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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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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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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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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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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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61화.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야차족과의 전투가 의도치 않게 흘러가자 쥬맥은 에피온개를 사냥할 때처럼 우두머리를 쳐야 이 싸움이 끝나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머리를 잃은 뱀처럼 만드는 것!


그래서 무량혼원보(無量混元步)로 보법을 밟으며 오행기에 몸을 은신해 가면서 순식간에 대장에게 다가섰다.


“앗! 뭐야!”


대장이 깜짝 놀라는 순간에 바로 코앞에서 나타나며 백호제마검(白虎制魔劍)으로 단칼에 목을 베었다.


적장도 뛰어난 무력을 갖추고 수많은 전투에서 피바다를 헤치며 살아온 백전노장이었지만, 허무(虛無)하게 쥬맥의 일검에 목이 떨어졌다.


스스로 자만(自慢)과 오만(傲慢)에 젖어서 객기를 부린 대가가 아니겠는가?


쥬맥이 적장(敵將)의 머리를 높이 들고 야차족 말로 보란듯이 외쳤다.


“이미 너희들의 대장이 죽었다. 모두 싸움을 멈추어라!”


그 소리에 야차족도 대장(大將)의 잘린 머리를 보며 분분히 물러섰다. 이제는 다시 싸우라고 부추길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도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싸우고 있던 상황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열 배가 넘는 수를 믿고 큰소리치며 시작했지만, 천인족의 무공과 진법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가 점점 증가하면서 심적으로 위축되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모두 살려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다. 모두 사상자를 챙겨서 즉시 돌아가라!”


“정말 뒤쫓지 않고 살려 줄 것이오?”


“우리는 어느 생명이든 소중히 한다. 떠나면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부대장쯤 되어 보이는 전사가 나서서 야차족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상자를 수습하여 지금 즉시 돌아간다. 사상자를 수습하라!”


그러자 명령에 따라 사백이 넘는 사상자(死傷者)를 수습하더니 썰물처럼 물러가기 시작했다. 물러가면서도 혹시나 천인족이 뒤쫓지는 않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빠르게 도망을 쳤다.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말이다.


이렇게 쥬맥이 지휘하여 최초(最初)로 치른 전투가 막을 내렸다.


사방에는 적아가 흘린 피로 바닥이 질펀하였고 피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몸에서 떨어진 사지가 여기저기에 보기 흉하게 굴러다녔고······.


야차족이 떠난 뒤에 전장을 수습하니, 쥬맥과 함께 처음부터 전투에 참가한 오십 명 중에서 아홉 명이 죽었고 삼십 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뒤늦게 비상 신호를 보고 달려온 백오십 명 중에서 열여섯 명이 죽고 사십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야차족이 삼백여 명이나 죽고 백여 명이 다친 것에 비하면 잘 싸운 셈이다.


그것은 쥬맥이 위험할 때마다 뛰어들어서 구명을 해 주고, 수르가 나선은하진을 잘 운용한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에피온개를 사냥해서 경사스럽던 분위기가 갑자기 초상집이 되었다. 비록 전투에서 이겼다고는 하나, 한 사람이 죽더라도 그 장례를 치르는 가족들이 있으니 어찌 분위기가 숙연(肅然)하지 않겠는가?


또다시 전사자들을 모아서 장례식과 위령제(慰靈祭)를 지내고 가족들에 대해서는 보상과 위로를 하였지만, 그 모습을 보는 쥬맥은 마치 자기의 책임인 양 어깨가 축 처졌다.


처음으로 조직을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기만 할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지휘를 해 보니 조그만 전투 결과에도 이렇게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


그러니 큰 전쟁이라면 그 부담이 어떠할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소족장에서 부족장과 대족장으로 올라갈수록 그 부담(負擔)은 당연히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새삼 그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대족장과 소족장은 어깨를 두들겨 주며 아주 잘 싸웠다고 격려를 해 줬지만, 죽은 동료들과 자신이 죽인 수많은 야차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쉬 풀어지지 않았다.


