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조선 서원이 철폐되고 서원에 있던 선비들이 대거 공충도로 끌려가 곡소리를 내며 반강제로 새로운 학문을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쑤셔넣고 있던 때, 청국 조정에서도 신료들의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또 터졌어? 또? 왜 또 터진것이야? 공사를 어찌 했길래!”
청국은 어떻게든 터진 황하 주변에 제방을 쌓고 물길을 다시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던 때문에, 사람 손으로 복구를 하자니 하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제방이 터지고 때 아닌 폭우가 내려 난 물난리는 추가로 수백여 리에 달하는 제방을 쓸어가버렸고, 황하는 그동안 퍼주었던 기름진 땅을 죄다 휩쓸고 위로 올라가 새로운 물길을 내었다.
저 멀리 원나라때부터 만들어 중원의 물동량, 특히 식량의 절반 이상을 운송하던 대운하 또한 상해 이북부터 베이징 이남까지 싹 다 초토화 되었다.
게다가 저 혐오스러운 영길리 해적놈들은 새로 난 황하 하구를 기어이 발견하고, 그 주변 해안 도시와 항구를 초토화시키며 다니고 있었고, 여기에 불란서와 미리견까지 합세해서 대 청국을 물어뜯으며 먹을 것을 탐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저주스러운 ‘네메시스’라는 것은 도대체 몇 척이나 있는 것인지, 분명히 한 척을 저 제방과 바꾸어가며 크게 깨트리고, 다른 한 척도 미리견에서 사 두었던 신형 대포로 꿰뚫어 철수하게 하였거늘, 채 두어 달도 되지 않아 똑같이 생긴 배가 다시 와서 해안을 두들기며 저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 요구라는 것이,
1. 청에서 불법으로 몰수한 아편을 순은 천만 냥으로 배상한다.
2. 청의 중요 핵심 항구 5곳을 전부 개항하고, 홍콩, 위해, 상해를 영국에 할양한다.
3. 차후 영국 시민은 중국 황제와 맞먹는 동등한 지위를 약속한다.
4. 광둥 지역에서의 무역을 전쟁 이전으로 복구한다. 모든 복구비용은 중국에 귀속한다.
와 같은 것이었으니, 청국 입장에서도 절대로 받아 들일수 없는 것들이었다. 거기에다, 이러한 요구 조건이 청국 인민들에게도 알려지고, 제방 또한 영길리 놈들이 터트려 이 사단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국 인민들 또한 분노하여 제 발로 서역 오랑캐들과 싸우겠다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절반여 정도는 청국과 싸우는 데 필요한 고기방패로서 착실하게 소모되어 갔다. 사실상 바다에서 서양 함선, 그 중에서도 장갑을 두른 배에 대해서는 화포로 타격을 입히기 어려웠기에 진양과 같은 자폭선 정도나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그 외에 타격을 입히는 수단이라면,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나 시체의 옷가지, 이불 등등을 모아 잘 썰고 적절하게 포장한 후, 야간에 적의 주둔지나 선박에 쏘거나 던져넣고 튀는 방법이 있었다. 양이들도 흑사병이라면 치를 떠는지, 저런 테러를 한 번이라도 당한 배는 즉시 전선에서 이탈하여 보이지 않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나머지 절반여 정도는 바라던 바와 같이 양이에 맞서 싸우는 대신, 자연과 대결하게 되었다.
“자연의 횡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야말로 극복하고 굴복시켜 대중들과 인민들을 위해 개조하고 활용해야 할 대상이다! 보라, 저 자연이 인민들이 수백여 년간 피땀흘려 이룩한 모든 것을 쓸어가지 않았는가.
인민의 의지, 혁명에 대한 대중의 무한한 에너지는 환경 조건을 바꾸고,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미래로 가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산을 들어 평평하게 하고, 강을 들어 물줄기를 바꾸자!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세계에 인민들을 충만하게 하라! 땅을 정복하라! 강을 정복하라! 물고기와 새와 두 발, 네 발 달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다스리고 부려라!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전쟁을 한번에 이겨야만 한다. 하나는 저 혐오스러운 서역 오랑캐들에 대한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에 대한 전쟁이다! 서역은 멀고, 저들은 집을 떠난 지 오래이니 버티면 곧 물러갈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노오오오오력하여 다 같이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공산 혁명에 대한 성전이요 시련이다!”
“성전이다!”
“황제께서 피를 원하신다!”
문제는, 그 피의 대부분이 청국 인민들로부터 나오게 된다는 점이었다. 북쪽에는 흑사병 대 유행이 시작되었고, 남쪽에는 내륙 수운의 실종과 항구 봉쇄로 식량이 썩어가고 있었으며, 중부에서는 대기근이 이미 시작되는 등, 대재앙이 청국을 급습하고 있었다.
“줄 것은 주고, 후일을 도모해야만 합니다. 이대로라면 인민들 절반은 죽어 나갈 것입니다.”
대숙청과 이어지는 공포 정치의 결과, 신료들은 예스맨만 남아 있던 베이징에서도 마침내 간언을 하는 자가 나왔다. 황제의 붉은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동하여 그의 수족이 되어 따르던 유소가라는 자로,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5인방 중 하나였다.
