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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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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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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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62화. 새로운 출발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쥬맥은 돌아가는 천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예를 표한 다음,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하천가의 다리에 걸터앉았다.


하늘을 바라보니 달도 이미 기울어 가는데 수많은 별들이 보석(寶石)처럼 반짝이고, 잠을 잊은 풀벌레 소리가 깊어 가는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애처롭게 울리고 있었다.


가만히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꿈속에서 부모님이 하신 말씀과 형이 하던 말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산속에서 먹는 거나 동굴도 형이 꿈속에서 알려 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


버려지기 전날, 비 대족장과 부족장들은 왜 나를 찾아와서 식사를 챙겨 주고 여러 가지를 물어봤을까?


버리려고 들것에 보를 씌워서 들고 갈 때 들려오던 대화들도 떠올랐다. 지금 무공의 고수가 되어 보니 수백 장 거리의 소리들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나를 버리고 가던 사람들도 고수들인데 내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자식을 둔 사람들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어땠을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면서도 귀를 막고 뒤돌아서지 못했던 그들의 아픈 마음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모두 나 같은 자식을 둔 어른들이니 말이다.


태을 선인은? 신수 주작은? 한울께서는? 나는 버려진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버지 말대로 용감히 살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니 지금까지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외롭게 고통 속에서 혼자 몸부림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따돌림을 당하고, 부모 형제가 없으니 못 배워서 천둥벌거숭이 비루먹은 망아지 같다고, 호래자식이라고······.


그래서 첫사랑도 떠나 버리고···, 온갖 험담(險談)을 들으면서 이제껏 억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가슴속 깊은 곳에는 원망(怨望)이 가득했고······.


잊었다고 자위를 하지만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괴롭혔던 그 생각들!


그 모든 것이 전후를 생각하니 봄눈이 녹듯이 금방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모두가 나를 지켜 준 것이었구나! 내가 왜 그것을 몰랐을까?”


쥬맥은 이제야 마음속 깊이 잠재(潛在)되어 있던 모든 그런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깨끗이 털어 버렸다.


원망과 미움을 먼지 한 톨 없이 털어 내고, 오직 감사(感謝)와 사랑의 마음만 담아야겠다고 기울어 가는 달빛 아래서 홀로 다짐하였다.


그러자 하늘의 별과 달도 응원을 해 주는 듯하여 손을 흔들어 주었다.


생각 하나로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였다.


차가움이 따스함으로, 미움과 원망이 사랑과 감사함으로, 힘들었던 것이 보람과 행복했던 추억으로!


그런 기쁜 마음으로 천막집에 돌아와 오래간만에 깊은 꿀잠을 잤다.


* * * * *


한편, 여기는 야차족 영역의 야얼란.


마린챠와 미라챠 모녀가 복수(復讐)를 하기 위해서 출전 준비가 한창이다.


그동안 야신 진신챠가 마린챠 모녀를 죽이기 위해 해독제가 없는 극독을 가진 인면사(人面蛇) ‘챠왕’에게 둘을 죽이라고 주술로 저주를 걸어서 보냈다.


그것 때문에 여러 번 죽을 뻔했고, 공포스러운 위기도 여러 번 넘겼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토납술을 열심히 수련한 까닭에, 축기와 함께 감각이 예민해지고 몸동작이 무척 빨라져서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


이제 더 이상 기다리면 반대로 당하기 쉬운지라 결단을 내려서 진신챠를 치러 가는 것이다.


드디어 복수를 위한 칼을 뽑아 들고!


대추장 격인 두 야얼의 충성 서약(忠誠誓約)을 받아 낸 마린챠는, 그동안 자신이 육성한 오만의 전사에 두 야얼로부터 각각 오만씩 총 십오만의 병력으로, 마침내 긴 세월 동안 기다려 온 복수를 위한 원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선발대로 이만의 전사를 비얼산 남쪽 끝자락 밑에 있는 넓은 벌판으로 보내어 진지를 구축하고, 오늘 드디어 본대(本隊)가 출발하기로 했다.


이번 전투를 위해 많은 짐승들도 준비했다. 우선 반인족에서 약탈한 시리낙타 오백 마리는 기마대로 운영되었다.


거기에 우르들소 일만 마리가 식량 겸 돌격용으로, 혈천귀범 오천 마리는 기습용으로 동원되었고······.


