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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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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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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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75화. 사랑의 불씨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실은 저번에 비가 오는 날······.”


쥬맥은 부끄럽지만 답답한 마음에 수르에게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쥬맥의 얘기를 모두 들은 수르가 손뼉을 치면서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했다. 드디어 쥬맥이 사랑에 빠졌다니!


“하하하하! 우리 쥬맥 대장님께서 드디어 사랑에 푹 빠지셨구만. 으아하하하!”


“야! 너 놀리면 혼난다.”


“이 형님이 해결해 줄 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 줄게. 그 미루라는 아가씨 집이 어디라고 했지?”


“왜? 직접 찾아가게? 아버지랑 같이 산대. 내가 부모 형제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천애고아라고 못 만나게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너는 보돈타 대족장이 한 말이 아직도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구나! 그런 못된 사람이 한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기다려 봐.”


쥬맥의 얘기를 들은 수르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하면서 기세등등하게 나서서 미루네 집을 찾아갔다.


“계세요? 여기가 미루 씨네 집이죠?”


“미루네 집인데, 총각은 누군가?”


“예, 제 친구가 미루 씨 친구인데 밖에서 차나 한잔 하자고 해서요.”


“미루 친구? 미루는 남자 친구가 없는데? 혹시 그 불량배 아니냐? 너 그 불량배 놈이 맞지? 내가 이놈을 그냥.”


불량배라고 생각한 미루 아버지가 마당에 있는 대나무 빗자루를 주워 들고 쫓아 나오는데 그 기세가 사뭇 거칠다.


그 기세에 수르가 당황(唐慌)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빼는데 미루 아버지가 한참을 쫓아가다가 돌아갔다.


쥬맥에게 큰소리를 탕탕 치고 나온 수르는 그냥 돌아가려고 하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기로 다시 한 번 찾아가 문밖에서 소리쳤다.


“미루 씨 집에 없어요?”


“아니, 이놈이 아직도 안 갔어? 어디 오늘 한번 죽어 봐라 이놈!”


꼭 결판을 내겠다는 듯이 미루 아버지가 또 뛰쳐나와서 빗자루를 찾았다.


“미루 아버지! 저는 불량배가 아닙니다. 소족장 친구예요, 소족장 친구!”


그러자 갑자기 머쓱해지는 미루 아버지. 일단 빗자루 끝을 낮추면서 물었다.


“우리 미루를 구해 줬다는 그 소족장 말이여?”


“예! 맞아요. 그 소족장의 친구예요.”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을 말만 듣고 불량배가 아닌지 어떻게 믿어? 정말로 소족장의 친구면 직접 오시라구 해.”


“그럼 소족장이 직접 오면 미루 씨랑 차 한잔 마시러 가도 되죠? 틀림없죠?”


“그래, 소족장이 직접 오면······, 미루를 구해 주었다는데 당연히 허락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얼른 가서 그 친구하고 금방 다시 오겠습니다.”


수르는 잘되었다 싶어서 얼른 다시 쥬맥에게로 돌아왔다.



혹시나 하고 수르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쥬맥은 수르가 혼자 뛰어오자 역시나 하고 실망하면서 시무룩해졌다.


“거봐. 내가 고아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했잖아. 괜한 짓을 했어.”


“아니야. 미루 씨 아버지가 나는 못 믿겠고 네가 직접 오래. 그러면 차 마시러 가게 허락해 준다고 했다니까~. 빨리 같이 가자 응? 빨리 나와.”


수르가 안달이 났는지 종주먹을 댔다.


“정말? 그런데 벌써 미루 씨 아버지를 내가 만나기는 좀 쑥스럽잖아.”


“야! 네가 지금 찬밥인지 더운밥인지 가리게 생겼어? 빨리 가자, 얼른!”


쥬맥은 서두르는 수르의 손에 이끌려서 어쩔 수 없는 척하고 뒤를 따라갔다.


