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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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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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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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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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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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39화. 사필귀정(事必歸正)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쥬맥이 하류의 뗏목부터 차례대로 부수니, 반인족은 구해 줄 아군이 없어서 물에 떠내려가거나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일부는 뗏목의 파편을 붙들고 서로 살겠다고 아군끼리 싸웠고······.


강둑에서는 각 대장들이 지휘하는 천인족 부대들이, 각자 나선은하진이나 무량미리진, 현천행성진 등을 펼치며 반인족을 공격했다.


강 위에서는 쥬맥이 홀로 뗏목들을 파괴하고 있었지만, 피는 보이지 않으나 땅 위에서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하고 있었다.


쥬맥은 한 명씩 대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탄 뗏목이 부서지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적이 아니라 물이나 동료(同僚)와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 좋자고 이런 처참한 전쟁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암담하지만, 종족과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밀려오는 적들을 대파(大破)하면서도 쥬맥의 기분은 참으로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죽이면서 즐거워한다면, 그건 바로 미친놈인 것을!


만약에 지상전으로 반인족 이십칠만오천과 천인족 사만이 맞붙었다면, 천인족 측에서도 꽤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강을 끼고 싸우니, 제대로 된 전쟁 장비를 갖추지 못한 반인족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도강도 하기 전에 공격을 받아 모두 물에 잠기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


천인족은 강을 경계로 삼아 이쪽에 적이 진지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과감하게 반인족을 강물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지상전에서 밀려 강물로 빠지는 반인족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오늘도 덧없이 스러진다. 그 누군가의 탐욕 때문에······.


강변은 온통 인간의 피로 물들었다!


그 피가 흘러서 내가 되었다가 강물로 흘러드니, 이제는 강물이 온통 핏빛을 띤 붉은 강이 되어 버렸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도 모른 채, 불쌍한 반인족 전사들은 피에 물든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치나니······.


하늘도 슬픈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랑비로 시작한 비는 점점 더 빗발이 굶어지더니···, 어느 순간 세찬 빗줄기가 되어 피로 물든 마음까지 적시며 주룩주룩 떨어져 내렸다.


아! 인간들은 그 속에서도 서로 죽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핏물은 빗물과 섞여 붉은 강을 이루며 흘러가는데······.


“으아아아악!”


드디어 마지막 남은 반인족 전사의 처참한 비명 소리!


이렇게 지옥과 같은 전투가 세 시진이나 이어진 끝에, 강을 건넌 반인족 전사들이 모두 쓰러졌다. 그러자 갑자기 태풍이 지난간 뒤의 고요처럼 전장에 깃드는 정적(靜寂)!


그리고 사방에 산처럼, 아니 쓰레기처럼 쌓여 있는 인간의 시신들!


어찌 저것들이 존엄한 생명을 가졌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그 속에서 살아남은 천인족도 그 참담함에 하늘을 우러르며, 모두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은 악마가 아닐진대···, 악귀처럼 피칠갑을 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비참한 것이리라.


이제 이쪽 강둑에는 천인족만 남았다. 반인족은 뗏목의 파편을 붙들고 헤엄쳐 돌아가거나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 떠내려가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뿐이었으니······.


오늘 반인족 이십만이 도강을 하였으나 십만이 강을 건너 지상에서 죽었고, 십만은 중간에 뗏목이 파괴되어 모두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그중에 일만이 살아서 돌아갔지만, 그래도 무려 십구만 명이나 되는 전사가 명을 달리했다.


천인족은 사만이 참전하여 천령대에서 칠천이, 백호대에서는 삼천이 죽으니 합해서 일만 명이 전사하였고.


반인족까지 총 이십만 명이, 같은 날 저승길에 올라 이승을 하직하였다.


이 많은 생명을 죽인 사람은 천인족인가? 반인족인가? 울트인가? 보돈타인가? 아니면 쥬맥인가?


참으로 참담할지니, 누가 이 많은 생명을, 무엇을 위하여 죽였단 말인가?