우르들소는 우르고원 주변이나 높은 고산 지대에 서식하는 야생 소인데 어려서 붙잡아 키우면서 길들인 것이다.


몸통 두께가 다섯 자(1.5m)에 길이는 열 두 자(3.6m)에 이르는 거구를 자랑했다. 수백 마리만 동시에 달려도 지축(地軸)이 울리는 것처럼 그 일대가 쿵쿵거렸다.


혈천귀범은 귀가 큰 붉은 표범인데, 해발 천칠백 장(5,100m) 이하의 전역에 서식하고 있으며, 새끼 때부터 잡아서 기르면 마치 개처럼 주인을 잘 따랐다.


근래에는 집단 사육하여 적을 기습 공격할 때 주로 동원하는데, 몸통 직경이 두 자(60cm) 정도에 길이는 다섯 자(1.5m) 정도였다.


이렇게 짐승들까지 만오천오백 마리가 복수전에 동원(動員)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야차족은 대대적인 전투를 한 적이 거의 없어서 전투 체계(戰鬪體系)가 매우 엉성했는데······.


명령을 거의 구두로 전달하니 시끄러운 전장에서는 멀리까지 그 명령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린챠는 지난번에 시리낙타를 약탈(掠奪)할 때 겪었던 반인족과의 소단위 전투를 떠올리고, 명령 전달에 구두가 아니라 뿔고동을 사용하기로 했다. 명령의 종류에 따라 각각의 신호를 정하고 사전에 뿔고동 수백 개를 만들어서 훈련을 시켰다.


또한 거인족과의 전투 경험을 살려서 그때 사용했던 무기나 전투 방법을 이번에도 잘 활용하기로 했고 말이다.



드디어 출발 시간.


마침내 마린챠와 미라챠 모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전사들을 향해서 손짓을 하니 뿔고동 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모두 출발하라!”


“출발!”


신호에 따라서 지정된 순서대로 부대가 전장을 향해 진군(進軍)을 하기 시작했다. 두 모녀는 가장 크고 건장한 시리낙타에 화려한 치장을 해서 타고 있으니 고귀함과 위엄이 넘쳤다.


총 십오만 명 중에서 선발대 이만과 보급 및 취사 등 기타 잡무부대 일만 명을 뺀 십이만 명이 순서대로 줄을 지어 출발하니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보려고 구경을 나온 부족민들로 그 일대가 시끌벅적하니 장사진(長蛇陣)을 이루었고.


마침내 중간 부분에서 마린챠 모녀가 치장한 시리낙타를 타고 나타나자, 부족민들이 모두 함성과 함께 손을 흔들며 열렬히 환호(歡呼)했다.


“마린챠 만세! 미라챠 만세!”


두 사람이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니, 그 주변을 시리낙타를 탄 건장한 수신호위 수십 명이 사방을 철통같이 경계하며 물샐틈없이 호위(護衛)를 했다


복수의 칼날을 갈아 온 지 벌써 십수 년. 과연 마린챠 모녀는 그토록 벼르던 복수에 성공할 것인가?



복수를 위한 원정대(遠征隊)의 본대가 비얼산 아래에 있는 넓은 벌판에 도착하자, 미리 출발한 선발대가 진지를 구축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본대를 각 부대별로 나누어 막사를 세운 곳으로 안내해서, 우선은 이동에 지친 피로를 풀도록 했다.


마린챠 모녀는 진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전황(戰況)을 보고받았다. 그러면서 내용을 하나씩 세세히 확인하고, 적을 일격에 박살 낼 여러 전략들을 다시 현지에 맞추어 보완(補完)시켰다.


책상머리에서 머릿속 생각으로 세워 둔 것과 현지의 사정은 항상 차이가 많은 법이니 직접 현장을 확인하여 조율을 하는 것이다.


다행히 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는지 아직 진신챠의 방어 부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전장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꾸밀 시간이 주어졌다.


그럴 만한 게 진신챠는 매일같이 주색(酒色)에 빠져 비밀 거처에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오늘도 술과 미혼향(迷魂香)에 취해서 혼몽한 가운데 십여 명의 은모야차 여자들과 정신없이 뒹굴다가 첩보대로부터 뒤늦게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마린챠 모녀가 이미 본대를 이끌고 비얼산에 다다랐다고 한다. 벌써 코앞에 말이다.


