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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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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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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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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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전

DUMMY

32.


대한민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굴지의 길드인 화원.

오늘로 입사 한 달로 접어든 지현명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꾀죄죄한 누군가를 앞에 둔 탓이었다.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일단 안내 데스크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친절한 응대를 선보였다.

하지만 지현명은 경계의 시선은 거두질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 이곳 안내 데스크에서 벌어진 테러를 떠올린 것이다.


‘선배의 말대로라면 그때도 뭔 거지꼴의 사내가······.’


지현명이 비상하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남자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마스터를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이 있으십니까?”

“아뇨. 약속은 안 했습니다만······.”


경계의 눈초리는 더욱 강렬해졌다. 과거의 테러리스트도 비슷한 질문을 했더랬다.


‘설마 같은 사람인 건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유사시에 벌어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몇 가지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다.


‘만약 이놈이 행패를 부리면 일단 포박 스킬로 놈의 손발을 묶어서······.’


비록 D급 헌터에 불과한 그였지만 가진 스킬이라면 시간 정도야 끌 것이다.

요점은 경비 인원들이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만 붙잡고 있으면 된다.

화원의 전투원이라면 눈앞의 시답잖은 테러리스트 따위를 가뿐하게 제압하고도 남으니까.

남자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걸 보여주면 된다던데요.”


그의 손에서 빠져나온 한 장의 카드를 확인한 지현명은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그 의미는 처음에 가졌던 경계나 당황으로 얼룩진 깜빡임 따위는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화, 화, 환영합니다! 마스터께 바로 연락을 올리겠습니다!”


그것은 화원의 VIP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카드. 금빛으로 빛나는 패밀리 카드였으니까.



*


한지혁은 곧바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빌딩의 최상층으로 향할 수 있었다.

멀리 서울의 정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통창을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한지혁 헌터.”

“윤시아 실장님?”

“마스터께서는 현재 회의 중이라 바로 나오진 못했습니다. 일단 다과를 즐기시겠습니까?”


한지혁은 그에게 건네진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뭔 고급 레스토랑이라도 방문한 것처럼 다양한 음식들.

스테이크는 물론, 대게찜이나 랍스타까지 적힌 걸보면 헛웃음마저 나온다.

한지혁이 물었다.


“다과라면서요······ 이게 전부 다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화원은 언제 어디서든 VIP께서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VIP라.”

“네. 방금 한지혁 님이 휴식을 취할 게스트 룸이 준비되었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한지혁은 윤시아의 뒤를 따라 호텔처럼 마련된 커다란 방에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아 눈이 부신 어느 스위트룸.

그가 살던 원룸 크기의 침실부터 나머지 방만 해도 여섯 개나 되는 곳이었다.

화장실도 두 개나 딸린 그곳은 말로만 듣던 5성 호텔이나 값비싼 아파트 같았다.


“이게 다 뭡니까?”

“보시다시피 저희 화원에서 제공하는 VIP 서비스입니다. 언제든 오셔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셔도 좋습니다.”

“······오.”


나지막이 감탄을 흘리고 있으려니 윤시아는 칼 같은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벨을 눌러주세요. 저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아, 네.”

“그럼 메뉴는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햄버거도 됩니까?”

“준비하겠습니다.”


총총걸음으로 멀어진 윤시아를 뒤로하고 한지혁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겼다.

한 달을 설산에서 지내다보니 이런 곳이라면 눈만 감으면 금방 잠들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 딱 한 시간만 자고 싶······.”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제가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크와 함께 신우민이 황급히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이다.

그는 한지혁의 몰골을 보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엔 또 어딜 다녀오셨는지 궁금하군요. 한 달은 잠수를 타셔서 뭔 일이 있는 줄은 알았습니다만.”


멋쩍게 웃으며 그를 보고 있으려니 신우민의 뒤편으로 웨이터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들이 차린 건 한 상의 식탁.


“회포는 먹으면서 풀까요?”