‘전투란 이런 것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그동안 고참을 앞서간다고 등을 돌렸던 많은 무사들이 이제는 마음을 열고 동료로, 그리고 전투를 할 때는 대장으로 인정을 해 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죽을 목숨을 살려 주는 사람을 원수 쳐다보듯이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장례식과 위령제를 마치고 며칠 지나자 꾸리꾸리한 기분을 풀자며 비 소족장이 회식(會食)을 하자고 했다. 이번 전투에 참가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중에 중상자를 빼고 삼십여 명과 함께.


비 소족장이 잔에 술을 따라주며 이번 전투에서 쥬맥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번에 정말 수고했다. 그래도 네 덕분에 사상자가 많이 줄어든 거야.”


“아닙니다. 수르가 진법(陣法)을 잘 운용해 줘서 그렇습니다.”


“물론 수르도 잘했지. 어이, 수르! 내 술 한 잔 받아.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다 쥬맥 덕분입니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서로 챙기기는······. 참 부럽다 야.”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동안 따돌림을 했던 선배들도 여럿이 와서 미안한 얼굴로 술을 권했다.


“이번에 고맙네. 자네 덕에 살았어.”


“나도 고맙네. 그동안 따돌려서 정말 미안하네. 앞으로 잘 지내보세.”


“앞으로는 확실하게 대장으로 모시겠네. 잘 봐주게.”


이렇게 선배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꽤 술을 마시고 취해 버렸다.



회식이 끝나고, 혼자서 조금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하천가의 다리에 걸터앉았다.


“달이 참 밝구나!”


기분은 좀 풀렸지만 전투 중에 머리를 뇌전(雷電)처럼 뚫고 지나간 주작 신수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들개 떼는 그렇다 쳐도 야차족 백여 명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처음으로 수많은 생명을 죽였다. 동료들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들의 원성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그들을 왜 죽여야 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비록 적으로 싸웠지만 자기 손에 죽은 야차족의 명복이라도 빌어 주고, 그들의 원한이 자신의 영혼을 원념(怨念)으로 물들이지 않기를 기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밝은 달빛 아래 혼자 터덜터덜 걸어서 구릉 위에 오르니 한울과 천사장, 대신녀의 거처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사장의 거처 근처에는 누구나 천신께 기원을 드릴 수 있도록 제단이 항상 마련되어 있었다. 오늘도 어느 노부부가 기원을 드리고 가는지 달빛 아래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쥬맥은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지나쳐서 제단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밝게 유등(油燈)이 켜져 있었다.


제단 위에 차려진 천령수 열매들, 그리고 푸르스름하게 피어오르는 향불.


생명을 죽인 죄인으로 그 앞에 서니 왠지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고······.


가만히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제단 위에는 천령수와 팔천세계(八天世界), 천신을 형상화한 부조물이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쥬맥은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제단 아래 서서 큰절을 세 번 한 뒤에, 무릎을 끓고 향불에 향을 더 집어넣었다.


향무가 더 번지는 가운데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손에 목숨을 잃은 자들을 위해 기원(祈願)을 드렸다.


부디 원귀가 되지 않기를!


다음 생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남겨진 가족들의 아픈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그렇게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했다.


천신께 한참을 기원하고 다시 큰절을 세 번 한 뒤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신당(神堂)을 물러 나왔다.


“휴우~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하군.”


비록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인 상처만은 쉬 아물지 않았다. 첫 살인의 죄의식이랄까.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수많은 타인의 생명을 죽여 가며 살아야 하는가?”


비록 대부분이 이종족이겠지만 문명을 이루고, 가족이 있고, 서로 말하는, 모습만 조금 다른 사람들이다. 모습과 말이 다르다고 어찌 짐승이겠는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때 무술만 뛰어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구릉 위에 멍하니 서서 달빛 아래 천인족의 거주지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상념(想念)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눈을 돌려보니 천사장이 밤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쥬맥을 발견(發見)하고 다가오는 중이었던 것.


황급히 앞으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공손하게 예를 드리니 천사장이 손짓을 하며 다가왔다.


“허허허! 아니 너는 쥬맥이 아니냐?”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인석아, 나야 선인 수행이나 하면서 사는데 못 지낼 게 뭐가 있겠느냐? 그런데 너는 고민이 많은 얼굴이구나?”


