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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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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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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봄이 끝나자 긴 겨울이었다(1)

DUMMY

“이렇게 대 놓고 문이 있네.”


고서우는 재밌다는 듯이 주변을 살폈다.

이곳에 온 이후로 가장 생기 있는 표정이다.


그저 평범한 나무문일 뿐인데 무엇이 이 녀석의 흥미를 끌었는지 알 길이 없다.


“들어가보면 알겠지.”


손잡이도 없는 문을 밀자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것인지 문이 바닥을 긁는 요란한 소리가 거친 진동과 함께 전해졌다.


문을 열자 벽면과 천장이 모두 나무로 이루어진 기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의 좌우로 사진이 된 나무 액자가 일렬로 일정한 텀을 두고 걸려있었다.


“이건...”


사진 속에는 두 아이가 있었다.

10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이제 예닐곱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얼굴에 먼지가 가득 묻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멀리에는 젊은 남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남자의 뒤로는 높아 보이는 울타리가 있었다.


어느 부유한 집안의 정원처럼 보인다.


“이 사람 어딘가 낯이 익은데...”


나래 씨는 기억날 듯 말 듯 한지 한 손으로 턱을 감싸 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에서 많이 봤을 얼굴이었다.

다만 그의 나이는 지금으로부터 못해도 15년 혹은 20년은 전일 것이다.


“아. 백 소장이네.”


내가 답하기도 전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애들이 사진을 볼 수 있게 뒤로 물러나 있던 제천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꿈의 영향 때문인지 조금 조용해진 그가 모호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말이 맞다는 뜻을 내비쳤다.


“백 소장이라고요?”


놀란 나래 씨가 다시 한 번 사진을 자세히 바라봤다.

워낙에 뒤쪽에 있는 탓에 꽤나 가까이 다가가 얼굴까지 찌푸리며 본 그녀는 이내 놀라며 물러났다.


“그러네요. 백 소장이 젊었다면 확실히 이런 모습일 거 같아요. 근데 이사람... 누군가... 닮지 않았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관리소장을 떠올리기 전에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는데...”


나래 씨와 미혜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로운 씨 아니에요?”

“대표님 아니에요?”


확실히 젊은 백 소장은 로운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조금 더 매서운 느낌이 있었지만 그 모습이 매우 화가 난 로운의 모습과 닮았다.


“네. 아마도 여긴 로운 씨의 꿈 속 같네요.”


내 말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두 여자의 입은 벌어져서 닫히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충격적일 일인가...

성도 같고, 외모도 묘하게 닮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나도 처음에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럼 여기 있는 사진들이 대표님의 꿈과 관련되어 있겠네요.”


승주가 나래 씨의 표정을 따라하듯 한 손으로 턱을 쥐고는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어린 시절과 관련된 일인 것 같네요. 더 둘러봐야겠어요.”


우리는 전시회를 관람하듯 천천히 통로를 따라 걸으며 사진을 살폈다.


새삼 우리가 이곳에서 사진을 보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무의식의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로 가득할 텐데.


이미 다른 사람들의 꿈도 모두 본 시점에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이건... 그 중국의... 이름이 뭐였지. 첸 ... 씨?”


이름이 입에 붙지 않는지 겨우 말을 끝낸 미혜가 한 사진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지금보다는 어려보이는 첸 씨와 로아 씨 그리고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여자...아이?”


아니다. 만약에 앞선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만 이건 로운이었다.


짧은 반바지에 프릴이 달린 풍성한 소매의 상의를 입고 단발이 되지 못한 머리를 영혼까지 끌어 모아 양갈래로 묶고 있던 탓에 여자 아이로 보였을 뿐이다.


예쁘장한 어린 시절의 외모를 가지고 있던 로운이 그런 복장까지 하고 있으니 영락없이 여자애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로운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첸 씨가 자신을 좋아했었다고.


이렇게 보면 확실히...

그도 어렸을 때가 있었을 테니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이거 로운 형이야? 대박이다.”


여전히 가라앉은 텐션의 제천이 평소처럼 말했다.

그 사이의 틈에서 부자연스러움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마음과 생각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듯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현실과의 차이가 크기에 일어나는 일 같다.


“어? 이 사람은...”


먼저 다음 사진을 보고 있던 나래 씨가 이번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봤는데. 좀 가물가물하네요.”


사진 속에선 방금 전 사진 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자랐을 로운과 낯선 남자가 대련을 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확실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


이번에는 제천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운의 무의식 속에 있는 인물이라면 그에게 중요한 인물일 텐데 짚이는 바가 없었다.


못해도 로아나 첸 정도의 중요도가 있는 사람일텐데...


“아. 저 저 사람 알아요!”


다 같이 모여서 고민하고 있는 차에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고서우가 외쳤다.


“저 사람 그 사람이에요. 그.”

“그?”


우리 모두 녀석의 뒷말을 따라 하며 답했다.


“그 있잖아요.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초창기에 탑에 오르던 사람. 이름이 뭐였지. 무슨 현?”


기억을 더듬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고서우에 이어 이번에는 나래 씨가 작은 탄식을 뱉었다.


“아아. 그 실종됐다던. 아. 이름이 뭐였지.”


