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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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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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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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달째

DUMMY

사신이 다치고 모화관이 불탔다는 소식이 청 황실에 전해지는 데는 채 보름이 걸리지 않았다.


숭덕제(청태종, 홍타이지)때 사신이 해를 당하고 나서, 황제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당시 조선 왕 이종(인조)에게 직접 항복을 받아낸 이래 황제가 보낸 칙사가 조선 땅에서 해를 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청 조정도 징벌을 외치거나 군사를 일으키자는 등 열기가 올라야 할 것이 정상이었으나, 조정은 매우 조용했다. 황제가 심각하게 입을 다물고 앞에 놓인 서류들을 뚫어지게 바라만 보고 있던 때문이었다.


현 황제는 청렴하고 검소했으며, 젊은 시절 몸을 단련하고 사격과 궁술에도 매우 능한 사람이었다. 허나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잘못된 자를 등용하는 적이 많았으며, 이십여년 가까이 아편을 피워 온 때문에 젊은 시절의 멋스러운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라 멍청하고 게으른 지배자가 된 지 오래였다.


그런 청 황제는 몇년 전부터 무언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했다. 피우던 아편을 끊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신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식성도 크게 바뀌었다. 식사 때마다 붉은 고추와 풋고추, 고추만두, 홍소육 등 후난 음식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편을 한창 피우던 때의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간 데 없어졌고,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배가 나왔으며 턱도 접히기 시작했다. 기호품이나 식성, 외모가 변한 것도 변한 것이었지만 황제는 생각하는 바도 무언가 달라진 듯, 적극적으로 정무를 보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아편을 금하며 대신 짧은 글이나 어록이 들어간 책을 뿌리기 시작했다. 백성이 아편에 중독되는 것은 그들에게 현재 보이는 희망이 없고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여긴 탓이었다. 아니, 백성이라는 표현 대신 그는 인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개인에 대한 황제의 직접 교육을 강조했다. 황제는 손수 책을 써서 그것을 대량으로 뿌렸고, 적어도 각 가구당 한권씩은 두고 읽게 하였다. 작고 얇은 붉은색 표지를 지닌 그 책은, 소홍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냥 황제의 사상이 담긴 책을 뿌리는 것이었다면, 황명이 떨어지더라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그러나 황제는 약 1년간 2백만명에 가까운 부농들과 중농들을 숙청하고 토지와 산업 시설을 국유화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일정한 시험에 합격한 자들에게는, 국가가 소유한 땅이나 시설에서 일할 권리가 주어졌다.부농과 중농은 소수였고, 이미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농민 반란이 일어날 만큼 위태로웠던 청의 사회 분위기와 아편의 확산으로 인한 어두운 현실에서 무언가 달라지는 모습을 본 대다수의 가난한 농민들은 이런 황제의 움직임에 열광하며 따르기 시작했다. 반면 권력이나 부를 어느 정도 가진 자들은 몇몇이 반란을 시도하다 황제가 친히 머리에 납알을 박아 저잣거리에 포를 떠 걸어둔 이후 눈에 띄지 않게 납작 업드려 있는 것이 현 청의 상황이었다.


사실상 지금 청 황실과 조정은 황제 1인이 독주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거기에다 황제는 의심이 많고 눈치가 빨라지기까지 한 터라, 찍히면 죽는다는 인식이 만연했으니 누구도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그 황제가 조선으로부터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올라온 서류 중, 그림이 그려진 한 장을 특히 뚫어지게 쳐다보다 이야기했다.


“저번에 조선에서 보내어 왔던 이양선에 대한 기록을 가져오라.”


조선에 깔아둔 세작들과 청나라에 줄을 대고 있는 조선 내부 실권자들을 통해 입수했던 홍희근의 장계 내용과 이양선에 대한 보고서를 가져오라 지시한 황제는, 친히 기존 자료와 이번에 얻은 그림을 비교해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역시 나만 온 것이 아니었는가.”