수장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탕하니 그 밑의 수하들인들 오죽 할까? 윗머리들의 눈치나 보면서 대충 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큰일이 눈앞에 닥치니 ‘앗, 뜨거워!’ 하는 것이다.


진신챠는 보고를 받고서야 정신이 드는지, 술에 취해 은모야차 여자의 큰 가슴에 묻고 있던 얼굴을 쳐들고 심복(心腹) 부하들을 부르게 했다. 그러자 곧 몇 명의 심복들이 진신챠와 똑같이 술이 덜 깬 얼굴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래, 마린챠 모녀가 원정군을 이끌고 이미 근처까지 왔다고?”


“비얼산 아래에 도착해서 진지를 꾸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아마 암암리에 몰려온 모양이옵니다.”


“거기 올 때까지 당신들은 뭐했나?”


“그들이 하도 은밀하게 움직여서 알 수가 없었사옵니다. 죄송하옵니다.”


“이놈들!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 그것들이 십만 명이 넘는다면서 어떻게 은밀하게 움직여?”


“모두 야얼란에 있는 두 역적 야얼놈들 때문이옵니다. 그놈들 둘이 내통해서 우리의 눈을 가린 것이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왜 야아란에 바로 쳐들어오지 않고 비얼산에서 기다리지? 그랬으면 우리를 다 죽였을 거 아냐?”


“우리 군대가 야아란 초입에 집중해서 포진한 이유도 있고, 일반인을 전쟁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겠다는 알량한 마음도 있는 모양이옵니다.”


“그래? 그래서? 다른 것 탓하지 말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거야? 그까짓 어중이떠중이 모인 것들을 이번에 단칼에 정리를 해 버려야지!”


“지금 그들보다 더 많은 정예 이십만을 준비해서 며칠 뒤에 바로 출진할 예정이옵니다. 야신께서는 어찌하실 요량(料量)이시옵니까?”


“뭘 어찌해? 가서 잘난 그년들의 마지막을 구경해야지. 내가 마차를 끌고 함께 갈 거니까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그럼 사흘 뒤 아침에 출진하도록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알았어. 이번에 지면 당신들은 전부 목이 날아갈 줄 알어?”


그 소리에 심복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를 떠났다. 술과 여자에 빠져서 허송세월을 하다가 괜히 자기네만 탓한다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삼일 뒤 아침.


드디어 진신챠와 심복들이 거느리는 군대(軍隊)가 출진하는 날이 밝았다.


이십만 명이나 되니 대연병장도 모자라서 이곳저곳에 분산(分散)되어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진신챠는 해가 떠오르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입이 한 자나 튀어나와서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 그로부터 또 한 식경이 더 지나서야 느릿하게 커다란 마차를 끌고 나타났다.


주변에는 그를 지키는 호위들 수십 명이 마차를 빙 둘러 쌌고, 안에서는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도 들렸다.


진신챠가 아직도 술이 덜 깼는지 흐릿한 눈으로 창밖에 고개를 내밀더니 마침내 출발 명령을 내렸다.


“이제 출발하도록 하라.”


“출발하라!”


“출발! ······ 출발!”


구두로 전달이 이루어지고 대군이 한 부대씩 전장을 향해서 줄줄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부대가 모두 떠나고 난 뒤에야 진신챠는 호위들과 함께 느긋하게 마차를 타고 그 뒤를 따라갔다.


커다란 마차는 휘황한 주렴과 가림막들이 창을 가려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건장한 스무 명의 야차족 남자들이 긴 밧줄을 어깨에 메고서 소처럼 끌고 있었다.


느리게 가면 뒤에서 긴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갈기니 그들의 피부에는 울긋불긋한 피멍이 들었고······.


“적군이 온다!”


마침내 드넓은 벌판에서 복수를 하러 온 마린챠 모녀의 십오만 대군과, 야신인 진신챠의 이십만 대군이 칠백 장(2.1km)의 거리를 마주하고 대치했다.


양 진영 모두 거대한 진지를 세우고 적군과 마주하니 숨막힐 듯한 긴장감과 무시무시한 살기가 전장을 감돌았다. 마치 살을 에이는 예리한 칼날처럼.


진신챠 부대가 뒤늦게 도착하여 진지를 구축할 때 여러 대장들이 지금 들이쳐서 초전(初戰)에 박살을 내자고 건의를 하였으나, 마린챠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은 아열대 지역이라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아서 들판에는 지난해에 자라서 죽은 풀과 올해 새로 자라난 푸른 풀들이 뒤섞여 있었다.


