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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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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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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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개월 3주차

DUMMY

저 멀리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수십 척이나 되는 폐선과 표적으로 쓰였음직한 나무판들, 천 조각들이 불타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몇백여 개는 족히 됨직한 철로 씌운 통나무 화살, 장군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물 위에 여기저기 떠 있었다.


황제께서 이야기하시던 “그 배”가 단지 포 3발을 쏜 결과였다.


배에 점점 가까이 다가설수록, 황제의 밀사단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마음속에서 공포감이 스멀스멀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배에 다가서는 동안 본 대부분의 표적으로 썼던 배는 여기저기 뚫리고 박살난 것이, 비록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으나 심히 참담하고 참혹했다. 타고 남은 배의 잔해와 물에 떠다니는 배의 파편,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전투의 흔적, 그리고..


아직도 밀사단의 뇌리에 남아 있는 거대한 포구 화염과 폭음, 바닷물이 갈라질 정도로 강렬한 포 발사시의 충격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본능적인 공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불타는 배들과 타다 남은 잔해에 대비되어, “그 배”는 더욱 크고 불길해보였다. 미리 이야기로 듣고 그림으로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그 크기를 보니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불타고 있는 배들도 큰 것은 종종 보였으나, 철로 만들었다는 배가 어찌 저렇게 클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주변에 목선들은 무엇이고, 왜 그 배들에게 불을 지르고 있는가.


황제가 출발 전 신신 당부했던 내용들로부터 기대했던 풍경과 실제 본 것이 너무나 달랐기에, 사신단의 생각은 복잡해져갔다. 삼국지에 나온 삼고초려의 한 장면처럼, 조선 한쪽 시골에 은거하는 대학자를 잘 설득하여 모셔오는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백기와 황룡기, 오성홍기를 같이 올리게.”


혹여나 영국이나 다른 나라의 눈에 띌까 싶어 아무런 깃발을 올리지 않고 가던 밀사단이었으나, 잘못하면 저 포의 표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밀사단의 단장은 깃발을 올릴 것을 지시했다 황룡기는 황제의 상징이었으므로 함부로 포를 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깃발 덕분이었는지, 그들은 무사히 배를 저 거대한 철선 옆에 댈 수 있었다.


“대청국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전하고자 한다. 승선을 허가하라!”


한편, 사영과 일행들도 저 멀리 백기와 황룡기, 그리고 붉은 바탕에 노란 별 다섯 개가 한쪽 구석에 그려진 깃발을 올린 배 한 척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황룡기... 청 황제가 직접 오지는 않았을테니 아마 황명을 받아 오는 배인가보군요.”

“혹은 해적들이 황제를 사칭하여 배에 수작질을 하러 오는 것일수도 있지요.”

“설마 아무리 해적들이 무도하다고 한들 감히 청 황제의 깃발을 사사로이 쓰겠소이까?”

“왜구들이라면 능히 그런 수작을 벌이고도 남을 자들이외다.”

“이미 변고가 여러 번 있지 않았소이까. 경계는 천번을 한들 부족하지 않을 것이오.”

“일단 배를 살펴보십시다.”


해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이미 이곳은 경계 태세에 들어간 상황이었고, 사람들도 어느 정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청 황제가 뒤에서 해적을 조종하고 있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예로부터 청국군이 육지에서는 강하나 물 위에서는 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니, 정규 수군 대신 해적을 키운다고 해도 또 말이 아예 되지 않는 것은 아니리라.


“아니 중국 깃발이 왜 저기에...?”


일단 망원 렌즈로 당겨 배를 관측해본 바, 저 황룡기와 백기, 그리고 오성홍기를 올린 배는 무장도 크게 되어있지 않았고 일단 선원들도 여느 해적과는 복장이 달랐기에 무슨 말을 하러 온 것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역시 가장 신경이 쓰인 것은 저 오성홍기였지만.


“대청국 노농적군이 황제폐하의 밀명을 받들어 전하고자 한다. 승선을 허가하라!”

“노농적군?”


사영은 정약용과 박규수를 보았으나, 둘 다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리라.


황제의 노농적군이라는 괴상한 표현을 쓴 그들은 올라와서 사영의 모습을 보고 잠깐 흠칫했고, 배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세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들은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기 위한 예를 취하여야 할 것이나, 자애로우시고 현명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이방인이 예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탓하지 말고, 온화하게 이야기를 전하라 하셨으니 이에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오.”


박규수가 사신의 말을 통역해 주면서 의견을 덧붙였다.


“정식 칙사가 아니라 밀사라고 해도, 황제의 명을 전하는 자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군요. 무슨 일이 크게 일어나긴 일어난 모양입니다. 청 황제에게 무슨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이 배를 실제로 보고 겁을 먹은 것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이야기를 더 들어 봅시다.”


우리끼리 잠깐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사신의 표정도 묘하게 바뀌었다.


“나도 조선말을 할 줄 안다오. 허나, 그대들의 말이 맞기는 맞소.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최근 큰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청나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시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중이시라오.”


