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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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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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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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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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전 (3)

DUMMY

34.


그렇게 한지혁은 한참이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번지고,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통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한지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니까 왜 이 녀석이 여기에······.’


한참을 멀뚱멀뚱 메시지만 보고 있으려니 아일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다고 닳아 없어지겠느냐?

‘알아. 안다고. 근데 느닷없이 왜 루드헬이 여기에 나타난 건데?’

-내가 어찌 알겠느냐.


구름이 살짝 낀 흐린 하늘, 그곳엔 재앙이 나타날 때면 늘 그렇듯 함께하던 오로라는 그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고개를 들어 이 모든 걸 확인하고나니 한지혁은 더더욱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두 번째 재앙을 제거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몇 번을 생각해도 세 번째 재앙인 루드헬이 나타나려면 너무나도 이른 시점이었다.

아일로이가 말했다.


-어쩌면 썩 이상한 건 아닐지도 모르니라.

‘그건 무슨 소리야?’

-재앙이란 원래 갑자기 찾아오는 것. 애초에 나는 오로라라는 징조부터 이상했느니라.

‘자세히 말해 봐.’

-더 말할 것도 없느니라. 전생의 세계에선 오로라 따위가 없어도 재앙은 강림했으니까.


미간을 좁힌 한지혁은 아일로이의 말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

그의 말은 딱히 틀린 점은 없는 것 같았다.


‘오로라가 재앙의 징조라 생각한 건, 과거의 재앙이 모두 그렇게 진행됐기 때문이지.’


한데 만약 재앙의 발생 조건엔, 사실 오로라가 없었던 거라면?

단순히 시기가 겹쳐 인간들이 멋대로 착각한 거라면?

사실은 오로라 따위가 없더라도 재앙이 발생할 수 있는 거였더라면······.

아일로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복되는 우연은 필연이라 해야 하느니라. 이 세계에선 재앙의 전제 조건이 오로라인 건 명백한 사실이야.

‘그럼 저 녀석은······.’

-변수.


아일로이가 말했다.


-인과가 바뀐 결과가 아니겠느냐.


*


투콰앙! 투콰아아앙!


호흡을 조절하고 다리 근육을 섬세하게 조율했다. 어지럽게 다가오는 공격은 찰나의 간격으로 피해냈다.

뒤이어 차유라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기술. 불꽃 구슬, 일명 화구(火毬)를 전면에 흩뿌릴 수 있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키아아아앗!


구멍이 송송 뚫려 손쉽게 허물어지는 삼두사! 다가오는 놈들은 죄다 심장이 타들어갔다.

차유라는 가까이 다가선 삼두사의 머리를 걷어차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동시에 던진 화구가 추가로 두 마리의 삼두사를 허물어트렸다.

차유라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느껴진다.’


근육 하나하나, 아니 세포 하나까지도 전부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는 감각.

불필요한 동작은 배제하고 쓸데없이 손실되던 마력조차 지금은 거의 전무했다.

아무렴 한 달의 훈련은 고됐다.

야산의 설산에서의 한 달간, 그녀는 한지혁의 지도 아래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룩해낸 것이다.

차유라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루 종일도 싸우겠어.’


그뿐이랴.

그녀는 한 달을 빠짐없이 착용했던 모래주머니마저 벗어던진 상태였다.

끝내는 양쪽 팔에 20KG씩 달고 살던 그녀였기에 체감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왠지 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건 착각일까.

차유라는 확신했다.


‘자신이 없어.’


도저히 질 자신이.


투콰아아앙!


다시 삼두사의 틈으로 난입한 차유라는 물 흐르듯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팔꿈치로, 무릎으로, 이마로도 불꽃을 생성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전신을 무기처럼 활용하는 그녀의 앞에선 삼두사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좋아, 이대로만 하면······.’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으아아아앗!”


차유라는 다가오는 삼두사를 쓰러트리며 가까이에서 비명을 지른 남자를 살폈다.

어설프게나마 검을 휘두르면서 삼두사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

주변으로 경호원들이 무던히도 그를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게 보였다.

매니저는 헌터조차 아닌지 이리저리 나부끼며 비명만 질러대는 중이었다.


화르르르륵!