혼잣말을 하던 황제는 신료들에게 다시 물었다.


“저 배의 그림이 실제와 똑같이 그린게 맞는가?, 특히 저 갑판 위 포탑에 그려진 포의 길이나 수효가 실제와 같은지 확인하였는가?”

“분부하신 바 대로 수효와 크기에 특히 신경써서 그린줄로 아뢰옵니다.”

“선원은 정녕 단지 한명뿐인 것도 맞는가?”

“그렇다 하옵니다.”

“혹시 그 배의 선원이 서역 오랑캐처럼 생겼다던가, 스스로를 가리켜 미리견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없었는가?”

“아직은 모르오나, 분부하신 바에 대해 알아보겠사옵니다.”

“빨리 알아보라. 그리고...”


황제는 서류를 펼쳐 한참을 무언가 더 고민하는 듯 했다. 황제의 눈은 배를 그린 그림, 특히 앞쪽에 있는 X63N에서 한참이나 고정되어있었다. 한양에서 일어난 폭동이나 그로 인해 사신이 다친 것 보다, 배 자체에 훨씬 더 불편한 내색을 하는 황제들을 보며, 신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가진 인맥과 돈을 풀어 자세히 내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황제는 요즘 “반동분자는 숙청”이라는 참신한 표현을 써 가며 여럿 목을 날리고 있었으니...


그렇게 신하들이 눈동자만 굴리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그 때, 황제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크게 외쳤다.


“63번....63번....이 그려진 전함! 미주리! 또 미국인가!”


황제는 잠시 이를 갈았다.


“여기까지 따라왔는가!”


그렇게 외치던 황제는 신하들에게 지시했다.


“미국이 조선의 뒤에 있는지 알아보라.”

“미국이라 하시면...?”

“조선이 감히 갑자기 미치지 않고서야 짐을 대리해서 간 칙사를 그 따위로 해할 리 없다. 필시 이것은 어떠한 강국이 조선을 충동질하여 조선과 청 사이에 분쟁을 일으켜 힘을 가늠해보고자 함이 분명하다.”


‘미국이라니? 영국이 아니고?’

‘미국이 그 정도 힘이 있던가?“

’영국은 알겠는데 미국은 어디 있는 나라이지?‘


황제의 급발진에 당황한 신하들은 급히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당장 청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청의 은과 국력을 쭉쭉 빨아먹고 있는 것은 영국이었고, 미국은 아직 청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준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신하들을 보다가 일갈했다.


“말만 늘어놓지 말고, 실천가가 되어라! 글을 너무 많이 읽는 것은 해롭다. 군사를 이끌고 조선 국경에 늘어놓고 나서 말을 해야 빠르게 알아들을 것이다. 힘은 창칼에서 나오는 법, 조선을 압박해 보면 그 뒷 배가 나설 것이다. 어떻게 나오는가 보도록 하자.”


출병이 그 말 한마디로 결정되었다. 물론 직접 침공이 아닌, 국경에서 무력 시위를 통해 조선을 압박하라는것이 황제의 명이었으나 일단 출병을 지시한 이상 말 한마디면 국경을 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우리라.


황제의 명이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흔히 청나라의 군대라고 한다면 황, 남, 백, 홍 등등 8가지 색 깃발을 내세운 팔기와 기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부대 대부분은 보병이었고, 부대의 깃발은 새빨간 바탕에 황색으로 큰 별 하나와 작은 별 네 가지가 그려져 있었으며, 그 옆에는 三 과 八이 역시 황색으로 씌여진 것이었다.


현 황제는 군사 조직으로서의 팔기군을 폐하였다. 전 황제의 치세때 무려 10여년간이나 이어졌던 대반란인 백련교도의 난에서 이미 팔기는 그 쓸모가 다하였음을 만방에 알린 바 있었다. 한때 중국 대륙을 휩쓸고 다니던 팔기군은 청이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후, 군사 조직이라 보다는 폐쇄적인 통치 조직과 귀족 계급 그 중간쯤에 있는 묘한 조직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오랜 평화가 지속되면서 팔기군의 상징과 같은 기병은 하나 둘 사라지고 그 자리에 허울뿐인 보병이 들어오기 일쑤였다.


