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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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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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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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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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5개월차 -4-

DUMMY

“상께 약을 구해 올리는 일도 마쳤고, 집안 사람들에게 서신도 보내었으니 이제 구워먹든 삶아먹든 마음대로 하시구려.”

“저야 1년간 키워 온 사람들을 잃고 마을 시설이 피해를 좀 입은 정도였지만...”


사영은 정약용을 한번 보고 말을 이었다.


“저기 피해를 크게 입으신 분이 계시고, 이 곳 마을 사람들 중 가족을 잃거나 몸과 마음을 다친 분도 여럿 계십니다. 그분들과 어떤 방법이 되었건 은원을 풀고 오신다면, 저도 이 이후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 이 문제에 대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내일 다시 모여서 은원을 풀고, 이참에 조정과 어찌 관계를 세울지도 이야기를 해 보세나.”


“마음껏 이야기를 나눠보십시오. 조선과 적대시해야한다면, 영국은 이곳을 도와 조선 왕실으로부터 자치권을 확보하거나 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군사적, 외교적 압력을 행사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거 영국이 이 지역을 식민지화 하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리오만?”

“자치권을 보장하는 영국령으로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자신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논의가 오가는 와중에도, 조인영과 김유근은 꽤나 담담하게 이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이양선과 사사로이 사통함은 대명률에 의율하여 보더라도 사형까지 가능한 상황이었고, 지역 수령이 이에 호응하여 여러 편의를 봐주고 조정의 령이 없이 이 정도까지 여러 일을 행한 것은 사실 역모를 꾀했다고 처벌한들 과한 것은 아니었소이다.”


“게다가 양선까지 끌어들여 사사로이 총포를 주조하고 군사를 조련하였으며, 외인들까지 불러들여 조정의 군대에 맞선 것은 명명백백한 반란이외다.”


“그 조정이 제대로 백성들을 돌보았다면 이양선이 이리 의탁을 하였겠소이까? 형세가 하도 딱하고 위태하니 양선에 사람이 아닌 자까지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여 사람들을 겨울을 나게 하고 굶어 죽지 않게 한 것이 아니오?”


“확실히 우리가 권세를 두고 다투어 조선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백성들에게 큰 해악을 끼친 것도 사실이오.”


“그래서 약을 구하러 목을 걸고 내려오면서, 설령 우리 목이 떨어지더라도 조정과 가문에 이르기를 원망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탓하지 말라 이르고 오는 길이외다.”


“사실 조선이 힘이 없고 가난하여 고작 이 자그마한 무리를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패퇴하였거늘, 오늘 와서 보니 여기에 서역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영국까지 와서 진을 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더이다.”


“하여, 우리 목숨을 끝으로 분함과 원망이 있으면 싹 잊어주시게나.”


그리고


다음날, 저 뒤에 사영의 배와 영국 전투함들이 빼곡하게 떠 있는 마량진 앞바다를 배경으로 일종의 재판과 토론회를 겸하는 것 같은 자리가 열렸다.


조인영과 김유근은 이 재판의 피고인 셈이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상황에서도 그 선단을 쳐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젠장, 참 크고 아름답구나!”

“우리가 많이 해 먹긴 해 먹은 모양이외다. 그동안 저들은 저리 많은 강대한 배들을 만들고, 그것을 구만리는 떨어진 이 곳까지 끌고와 저 청국과 한판 붙었다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들 자신도 자신들이 재판의 피고로 서 있는 것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자기가 꼭 죽을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 순간 그들은 자신의 가문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가 그립다거나 불쌍하다거나 하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그 때, 멀리

“쾅~쾅!” 하며 포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전투함들이 쏘는 것이겠지. 여기로 날아와서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다 포탄이라도 하나 쏴 날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인영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뒤쪽으로 시험 포격중인지 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영국 배들이 보였다. 그리고 자기를 가까이서 둘러싸고 있는 군중을 찬찬히 훑어봤다. 모두 400~500명은 될 것 같았다. 오른편을 봤다. 200명은 될 것 같았다. 그는 그들의 표정들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대부분 증오와 분노에 찬 표정들이었다.


“내가 여기서 오늘 죽나 보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도 치열하게 다투고 할 것 다 해보고 가니, 꿈을 꾸며 살다가 꿈을 꾸듯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와 퍼부어지는 욕설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현 세도가의 수장들 답게 당당하게 있었다.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짓눌렸던 생각들이 하나씩 꼬리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청국에 줄을 대 본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구나. 그러나 이 판국에 나를 감싸줄 사람이 어디 있담. 의지할 곳은 다 무너지고 조선도 청도 휘청이고 있으니...’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이 막연한 기대는 절박한 이 순간에도 그에게서 완전히 떠나 버리지는 않았다.


“야 이 인간 백정놈의 새끼야.”