이 전쟁에서 반인족의 총사령인 쵸룬마저 사망했다. 그러자 반인족은 이제 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 건너 진지에 틀어박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전서응을 보내어 칸드란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마침내 전쟁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칸드란 울트의 결정으로, 반인족이 철군(撤軍)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거두지 못하고 강둑에 남아 있던 반인족의 시신들은, 모두 날짐승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물에 잠긴 시신들은 물고기의 밥이 되었고······.


그때부터 이 전장은 붉은 피에 적셔졌다 하여 적야(赤野)로 불렸으며, 인근의 강은 적강(赤江)으로 불리게 되었다.


반인족에게는 뼈아픈 패배의 장소요 천인족에게는 비록 승리했으나 상처밖에 남지 않은 한 많은 적야!


그리고 적강!



천인족 본거지 쪽으로 진군한 반인족 이십만은, 초전에 구자룬 총대장에게 칠만의 전사들을 잃었다. 그리고 소규모 전투를 이어가다가, 축성지 쪽 본대가 철군을 결정하자 밤에 몰래 철군을 해서 빠져나갔다.


그나마 천인족이 뒤를 쫓아서 공격을 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기에 망정이지, 추격전을 벌였다면 또 많은 수가 전장에 몸을 누였지 않겠는가?


이 전장에서도 반인족은 팔만오천 명이나 죽었다. 거기에 천인족이 일만오천 명이 죽어서, 양족(兩族)을 모두 합하면 총 십만 명이 죽었다.


두 전쟁터를 합하면 선발대 간 전투에서 죽은 일만오천을 합하여, 총 삼십일만오천 명이나 죽었다. 아무런 명예도 실리도 챙기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은 나란히 저승길에 올랐으니, 친구가 많아 외롭지는 않았으리라.


지상에서 대군과 맞붙은 구자룬 총대장의 부대는, 반인족이 토납술을 익히고 무기를 많이 개량하여 생각보다 많은 사상자를 냈다.


쥬맥이 도강하는 적을 공격한 것은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무사들의 시신은, 천인족 주거지 근처의 공동묘지(共同墓地)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모두 합동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비록 전쟁에서 이기고 적 이십구만 명을 죽였다고 하나, 항상 남의 큰 상처보다는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


그래서 이만오천 명이 죽은 천인족은 분위기가 마치 초상집처럼 우울했다.



이런 때에 천인족의 주거지를 은밀히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등에는 제법 묵직한 봇짐을 지고 있는데, 사방을 살피며 주거지와 경작지를 벗어나더니 경공술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이 사람을 은밀히 추적하는 몇 사람이 있었으니······.


봇짐을 지고 달리던 사람은 한참을 달리다 멈춰 서더니, 나무 그늘에 숨어서 봇짐을 내려 안을 살펴본다.


가죽으로 감싸서 단단히 묶은 제법 묵직한 물건이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묶음을 조심스럽게 풀어 보기 시작했다.


하는 모습으로 봐서는 지금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했고.


끈을 푸니 그 안에는 서책 이십여 권이 들어 있는데, 대부분 무술 관련 신공이나 심공 등이 적힌 무공서였다.


착잡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원래대로 봇짐을 싸서 어깨에 메고 일어나는데······.


그 얼굴이 전에 반인족 첩자와 물물 교역소에서 접선하였던 야비룬이었다. 바로 보 대족장 휘하의 야탄 부족장 사촌 동생이라는 무사 말이다.


전에도 야탄 부족장의 명으로 반인족 첩자와 접선하더니, 오늘도 아마 반인족 첩자와 접선을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아으, 진짜! 내가 꼭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환장하겠네.”


혼자서 투덜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경공술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 물물 교역소였던 빈 건물들이 모습을 보이자 차츰 발걸음을 늦추더니, 나무 그늘에서 나무를 짚고 서서 한참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혼자서 구시렁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에잇, 나도 모르겠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그러더니 다시 뒤돌아서서 왔던 길을 터덜터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얼굴은 이미 체념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렇게 이백여 장을 되돌아가는데, 그때 네 명의 무사가 그 앞을 막아섰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깜짝 놀라서 소리친다.