기병은 전쟁에 나가지 않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을 먹는 병과다. 기병은 숙련된 기수가 필수조건이라 기수 하나를 조련하는데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이 들게 마련이었다. 기병에 필요한 군마는 또 어떠한가. 사람을 훈련시키는 데에도 시간과 비용이 무시무시하게 들어가는 판국이니 말을 훈련시켜 전쟁에서 쓰기 위한 비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주족이 풀밭에서 유목민 생활을 할 때나 정복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말에 투자하는 비용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지고, 만주족 대부분이 유목에서 정착으로 생활환경이 바뀌며 말은 추가 비용이 대량으로 필요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자들의 과시용 사치품정도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자연스레 기병은 쇠퇴하였고, 청 군대에서 기병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나 자질, 전투력 면에서 쇠락해버리고 말았다. 남아있는 몇 안되는 팔기 기병도 이미 과거와는 다른, 특권을 가진 귀족 집단화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 규율을 우습게 여기고, 교만하고 나태한데다 실력은 없는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눈 밖에 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을 일삼던 현 황제가 그것을 두고 볼 리 없었다. 팔기군은 대부분 그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현 위치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반항하는 자는 역시 목이 잘려 창대에 전시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신, 황제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농민 출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군대를 만들었다. 황제에 붉은 마음으로 충성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황제와 인민을 위한 군대, 줄여서 노농적군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 숫자는 3만, 다른 병과 없이 순수 보병으로만 이루어진 군대였으며, 황제가 직접 선발하고 편제를 만든 친위대 성격의 부대였다.


친위대 성격의 부대라고 하기에는 훈련도는 낮고 장비도 열악했으며 조직력도 엉성했지만, 황제의 칙령을 직접 받으며 소홍서로 정신 무장을 한 그들의 사기와 충성도는 매우 높았으며, 농민이나 일꾼 출신들이 대다수인 특성상 체력과 근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들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다섯에 하나정도였고, 시대 특성상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자는 매우 드물었으니 기본 규율은 매우 단순했다.


1. 지휘 없이는 행동하지 않는다.

2. 명령 없이는 어떠한 것도 사사로이 취하지 않는다.

3. 얻은 모든 것은 평등하게 분배한다.


황제가 직접 정한 규율과 황제가 직접 내린 가르침은 그 자체로 법이고 원칙이었다. 황제가 내린 군대가 하지 말아야 할 8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1. 험악하게 말하는 것을 금한다.

2. 불평등한 매매를 금한다.

3. 갚지 못할 것을 빌리는 것을 금한다.

4. 배상하지 못할 손해를 입히는 것을 금한다.

5. 구타와 욕설을 금한다.

6. 농사와 노동의 댓가에 해를 입히는 것을 금한다.

7. 부녀자 희롱을 금한다.

8. 포로 학대를 금한다.


황제가 직접 내린 이러한 가르침을 일컬어 삼기 팔금이라 하였고, 노농적군은 이를 깃발과 상징에 직접 三과 八을 적어 넣었다. 황제 아래 모두 평등한 인민이었기에 직책은 있을지언정 계급도 없었다.


군대는 인민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황제가 노농적군에 내린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군사적 역량이 부족할 때는 적군 주변을 장악하면서 지지를 얻고, 적의 중심을 포위하여 고립시킨 후, 적군의 기세가 줄어들고 자신의 역량이 우월해졌을 때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적군 주변에 영향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보병의 숫자와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숨을 수 있고 흩어지고 모일 수 있는 보병의 기동력을 매우 중시했고, 무기의 성능과 우수한 지휘관보다 병사 개개인의 의지와 인민들의 각성을 더더욱 중시하는 것이 현 황제가 키우는 노농적군의 특징이었다.


