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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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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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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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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헤나투(1)

DUMMY

꿀꺽...


손안에서 느껴지는 말캉하고 미끈거리는 촉감에서 바나나 맛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배가 고팠는지 마음을 놓고 허겁지겁 먹고 있는 고서우나 나에게 어서 먹으라는 듯이 손짓하며 바라보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나.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먹지 않을 수 없겠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한 입만 먹어보라며 숟가락 담아 주던 브로콜리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어...”


덩어리가 입에 들어오는 순간 겉에 있던 미끈거리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고서우는 바나나 맛이라고 했지만 조금 달랐다.

식감도, 달달한 맛도 바나나와 유사했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한 입 먹자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나와 고서우는 채 5분이되기 전에 미지의 존재가 준 덩어리를 모두 먹어 치웠다.


바나나뿐만 아니라 사과나 키위, 망고에 이르기 까지 여러 종류의 과일 맛이 났다.


정확히는 과일과 유사한 맛이 났다.


“하우... 배부르다.”


배도 부르고 긴장도 놓인 건지 고서우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먹자마자 누우면 소화 안 돼.”

“선배는 잔소리쟁이~. 그 말 엄마가 자주 하던 소린데.”


잔소리라고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없는지 누워서 이제는 눈까지 감은 것이 곧 잠이라도 잘 기세다.


“선배.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응?”

“이 세계가 끝나서 우리가 다시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다음 말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혼자겠죠.”


물론 상대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혼자인걸.”

“그래도 선배는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긴 잃은 사람의 수보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의 수가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떠나간 이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뭐,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죽은 사람의 빈자리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고서우는 이미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이 조용히 말했다.

살며시 뜬 눈이 천장을 바라봤다.


“사실 나는... 여기서 죽어도 상관은 없어요.”

“너는 무슨 그런 얘기를...”

“뭐, 살면 더 좋겠지만요. 살아서 선배나 다른 분들한테 민폐 끼쳤던 것만큼 도움을 줘야 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사명감이나, 우리에 대한 의리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이 진 빚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의무감이었다.


“너 좀 변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정조차도 조금 낯설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이질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내가 알 던 고서우에게는 매우 큰 한 걸음을 내딘 감정이리라.


“그래요? 선배 덕분인가.”


그렇게 말하면 히죽 웃는 모습이 무척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근데 선배도 변했어요.”

“나?”

“네.”


멍하니 떠있던 눈에 생기가 돌더니 이내 나를 향했다.


“왜 제가 탑에 온다니까 따라왔어요?”

“어...”


왜였을까.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말을 하며 따라오기는 했지만 그건 이미 몸이 움직인 다음에 붙인 말들이었다.


“글쎄다... 죽으러가는 사람 같아서 말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예전의 선배였다면 나 같은 건 죽든 말든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걸요.”


녀석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건가.


“그거야 네가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머리아파서 내버려둔 거지.”

“음! 그러니까 내가 변해서 선배도 변했다는 거네요.”


뭔가 고서우에게 말려든 것 같아서 말을 멈췄다.

굳이 녀석이 아니라도 우리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존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은 통하지 않지만 미지의 존재가 짓는 표정이나 제스처는 우리가 아는 것들과 유사했다.


마치 이 덩어리에서 느껴지는 과일의 맛처럼.


내가 말을 멈추자 고서우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존재가 또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어떻게 안 되나.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러게...”


이 존재가 어떤 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존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도움까지 받았으니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데.


그때 문득 방금 전까지 고서우를 겨누고 있던 창이 눈에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역시나 이상한 글자들이 나타났다.


‘헤나투의 창’


“헤...나투.”


그 말에 미지의 존재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혹시...”


나는 우리가 있던 자리를 정돈하고 그 위에 글자를 쓰는 시늉을 했다.


“필담이라도 하게요?”

“글자는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고서우는 그게 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미지의 존재는 잠시 내 행동을 관찰하듯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창을 들어 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글잔데요.”

“지구상에는 없는 단어기는 한데... 읽을 수는 있을 것 같아.”


창끝에서 하나씩 적혀나가는 글자는 역시나 평소 보던 그 글자들이었다.


글자 형태일 때는 읽지 못했지만 하나의 단어가 되면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그렇게 써져 있어요?”


일단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듣기는 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지.”


고서우를 바라봤지만 역시나 녀석도 좋은 생각은 없는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상대는 또 다시 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나는 헤나투. 빛을 섬기는 종족의 여행자다.”