“아니, 누구요? 누군데 감히 불한당처럼 나를 막는 것이오?”


“당신이 바로 야탄 부족장의 사촌동생인 야비룬인가?”


“그렇소. 그게 어쨌다는 것이오?”


“우리는 당신을 이적죄로 체포하려고 따라왔다. 왜 물물 교역소(物物交易所)로 가서 반인족의 첩자를 만나지 않고 다시 되돌아가는 거지?”


“뭐요? 당신들이 그것을 어찌 알고 있었단 말이오?”


“예전부터 네가 야탄 부족장의 지시로 저지른 일을 모두 알고 있다. 오늘은 적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한 것인가?”


“이미 들통이 났는데 무엇을 감추겠소. 사실 나 자신도 무척 괴롭고 이 일이 싫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소.


사실 이 책들은 무공 관련 심공이나 신공서들인데,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알려 주지 않고 반인족에게 전해 주라고 해서 가지고 가던 길이오.


그런데, 가다가 열어 보니 무공서가 아니겠소? 지난번에도 한 번 뭣 모르고 전해 줬는데······.


내용을 알고 나니 천인족을 배신하는 것이라 도저히 전해 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다시 되돌아가는 중이었소. 그래서 가서 자수라도 하려고 말이오.”


네 사람은 몰래 뒤를 따르며 그의 행동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좋아, 그러면 당신이 잘못을 통감하고 자수를 했다고 인정해 줄 테니까, 그동안 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백해야 할 거야.”


“알겠소. 실은 야탄 부족장이 내 사촌형인데······.”


그는 알고 있는 바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혈을 짚어 그가 운기를 하거나 힘을 쓰지 못하도록 제압했다.


두 무사는 봇짐과 함께 야비룬을 연행했다. 그리고 남은 두 무사는 물물 교역소로 다가가서 건물을 샅샅이 뒤지더니, 천인족과 똑같이 생긴 청년 두 명을 제압(制壓)하여 끌고 나왔다.


그들의 한 손에는 반인족이 가지고 있던 문서들과, 연락용 전서응(傳書鷹)이 든 새장이 들려 있었고······.


그들은 지난번에 야비룬과 접속한 반인족의 첩자들이었다. 반인족의 여자 통역사가 천인족의 씨를 받아서 탄생한 천인족 같은 반인족 말이다.


그들은 천인족의 말도 잘했기 때문에, 모두 증인으로 두 무사에게 끌려갔다.



오늘은 한울 주관으로 천인족 대회의(天人族大會議)가 있는 날.


천사장과 대신녀, 네 대족장과 천령대 총대장, 한울 수신호위장까지 아홉 명이 한울의 집무실로 모여들었다.


모두 침울한 표정인데, 보 대족장만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혼자서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섰다.


참석자가 모두 들어서자 한울의 수신호위 오십 명이, 밖에서 건물을 마치 포위를 하듯이 감쌌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령대의 최고 고수들 오백 명이, 다시 이중으로 건물을 철통같이 감싸는 것이 아닌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꼭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녀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한 잔씩 돌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차를 음미하며 마시고 있는데······.


한울 옆에 앉아 있던 수신호위장(守身護衛長) 안율이 일어서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말하며 나갔다.


그런데 들어오면서 보 대족장을 지나쳐 구자룬 총대장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중에, 중간에 앉아 있는 보돈타 대족장의 목뒤에 있는 천주혈을 벼락처럼 짚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양손 팔꿈치에 있는 곡지혈까지 짚어서 전신을 마비시켰다. 그러자 혼자 웃으며 얘기하던 보 대족장이, 전신이 마비되자 깜짝 놀라며 소리친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호위장! 빨리 혈도를 풀지 못하겠소?”


그러나 안율은 장난이 아닌 듯, 서슬이 퍼런 눈으로 보 대족장을 뚫어질 듯이 노려보았다.


“조금 있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여봐라! 어서 들어와서 죄인을 포박하라!”


그러자 수신호위 열 명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태을현철의 연사를 천잠사에 섞어서 꼬아 만든 포승줄로, 보 대족장의 두 다리와 두 손 그리고 온몸을 꽁꽁 묶어 포박하였다.


