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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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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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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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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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92화. 천망! 그 대재앙의 시작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이 괴물을 소인족들은 너무 크고 길어서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뜻으로, 그들 말로 ‘우로보로스하다’고 표현했다.


순식간에 소인족 수만 명의 목숨이 괴물에게 제대로 저항도 한번 못 해 보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시커멓게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옥 같은 아가리 속으로!


전쟁에서는 시신이라도 남지만, 이 의미 없는 괴물과의 전쟁은 시신마저 온전하지 못하고, 심지어 먹이가 되어 뱃속으로 사라지니 찾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거대한 재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 소인족에 초비상이 걸렸다.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큰 대망을 잡아서 횡재를 하였다고 잔치를 벌였는데······.


이제는 그 결과로 그보다 수천 배는 더 큰 대재앙이 몰려오고 있는 것!


이 문제로 소인족의 세 천장(적소인, 황소인, 백소인 수장)과 신장(장로회 수장), 야장(전투, 의료, 물류지원 수장)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지금 거대한 괴물이 이곳 피차를 향하여 오고 있소. 이 상태로는 몇백만 명이 죽음을 당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적소인족 천장인 드워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황소인족 천장 보모프와 백소인족 천장 달라프가 순차적으로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괴물이라 말이 통하지 않으니 협상도 불가합니다. 지난번에 죽인 거대 뱀이 이 괴물의 새끼였던 모양인데 새끼를 되살릴 수는 없으니 다른 수단을 강구해 봅시다. 이러다가는 우리 종족의 씨가 마르겠어요.”


“이제 어차피 피차는 괴물로부터 피할 길이 없습니다. 문제는 최소한 최북단의 피그만이라도 온전히 지켜야 우리 종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설사 많은 희생자를 내더라도 다른 곳으로 유인을 해야 합니다.”


황소인 보모프와 백소인 달라프의 말에 잠깐 숙고하던 적소인 드워브가, 유인을 하되 다른 종족들이 사는 곳으로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바이칸대호수가 워낙 크니 그쪽으로 유인하여 대륙의 다른 쪽으로 보냅시다. 다른 종족에게로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앞쪽에서 공격하며 물러나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먹이를 따라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황소인 보모프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신장과 야장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적소인, 황소인, 백소인이 부족별로 각각 오만 명의 병사를 차출해서 내놓읍시다. 전투에 능한 전사들은 빼놓고 동작이 느리고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저급 전사들을 중심으로 차출하세요.


좀 비인간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종족이 살아남아야 하니 우리 지도자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닙니까?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요.”


말을 끝낸 보모프가 머리를 숙이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달라프가 거들었다.


“계속 공격하면서 남쪽으로 물러서게 합시다. 혹시 죽일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고, 그러지 못해도 대륙의 다른 쪽으로 가면 그쪽의 종족들이 대응을 할 것이니 우리는 그때 물러서면 됩니다. 설마 다 죽기야 하겠습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천장들의 의견이 일치하자 드워브가 결정을 하듯이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시간이 없으니 당장에 내일 중으로 차출해서 모레 출진할 것입니다. 준비를 해 주시고, 전체 진두지휘는 저번에 대망 사냥의 책임이 있는 현현라에게 맡깁시다.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신장과 야장도 지원 준비를 서둘러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돌아가서 모두 준비합시다.”



현현라는 자신이 대망을 잡아서 소인족의 식량난을 해소하는데 나름대로 공헌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대재앙을 몰고 오고, 게다가 자신에게 저 거대한 괴물을 유인하는 책임자를 맡으라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처자식과 부모 형제가 있으니 도망도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괴물을 유인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다음 날.


괴물의 유인대로 출전할 명단이 공개되고, 마침내 출전의 아침이 밝았다.


전투도 아니고 괴물과의 사투(死鬪)를 벌이며 먹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십오만 명이라는 거대 집단이 달려들면 괴물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꾸역꾸역 무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이미 괴물은 피차의 코앞에 이르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고······.


마침내 차출된 십오만 명의 대군이 몇만 명씩 조를 나누어 괴물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렇게 하여 때로는 먹이가 되고 때로는 무기로 싸우면서 일진일퇴하기를 벌써 수십 차례!


그러나 괴물은 고갯짓 몇 번으로 가로막는 병사들을 휘젓더니, 그대로 피차의 중심부로 밀고 들어왔다.