다시 미루네 집 앞에 이르니 미루 아버지가 정말로 오는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난번에 숨어서 봤던 쥬맥이 오자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수르를 불량배로 취급하고 닦달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러자 수르가 앞으로 나서서 어깨를 펴더니 자 이제는 믿겠냐는 듯이 당당히 말했다.


“자! 보세요. 여기가 제 친구 소족장 쥬맥이거든요. 이제 정말 믿으시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쥬맥이라고 합니다.”


“오! 저 친구의 말이 정말이었군. 반가워요, 여기까지 다 오고. 미루야! 여기 소족장님 오셨다. 냉큼 나와 봐라.”


수르가 처음에 왔을 때 혹시나 몰라서 열심히 몸단장을 하고 문밖을 기웃거리며 기다리던 미루가, 마침내 문을 열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심이 어려 있던 얼굴에는 한 송이 연꽃 같은 환한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수르도 난생 처음 보는 어여쁜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아니, 어디서 이런 꽃 같은 아가씨가 갑자기 나타났을까?


“와! 정말 난생 처음 보는 미인이네.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예쁠 수 있지?”


그때 넋 나간 수르 옆으로 사뿐히 다가선 미루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쥬맥과 수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소족장님 오셨어요? 이번에는 친구분도 같이 오셨네요.”


“이 친구가 장난을 쳐서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쥬맥의 친구 야수릅니다. 이런 절세가인을 뵙게 되어 삼생의 영광입니다. 혹시 비슷하게 닮으신 친구분 없어요?”


수르는 초면에 체면도 불구하고 들이댔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도 미인일 테니까.


“호호호! 재미있으시네요. 저는 거의 집에 혼자 있어서 친구가 없어요.”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분이 있으면 역시 미인일 테니 소개를 좀 시켜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미남이신데 곧 좋은 친구분이 생기겠죠 뭐.”


친구가 없다니 조금 섭섭하지만 드디어 수르가 벼르던 본론을 꺼냈다.


“미루 씨! 이 친구가 미루 씨랑 차 한잔 하고 싶다는데 괜찮죠?”


그러자 미루가 아직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서 있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자 미루 아버지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함께 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지난번에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소족장님 덕분에 면하였으니 차 한잔은 대접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서 다녀오너라. 나는 들어가니 알아서들 하시게.”


말을 마친 미루 아버지는 뭐가 좋은지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셋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목을 나와 가장 큰 거리에 있는 찻집을 찾았다. 가 본 적은 없지만 ‘선담찻집’이 유명하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으니.


큰 거리로 나서자 길거리 간판 중에 찻집은 여러 개가 있었지만, 높게 매달린 ‘선담찻집’은 금방 눈에 띄었다.


찻집 안에는 여러 가지 차의 향기가 어우러져서 향기로움이 가득했다. 사실 쥬맥과 수르는 주점에나 가 봤지 찻집에는 가 본 적이 없었다.


수련하기에 바쁘니 찻집에서 한가하게 얘기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는 집에서 마시면 됐지 일부러 비싼 돈을 주고 마실 것 까지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찻집에는 저녁 시간임에도 많은 손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쥬맥과 수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술도 안 마시고 맨 정신에 저렇게 얘기를 잘 나누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향은 좋지만 별로 맛도 없는 덤덤한 차 한잔에 어떻게······.


아마 뭐 눈엔 뭐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때 녹색 치마저고리에 머리에는 건을 두른 30대 여자가 점원인지 앞으로 나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차를 드실 건가요?”


“예, 조용한 자리로 하나 주세요.”


젊은 남녀가 같이 와서 조용한 자리를 찾으니 눈치를 챘는지, 눈웃음을 치면서 옳다구나 하는 표정이다.


“조금 비싼 자리도 괜찮죠?”


“가격에 상관없이 조용하게 얘기하기에 좋은 자리로 주세요.”