나래 씨에 이어 제천도 떠올랐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자신도 이름은 기억은 안 난다며 고개를 저었다.


초창기에 탑을 오르고, 실종되었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겠지만 세 사람의 반응에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조호완...?”


나는 그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그의 이름만큼은 뚜렷이 기억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능력이 생긴 날이기도 하면서, 그가 사라지기도 했던 날이었으니까.

몇 년 전 일이라 다른 건 몰라도 그 이름만큼은 확실하다.


내 말에 맞다는 듯이 세 사람이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호완...? 그 사람이 왜 여기에...”

“이전에 들은 적이 있긴 해...”


언제였을까. 누군가의 훈련을 바라보면서 했던 대화에서 로운이 조호완이 자신의 영웅과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자세히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영웅이라고 말했다는 걸로 봐서는 무척 긴밀한 사이였을 텐데.

당시의 대화를 떠올려보자면 로운은 그에게 빚이 있다는 듯이 이야기 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없이 다음 사진을 향해 걸었다.


로운과 조 호완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 탑 앞에서 서있는 모습, 서울의 풍경이 보이는 창가 앞에 서있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사진...


화가 난 로운의 모습과 백 소장.


“이게 무슨 의미지...”


사진 속 로운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적 없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그와 상반되게 백 소장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초에 백 소장이 화내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으니 저 구도가 당연한 건가.


“사진이 이제 더 없네요.”


나래 씨의 말처럼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끝없이 이어진 나무 계단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통로가 있던 곳에 어느 새 계단이 생겼지만 이제는 이런 일로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근데... 대표님의 꿈 속 사진들에 우리는 없네요.”


마지막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미혜가 조금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무조건 행복한 기억만을 떠올리는 건 아니니까.”


꿈은 때때로 악몽이 되어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사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호완 그리고 사진의 처음과 끝에 있는 백 소장.

로운의 꿈은 아마 그 둘과 관련이 있는 거겠지.


“일단 올라가 봐요.”


우리는 각자 이 상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듯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


체감하기에 20층은 넘게 오른 것 같은데 계단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개를 들어봤지만 따로 보이는 것도 없어서 얼마나 더 가야하는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베베 꼬였네. 진짜.”


고서우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본인만 하겠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미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무슨 꿈이 이렇게 계속 반복되기만 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꼬였을지 어떻게 알아.”

“말이 심해요.”


웬만하면 둘의 말다툼에 끼어들지 않는 나래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에 놀란 고서우가 뒤를 돌아 나래 씨를 바라봤다.


왜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잘 모르시잖아요. 로운 씨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가 나 보였지만 나래 씨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이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기에 나래 씨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도 서우 씨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테니까. 서우 씨도 우리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나래 씨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가만히 서있는 우리들을 지나 앞장서서 걸어갔다.

미혜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쪽도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방금 그 말은 고서우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으니 찔린 만도 하지.


“그런데... 베베 꼬였다면 풀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나와 미혜를 대신하여 누군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제천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 위로 쭉 이어져 있는 거 아냐?”

“아마도...?”


창도 없고 위에 모습도 보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밖에서 본 나무의 줄기는 곧게 이어져 있었다.


여기가 나무의 안이라면 제천의 말이 맞다.


“그러니까 위를 뚫어보자.”


제천이 씩 웃자 그의 몸 주변으로 황금색 실빛이 흘러나왔다.


나는 사람들을 제치고 뛰어나가 제천을 잡았다.


“미쳤어?! 여기 불태우면 우리 모두 불타!”


내 말에 깨달았다는 듯이 놀란 제천의 주변에서 황금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차라리... 서우 씨한테 뚫어달라고 하자.”

“에? 저요?”


멍하니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고서우가 놀라 나를 바라봤다.


“한 번 해봤잖아요. 할 수 있어요.”


이전에 그는 벽을 뚫어 나래 씨에게 이어지는 문을 연 적이 있다.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그가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 뭐... 음...”


고민하듯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기울이던 녀석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뚫으면 된다는 거죠? 조금만 물러나주세요.”


고서우는 계단 위쪽으로 가서 내 등을 밀었다.


“그 머냐. 나래 ... 씨...? 도 다시 내려와요. 위험해요.”


녀석은 호칭이 입에 붙지 않는 지 천천히 말했다.

그러자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래 씨가 아까 그렇게 가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나.


무표정하게 내려온 그녀는 미혜의 옆에 나란히 섰다.


“잔해는 알아서 막아주실 거라고 믿어요.”


무슨 짓을 하려고 저렇게 많은 밑밥을 까는 건가 싶었지만 녀석의 말에 나래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칼을 꺼내든 고서우가 몸을 낮추자 황금색 실빛이 흘러나오면서 우리의 앞과 위로 약한 바람이 흐르며 기류가 생겼다.


“흡...”


몸을 낮추고 아래로 잡고 있는 칼 주변으로 작은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칼이 허공을 지나 천장을 갈랐다.


갈랐다고 말했지만 칼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소용돌이가 맹렬히 회전하며 송곳 모양이 되어 칼을 떠났다.


위를 향해 솟아오른 바람이 나선형 모양의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 끝에 희미한 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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