그 거대한 덩치에는 어느 것도 방패막이가 되지 못했다. 마치 고래에게 새우가 덤비는 격이었으니.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와 몸통, 꼬리까지 사방으로 휘젓는 괴물의 몸부림에 깔려서 핏덩이가 되었고, 수십만 채의 집들이 마치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땅속에 건설한 동굴형 주거지도 대부분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말이다.


“쿠에에에에에에엑~~~”


한 번의 포효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귀청이 터져서 귀머거리가 되어 버렸고······.


“우에에에에에에엑~~~”


두 번의 포효에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러니 어찌 싸움이 될까?


“신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속절없이 수많은 생명이 마치 파리 목숨처럼 사라지고 있건만, 평소에 그렇게 정성 들여 섬기고 위급한 순간에 애타게 찾는 신은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괴물이 분노로 내지르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니 수많은 사람들이 기절해서 쓰러져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 위를 마치 비단길을 가듯이 괴물이 깔아뭉개며 지나니,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건만 괴물에게는 그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오직 내 새끼를 죽인 복수의 일념뿐!!


“괴물을 유인해라!”


“······접근해서 공격해!”


“방향을 바이칸대호수 쪽으로!”


수많은 외침 속에 몸짓 몇 번으로 거대한 도시 피차를 폐허로 만들어 버린 괴물이, 점점 유인하는 소인족을 쫓아서 대륙 안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는 바이칸대호수의 북단.


며칠 전부터 소인족 수만 명이 몰려들더니 호수에 수많은 배와 뗏목을 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 어부들이 아닌 무장한 병사들이다.


이때부터 이 수상한 동태가 천인족의 비거 정찰에 걸려들었고, 천인족도 혹시 소인족이 침략해 오는 것은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게 되었다.


전쟁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은 절대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시점인데 하면서······.


소인족이 무엇엔가 허둥지둥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안심을 하면서도 감시를 강화하여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이번 괴물과의 싸움으로 벌써 소인족 이십여만 명이 덧없이 사라지고, 이제 겨우 바이칸대호수까지 유인하여 작전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현현라는 이제 몇만 명 살아남지 않은 유인대로 멀리서 쫓아오고 있는 괴물의 거대한 머리를 바라봤다.


이 바이칸대호수에 띄운 배로 괴물을 유인할 마지막 단계를 실행해야 한다. 이제는 이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 수밖에!


“모두 배와 뗏목에 올라라. 1진부터 출발하라!


“1진 출발!”


“2진 출발!”


“······.”


한 번에 출발하면 괴물과의 고리가 끊어지니 길게 늘어지게 출발하여 대호수 건너편으로 유인(誘引)하면 끝나리라 보았다.


바이칸대호수는 대륙에서 담수 호수로서는 가장 컸다.


가장 넓은 곳은 폭이 천이백오십 리에 길이가 천팔백칠십오 리 정도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다나 마찬가지였고.


반대편에 다다르면 괴물도 방향을 잃을 것이리라. 현현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두지휘를 하다가 자신은 후미에서 가장 늦게 출발했다. 어차피 사는 것을 포기했으니 부하들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멀리서 보이던 괴물의 머리가 금방 가까이 보이더니 호수(湖水)를 향하여 득달같이 달려든다.


‘이놈! 어디까지 쫓아오나 한번 보자!’


자신은 죽더라도 부하들은 살리고 싶은 것이 조직을 거느리는 대장의 마음. 비록 훌륭한 지도자는 못 되지만 현현라의 마음도 매한가지였다.


“빨리 반대편으로 배와 뗏목을 움직여라! 어서 도망쳐라! 그래야 너희들이라도 살 수 있다!”


“반대편으로 노를 저어라!”


“힘내라! 잘못하면 금방 죽는다.”


“영차 영차! 어기영차 영차!”


배와 뗏목들이 반대편을 향하여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금방 호숫가에 도착한 천망은 주변을 한 번 휙 하고 둘러보더니, 달아나고 있는 배와 뗏목들을 향하여 눈을 번뜩이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드러난 몸 여기저기에는 그동안 소인족의 병사들 십오만 명과 벌인 싸움으로 상처가 가득하다. 아무리 고래와 새우의 싸움이라고 해도 그 숫자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 고통과 새끼를 잃은 슬픔, 가눌 길 없는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아서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내 악착같이 유인대를 뒤쫓고 있는 것이다.