팔기군으로 대표되는 기존 군대를 숙청해버리고 계급도 경험도 없는 보병 군대가 어쨌거나 군대의 모습을 갖추고 그럭저럭 돌아갈 수 있게 된 이유에는 저런 황제의 가르침과 대다수 농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며 인민을 수호한다는 명분은, 이제 만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노농적군의 구성원 개개인에게 자긍심과 충성심을 심어주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황제의 명을 받들어 청과 조선 국경으로 이동하는 3만여명에 달하는 보병은, 무사히 의주 근처 압록강 하류까지 이동하여 진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관측하고 봉화를 피우고 파발을 띄워야 할 조선군은, 이제 갓 만들어져 사기만 높고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청국 보병보다 사정이 한참 더 막장이었다. 조선 초부터 심한 차별을 받던 서북 지방은 이십여년 전 있었던 홍경래의 난과 그 전후 처리로 모든 행정, 군사 체계가 붕괴된 이후 아직까지도 전혀 관련 체계가 복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류상 있어야 할 성벽 위 방어병이나 항상 대기중이어야 할 봉화대 병사,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줄 전령, 국경을 순찰해야 할 병사 중 하나라도 빠지면 신호가 전달될 리 없건만, 실상은 그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던 청국군은, 결국 주둔지를 완성하고 몇 번 보병 기동훈련과 도하훈련을 하고 난 이후에도 조선군의 반응이 없자 의아해하며 직접 의주성으로 전령을 보내 사정을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 실상을 알아챈 청 황제는 허탈함과 의아함, 그리고 두려움 약간을 느끼게 되었다.


“이 놈들의 뒷배에 진짜 미국이 있어서 이렇게 방비가 허술한 것인가, 아니면 조선에 망조가 들어 죄다 썩어 문드러진 것인가?”


청 황제는 공식적으로 칙사를 보내 조선 왕실에 직접 묻고, 사적으로는 황제에게 줄을 대고 있는 조선의 유력가들에게 그 의문을 풀기 위한 서신을 보냈다. 그 답변이 올 때까지 황제는 일단 조선 국경에 배치해 둔 병력은 훈련을 계속 돌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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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0 찻잔속풍경
    작성일
    22.05.27 18:08
    No. 1

    공산당원인듯한데...
    기본적으로 역사교육을 안받나요??
    이야기의 진행을 봐선 꽤 고위직이었던것 같은데??
    문화혁명으로 문화유산을 말아먹었어도 기본적인 역사 교육은 실시했을것 같은데??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4 혈압강림
    작성일
    22.05.27 19:22
    No. 2

    댓글분 문화혁명을 너무 무시하시네요ㅋㅋㅋ진짜 현대중국은 문화혁명 전의 역사는 삼국지외에는 모른다고 보면됨ㅋㅋ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0 찻잔속풍경
    작성일
    22.05.28 23:10
    No. 3

    /혈압강림
    그런 말살교육은 지배해야하는 일반인이나 해당하는거고....
    고위직으로 가면 역사인식 오류로 인해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은 교육을 가문이나 정부차원에서 할수밖에 없을것 같은데요??
    작중인물이 어느정도의 고위층인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수준까진 실제 역사교육은 받았을 확율이 높아 보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2.05.30 00:58
    No. 4

    알씀하신 바 대로 역사 교육이야 받은적 있었으나..행보를 보면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써먹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보입니다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75 ko**
    작성일
    22.07.21 20:10
    No. 5

    역사를 제대로 아는것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건 전혀 다른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사상적으로 왜곡되면 역사적 사실을 안다고 해도 그 해석이나 대처는 전혀 다르게 나옵니다
    흔히 역사는 미래를 보는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치인 중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거나 아는 사람은 극히 드믄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찬성: 5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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