통역하던 박규수가 무안해하거나 말거나, 사절은 다시 청국말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청국어가 더 편하긴 하겠지.


“황제 폐하께서는 이 배들과, 배 안에 있는 기술들, 특히 원자력이라는 것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으셨소. 물론 그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당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고 말이오. 해서, 황제 폐하께서는 그대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전해 보라고 하셨소. 황제 폐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7년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청국의 힘이 되는 한, 퍼주라고 하셨소. 사람이건 돈이건 자원이건 뭐든지! 인민들에게 널리 2년간 기초 학문을 가르치고, 그 중 될 만한 자들을 뽑아 2년간 응용 학문을 가르치고, 3년동안 그 가르친 자들을 가지고 이러한 전함을 뽑고, 원자탄을 만들고, 어..잠시만.. 뭐라고 하셨더라..”


황제의 명이라는 것을 외워왔는지 줄줄 막힘없이 아야기하던 사절은, 중간에 기억이 나지 않는 단어가 있는지 글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제의 말이라는 것을 전해 듣던 사영도 충격을 받았다. 바로 줄곧 걱정하던 것들 중 하나가 사절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었다.


‘원자력, 원자탄 이야기가 나오다니..’


사영이 걱정하던 문제들 중 하나는, 과연 여기 이 시대로 온 것이 본인 한명 뿐일까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왔다면 혼자는 아닐 가능성이 높고 그 자들이 본인과 뜻을 달리 할 수도 있다는 걱정.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원자탄을 입에 올리는 청 황제라니. 노농적군이니 어쩌니 하는 것을 보니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누군가일텐데...’


공산주의 국가에서 과학자의 말로가 어떠하였더라. 기억이 중간 중간 비어 있는 것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때가, 그것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영이 그렇게 여러 생각으로 복잡한 사이, 사절이 말을 이었다.


“아, 그래, 인공위성. 인공위성이라는 것을 쏘아 올리고 수소폭탄을 만들어 싣고 세계를 발 아래 두는 것이 어떠한지 물어보라고 하시었소.

여기까지가 바로 위대하신 대 청의 황제폐하께서 미천한 이방인인 그대에게 내리시라고 하신 자비로우신 말씀 전부요.”


여기에 와서 처음 알게 된 시대를 거스른 자가 하필이면 공산주의 신봉자일 확률이 높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청 황제라니.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모양이다. 앞으로 7년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람이건 돈이건 자원이건 뭐든지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은 분명 달콤하기는 하다. 연구개발을 하는 사람에 있어 충분한 인력과 자원과 예산, 거기에다 시간까지 충분히... 아, 시간은 촉박하긴 하던가? 7년 안에 원폭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예전에도 그 안에 핵개발을 마쳐 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청 황제는 이미 미래를 아는 자이거나.


그렇게 밀사단은 할 말을 마치고, 황제의 편지를 전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밀사단 중 한 명이 칙서가 봉해진 화려한 빨간 봉투를 두 손으로 들고 서서 말했다.


“예를 갖추어 황제폐하의 말씀을 받으시오.”


사영은 예를 갖추어 받으라고 하기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꾸벅 하고 받으려 했다.


“이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어허, 참으시게. 황제폐하께서 다소간의 비례는 불문에 처하라 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래도 어찌 저런 예로서 폐하의 교지를 받으려 한단 말입니까!”


노농적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밀사단들이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격노한 것이었다. 칙서를 받을 때의 예가 있다는 것인데, 알게 무엇인가.


“예를 찾고 예법을 가르치려는 것을 보니 그래도 해적의 무리가 위장한 것은 아닌 모양이오.”

“그럼 다행입니다만, 혹시 또 모르지요. 해적 뒤에 청 황제가 있고, 제안을 거부하면 해적을 부추겨 이 곳을 털어버리려고 하는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마는, 요즘 세상이 워낙 법도에 맞지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 아니라고 확답은 못 해주겠소.”

“그래서 그 예법이라는게 어찌 된답니까?”


그래서 설명을 해 주는데 이양인이라 예법에 약할 것이나, 조선의 왕과 같은 번국의 왕에 준하는 대우를 해줄테니 네 번 절하고 무릎을 꿇고 받으라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머무는 곳이 아니라 밖으로 10여리, 그러니까 4km 이상 나와서 받드는 것이 예라는 소리를 추가로 하는데, 뭔 짓거리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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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1개월째 +7 22.06.03 1,581 4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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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8개월째 +7 22.05.30 1,697 52 16쪽
11 일곱달째 +5 22.05.27 1,784 55 14쪽
10 여섯달 하고 일주일 후 +6 22.05.26 1,831 60 11쪽
9 여섯달 후 +3 22.05.26 1,874 59 17쪽
8 넉달 보름 후 +8 22.05.24 1,958 55 22쪽
7 넉달 후 +5 22.05.23 2,089 57 16쪽
6 백일 무렵 +10 22.05.20 2,241 65 19쪽
5 석달이 흐르고 +4 22.05.18 2,321 7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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