“줄 것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는 홍콩과 상해, 위해는 줘 버리고, 그깟 은자 천만냥도 줘 버립시다.”
“저 양이들은 수만 리 밖에서부터 배와 식량, 탄약을 끌고 와야 하고, 우리는 집을 지키는 싸움을 하면 될 뿐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거늘.”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멀고 우리는 가깝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은자와 작은 땅으로 저들을 타일러 달래고 인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하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라고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인민들은 양적들과도 싸우고 있으나, 자연과도 싸우고 있다. 그대는 지금 나의 명에 따르는 인민들의 의지가 저 자연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번 사태의 원인에 천재(天災)가 3할이라면,
인재(人災)가 7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황재는 격분했다.
“인재라는 그 발언이 다름 아닌 참사를 불러 올 것이다!”
“폐하께서는 가서 보지 않으셨으니 모르시는 것입니다.”
“저 개새끼를 끌어다 베어라!”
그러나 유소가는 끌려 가면서도 외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시커멓게 되어 죽었습니다! 역사가 폐하와 나를 심판할 것입니다! 역사책에는 식인! 시비(尸肥 : 시체 비료)! 그 모든 참사가 기록될 것입니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고, 황제는 시뻘겋게 된 얼굴로 쒸익쒸익거리다 좌중을 둘러보며 연설을 토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이며 자연과도 전쟁을 벌이면, 아마 천만명 이상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 전쟁은 전쟁이고 인민들은 어차피 죽는다. 세월은 지날 것이고, 우리는 더 많이 낳아 더 많이 일할 것이다.
설령 흑사병이 지구에 모든 인간을 죽여 없앨지라도, 이것은 지구에서나 중요한 사건이지, 우주 전체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 넓은 대전에서는 숨소리 하나조차 들리지 않았고, 신료들이 흘리는 식은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미친놈인가?’
‘미친놈이지.’
‘미쳤군.’
‘그 미친놈이 황제라네.’
눈동자만 데굴데굴 옆으로 굴리고 있었건만, 다들 뜻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반론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조정은 다시 조용해졌다.
황제는 그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지, 크게 웃고 다시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먹을 게 충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굶어 죽는다. 인민 절반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나머지 절반은 굶어 죽게 둬야 한다. 어차피 우리들은 채식을 하니까 무엇이든 심어서 키우면 먹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아까 시체 비료라고 했던가?”
황제는 한번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것 마음에 드는군. 오래 된 가축 우리, 인분, 시체, 뭐든 좋다. 밭과 논에 뿌리고 땅을 다시 기름지게 하라.
또한, 급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남까지 가는 육로를 뚫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황제의 명령은, 황제에 충성하는 붉은 군대와 정치 지도원에 의해 저 아래쪽까지 하달되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끼니를 줄이면 된다!”
“굶어 죽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 다 저 전쟁에서만 이기면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이다.”
“인민이 굶어죽는 것은 국가의 요구보다 덜 중요하다!”
“산을 허물고 길을 내자! 우공이산의 우공을 본받자!”
무덤은 파해쳐지고 시체는 삶아져 비료로 뿌려졌다. 오래 된 집도, 절도,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을 만한 사원이나 사당, 유적들도 다 부서져 썩을 만한 것들은 비료로, 썩지 않는 것은 자재로 쓰였다.
그러자 농업 생산량은 조금 늘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쿨럭!”
“아, 저리가라고. 우리도 병 걸리면 죽는다고.”
“의원이 환자를 박대하면 어찌하라는 말이오.”
“각자도생 모르오? 각자도생.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그러나 흑사병에 대해서는 어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원래 치명적인 그 병은, 못 먹고 고된 노동에 혹사당하는 인민들에게는 더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국의 인명피해는 심각하게 늘고있었다.
한편, 조선은 공충도 마량진을 중심으로 아래쪽으로는 금강 이북 서천군, 북쪽으로는 보령현까지 철도가 놓이고, 해안가에는 마량진에서 서해쪽으로 길게 뻗은 부두가 몇 개나 놓이고 그곳에도 철로가 생겨 있었다. 그 곳에는 영국이 가져 온 쌀과 철광이 하역되어 철로를 따라 나가고, 제철소에서 갓 나온 철판과 부품, 포와 탄환이 빈 배를 채웠다. 보령현쪽에서는 석탄이 올라와서 제철소의 열기를 더해 주고 있었다.
천 톤에 달하는 배를 짓거나 수리할 수 있는 선거가 3개나 있는 조선소도 지어져 청국을 치기 위한 신형 함선의 건조나 기존 선박의 수리도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배를 수리해주고, 기관을 개조하고, 포를 주조하는 정도의 일감이 들어왔었다. 조선제 엔진과 장갑은 그 무게에 비해 출력이나 방어력이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영국군도 그 품질을 인정하는 바였다.