“저쪽에 조용하고 아늑한 자리가 있으니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앞장서서 문 하나를 넘어서 가는데, 그곳부터는 마치 방처럼 하나하나가 벽으로 독립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모두 그림과 분재로 운치(韻致) 있게 잘 꾸며져 있었고. 셋은 점원을 따라서 미닫이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는 조용한 방으로 들어섰다.


“와! 이런 곳은 처음으로 와 보네. 엄청 비싸겠다야. 오늘은 맥이 네가 단단히 한턱 내라. 내가 고생했잖아.”


그러자 아니라는 듯이 미루가 나섰다.


“오늘의 차는 제가 대접할게요. 신세를 진 것도 있으니 은혜를 갚아야죠.”


“이 친구가 다른 것은 없어도 돈은 많으니까 좀 뜯어먹어야죠. 여기 어떤 차가 좋아요? 제일 좋은 차는 뭐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점원.


“예, 우리집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차는 금령을 발효시켜서 만든 금령선향(金靈仙香)이라는 차가 제일 좋아요. 그런데 그 차는 젊은 분들이 마시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구요.


여기 이 백령선향(白靈仙香)만 해도 아주 좋은 차입니다. 금령과 적령, 백령선향은 모두 천령수의 열매와 잎을 발효시킨 것이고, 나머지 차는 영초나 약초, 향기로운 꽃, 또는 일반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럼 금령선향으로 세 잔 주세요.”


“잔으로 파는 것이 아니고 한 다기씩 나오니까 잔에 따라서 드시면 됩니다. 더 우려 드시고 싶으실 땐 여기 있는 줄을 당기시면 뜨거운 물을 더 가져다 드립니다. 그리고 백령선향부터는 비싸서 선금(先金)을 내셔야 합니다.”


“오, 그래요? 그럼 금령선향은 삼 인분이 얼마인데요?”


“일 인분이 금령 하나이니까 금령으로 세 개를 주셔야 합니다. 나오는 것은 큰 다기로 함께 나옵니다.”


“와! 이거 너무 비싸네. 차 한잔을 마시는 데 태을미가 한 가마니 값이 나가는 금령이 하나라고요? 그럼 적령과 백령선향은 얼만데요?"


“마찬가집니다. 적령(赤靈)선향은 적령이 하나, 백령선향은 백령이 하나입니다. 그래서 비싸다고 했잖아요.”


미루는 설마 찻값이 이렇게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일반 찻잎을 우린 차나 한잔 대접하려고 했는데 금령선향 얘기가 나오자 마음이 바싹 타들어 간다.


어떻게 안 된다고 말도 못 꺼내겠고.


사실 미루네는 미루가 어려서부터 계속 몸이 약하여 약을 달고 살다 보니 집에 돈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난한 것이다. 금령이 세 개면 미루네 세 달 생활비(生活費)에 해당하는 큰 돈인데······. 그런데, 쥬맥이 돈주머니를 꺼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금령 세 개를 꺼내어 점원에게 건넸다.


“자, 돈은 여기 있으니까 얼른 차나 가져다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여자 점원은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지며 좋아서 달려갔다. 한 달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차를 셋이나 한꺼번에 팔았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사실 이 차는 부자들이 몸에 좋은 영약 삼아서 가끔 한 번씩 사 먹는 차다.


한울이나 천사장, 대신녀쯤 되어야 자주 마시는 차이며, 실제 그에 해당하는 천령수의 열매가 재료로 쓰이니 비싼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여자 점원은 달려가면서도 속으로는 ‘젊은이들이 참 돈도 많네’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미루는 얼굴이 붉어져서 좌불안석이다. 내가 사서 대접해야 하는데 반대로 얻어먹게 생겼으니······.


“괜히 저 때문에 돈만 많이 쓰시게 해서 죄송해요. 오늘은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거꾸로 신세만 지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친구가 가진 것은 돈밖에 없다니까요. 부자예요.”


그러면서 수르가 손짓까지 해 가며 너스레를 떨더니 쥬맥에게 물었다.