“근래에 몇 가지 힘든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


“어린 녀석이 무슨 일이 힘들어? 전에 보돈타 대족장의 오른팔이라던 녀석을 봐주려다가 억울하게 당한 거?


아님 무위가 높다고 고참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것 때문이냐? 음~ 그도 아니면 이번에 들개 떼와 야챠족을 수없이 죽이고 나니 이제 피를 보기가 겁이라도 나는 것이냐?”


“우와, 어떻게 저에 대해서 그렇게 소상히 알고 계세요?”


“인석아! 선인 수행만 백 년이 넘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천안통, 천이통쯤이야 깨달을 나이가 아니겠느냐?”


천사장이 안 봐도 모두 안다는 듯이 현기가 어린 눈으로 쥬맥을 지긋이 바라보는데, 그 눈빛을 받은 쥬맥은 자신의 영혼까지도 꿰뚫린 듯했다.


‘차라리 털어놓고 여쭈어 볼까’


쥬맥은 자신의 고민을 수행이 높은 천사장께 다 털어놓고 상담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전투에서 겪은 여러 가지와 그동안 혼자 끙끙대던 것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았다. 그러자······.


“이 녀석아! 사내가 일단 무사가 되겠다고 도검을 들었으면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 그것은 무사의 숙명과 같은 거야.


그렇지만 같은 칼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칼을 휘두르지 말고 사람을 살리는 칼을 휘둘러야 진정한 무인이 되는 것이지. 사람을 살리는 칼 말이다.”


“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나요?”


“이번에 네 녀석이 야차족의 대장을 죽이고 나머지를 살려서 보냈다면서? 작게 보면 그와 같은 거야. 비록 한 사람을 죽였으나 그것으로 나머지 여러 사람을 살린 게지.”


“아~ 또 그렇게 되는 것인가요?”


“큰 인물이 되려면 그만큼 큰 고통과 시련이 따르는 법이다. 때로는 전장에서 수백만 명을 살리기 위하여 수십만 명을 죽여야 할 때도 있고 말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한 명을 살리기 위하여 수백 명, 수천 명을 죽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그렇게 수십만 명을 죽여야 하는 고통은 얼마나 크겠느냐? 누가 그것이 좋아서 그리할까? 너는 이제 그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한 거란다.


큰 나무는 좀 더 인고의 세월이 있어야 제대로 꽃이 피는 법이니 너무 마음 아파하며 서두르지 말아라.”


“저는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천사장이 쥬맥의 눈을 한참 동안 깊숙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얼굴을 돌려 달빛 아래 드넓게 펼쳐진 천인족의 주거지를 아련히 바라본다.


“너는 대나무라는 풀을 아느냐?”


“대나무라는 나무는 알고 있지만 풀은 모릅니다.”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니라.”


“대나무라고 부르니 나무가 아닌가요? 모두 나무로 아는데요.”


“대나무는 나이테도 없고, 한 번 자라면 줄기가 더 이상 굵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은 나무가 아니라 다년생(多年生) 풀이란다.”


“아, 그런가요? 그런데 갑자기 대나무는 왜 물어 보시는지요?”


“대나무의 씨앗을 심어서 그 줄기를 보기까지 농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느냐? 그리고 그 열매가 맺기까지 봉황은 또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는지 알고 있느냐?”


“글쎄요. 대나무는 씨앗이 없어서 뿌리로 옮겨 심지 않나요?”


“대나무에도 씨앗이 있단다. 농부가 대나무 씨앗을 땅에 심으면 씨앗에서 싹이 날 거라고 믿고 매일같이 물을 주면 삼 년이 지나야 겨우 싹이 난단다.


그런데 그 싹이 바로 자라지 않고 이 년은 땅속으로만 뿌리를 내리니, 기다림을 모르는 사람은 또 얼마나 속이 타겠느냐? 그저 환장할 노릇이지.”


“어떻게 씨앗을 뿌리고 오 년씩이나 기다리나요? 일 년도 힘든데요.”


“그래서 큰 인물이 되려면 긴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오 년이 지나면 죽순은 쑥쑥 자라기 시작하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하루에 세 자가 넘게 빠르게 자라난단다.