“빛을 섬기는 종족이라는 게 무슨 소리람.”

“일단 인간의 영역에서 생각하면 안 돼.”


이 능력은 일종의 자동번역기 같은 거다.

우리가 아는 언어로 번역해 주지만 그 뜻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고서우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칼을 꺼내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옆에 선으로 된 인간 그림을 두 개 그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푸핫.”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림도, 이런 발상을 한 고서우도 웃겼다.

우리는 언어가 통하지 않던 태초의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서우의 그림에도 헤나투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탑이라는 존재는 탑 밖에 사는 인간이 바라보는 모습이니까.

탑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겠지.


“아.”


고서우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직사각형 안에 또 다른 사람 모양을 그렸다. 그리고 옆에 선을 하나 더 그렸다.


창을 든 사람의 모습.


“헤나투. 헤나투.”


서우가 탑 안에 있는 존재와 헤나투를 번갈아가며 가리키자 그제야 이해했는지 헤나투가 깜짝 놀란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급하게 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세상 밖의 존재들이 어째서 이곳에?”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언덕을 하나 넘었더니 산이 나타난 꼴이었다.


“이거 참... 곤란하네.”


헤나투는 우리 얼굴을 살피더니 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너희 이름은?”


머리 아프고, 곤란한 것 말고 쉬운 것부터 하겠다는 뜻인가.


“서우.”


나는 서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우...”


헤나투가 어눌하지만 천천히 이름을 불렀다.


“지혁.”


이번에는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또 다시 천천히 따라 말했다.


“지역...”


어렵사리 통성명까지 끝내자 갑자기 짙은 현타가 밀려왔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기운이 빠져 바닥에 드러누웠다.


“먹자마자 누우면 돼지 돼요.”

“따라하지 마.”

“따라한 거 아닌데요? 나는 돼지 된다고 했는데.”


고서우는 유치한 말꼬리를 잡으며 자신도 바닥에 누웠다.


정작 먼저 이곳에 와있던 헤나투 만이 바른 자세로 앉아서 우리를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유리로 이루어진 헤나투의 얼굴에선 안색도, 분위기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표정만은 읽을 수 있었다.


우리 이름을 되뇌고 있는 그의 얼굴은 꽤나 즐거워보였다.


+++


“아으... 언제 잠든 거지.”


얼마나 잔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상쾌한 것이 컨디션이 좋았다.

피로가 다 풀릴 정도로 푹 잔듯했다.


옆에선 고서우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헤나투는 연못에서 낚싯대라고 생각되는 막대기를 두고 앉아 있었다.


“물... 이 물 마셔도 되는 ... 거겠지?”


물이 있다면 간단한 음료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서우가 일어나기 전에 몇 잔 만들어 두면 좋을 것 같아 가방에서 물을 담을 만한 용기를 찾아보았다.


“뭐가 없네... 이럴 거면 가방은 왜 챙겨온 거야.”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본 헤나투가 곁으로 다가와 바닥에 글자를 썼다.


- 내가 뭔가 도와줄까?


나는 답변을 하듯 냄비 모양의 그릇을 그리곤 연못을 가리켰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헤나투는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서랍장 문이 달려있는 나무쪽으로 갔다.


제대로 된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지만 헤나투는 정말 똑똑하다.

그렇다면 언어를 배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금방 돌아온 헤나투의 손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냄비만한 그릇이 하나 있었다.


“고마워요.”

“거마아요...”


헤나투는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내 말을 따라했다.

발음은 어눌했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바닥에 글자를 썼다.


- 당신들의 말을 알려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또 다른 글자를 적었다.


- 당신들을 따라 세상의 밖에 가보고 싶어.


“어...”


몬스터가 탑을 떠나 밖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소원을 데리고 나온 적은 있지만...


내 반응이 없자 다시 한 번 헤나투의 손이 움직였다.


- 곤란한가?


“으음...”

말이 통하는데 통하지 않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이었구나.

일방적인 소통이란 건 쉽지 않다.


- 나를 걱정하는 거라면 괜찮다. 세상 밖에 나가볼 수 있다면 그건 여행자로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당신들을 곤란하게 하는 거라면 관두겠다.


제법 긴 문장을 써낸 헤나투가 나를 바라봤다.

똑똑하기만 하게 아니라 눈치도 빠르네.


“어쩔 수 없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헤나투의 속이 비치는 얼굴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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