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꿈꾸다2
* * *
‘돈도 괜찮게 보였고, 슬슬 노점을 증설할까.’
님프가 노점을 마감하는 것을 돕고, 그녀를 보낸 지우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마법의 커피머신을 손에 얻고 장사를 한지도 어언 두 달이 지났다. 통장에 모인 돈도 제법 많은 액수였다. 이 정도면 다른 카페처럼 가게를 빌려서 정식으로 가게를 열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돈을 소비하여 상가 건물을 임대하는 비용은 꽤나 높았다. 아니, 그냥 높은 수준을 넘어 소위 말하는 엄마 아빠가 없냐고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지우는 별 수 없이 정식으로 카페를 여는 것은 포기하고, 당분간은 노점을 조금씩 증설할까 생각했다.
중고 트럭 가격과 마법의 커피 머신은 아무리 비싸봤자 5천만 원이 되지 않으니까.
“후훗. 설마 이런 고민을 할 줄이야.”
지우는 새삼 자신이 출세했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엔 몇 만원을 쓰기에도 벌벌 떠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몇 십, 몇 백도 아니라 몇 천만 단위의 금액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었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그래? 어떤 고민인데? 우리가 좀 해결해줄까?”
그때였다. 지우의 중얼거림에 뜬금없이 누군가가 껴들며 불청객이 찾아왔다.
지우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휙 들었다.
달 없는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 전등 아래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서있었다.
“누구?”
남자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지우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저렇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없다.
“형님. 사진보니까 이놈 맞는데요?”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우는 몸을 획 돌리며 사진 한 장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듯 번갈아 살펴보는 남자를 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지었다.
‘안 돼. 여기서 도망쳐야한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평생동안 불행과 친숙했던 지우는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얼른 몸을 돌려 남자들이 없는 장소로 힘껏 뛰쳐나가려했다.
“어허, 저런. 그러면 안 돼지.”
제일 먼저 모습을 나타냈던 남자가 히죽 웃으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열댓명은 될 것같은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다, 당신들 뭐야?”
처음 겪는 상황에 지우는 침착하지 못하고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별 건 아니고. 널 보고싶은 분이 계셔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히죽 웃으며 지우에게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이에 지우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겁먹은 얼굴로 경고하듯이 소리쳤다.
“당신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더 가까이 오면 경찰을 부르겠어!”
“음, 글세. 부르기 전에 널 인도해주면 되지 않을까?”
“웃기지마! 너희는 모르는 모양인데 요새 CCTV가 얼마나……!”
“계집애처럼 찡얼거리지 좀 마. 내가 그 정도 머리도 없을 줄 알아? 너야말로 뭘 모르는 모양이군. 사생활 침해 문제로 떠오르는 CCTV의 숫자라고 해도 말이야, 잘 찾아보면 사각지대라는 게 있단 말이지.”
“……!”
남자의 말에 지우가 숨을 멈추며 주변을 다급히 살폈다.
항상 걸어오던 퇴근길이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가만 보니 이 주변에는 남자의 말대로 CCTV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약 30미터 앞으로 뛰어가기만 하면 가로등과 CCTV가 위치한 장소가 오긴 하지만, 최소 열 명을 넘는 거한들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형씨는 사업자잖아? 설마 우리처럼 머리가 나쁜 건 아니지? 그렇지?”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지우의 곁에 다가와 친한 듯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곤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 꺼내 친절히 지우의 입에 물려주었다.
청룡회의 간부, 송치환의 오른팔인 김정제는 궁지에 몰린 초식동물처럼 파르르 떠는 지우의 어깨를 상냥하게 토닥였다. 그리고 창백하게 질린 지우의 입술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얌전히 따라오지 않으면 넌 뒤질 줄 알아. 이 개새끼야.”
* * *
대한민국에서 유흥의 중심지, 강남.
강남에 위치한 이름 모를 룸살롱.
“음……지우. 정지우. 좋은 이름이야, 정사장.”
송치환은 조직원이 납치하다시피 데려온 지우의 지갑에서 꺼낸 주민등록증을 보며 감탄하며 과장스런 제스처를 취했다.
‘젠장. 뭐야. 이놈들 대체 뭐냐고?’
한 편 지우는 혼란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에로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두운 조명. 그 아래엔 온갖 산화진미와 값비싼 양주로 가득한 긴 직사각형 형태의 탁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엉덩이가 푹 가라앉을 정도로 푹신한 고급 소파에 앉은 지우는 옆에서 벗은 거나 다름없는 차림을 한 여자의 희롱에 당황하고 있었다.
지우는 무언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입구에 서있는 거한들을 보고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빠, 돈 많으면 나랑 놀지 않을래?”
여자가 지우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꺄르르 웃었다.
“정사장. 너무 긴장하지 마. 난 정사장한테 뭘 하려는 게 아니라, 정사장이랑 친목도모 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아, 그리고 난 송치환이야.”
송치환이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휘며 사악하게 웃었다.
그는 양쪽에 미녀를 품 안에 안고, 그녀들이 따라준 술 한 잔을 목 너머로 넘기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정사장을 모셔온 건, 사업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듣자하니 커피로 돈 좀 만진다며?”
‘그렇게 된 거였냐!’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지우는 화를 꾹 참아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우는 왜 난생 처음 보는 저 인간이 자신을 데려왔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아니, 딱히 지우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송치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어딜 봐도 조직폭력배다. 그리고 그런 조직폭력배가 돈 이야기 좀 하고 싶다면서 자신을 데려왔다면 그 이유는 안 봐도 뻔하다.
“……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옆에 앉은 여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송치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다.
“오, 정사장은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네. 가끔 정중히 모셔왔는데도 무슨 짓이냐고 행패를 부리는 버릇없는 놈들이 있거든.”
송치환의 말에 지우는 섬뜩해졌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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