세 달 만에 거의 칠 장이 넘게 자라지. 그래서 우후준순(雨後竹筍)이라고 하는 거다. 그렇게 자라기 위해서 대나무는 땅속에서 긴 시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지. 크게 될 인물처럼.”


“말씀을 듣고 보니 대나무는 정말 대단하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그 대나무가 또 열매를 맺기까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 아느냐?”


“모든 나무나 풀은 일 년에 한 번씩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지만 대나무는 육십 년에 한 번 정도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고, 그 시기를 놓치면 또 육십 년 즉 백이십 년이 지나야 꽃이 피지.”


“그럼 사람들은 평생(平生)에 한두 번밖에는 볼 수가 없겠네요?”


“그렇지. 그 열매가 그리 귀하니 벽오동나무의 가지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는 봉황이 오동(梧桐)의 열매나 대나무의 열매만 먹고 살지 않느냐?”


“귀하긴 정말 엄청 귀한 열매군요.”


“그런데 이 대나무가 육십 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그 대나무 밭에 있는 모든 대나무가 함께 꽃을 피우고 나서 전부 죽어 버린단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전부 죽어 버린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너무 안타깝군요.”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에 모두 죽어 버리면, 새로운 씨앗이 그 죽어 버린 대나무를 자양분(滋養分) 삼아서 다시 싹을 틔우고, 세대를 교체해서 새로운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이지.


죽은 대나무가 썩어서 새 시대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야. 이것을 어떤 사람은 세대가 교체한다고 하고 누구는 혁신이나 혁명이라고까지 부르거든.


그런데 새로운 대나무 씨앗이 모두 다 싹이 나는 것은 아니란다. 어느 것은 봉황(鳳凰)이 먹고 어느 것은 배고픈 새들이 먹고···, 어느 것은 썩어서 싹이 나지 아니하고 극히 일부만이 싹이 터서 새로운 대나무 밭을 이루지.


대나무는 번식력이 너무 왕성하여 그 씨앗이 모두 발아하여 자란다면 세상은 모두 대나무 숲이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 또한 천신의 신묘한 섭리(攝理)가 숨어 있는 것이지.”


“그렇군요. 좋은 것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대교체니 혁신이니 혁명이니 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말쟁이들의 말이 중요한 게 아니란다. 물론 인고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주변에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네 영혼의 빛을 지키려는 의지(意志)가 가장 중요한 것이야”


“사탕발림 같은 달콤한 유혹에 현혹(眩惑)되지 말고 올바른 의지만 가지고 인고하며 나아가면 때가 온다는 말씀이시지요?”


“바로 그거야. 내가 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을 알겠느냐?”


“저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여러 가지 고통을 인내(忍耐)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이지요?”


“그래, 잘 알아듣는구나. 그리고 혹시 아느냐? 그러면 이 종족의 지도자(指導者)가 될지도······. 그때는 또 마음을 비우고 우리 종족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대나무처럼 네 몸까지도 자양분이 되도록 내어 줄 줄 알아야 비로소 누구나 널 우러르고 따를 것이다.”


“여러 가지 좋은 말씀에 오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쥬맥이 진심으로 두 손을 모아 깊이 허리를 숙여 천사장께 인사를 드렸고, 천사장은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그런데 돌아갈 줄 알았던 천사장이 다시 쥬맥을 쳐다보더니 얼른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그리고 네 마음에 쌓인 원망(怨望)과 미움도 모두 털어내야 한다.”


“원망과 미움이요? 저는 이제 그런 것 없는데요?”


“이 녀석아! 네 마음속 깊숙이 가라앉아 있어서 못 느끼는 것이지. 어떤 일이 계기가 되면 그것이 표면으로 떠올라서 너의 영혼을 분노로 잠식(蠶食)할 것이다. 그 씨앗이 싹트지 않게 미리 깨끗하게 씻어 내야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쥬맥은 자신에게 원망과 미움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천사장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부모 형제가 너만 두고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고 원망하지? 병든 너를 산속에 버려서 십 년이 넘게 힘들게 살게 했다고 원망하고. 너를 버린 사람들이 밉고 따돌리던 사람들이 밉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요.”


