휘면서 눈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다정한 눈길이었다.


잠시 그 눈을 마주하다가 멋쩍게 뒷통수를 긁적였다.


"그럴지도요. 그런데 워낙 장난이 심하신게 조금 문제일지도.. 이번에도 그렇구요."


오늘 이 일도 우연히 마주친 원생 동생들에게 들은 일이다. 원장님은 지금도 이사온 걸 나한테 비밀로 하고 있다.. 등등 부연설명을 몇차례 더 덧붙였다.


에머리 씨는 흥미진진하게 이 이야기를 듣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듣고보니 정말 장난이 심하신 분 같기는 하군요."


하지만 그런 점도 포함해서 그분을 애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에머리 씨가 되물었다.


이 질문에는 고민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원장님은 원래 그런 분이시고, 또 나는 그런 원장님을 애정하는 게 사실이었으니깐.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갈림길에서 잠깐 멈춰섰다.


"저쪽으로 가면 금방 가게에 도착할 겁니다."


"어라.. 저쪽은 금방 제가 지나온 길인데?"


"맞습니다. 가게를 그냥 지나쳐 오신 모양입니다. 초행길이라면 흔히 있는 일이죠."


아까 내가 멍 때리면서 그냥 지나쳤던 길이 맞았던 모양이다. 에머리 씨가 가르키는 쪽을 보면서 스스로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러기도 잠깐, 길가 한편에서 영업 중인 와플 노점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맞네, 오늘은 커피 한잔으로 대충 아침을 때웠었구나. 떠올리고 나니 괜히 더 공복이 심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데 에머리 씨는 어떨까.


"혹시 에머리 씨는 아침 드셨나요?"


"아니요. 저는 기본적으로 아침은 거르는 편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시선은 계속 와플을 보고 계시거든요?


말하는 것처럼 에머리 씨의 푸른 눈동자는 똑바로 와플에 꽂혀있었다.


자연스럽게 에머리 씨를 이끌어 노점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스크림을 포함한 생과일 와플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는 노점이다. 거기다가 깔끔한 종이 용기에 일회용 포크까지. 꽤나 본격적인 전문점이었다.


에머리 씨는 딸기 토핑이 잔뜩 올라간 아이스크림 와플 그림에 시선이 못박혀 있는 중. 메뉴판을 정말 열성적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굳이 어떤 것을 고르겠냐고 물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사장님께 즉시 주문했다.


"여기, 딸기 와플 하나랑 민트 와플 하나씩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만원입니다~!"


"에,에스더 씨?!"


주문에 이어 계산을 치르려하자 화들짝 놀라며 얼른 돌아본다. 하지만 계산은 이미 마친 후, 거스름돈이 돌아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거스름돈이 돌아오는 타이밍이 있다면 에머리 씨는 반드시 본인이 대신 계산하려고 했을테니까.


"으으.."


얼굴을 붉힌 채 왠지 안절부절 못하는 에머리 씨. 남에게 신세를 지는데 정말 익숙치 못한 사람이다. 이렇게 티가 나기도 하는구나. 손가락까지 꼼질거리면서 시선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사장님께선 익숙한 손놀림으로 금방 예쁜 와플을 내주셨고, 우리는 각각 하나씩 용기를 받아들고 노점을 뒤로했다.


"또 오세요~ 커플분들!"


뒤에서 노점 사장님이 크게 인사하신다. 뻔한 립서비스겠지만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여준 뒤 갈림길을 돌아섰다.


에머리 씨는 어떤고 하니 여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귀까지 빨갛게 물든인 채 더듬더듬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모습에,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십시오.."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린 에머리 씨가 이렇게 갑자기 말했다.


그 바람에 아이스크림을 입속에 넣다가 깜짝 놀랐다.


"엘프 체면에 이렇게 대접만 받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제게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포크를 입에 물고 있는 나를 힐끔 흘겨본다. 푸른 눈동자에 고집이 맺혀있는 게 보였다.


그렇겠지. 그런 의미였겠죠. 한순간이나마 가슴이 설랬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기쁜 건 매한가지였다. 그것도 그런게 엘프 에머리 씨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 찬스였으니깐!


이 좋은 기회를 놓칠만큼 나는 마냥 바보가 아니었다.