천망이 호숫가에 다다라서 물속으로 들어갈 무렵, 천인족은 거대한 괴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비상(非常)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이 신수에 버금가는 존재인 천망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괴물이라는 것도 밝혀졌는데······.


이것은 다른 종족과의 싸움하고는 또 다른 전쟁(戰爭)이었다. 대화도 안 되고 얻을 것도 없으면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쓸모없는 전쟁!


거인족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재앙이 몰려오는지, 지도층은 한숨을 내쉬며 대책에 골몰(汨沒)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천령대와 각 대족장 산하의 무사들에 대한 차출령이 떨어졌다. 쥬맥도 비율신 대족장의 백호부대 대장으로서 괴물과의 전쟁에 나섰다.


바늘이 가니 실이 안 따라갈 수 없어서, 수르도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 쥬맥을 따라가게 되었다.



마침내 괴물이 거대한 몸체를 호수에 모두 담그고 쫓아오기 시작하자, 소인족은 살아남기 위하여 혼신의 힘으로 노를 저어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괴물(怪物)은 뒤쳐진 배와 뗏목들을 머리를 휘저어 부수고, 물 위에서 허둥대는 소인들을 집어삼키며 계속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현라가 탄 배에 바짝 이르렀다. 수많은 부하들을 괴물의 아가리에 바치고 이미 살기를 포기한 현현라. 그가 가까이 다가온 괴물의 집채만 한 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괴물아! 내가 네 새끼를 죽였다. 너도 곧 죽게 될 것이다.”


천망이 마치 그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바짝 쳐들더니 사납게 괴성을 내질렀다.


“우에에에에에에엑~~~”


그 소리에 현현라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천망이 쓰러진 현현라를 거대한 이빨에 꿰어 앙갚음을 하듯이 사정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결국 그 몸이 둘로 끊어져 호수로 떨어지니 주변의 물이 피로 붉게 물든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떨어진 몸을 찾아 한입에 삼키고, 원수를 갚아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또 울부짖었다.


“쿠에에에에에에엑~~~”


이 소리에 또 주변(周邊)의 수많은 소인족 전사들이 정신을 잃고, 괴물의 뱃속으로 덧없이 사라져 갔다.


점점 배와 뗏목은 괴물에게 부서지고, 소인족은 잡아먹히며 줄어 가는데······.


얼마 안 남은 자들은 이제 멀리 보이는 호숫가를 향하여 죽을둥살둥 노를 저으며 도망가니, 멀리에 한 가닥 희망(希望)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호숫가에 다다르자 번개처럼 배와 뗏목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가 버렸다. 이제 맡겨진 역할을 다했으니 누가 그들을 탓할 손가?


천망이 호수 반대편에 다다랐는데 뒤쫓던 무리가 산산이 흩어지자, 그중에서 가장 많이 가고 있는 천인족의 환시 건설 현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번에 새끼를 잃은 천망의 분노로 소인족은 자그마치 이십오만 명이 죽었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유인하기 위하여 조직한 십오만 명 중에서 살아난 사람은 일만여 명에 불과했고, 총대장인 현현라를 포함한 나머지는 모두 죽거나 천망의 먹이가 되어 허망하게 뱃속으로 사라졌다.


그 거대한 괴물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괴성을 지르며 천인족의 환시 건설장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으니, 이미 차출되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사들은 혹시라도 괴물의 먹이가 되지 않을까 살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이십 년을 넘게 공들여 만들고 있는 환시성의 기초가 뿌리까지 흔들릴 수 있음에 모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쥬맥과 수르를 포함하여 백호대 삼천의 무사가 천령대 오천과 다른 두 대족장 산하의 이천 무사와 함께 이 작전(作戰)에 투입되었다.


총지휘는 야율린 대족장. 그 지휘 아래 일만의 무사가 천망을 맞이하기 위해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지난번 거인족과의 전투에서 쥬맥의 활약으로 비율신 대족장 산하의 무사들이 가장 많이 살아남다 보니, 이번 차출에서는 가장 많이 나서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여기는 환시성 전진 기지.


축성 준비와 주술진(呪術陣) 때문에 머물고 있던 태을 선인이 거대한 괴물이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우선 일하던 사람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괴물을 퇴치할 부대를 기다렸다.