“어린 너를 혼자 두고 죽으면서 네 부모 형제는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을 것이다. 죽어서도 두 눈에 불을 켜고 지켜 주는 가호(加護)가 없었다면 어찌 어린 네가 그 무서운 병마를 이겨낼 수 있었겠느냐?


너를 버릴 때 너와 같은 자식을 두고 있는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네가 무엇으로 산속에서 홀로 무공과 천인족의 역사와 문화를 익혔느냐?


그런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아라.


산속에 혼자 있을 때 너는 태을 선인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실은 너를 지키러 수십 번을 다녀왔었다.


또 그것이 어찌 태을 선인 혼자 생각으로 이루어졌을까? 한울께 측은지심이 없었다면 천하제일가의 최상승의 절예(絶藝)라는 그 혼원은하무량신공이 어떻게 해서 네 손에 전해졌겠느냐?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配慮)와 보살핌이 있어서 오늘의 네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미처 그것까지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쥬맥이 이제야 알게 되어 죄송하다는 듯이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천사장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너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그 사람들께 감사(感謝)를 드리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바로 너를 위해서 하는 얘기니라.”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그만 먼지까지 모두 털어 내겠습니다.”


“그래, 그런 원념(怨念)들이 네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으면 네가 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때 네 마음속에 악념(惡念)과 사념(邪念)이 자라나서 그 원념과 결합하여 결국 너를 심마(心魔)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그리되면 수많은 사람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죽이는, 그야말로 인간백정(人間白丁)의 살인귀가 되는 것이니 유념하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밤이 늦었으니 너도 어서 가 보도록 해라. 나도 좀 쉬어야겠다.”


그러더니 쥬맥을 한 번 더 토닥거려 주고는 거처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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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화. 거인족과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67 47 19쪽
52 52화. 거인족과 반인족의 전투 21.06.29 1,366 47 18쪽
51 51화. 쥬맥이 맥쮸~ 되다 21.06.29 1,362 47 19쪽
50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21.06.29 1,352 47 19쪽
49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21.06.29 1,366 48 19쪽
48 48화. 친구를 찾아서 천인족으로 21.06.29 1,363 48 18쪽
47 47화. 회상(回想) 21.06.29 1,366 48 18쪽
46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21.06.29 1,394 47 20쪽
45 45화. 비월족의 패전 대책 21.06.29 1,401 48 19쪽
44 44화. 주작이 준 기연(奇緣) 21.06.29 1,409 48 18쪽
43 43화. 청룡(靑龍) 출현 +1 21.06.29 1,399 48 19쪽
42 42화. 비월족의 습격(襲擊) 21.06.29 1,414 48 18쪽
41 41화. 반인족 울트의 계략 21.06.29 1,443 48 18쪽
40 40화. 또 하나의 경지를 넘다 21.06.29 1,429 48 19쪽
39 39화. 무공(武功) 수련과 첫 전투 +1 21.06.29 1,428 48 19쪽
38 38화. 친구들의 동태 21.06.29 1,424 47 19쪽
37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1 21.06.29 1,460 48 20쪽
36 36화. 친구의 선물(膳物) 21.06.29 1,421 48 18쪽
35 35화. 비월족(飛月族) 금령월 21.06.29 1,437 48 18쪽
34 34화. 거인족 사절단(使節團) 21.06.29 1,433 48 20쪽
33 33화. 새로운 신공(神功) 수련 21.06.29 1,461 48 18쪽
32 32화. 태을 선인과의 조우 21.06.29 1,437 48 18쪽
31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21.06.29 1,452 50 19쪽
30 30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 21.06.29 1,447 46 38쪽
29 29화. 복수는 또 다른 피를 부른다 21.06.29 1,425 49 18쪽
28 28화. 적소인의 복수전(復讐戰) +1 21.06.29 1,470 50 18쪽
27 27화. 새 친구 미라챠 +1 21.06.29 1,465 49 18쪽
26 26화. 야차족과의 조우 +1 21.06.29 1,448 49 18쪽
25 25화. 소인족 포로들 +1 21.06.29 1,467 49 18쪽
24 24화. 정보전(情報戰) +1 21.06.29 1,514 4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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