힘을 쓸수록 살 속으로 파고들어, 어떤 고수도 끊을 수 없다는 포승줄이다.


놀라서 얼굴이 샛노래진 보 대족장!


그는 움직이지도 못하니 눈으로만 한울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고함쳤다.


“내가 정적이라고 비겁하게 작당을 해서 제거를 하려는 것이오? 차라리 정당하게 심판을 받게 해 주시오.”


그러자 한울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대의 죄는 곧 밝혀질 것이오.”


한울의 말에 야 대족장이 나서서 보 대족장의 편을 들며 언성을 높였다. 사돈 간이니 보 대족장이 없으면 자신의 세력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족장인데···, 꼭 이리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한울에 대한 말투들이 도를 넘었다. 그러나 한울은 침착한 표정으로 우선 앉아서 차차 확인하라고 손짓을 했다.


“모두 밝힐 것이니 우선 앉아서 잠시 기다리시오. 안 호위장! 시작하시오.”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수신호위장 안율이 정중하게 한울을 향해 예를 표한 뒤, 앞으로 나서서 참석자들을 바라보며 목례를 하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보돈타 대족장이 그동안 저지른 이적 행위에 대하여 고하고, 그 징계를 결정하고자 하오니 중간에 이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보 대족장이 고함을 질렀다.


“이봐! 아니, 내가 무슨 이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야? 모두 거짓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보 대족장이 이적 행위까지야 했겠소?”


야 대족장이 다시 편을 들고 나서자 안율이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일단 증인들의 얘기를 듣고 말씀하시지요. 여봐라! 증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끌고 오너라.”


그러자 기찰단 소속 무사들이 야탄 부족장과 그의 사촌동생 야비룬, 반인족의 첩자(諜者) 두 명까지 모두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야탄 부족장에게 묻겠소. 보 대족장으로부터 반인족 관련하여 어떤 접선을 지시 받았소?”


그러나 딱 잡아떼는 야탄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왔을 뿐이오. 아무것도 지시받은 것이 없소. 무엇을 증거로 모함을 하려는 것이오?”


“그럼 그 조카 야비룬에게 묻겠다. 야탄 부족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아서 반인족의 첩자와 접속했는가?”


야비룬은 별도 취조 시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으면 이적죄로 삼족을 멸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자신으로 인하여 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할까 봐 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말이다.


“저는 전에 반인족 물물 교역소에서 통역으로 일했는데, 반인족 말을 아는 관계로 사촌 형인 야탄의 지시를 받아서 반인족의 첩자와 접속하였으며···.”


그는 그동안 야탄이 시켜서 행하고 들은 내용을 남김없이 모두 털어놓았다. 보 대족장이 반인족 울트 대추장과 만나도록 한 내용부터 전쟁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한 일까지.


그리고 무공서를 한 차례 전하고, 두 번째는 무공서라는 것을 알고 차마 이적 행위를 할 수가 없어서 되돌아와 자수했다고 말했다.


야탄은 그 말을 듣더니 노발대발(怒發大發)하면서 잡아떼었다.


“이놈! 네놈이 무슨 일을 했기에 사촌 형인 나까지 끌어들인단 말이냐? 내가 언제 그런 지시를 하였더냐?”


“야탄! 조용히 하시오! 그럼 지금부터는 반인족의 두 사람에게 묻겠소.”


그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서 보내 줄 것이고, 거짓을 고하면 모두 참형에 처할 것이라고 사전에 엄포를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그들은 묻는 질문에 그동안 진행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하였다.


심지어 보 대족장이 반인족에 들어가서 칸드란 울트와 만월축제에 참석하였고, 거기에서 젊은 여자들과 벌인 추잡한 내용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참석자들은 보 대족장의 행위에도 놀랐지만 천인족과 똑같이 생긴 반인족의 첩자가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세상에 사람의 씨를 도둑질하다니!


이어서 기찰단에서 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대해 보고를 하였는데, 이 또한 내용이 대부분 비슷했다.