"전화를 걸어놨습니다. 집에 가시면 꼭 확인하시길."


번호를 알려주자 마자 에머리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순간 에머리 씨의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다.


입 속에서는 민트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고 있는데, 어쩐지 내 얼굴은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한입 두입 빠르게 아이스크림을 연달아 퍼날랐다. 에머리 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시선을 피하며 비슷한 속도로 포크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대용 겸 간식거리로 샀던 와플은 민망함 속에 순식간에 동이 났다.


그래도 뭐 확실히 맛은 있었던 걸 보면 나중에 한 번쯤 다시 가게 될지도?


이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며 일회용 용기를 쓰레기 통에 버린 뒤, 에머리 씨와 나는 함께 카페 간판을 올려봤다.


카페 페이라(CAFE πεῖρα). 고풍스러운 문자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동쪽지구의 페이라라면 여기뿐입니다. 여기가 맞는지요?"


에머리 씨의 물음에 약도와 주변 구조를 비교해 봤다. 이제야 약도의 그림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찾고 있던 곳은 이곳이 확실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떠올랐다.


"네, 여기가 맞는거 같아요."


"다행입니다. 그러면 저는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군요."


출입문을 앞에 두고, 옅게 웃으면서 에머리 씨는 말했다. 오랜만의 재회에 방해가 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하기야, 에머리 씨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말이었다. 그야 원장님과 에머리 씨는 완전히 남남이었으니 말이다.


잠깐 여기서 고민이 들었다. 에머리 씨를 이대로 보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하고 말이다.


나만의 주관일 수는 있으나 에머리 씨는 아샤에서 내게 큰 은인 중 한명이었다. 원장님께 이런 에머리 씨를 소개해 드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저기 에스더 씨..?"


"여기까지 같이 오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냥 보내요. 괜찮으니깐 같이 들어가요."


이렇게 고민은 짧았고, 나는 어느새 에머리 씨의 손을 잡고 카페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갑자기 손을 잡혀 당황해 하는 에머리 씨와 함께 페이라의 문고리에 손을 걸쳤다.


짤랑!


"어서오세요. 카페 페이라입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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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부. 에필로그 - 시작의 그날 21.06.02 81 1 9쪽
41 40. 차려진 무대(10) 21.06.01 77 1 10쪽
40 39. 차려진 무대(9) 21.05.31 79 1 9쪽
39 38. 차려진 무대(8) 21.05.30 83 1 8쪽
38 37. 차려진 무대(7) 21.05.29 87 2 8쪽
37 36. 차려진 무대(6) 21.05.29 86 2 10쪽
36 35. 차려진 무대(5) 21.05.28 90 2 9쪽
35 34. 차려진 무대(4) 21.05.27 93 2 11쪽
34 33. 차려진 무대(3) 21.05.26 95 2 10쪽
33 32. 차려진 무대(2) 21.05.26 96 3 10쪽
32 31. 차려진 무대. 21.05.25 102 3 11쪽
31 30. 증명(13) 21.05.25 98 3 7쪽
30 29. 증명(12) 21.05.24 103 3 9쪽
29 28. 증명(11) 21.05.24 114 3 11쪽
28 27. 증명(10) 21.05.23 120 2 10쪽
» 26. 증명(9) 21.05.23 138 4 10쪽
26 25. 증명(8) 21.05.22 148 4 13쪽
25 24. 증명(7) 21.05.22 151 4 11쪽
24 23. 증명(6) 21.05.21 161 5 12쪽
23 22. 증명(5) 21.05.21 169 5 12쪽
22 21. 증명(4) 21.05.20 179 5 11쪽
21 20. 증명(3) 21.05.20 177 5 12쪽
20 19. 증명(2) 21.05.19 188 4 9쪽
19 18. 증명. 21.05.19 197 4 10쪽
18 17. 혼자 가지마(5) 21.05.18 201 4 10쪽
17 16. 혼자 가지마(4) 21.05.18 210 5 10쪽
16 15. 혼자 가지마(3) 21.05.17 221 4 10쪽
15 14. 혼자 가지마(2) 21.05.17 230 8 9쪽
14 13. 혼자 가지마. 21.05.16 241 10 9쪽
13 12. 갈망(2) 21.05.16 257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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