진신챠가 도착한 첫날 밤에 마린챠는 진지 경계를 강화하고 소규모로 적진을 기습(奇襲)하라고 일렀다.


그래서 미라챠가 토납술 훈련으로 몸이 날래진 전사 오백 명을 이끌고 적이 잠들 무렵에 기습을 감행(敢行)했다.


깊게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다가 물러나고, 또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서 공격하는 척하다가 물러나고. ······공격하고 ······물러나고.


이렇게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습에 진신챠 부대는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결국은 잠을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모두 멍하고 까칠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는데······.



마침내 승부를 가르는 결전의 날.


오늘의 피 흘림을 예고하는지 선혈처럼 붉은 해가 하늘을 물들이며 동녘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두 군대는 언제 다시 먹을지 기약이 없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뒤, 무기를 거머쥐고 전장에 마주 섰다.


그런데 마린챠 부대는 칠만 정도만 남아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고,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탐망 운영도 제대로 안 되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적진에서는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도 없었고······.


진신챠는 전장에 나와서도 밤새 무엇을 했는지 핼쑥하고 술이 덜 깬 얼굴로 마차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가서 총대장을 불러오너라.”


호위를 시켜서 총대장을 부르더니 마린챠 부대를 단숨에 몰아붙여서 초전에 박살을 내라고 소리쳤다.


드디어 양 진영이 마주 보고 ‘와!’ 하면서 기 싸움을 벌이는데 진신챠 부대에 구두 명령(口頭命令)이 전달되었다.


“전군 돌진하라. 단숨에 박살 내라!”


“앞으로 돌격!”


“돌격 앞으로! ······ 돌격!”


이십만 명이 한꺼번에 돌진해 오니 사방에 먼지가 일고 함성이 전장을 뒤덮었다. 광야의 거친 짐승 떼처럼 말이다.


적이 근처까지 다가오자 마린챠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뿔고동 소리가 약속된 신호로 멀리까지 들리도록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그 신호에 맞추어서 부대가 뒤로 천천히 후퇴하자, 진신챠의 부대는 더욱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일제히 정면으로 덮쳐들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다시 뿔고동이 무엇을 독촉이라도 하듯이 급히 울었다.


뿌우~ 뿌우~ 뿌우~


그 소리에 맞추어 뒤에서 우르들소 일만 마리를 탄 부대가 나타나더니 적진으로 돌진(突進)하기 시작했다.


소는 옆을 보지 못하도록 눈에 가림막이 되어 있어서, 앞만 보고 이끄는 대로 적진을 향해서 들판을 내달렸다. 마치 무소의 뿔처럼······.


일만 마리의 거대 들소가 들판을 내달리니 지축이 울리듯 그 소리가 귀청을 두드린다.


두두두두두두두!!!


그러자 사방에서 진신챠 부대가 들소의 발굽에 짓밟혀 쓰러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칠천여 명이 죽거나 다쳤고······.


들소부대는 전장을 휘젓고 뒤에서 둘로 나뉘더니, 다시 뒤를 치고 돌아오며 적을 뒤에서 짓밟고 달려와서 마린챠 부대의 진지 뒤로 사라졌다.


그러자 진신챠의 부대는 순식간에 일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기고 사기가 저하되었다. 그때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신챠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래 봐야 만 명밖에 쓰러지지 않았다. 계속 몰아붙여라!”


“계속 몰아붙여라!”


목이 터지게 외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명령이 잘 전달되지 않았고, 진군하던 부대는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때 미라챠가 다시 손을 들어올리자 또 뿔고동이 울려 퍼졌다.


뿌우~뿌뿌우~ 뿌우~뿌뿌우~


그러자 뒤에서 오천에 이르는 혈천귀범과 오천의 보병, 시리낙타를 탄 오백의 기마대가 나타나더니, 적진의 중앙을 치고 들어가며 필요 없는 나무를 쳐내듯이 적을 격살(擊殺)했다.


그리고 그 뒤를 토납술을 익힌 날랜 전사들 이만 명이 번개처럼 뒤따르며 쓰러진 적의 확인 사살과 동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옆에서 엄호하며 싸웠다.


그들은 또한 거인들과 싸울 때처럼 긴 밧줄에 묶인 날카로운 병기를 휘둘러서 적의 발목을 집중 공격하여 움직임을 둔화(鈍化)시켰다.