“그런데 비싼 것을 보니까 정말로 좋은 차인가 봐. 맥이 너는 마셔 봤어?”


“응, 딱 두 번.”


“뭐? 두 번씩이나? 이 나쁜 녀석! 나도 좀 데리고 가지. 언젠데?”


“산에서 막 내려왔을 때 태을 선인을 찾아서 천령수 심은 곳에 찾아 갔다가 한 잔 마셨고, 한울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가 또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이야. 그때는 다시 만나기 전이었고, 너하고 함께 갈 자리도 아니었지.”


“그렇네. 오늘 네 덕분에 나랑 미루 씨 입도 호강 좀 해 보자.”


그때 앞서 안내했던 여자 점원이 큰 나무 쟁반에 다기를 담아서 들고 들어왔다.


“차 나왔습니다. 온도가 적당하니 지금 바로 잔에 따라서 드시면 됩니다. 물이 더 필요하시면 여기 있는 이 줄을 당겨 주세요.”


그러면서 쟁반을 다소곳이 다탁에 내려놓고 나갔다. 미루가 다관을 기울여 차를 따르더니 두 사람 앞으로 찻잔을 옮겨 주고, 자기 잔에도 차를 따랐다.


그러자 예쁜 금빛을 띤 찻물에서 김이 올라오며 그윽하고 청량한 기운이 느껴지는 차향이 방안 가득히 퍼져 나갔다.


“우와~ 향기가 정말 기가 막히다. 맥아, 우리 앞으로 자주 와서 마시자.”


“정말 향이 너무 좋아요. 한 모금에 머리가 다 개운해지는 것 같네요.”


“마시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얘기해요. 내가 사 줄게요.”


“어머 정말이요? 그런데 너무 비싸요. 일 인분에 금령이 하나라니······.”


“야, 맥아! 나도 같이 사 줄 거지? 나 빼고 둘만 마시면 너 나한테 죽는다.”


“에이~ 녀석도 참! 얼른 마시고 귀빈은 먼저 가 보셔야지?”


“귀빈? 내가 귀빈이야? 와~ 고맙다. 나를 귀빈 대우를 해 주고. 그런데 귀빈이 왜 먼저 가냐? 네가 끝까지 극진하게 잘 모셔야지.”


“너는 귀빈이 뭔지 안 들어 봤어?”


“귀빈이 귀빈이지. 내가 엄청 귀한 손님이라는 말 아니냐?”


수르는 눈치 없이 끝까지 귀찮은 빈대가 되어 들러붙어 있더니 돌아오면서 쥬맥이 눈짓을 해서야 겨우 떨어지기 싫은 발걸음을 돌렸다.


둘 다 연애엔 별로 경험이 없으니 버벅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수르는 가면서도 친구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아쉬운 듯이 자꾸 뒤를 돌아봤다. 쥬맥 곁에는 항상 자기가 있었는데 여자가 나타나니 자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서 섭섭한 것이다.



쥬맥이 미루와 나란히 걸으면서 집에까지 데려다주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떨리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냥 미루만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살 것 같았다. 미루도 남자와 처음으로 나란히 이야기를 하면서 걸으니, 부끄러움 반 흥분 반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모습이 더욱 예뻤고······.


“미루 씨, 천단이 이제 사흘밖에 안 남았는데 천단에는 뭐해요?”


“저는 몸이 좀 약해서 천단에는 항상 집에만 있었어요.”


“그래요? 그럼 이번 천단에는 나랑 축제하는 것 구경하러 갈래요? 재미있는 것도 많아요. 전야제(前夜祭)의 불꽃놀이도 재미있고요.”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무서운데 같이 가 주시면 갈게요.”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같이 가요. 크게 부르면 민망하니까 미루 씨 방이 어디예요? 내가 작은 돌조각을 던지면 살며시 나와요. 아버님 모르게.”


결국 둘은 연락 방법까지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모레 저녁에 만날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데······.


‘이번에는 수르 녀석을 떼어놓고 나 혼자 가야지. 으히히!’