이미 상당히 많이 진척된 환시성 건설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합류(合流)를 결심한 것이다.


이곳은 야전 지휘관 회의장. 내일쯤이면 괴물이 근처에 이를 것으로 판단되어 야율린 대족장 주관하에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이다.


“내일 해가 지기 전에 천망이라는 그 괴물이 이곳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는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그 괴물을 천성해 쪽으로 유인하여 바다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만약 죽이려고 하면 더욱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각 부대의 지휘는 인솔해 온 대장들이 맡도록 한다. 그리고 이동 속도가 느린 천궁 부대는 이미 유인할 이동로에 전진 배치했다.”


그러자 천령대에서 온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대장 한 명이 손을 들더니 발언을 했다. 풍기는 기세가 제법 많은 경험을 쌓은 듯하다.


“이번에 끌고 온 천궁 삼백 기면 괴물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전에 아리(峩理)별에서도 천망을 사냥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도 죽이려면 피해가 크기 때문에 주로 멀리 쫓아내는 전략을 썼다. 물론 천망이 힘이 빠져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잡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정보로는 잡는 것이 힘들어 보이니 쫓는 데 주력한다.”


“그러면 앞에서 천망을 유인하는 부대와 옆에서 몰이를 하는 부대로 나누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천령대 대장의 말에 야율린 대족장이 쥬맥을 한 번 흘깃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눈빛에 스치는 복잡한 심사. 그것이 결국 말이 되어 나타났다.


“쥬맥의 백호대가 내일 앞에서 천망을 유인하도록 한다. 천령대와 다른 무사들은 좌우로 나누어, 천망이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몰이를 해서 탁녹만 쪽으로 몰아내도록 하자구. 지도에서의 경로는 바로 이곳이다.”


야율린 대족장이 탁상 위에 놓인 지도를 짚어 가며 방법을 설명했다. 그러자 설명을 다 듣고 난 쥬맥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저희 백호대는 경공술이 뛰어난 무사들을 중심으로 앞에서 공격(攻擊)과 후퇴(後退)를 거듭하며 탁녹만 쪽으로 가야 되겠군요.”


“그렇다. 소인족이 적당한 먹잇감을 계속 제공하며 천망을 우리 쪽으로 유인해 보낸 것처럼, 우리도 조금은 적당한 먹잇감이 되지 않으면 유인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 점에 유의하라.”


“그렇다고 산 사람을 무조건 먹이로 줄 수는 없으니, 그것은 제 재량하에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라.”


그런데 쥬맥의 ‘재량하에’ 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다행히 더 이상의 토는 달지 않았다.


지난 전투에서 아들을 잃었지만 보돈타 대족장과는 사돈지간(査頓之間)이니, 보 대족장이 싫어하는 쥬맥이 야 대족장의 마음에 들 리가 있겠는가?


쥬맥은 데리고 온 백호대 삼천 명 중에서 경공술이 뛰어난 일천을 선발하여 자기가 직접 인솔하고, 나머지 이천은 수르가 인솔하게 하였다.


수르는 먼저 출발해서 진행할 방향의 방해물 제거, 유인을 위한 푯말 설치 등을 하면서 앞서가도록 했다.


이것은 신혼인 수르와 발이 느린 동료들을 살리기 위한 쥬맥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으니······.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식사를 마친 수르는 맡겨진 부대원들을 이끌고 바로 시원마를 타고 출발하였다.


나머지 부대는 천망이 환시성 건설지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그 앞쪽의 산위에서 대기하다가 천망이 모습을 드러내면 뛰어들어 유인하기로 작전을 짰다.


천망은 동작이 재빠르기 때문에 말을 타면 오히려 속도가 느려서 잡아먹힐 확률이 높았다. 특히 위급해서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 말이다.


그래서 모두 말을 이곳에 두고 무기와 비상식량만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나머지 부대가 차례대로 앞에 있는 산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으나 쥬맥의 백호대는 맨 나중에 출발했다.


“백호대 출발!”


“출발!”


복창 소리와 함께 일천의 발 빠른 백호대가 번개처럼 달리기 시작하는데, 옆에서 불쑥 태을 선인이 나타나더니 쥬맥의 옆에서 나란히 달렸다.


발은 빨리 놀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빠른 속도에 맞추는지 모르겠다.


“어어? 태을 선인님이 아니십니까? 피신하시지 않고 왜 따라오셨어요?”