이번 공격으로 진신챠 부대는 이만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마린챠의 부대도 수천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이제 전장에는 광기(狂氣)어린 붉은 눈에 피와 비명만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똑같은 동족끼리 원수인 양 서로를 죽고 죽이니 그 처참지경을 어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왜?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오직 적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뿐!


그것이 바로 전장의 율법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 진신챠 부대의 수가 훨씬 많으니 계속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몰아붙이고, 진신챠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어디까지 버티는지 두고 보자는 듯이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다시 마린챠가 오른손을 번쩍 들자 이번에는 사방에서 뿔고동이 울렸다.


뿌뿌우~ 뿌뿌우~ 뿌뿌우~


그 소리에 치고 나갔던 혈천귀범과 오천의 보병, 시리낙타를 탄 기마대, 이만의 정예(精銳) 전사들이 서서히 뒤를 트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적도 많이 죽였지만 이쪽도 사상자가 꽤 되는지 제법 수가 줄었다. 그러자,


뒤를 받치고 있던 부대가 진군한 아군이 안전하게 빠져나오게 협공을 하면서 서서히 물러나니, 진신챠 부대는 이번에야말로 때가 왔다는 듯이 전군이 중앙으로 몰려오며 함성을 질렀다.


“와~ 돌격하라! 단숨에 박살 내자!”


“돌격하라!”


“돌격! ······ 앞으로 돌격!”


전장은 이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욱한 먼지 속에 광기에 침식된 고함과 비명만이 아우성칠 뿐!


살아남은 십여만 명의 진신챠 대군(大軍)이 마침내 때가 왔다는 듯이 파도처럼 밀어붙이니, 마린챠 부대는 단숨에 박살이 날 듯이 위태해 보였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린챠가 손을 들어 신호하자 긴박한 뿔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며 신속하게 뒤로 후퇴를 했다.


뿌우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


“발사 준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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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화. 거인족과 반인족의 전투 21.06.29 1,367 47 18쪽
51 51화. 쥬맥이 맥쮸~ 되다 21.06.29 1,362 47 19쪽
50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21.06.29 1,352 47 19쪽
49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21.06.29 1,367 48 19쪽
48 48화. 친구를 찾아서 천인족으로 21.06.29 1,363 48 18쪽
47 47화. 회상(回想) 21.06.29 1,367 48 18쪽
46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21.06.29 1,394 47 20쪽
45 45화. 비월족의 패전 대책 21.06.29 1,402 48 19쪽
44 44화. 주작이 준 기연(奇緣) 21.06.29 1,410 48 18쪽
43 43화. 청룡(靑龍) 출현 +1 21.06.29 1,399 48 19쪽
42 42화. 비월족의 습격(襲擊) 21.06.29 1,414 48 18쪽
41 41화. 반인족 울트의 계략 21.06.29 1,444 48 18쪽
40 40화. 또 하나의 경지를 넘다 21.06.29 1,430 48 19쪽
39 39화. 무공(武功) 수련과 첫 전투 +1 21.06.29 1,429 48 19쪽
38 38화. 친구들의 동태 21.06.29 1,424 47 19쪽
37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1 21.06.29 1,460 48 20쪽
36 36화. 친구의 선물(膳物) 21.06.29 1,421 48 18쪽
35 35화. 비월족(飛月族) 금령월 21.06.29 1,438 48 18쪽
34 34화. 거인족 사절단(使節團) 21.06.29 1,433 48 20쪽
33 33화. 새로운 신공(神功) 수련 21.06.29 1,461 48 18쪽
32 32화. 태을 선인과의 조우 21.06.29 1,437 48 18쪽
31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21.06.29 1,452 50 19쪽
30 30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 21.06.29 1,447 46 38쪽
29 29화. 복수는 또 다른 피를 부른다 21.06.29 1,426 49 18쪽
28 28화. 적소인의 복수전(復讐戰) +1 21.06.29 1,471 50 18쪽
27 27화. 새 친구 미라챠 +1 21.06.29 1,465 49 18쪽
26 26화. 야차족과의 조우 +1 21.06.29 1,449 49 18쪽
25 25화. 소인족 포로들 +1 21.06.29 1,467 49 18쪽
24 24화. 정보전(情報戰) +1 21.06.29 1,515 4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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