그들의 뒤편으로 다가서던 삼두사 무리를 화끈하게 불태운 차유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장진혁 헌터는 A급 헌터이라면서요? 좀 제대로 싸워보는 게 어때요?”


결국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오늘날 이곳에 고립된 장진혁 일행이었다.

장진혁이 울부짖듯 외쳤다.


“현장을 떠난 지 1년은 넘었어! 이 정도만 해도 잘하는 거라고!”

“아, 그러세요.”

“너야말로 좀 더 제대로 하란 말이야! A급 헌터가 그것밖에 안 돼? 움직여! 죽여! 다 죽이라고!”

“뭐라는 겁니까. 저 D급입니다.”

“?????”


차유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장진혁을 일별했다.


기이이잉!


기묘한 소음이 발생하면서 게이트로부터 여태 겪지 못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진 것이다.

차유라는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마리의 몬스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슬슬 나오는구나······.”


묵직한 기도를 풍겨내며 모습을 드러낸 괴물 앞으로 메시지가 차라락 떠올랐다.


[‘뱀의 요람’의 주인, ‘메두사’를 마주했습니다.]

[세 번째 재앙, ‘피의 군주 루드헬’를 마주했습니다.]


차유라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첫 번째 메시지야 아저씨에게 들어 알았지만, 두 번째는 대체······.


‘······아저씨가 알아서 하겠지.’


나지막이 한숨을 뱉어낸 차유라는 양손의 불꽃을 꽉 쥐었다.

어쨌든 그녀가 할 일은 단순했다.


‘난 맡은 바 임무만 수행하면 돼.’


화원 길드가 인천국제공항에 솟아나는 혈석을 제거하는 동안, 가진 화력을 총동원해서 메두사를 처치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였고.


‘이건 아저씨가 믿고 맡긴 일이야.’


믿지 못했으면 시키지도 않았을 임무였다. 차유라는 그 믿음에 보답해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장진혁 일행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려고 했다.


“제가 길을 열어드릴 테니 일단 여기서 빠져······.”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쿠구구궁!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뺀 차유라는 바닥에서 솟구친 커다란 뱀을 보았다.

붉은 뱀은 집요하게도 길게 늘어나더니 차유라를 향해 빠르게 쇄도하고 있었다.

허공으로 불꽃을 뿜어, 궤도를 몇 번이나 바꿨을까?

순간이지만 등골이 차게 식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엔 아예 전신으로 불꽃을 방출해내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본능은 옳았다.


-······감이 좋은 인간이구나.


그녀를 옭아매려는 듯 땅에서 솟구친 수 마리의 뱀은 한 순간에 불타버렸다.

하지만 그 불꽃 속에서도 의연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네가 그 메두사라고?”


녀석으로부터 일렁이는 불길한 마력과 머리카락이 모조리 뱀으로 이루어진 끔찍한 형상.

두말할 것도 없는 메두사였으나······.


“너, 왜 사람 몸을 하고 있어?”


그 아래에 달린 완연한 인간의 몸을 보고도 의문을 품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는 메두사는, 얼굴을 제외하고는 모두 뱀의 형태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한지혁에게 들었고, 또한 관련 정보도 이미 검색해봤으니 틀리지 않을 내용이었다.

메두사는 이죽였다.


-그분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시거든.

“그분?”


츄아아아악!


메두사의 머리카락이 곤두서더니 이내 차유라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종전의 땅에서 솟구쳤던 공격들도 메두사의 머리카락이었던 모양.

다가올수록 그 크기를 키워가는 뱀은 차유라의 전면에 나서 혀를 날름거렸다.


-그분께서 말하셨다. 네년 또한 우리 혈족(血族)이 될 자격이 있다고.

“뭐라는 거야?”


차유라는 불꽃을 내뿜어 다가오는 뱀의 머리를 쳐내는 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 마리의 뱀을 터트리면 녀석은 분열하여 두 마리가 됐다.

종종 바닥에서도 자잘한 뱀이 솟구쳐 그녀의 발목을 옭아매기도 했다.

차유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뱀 새끼가 진짜······!”


종전까지 다루던 화력의 출력을 두 배로 늘렸다.

터지는 범위가 넓어지자 다가오던 메두사의 뱀들은 분열직전에 잿더미가 됐다.