“이놈아! 네가 걱정되어서 따라왔다. 내가 너만 못하리?”


“그게 아니라 연세가 있으시니 좀 쉬시라는 뜻이지요.”


“이래 봬도 나 아직 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 이놈아. 여기서 나하고 팔씨름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고 해.”


“하하하! 그동안 고생하신 환시성이 행여나 초토화될까 봐 염려하신 것이죠? 제가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그래, 그래도 어디 앉아서 보고만 있겠냐? 네 녀석도 어릴 때는 말대꾸도 안 하고 참 귀엽더니, 이제는 좀 컸다고 이렇게 꼬박꼬박 말대꾸냐?”


“선인님도 참, 이건 말대꾸가 아니라 대화라는 겁니다. 대화요.”


“허허! 그래도 안 지려고 하네. 그런데 그 나 잡아먹으려고 덤비던 점박인가 하는 놈은 잘 지내냐?”


“점박이는 별이랑 함께 전에 한 번 왔다 갔는데요. 지금은 백호 신수 밑에서 신수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덩치가 어지간한 동산만 합니다.”


“허허! 그놈이 그렇게 컸어? 언제 한번 보러 가야겠구나.”


“가시거든 제 안부도 꼭 좀 전해 주세요.”


“말 안 해도 그놈이 먼저 물을 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산 정상(頂上)에 이르렀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편히 쉬면서 운기조식(運氣調息)도 하고 몸과 마음을 고르고 있다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한 시진쯤 지나자 저 멀리에 천망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흉신악살 같은 거대한 머리를 쳐들고 오는데 악마를 보는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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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화. 환시성을 건설하라 21.08.10 1,345 15 18쪽
112 112화. 환시(桓市)를 향하여 21.08.09 1,342 14 17쪽
111 111화. 부족장이 되다 21.08.08 1,329 17 18쪽
110 110화. 영천(靈泉)에 계신 아버지 21.08.07 1,350 17 18쪽
109 109화. 중계(中界) 수행 21.08.06 1,350 18 18쪽
108 108화. 힘이 있어야 평화도 이룬다 21.08.05 1,310 20 19쪽
107 107화.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기연 21.08.04 1,321 21 18쪽
106 106화. 소리 없이 다가온 음모 21.08.03 1,307 22 18쪽
105 105화. 또 다른 재앙덩어리 천마수 21.08.02 1,337 24 18쪽
104 104화. 결혼 초야(初夜) 21.08.01 1,350 26 19쪽
103 103화. 꿈꾸던 가정을 꾸리다 +1 21.07.31 1,334 25 18쪽
102 102화. 호사다마(好事多魔) +1 21.07.30 1,323 27 18쪽
101 101화. 가정을 꿈꾸다 +1 21.07.29 1,322 28 18쪽
100 100화. 옛 상처를 지우다 +2 21.07.28 1,335 30 17쪽
99 99화. 우군(友軍)을 만들다 +1 21.07.27 1,322 28 18쪽
98 98화. 사랑은 다시 움트고 +1 21.07.26 1,336 30 20쪽
97 97화. 이기어검(以氣馭劍) +1 21.07.25 1,327 31 19쪽
96 96화. 인면(人面)의 오색요접 +1 21.07.24 1,350 31 18쪽
95 95화. 수련에 몰두하다 +1 21.07.23 1,342 33 19쪽
94 94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1 21.07.22 1,342 34 19쪽
93 93화. 천망과 천인족의 혈투(血鬪) +1 21.07.21 1,348 35 18쪽
» 92화. 천망! 그 대재앙의 시작 +1 21.07.20 1,347 35 20쪽
91 91화. 친구 수르의 결혼 +1 21.07.19 1,367 37 18쪽
90 90화. 동명이인(同名異人) +1 21.07.18 1,342 37 19쪽
89 89화. 수르의 애인(愛人) +1 21.07.17 1,343 38 17쪽
88 88화. 대재앙(大災殃)의 잉태 +1 21.07.16 1,354 39 18쪽
87 87화. 노무사들의 분노(忿怒) +1 21.07.15 1,343 42 19쪽
86 86화. 장기전의 묘수 +1 21.07.14 1,357 42 18쪽
85 85화. 혈전 또 혈전 +1 21.07.13 1,328 42 19쪽
84 84화. 운명을 건 전쟁 21.07.12 1,350 4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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