“······좋습니다.”


한지혁은 식탁 위에 놓인 햄버거와 그 옆에 있는 포크나 나이프를 확인했다.

그의 기대와는 약간 달랐다.

패스트푸드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작품처럼 고풍스럽기까지 했다.

실제로 하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말했다.


“금일 요리를 담당한 셰프 골든입니다. 국내산 한우와 대게살을 으깨 만든 패티부터 최고급 양상추, 소스는······.”


장황하지만 짧은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한지혁은 햄버거를 맛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신우민도 햄버거를 우아하게 썰어 입에 넣더니 몇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입에는 맞으십니까?”

“······눈물 나게 맛있는데요.”


안 그래도 한 달은 ‘야왕의 설산’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간단식을 위주로 먹었다.

눈이 뒤집힐 것만 같다.

이거 혹시 개당 10만 원이 넘는다는 그 햄버거일까? 셰프 얼굴이 꽤 낯익긴 했는데.


“다행이군요. 양껏 드십시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상황 자체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황송한 대우를 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한지혁은 그런 의문을 속에 품고만 살아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잘해주십니까?”

“······네?”

“물론 제가 능력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석화증도 고쳤고, 지저굴도 공략했죠. 하지만 이 정도로 고평가가 될 일인지는 모르겠군요.”


석화증을 치료한 건에 대해서는 한지혁은 굉장히 큰 은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엄청나게 대단한 건 또 아니다.

언젠가 밝혀질 레시피였고, 그는 그 순간을 좀 더 빠르게 앞당겼을 뿐이다.

화원에서도 머지않아 치료약을 개발해서 스스로 석화증을 이겨냈을 테니까.


‘지저굴도 뭐······ 그래봐야 C급이지.’


직통 전화를 얻어 꽤 좋은 대우받는다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신우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건 아니었다.

이번에 B급 게이트를 공략하긴 했으나, 이건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사실이다.

신우민의 대우는 납득하기 어렵다.


“한지혁 헌터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굉장히 낮게 평가하고 있군요.”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이만한 대우를 받기엔 충분하다 판단했을 뿐인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신우민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습니다. 제 감이 그래요.”


그는 햄버거에 썩 어울리지도 않게 생긴 와인을 한 모금 머금은 뒤 말했다.


“그리고 저희 화원에선 이 정도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사치입니다.”

“······네?”

“길드에 가입하시면 이것보다 더 엄청난 혜택으로······.”

“감자튀김도 굉장히 맛있네요.”


어쭙잖게 말을 돌리자 신우민도 더는 관련된 화제를 꺼내질 않았다. 대신 그는 한지혁을 바라보며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일은요. 그저 정산 받을 게 있을 뿐입니다.”

“정산이라 하시면······.”


한지혁은 햄버거를 손에 집어 한 입 크게 먹은 뒤에야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인벤토리를 뒤적여 물건들을 거실 한복판에 늘어놓을 수 있었다.


“게이트를 하나 공략했습니다.”


거실에 늘어진 물품의 개수는 수 개에서 수십, 곧 수백 개로 늘어났다.

야왕을 공략하는 마지막 날엔 게이트를 쭉 돌아 재료를 수급한 결과였다.

신우민이 입을 쩍 벌렸다.


“이거······ 야수의 가죽이잖아요.”

“알아보시겠어요?”

“그야 저도 이놈들은 사냥해봐서 압니다만······ 설마 공략했다는 게이트가 B급입니까?”


기함을 삼킨 신우민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속으로 몇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지저굴의 보고로는 분명 아직 B급 게이트를 공략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는데······.’


헌터관리국의 기록을 살펴, 한지혁이 정말로 F급이란 사실은 확인했다.

그리고 1년 만에 C급의 지저굴을 공략할 정도로 굉장히 강해졌다는 걸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이젠 B급 게이트마저 공략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놈인가 진짜.’