고함 소리에 놀라 그들은 흠칫 머리를 들었다.

얼굴이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강건해 보이는 젊은이가 쏘아보고 있다.


이제는 죽는구나, 그는 입 속으로 뇌까렸다.


“사람을 굶어죽이고 때려죽이고 베어죽이고, 이 개새끼야.”


다행스럽게도, 그는 욕만 할 뿐, 아직 그들에게 가까이 와서 두들겨 팬다던가 돌을 던진다던가 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 새끼, 어디 죽어 봐라.”

“왜 그려... 그래도 때려 죽이지는 말고...”

“아, 가만히 있어 봐유. 저새끼들 때문에 초상 치른게 몇이유?”

“...그건 그래두...”

“아 놔 봐유! 굶어 죽게 해놓고 먹고 살라니께 뭐? 반역? 씨발놈들이!”


나막신을 신은 발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헉!”

“으억!”


등짝과 허벅지, 어깨 등등에 발길질이 날아들자 김유근은 비명을 지르고 꼬꾸라졌다. 반면, 조인영은 나이가 더 있었음에도 어찌어찌 그것을 버텨내면서 똑바로 섰다.


“어찌 그리 잘 버티십니까?”

“매도 맞아본 자가 잘 버티는 법이지.”


암행어사를 돌며 매 깨나 맞아 본 조인영은, 늙은 나이임에도 나막신정도의 타격은 어찌어찌 버틸 만 했나보다.


“그만. 일단 패는 건 나중으로 하고 이야기나 마저 들읍시다.”


박규수가 어찌어찌 말리자, 나막신을 신고 날아다니니던 청년이 씨근덕거리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나라도 백성도 팔아먹은 이 개돼지 같은 놈아!”


그는 돌아가면서도 한 마디를 지르고 돌아갔다. 그에 동조하듯, 끄덕이는 자들도 꽤나 많았다.


김유근은 곧 정신을 잃었다. 그 후의 일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조인영은 몇 대 더 맞기는 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비틀거리긴 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잠시 비틀거리면서 무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그는 근처에 있던 막대기를 주워들고는 그것을 지팡이삼아 놀랍게도 다시 우뚝 서서 꼭 복수라도 할 사람처럼 앞으로 뚜벅뚜벅 세 발짝을 걸어 나왔다. 전혀 깨끗하게 죽자고 주문을 외던 사람 같지 않았다.


부릅뜬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좀 움찔하는 것 같았다. 특히, 나막신을 신고 발차기를 날리던 청년은 겁먹은 데다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것을 본 조인영은 더욱 당당하기 한 발짝 더 나서 말했다.


“어리석은 너희들은 듣거라! 본래 양선과 사사로이 통교하는 것은 국법에 의해 지엄하게 금지되고 있고, 양선을 도와 사사로이 교전하는 것은 분명 역모로 몰려도 억울할 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었고 얼어죽지 않고 겨울을 나는 것이 힘들었으며, 나라에 힘이 없어 저 이양선의 도움이 없이는 왜구들에게 침탈을 당했을 것이 명백한 바,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죽은 자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이에 나와 저기 기절해 있는 저 김모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곤궁함을 돕기 위해 매장은(埋葬銀, 장례에 필요한 은, 또는 형을 감경받기 위해 지불하는 은) 또는 미곡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고, 역모의 혐의 또한 모두 벗겨 주고자 한다.

그것으로도 물론 부족하다고 한다면, 나와 이 자의 목숨을 주겠다! 원하는 자는 말하라!”


그리고 그것으로 이 공개 재판이 끝나는 듯 했다. 사방은 고요해졌고, 기세에 눌린 백성들은 방금 조인영이 한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하면서 되뇌이고 있었다.



“나는 억울해서 네 목숨을 받아야겠다!”


고요를 깨고 나온 것은 마을 자경단을 맡고 있는 젊은 포수였다. 망나니 같은 사내가 걸어나오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잠시 긴장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때려죽이기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그 포수는 인정사정 두지 않고 순식간에 등 뒤로 메고 있던 산탄총을 돌려 들고 조인영에게 쏴 버렸다.


“투콱!”


순간 조인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풀썩 엎어졌다.

백성들의 입에서

“어어어어?!” 하는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조인영은 이 한 방을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

그 후의 일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괜찮으시오?”


조인영은 문득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다.


직각으로 각이 딱 잡힌 나무 서까래가 쓸데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간, 새하얗게 칠해 진 나무 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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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2년 7개월차 조선 -7- +12 22.09.01 847 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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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2년 7개월차 조선 -5- +2 22.08.30 813 4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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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5개월차 -4- +4 22.08.08 892 39 10쪽
64 2년 5개월차 -3- +4 22.08.05 898 4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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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1년 11개월차 -4- +2 22.07.27 902 4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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