동시에 땅을 박차 허공으로 날아올라 녀석의 다른 공격도 원천 차단해냈다.

야인의 설산에서 겪은 온갖 함정과 사방에서 다가오는 전투는 이런 데에서 특히 도움이 됐다.


-호오······.


하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메두사를 보고 있으려니 조바심이 나는 건 그녀였다.


‘뭔가 달라.’


메두사는 끝내 A급 몬스터로 성장하는 괴물이다.

하지만 그 특징은 인천국제공항의 ‘혈석’을 침식시키는 것으로 완성된다 할 것이다.

말하자면 혈석이 온전히 침식되어야만 메두사의 진짜 힘이 드러날 수 있다.

즉 당장 화원의 활약 때문이라도 혈석의 침식이 더뎌진 지금은, 평균보다는 약해야 정상인데.

기껏해야 B급 수준이어야 할 텐데.


‘······아저씨의 정보가 틀렸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이조차 강화되기 이전의 강함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겠어.’


무리를 해서라도 메두사를 사냥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깨우칠 수 있었다.

메두사는 턱을 매만졌다.


-어떻게 하면 네년의 가죽에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수 있을까.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메두사의 시선이 표독스럽게 빛났다.


-그래. 인간은 정에 약하다지?


메두사가 고개를 돌려 장진혁을 보았다. 그 매서운 시선에 장진혁의 신체는 일순 경직됐다.


“뭐, 뭐야? 갑자기 몸이······!”


눈 깜빡할 새에 그곳으로 이동한 메두사는 장진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혀를 날름거린 그녀가 송곳처럼 세운 손톱으로 장진혁의 심장을 꿰뚫려는 순간이었다.


“지, 진혁이 형!”


매니저의 목소리가 비산했고 메두사의 웃음소리는 귓가로 천둥처럼 메아리쳤다.


-꺄하하하, 정말로 나약한 종족이구나.


창졸간에 메두사의 공격을 비틀어낸 차유라는,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뱀을 보았다.


“큭······.”


우악스럽게 뱀을 뜯어낸 그녀는 곧 메두사를 향해 화구를 날릴 수 있었다.

다만 관절이란 게 없는 듯 몸을 이리저리 비튼 메두사는 유유자적 멀어졌다.


-영광으로 여기거라. 인간인 주제에 위대한 혈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에······.

“뭐라는······!”


일순 목절미의 화끈한 감각이 전신으로 확 퍼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피의 군주 루드헬’의 ‘피’를 주입받았습니다.]

[‘혈족’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루드헬의 권속’이 될 수 있습니다.]


덩그러니 떠오른 메시지를 읽던 차유라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비명부터 질러야 했다.

무언가가 전신을 관통하며 콕콕 찔러대는 느낌! 수천 개의 가시를 통째로 삼킨 듯한 끔찍한 통증이었다.


-꽤 아플 것이다. 하나 아름다워지는 과정이니 기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통증 속에서 차유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상황에 대한 이해는 빨랐다.


‘루드헬인지 뭔지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난 끝이다.’


권속이 되면 뭐가 어찌되는지는 알지 못해도 몬스터로부터 기인한 일이다.

결코 좋진 않을 것이다.


“하······ 무리하진 말랬는데.”


차유라는 전신을 관통하는 어떠한 힘에 대항하며 온몸의 열을 올리기로 했다.

마력으로 전신을 꽉 억누르니 통증은 약간 가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쓸데없는 발악을······.


차유라는 피가 흐르는 눈가를 쓱 닦으며 말했다.


“당신들, 장진혁 헌터를 데리고 멀리 물러나요.”

“······네?”

“빨리요. 지금부터는 저도 힘 조절을 못할 것 같으니까.”


장진혁을 데리고 그들이 자리에서 멀어지는 동안에도 메두사는 움직이질 않았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탓일까.

빌어먹을 메두사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로 차유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차유라는 길게 호흡을 뱉어냈다.


“후우······.”


그리고 천천히 허리춤에서 기다란 검 한 자루를 발도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타올라라, 홍염(紅焰).”


물처럼 뚝뚝 흐르는 불꽃을 선으로 그으며 차유라는 메두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에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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