또한, 영국 본토까지 가서 장갑을 수리하고 엔진을 얹기에는 지리적으로도 너무나 머나먼 길을 다녀가야 하는 탓도 있었다. 비용은 비록 만만하지 않았으나, 기술은 자원이나 땅과는 달라서 무력으로 강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비교적 순순히 일을 맡기고 대금을 내고 있었고, 대신 그 과정을 스케치하고 적어가며 기술을 빼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 정도 일감도 조선에서는 큰 일거리였고, 대금으로 지급받은 은과 쌀이 공충도 일대에서 풀리면서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청국에서 흑사병을 통한 생물학전을 걸어오면서 상황은 또 한반 크게 바뀌었다.
흑사병이 도는 통에, 항생제의 수요가 폭발하고, 화학 설비와 유리의 생산량도 덩달아 늘게 된 것이었다. 조선 북부에서도 흑사병이 돈다는 이야기에 미리 항생제 생산량을 늘려 두었으나, 그 이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이었다. 예전에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어찌 먹이고 재울지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사람 손이 모자라서 난리였다.
그나마 잡아온 선비들이 본인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기초적인 글과 산술, 위생교육정도는 새로 들어오는 유민들을 대상으로 해줄 수 있게 되었고, 유민들도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 만으로도 큰 불만 없이 이 곳의 생활에 따라와주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미리 충분한 용량을 확보해 두었던 상하수도 시설과 아울러 비누, 에탄올과 염소계 살균표백제 또한 생산량을 충분히 늘려두었던 것이었다, 여기에 비록 질은 떨어지지만 양과 영양만큼은 충분한 식량 공급이 더해지고, 영국군, 프랑스군, 미군이 증원되어 치료, 격리시설을 추가로 빠르게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역병 또한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제압당했고, 흑사병 또한 몇 번인가 들어왔었으나 제대로 그 위용을 떨치기도 전에 잡히고 말았다.
돈 없고 땅 없는 유민들 뿐 아니라, 흑사병을 피해 저 위에서부터 내려온 사람들, 큰돈을 벌 기회를 잡기 위해 무작정 내려 온 사람들, 신기한 것을 구경하기 위해 왔다가 눌러 앉은 자들 등등, 인구는 폭발했다. 그리고 그 인구를 감당할 만큼의 식량, 주거가 생기고, 식량과 주거, 돈이 돌기 시작하니 상품을 만들어 파는 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이 곳은 선박의 수리, 보급을 담당하는 기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다국적 군인이 들락날락하는 치료, 요양시설이 되기도 하였고, 탄약과 화약, 포와 산탄총을 제작하는 조병창과 탄약창으로서의 역할까지 떠안게 되면서 때 아닌 전쟁 특수를 누리는 지역이 되었다. 거기다 영국군에 같이 섞여 온 탄약, 포 기술자들과 조선 장인들, 그리고 선비들 중 밀덕 기질을 갖게 된 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일이 잦아지면서 어설프게나마 새로운 무기 체계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이 시작되기도 했다.
“거 쌍열 산탄총이라는게 다 좋은데, 반동이 어마무시하게 세서 몇 발 쏘고 나면 손목과 어깨가 뻐근하단 말이외다.”
“그렇죠. 아무래도 저 디젤 엔진이라는 것에 들어가는 스프링하고 캠을 총에도 적용해 보면 반동이 훨씬 덜할텐데 말이죠.”
“어째서 그러한가?”
“충격을 한 번에 받아내기보다는 스프링을 통해서 스프링이 변형되는 시간만큼 나누어 받는 것이 충격이 훨씬 덜하지 않습니까? 저 쌍열산탄총에도 그래서 뒤쪽에 판 스프링이 두 개 들어가는거구요.”
“잠시만 계산을 좀 해보겠네... 그렇겠군.”
“아예 그 반동을 써먹지는 못할까요? 어차피 공중으로 갖다 버리는 힘 아닙니까.”
“반동을? 어디에 써먹으려는가?”
“탄피를 빼고 넣는 것을 반동이 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오?”
그렇게 캠과 스프링을 써서 반동을 이용해 자동장전과 탄피배출을 하는 기관산탄총 개발이 시작되었다.
“굳이 산탄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반동이 저 정도는 되어야 화끈하게 작동할텐데요.”
“그렇지? 하긴 여차하면 원거리에서는 단일탄체(slug)탄을 쏴갈겨도 쓸만하겠지. 근거리에서는야 산탄으로 발라버리는것도 좋겠고.”
“기왕 이렇게 된거 구경도 늘려봅시다. 해군에서도 써먹게.”
“얼마나? 한 2파운더정도요?”
“거 파운더 파운더 하니 헷갈리네. 깔끔하게 40mm나 60mm도 생각해봅시다.”
거기에 이놈 저놈 숟가락을 얹고 훈수까지 더해지다 보니, 점점 계획은 산으로 가는 듯 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관심있는 자들이 모여 뚝딱거리면서 계산하고 시제품 만들어보고 하는 것이라 산으로 가더라도 당장 문제 될 것이 없긴 했지만..
- 작가의말
주말 잘 보내시고 다들 코로나 조심하세요.
저도 지금 코하고 목이 난리라...주말동안 푹 쉬고, 죄송하지면 월요일까지는 쉬어보려 합니다.
화요일부터 다시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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