보 대족장은 얼굴빛이 점차 납빛이 되어 갔고, 야 대족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보 대족장을 향하여 삿대질을 해 대며 소리쳤다.


“이봐! 나는 사돈이라 인간적으로 도왔는데 그런 더러운 짓까지 벌이고 종족을 배반하며 기밀까지 팔아넘기다니! 더구나 전쟁까지 일으켜서 수십만 명이 죽었는데,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한편으로는 배신감에,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고함을 내보이고자 하는 행동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야탄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버티면서 보 대족장을 옹호했다.


“이것은 모함입니다. 보돈타 대족장님을 해치려는 모함입니다.”


억울하다는 듯이 외쳐 대자 천사장이 가만히 일어나서 나오더니, 야탄 부족장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너는 묻는 말에 있는 사실대로 전부 말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자 정신이 제압되고 강한 섭혼술에 최면이 걸린 야탄의 눈이 풀렸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一瀉千里)였다.


그동안 보돈타 대족장으로부터 지시받은 일부터, 보고 들은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천사장이 일어나서 자리로 돌아가며 섭혼술을 풀었다.


“이제 깨어나라!”


그 한마디에 야탄 부족장은 잠에서 깨듯이 머리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미 모든 것을 털어놓은 뒤였다.


모든 것이 들통났음을 알아차린 보 대족장은 삶을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스스로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놈의 권력이 뭐길래 왜 그것에 눈이 멀어서 나와 주변을 망쳐 놓았나?’

139화 적야와 적강의 위치 지도.png

139화. 적야와 적강의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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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화. 살모야차(殺母夜叉) 21.09.09 1,284 9 19쪽
142 142화. 대이주와 축제(祝祭) 21.09.08 1,281 10 19쪽
141 141화. 환시성의 완공(完工) 21.09.07 1,297 11 18쪽
140 140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1.09.06 1,267 11 17쪽
» 139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1.09.05 1,272 11 18쪽
138 138화. 추풍낙엽 같은 생명들 21.09.04 1,272 11 19쪽
137 137화.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는다 21.09.03 1,280 11 18쪽
136 136화. 요계왕과의 결투 21.09.02 1,301 11 19쪽
135 135화. 요계(妖界) 수행 21.09.01 1,296 11 18쪽
134 134화. 소원림의 복수전(復讐戰) 21.08.31 1,314 10 18쪽
133 133화. 새로운 한울 21.08.30 1,299 10 19쪽
132 132화.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 21.08.29 1,305 11 19쪽
131 131화. 인수(人獸) 합격(合擊) 21.08.28 1,303 11 18쪽
130 130화. 요수 소탕작전 21.08.27 1,304 11 18쪽
129 129화. 환시성 내성 완공 21.08.26 1,313 11 19쪽
128 128화. 적의 생명도 중시한다 21.08.25 1,286 10 17쪽
127 127화. 우르강의 혈투(血鬪) 21.08.24 1,290 11 19쪽
126 126화. 반인족의 침략(侵略) 21.08.23 1,289 12 18쪽
125 125화. 아구산의 화산 폭발 21.08.22 1,317 13 18쪽
124 124화. 새로운 물결 21.08.21 1,335 12 18쪽
123 123화. 지옥의 심판(審判) 21.08.20 1,306 12 18쪽
122 122화. 유계의 파천대(破天隊) 21.08.19 1,311 13 19쪽
121 121화. 유계(幽界) 수행 21.08.18 1,352 13 18쪽
120 120화. 비승야차(飛昇夜叉) 출생 21.08.17 1,311 15 18쪽
119 119화. 혼원은하무량신공 대성 21.08.16 1,320 15 18쪽
118 118화. 피바다 거원해(巨怨解) 21.08.15 1,322 13 19쪽
117 117화. 야차족과 거인족의 혈투 21.08.14 1,332 13 18쪽
116 116화. 반인족 첩자(諜者) 사건 21.08.13 1,308 14 19쪽
115 115화. 어수족의 시조신(始祖神) 21.08.12 1,315 13 18쪽
114 114화. 어수족과 천망의 싸움 21.08.11 1,334 1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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