그리고 신우민은 한지혁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한 가지 정보를 더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아직 완전히 확신하진 못하지만 한지혁이 가진 스킬을 하나 추측하고 있었다.


‘그 노인네 말대로라면 이 세계엔 분명 미래 예지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했지.’


신우민은 그 사람이 한지혁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지저굴의 사태를 미리 알았던 것. 18층에 숨었던 로툰을 쓰러트린 일······.

어쩌면 석화증도.


‘미래 예지로 알아낸 거라면.’


아직 추측일지라도 한지혁은 신우민에게 있어 VIP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신우민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야수와 야인의 재료를 쏟아낸 한지혁을 향해 말했다.


“정산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일시불이요.”


*


원래는 일찍이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엄청나게 좋은 화원의 게스트 룸에 잠깐 몸을 눕히기로 했다.


“원하시는 만큼 마음껏 누리십시오. 이곳은 원래 한지혁 헌터와 같은 분들을 위해 마련해둔 숙소입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희 길드에 가입하신다면 이런 숙소는 아예 집으로 제공하며······..”


신우민을 일별하고 화장실에서 면도를 비롯해 오래 묵은 때를 벗겨내었다.

한껏 뜨거운 물에 샤워도 마치니 온몸이 나른한 것이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연합으로 40층 공략을 시작한다더군요. 사실일까요?]


커다란 텔레비전을 통해 세간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지혁은 인터뷰 대상이 된 권서율을 눈여겨보았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인류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사실입니다. 이번 공략에 참여하는 건 저희 하늘 길드와, 해오름, 화원, 흑사패······ 최정상의 헌터들이 함께할 겁니다.]

[과연 드림팀이군요. 10대 길드가 연합을 꾸려 층을 공략한다라······.]

[테마의 마지막은 유난히 어렵습니다. 이번 연합은 만장일치로 꾸려진 팀입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혹시 영상을 송출하실 계획도 있으십니까?]

[기회가 된다면 노력해보도록 하죠.]


한지혁은 이어지는 뉴스를 일별하고 천천히 시선을 창밖의 야경으로 돌렸다.

그의 머릿속엔 분주하게 돌아가는 미래의 영상 몇 가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10대 길드 연합이 40층 공략하기 위해 탑을 오른 그날.’


그의 시선은 마침 창공을 가르던 비행기로 향했다.

비행기의 목적지는 세계의 최고로 일컬어지는 인천국제공항.


‘빈 집으로 게이트가 나타난다.’


이번에 나타나게 될 게이트는 한지혁이 늘 대비하던 ‘재앙’과는 별개였다.

하지만 그 위험 수위는 그 자체로도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위협적일 것이다.


‘과연······.’


한지혁은 불타오르던 인천국제공항의 영상과 절규가 맞물렸던 풍경을 상기했다.

그는 가만히 야경을 바라보다 헌터폰에 몇 안 되는 연락처를 뒤적였다.


-우으음······ 누구.

“자니?”

-자긴요. 명상하고 있었어요.


물에 잠긴 목소리를 내던 차유라는 몇 번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좀 쉬었어요?

“뭐 꽤 쉬었지.”

-저는 집에 돌아와서도 지난날에 대한 복기를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요. 네. 저는 지금도 단련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누가 뭐래?”

-아뇨, 그냥 그렇다고요.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다시 바빠질 거야. 푹 쉬고 몸 관리 잘 하고 있어. 오늘처럼 단련은 잊지 말고.”

-······또 게이트에 들어가요?


약간 질색한 목소리에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니, 이번엔 놈들이 와.”

-네?

“그러니 너무 늘어지진 마. 이번 일은 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거거든.”

-중요한 일······.


나지막이 중얼거린 차유라는 이전보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날짜는요?

“이번 주 금요일.”

-코앞이네요. 위치도 특정됐나요?“

“인천국제공항.”


한지혁이 말했다.


“이번엔 조금 꾸미고 와야 할 거야.”


그곳이 네 데뷔전이 될 테니까.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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