벌써부터 단짝 친구를 떼어놓고 혼자서 신나게 연애할 궁리를 한다. 세상 참!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인가?



애타는 시간은 너무 더디게 가는 것 같더니 어느덧 내일이면 천단이다.


오늘 저녁에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자고 했으니 가벼운 경장차림에 머리에는 건을 올리고 한껏 멋을 부린 뒤, 동경에 차림새를 몇 번이나 살펴본 뒤에야 집을 나서서 미루네 집 앞에 이르렀다.


작은 돌조각을 주워서 미루의 방문을 향해 살며시 던지니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좀 컸는지 미루 아버지가 벌컥 문을 열고 나와서 사방을 살피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미루가 방문을 살며시 열고 살금살금 나오는데, 미루 아버지는 방안에서 미루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체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곧 떨어질 것처럼 글썽글썽한데, 몇 달 전에 의원이 한 말이 떠올라서다.


‘딸은 무슨 병인지 혈맥(血脈)이 굳어서 이미 치료가 불가능하니,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편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가게 하세요.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미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고통을 줄여 주는 약만 지어 주겠단다. 이주하면서 아내와 아들 둘을 잃고 딸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딸이 먼저 저세상으로 간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아버지.


그런데 딸에게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텅 빈 가슴을 아프도록 칠 뿐이니······.



쥬맥은 미루와 같이 나가면서 어두운 밤길에 미루가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자 손을 잡아 주었다.


미루가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쥬맥은 그 핑계로 계속 손을 잡고 다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서로 따뜻하게 손을 잡고 다니니 미루는 든든하다는 생각에 손을 더욱 꼭 잡았고, 쥬맥은 가슴이 한없이 콩닥콩닥했고······.


농경지가 있는 들판으로 나서니 여기저기서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신호탄을 개량한 폭죽이 ‘삐융~’ 소리를 내며 불꽃과 흰 연기를 내뿜고 여기저기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처음 보는 모습이 신기한 듯 미루는 호호거리며 불꽃을 손짓하면서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한데 불꽃이 유성처럼 날아가고 있다. 조금 있으니 더 멋진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어린아이들이 나무를 모아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숯불들을 불통에 담아서 긴 끈으로 빙빙 돌리다가 놓으면, 수많은 불꽃이 밤하늘을 물들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한편의 동화 같은 모습에 미루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주로 불통은 큰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 밑과 옆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서 사용하거나, 대장간에서 쇠로 만든 통을 사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천단에 한 번 쓰는 것이니 대부분 굵은 대나무를 잘라서 사용했다.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모습과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을 넋을 잃고 구경하던 미루가 환하게 웃으며 쥬맥의 손을 꼭 잡았다.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웠던가?


나는 지금까지 이런 세상을 두고 어떤 세상을 보고 살았을까?


이처럼 좀더 밝고 재미있는 세상을 보고 살 것을······.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하지 못하고 덧없이 지나간 시간이 너무도 아쉽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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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화. 불타는 것은 재를 남기고 21.07.05 1,331 45 19쪽
76 76화. 뜨겁게 타오르는 불 21.07.04 1,335 45 18쪽
» 75화. 사랑의 불씨 +1 21.07.03 1,356 46 18쪽
74 74화. 새로운 인연 +1 21.07.02 1,357 47 18쪽
73 73화. 최연소 소족장이 되다 21.07.01 1,349 45 18쪽
72 72화. 신의와의 새로운 인연 21.06.30 1,359 4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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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39 46 19쪽
69 69화. 백호대와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49 47 19쪽
68 68화. 백호대 대장이 되다 +1 21.06.29 1,341 46 19쪽
67 67화. 비월족과 소인족의 격돌 21.06.29 1,355 46 19쪽
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54 47 18쪽
65 65화. 금령파와 금령신공 21.06.29 1,367 47 19쪽
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66 4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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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 길거리 생사결(生死決) 21.06.29 1,347 4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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