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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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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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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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과의 합류

DUMMY

기르불은 호기롭게 굴뚝 끝까지 솟구쳤다가, 바깥으로 나오고 나서야 오늘은 강한 비가 내리는 날씨였음을 떠올려냈다.


그는 도로 굴뚝 안으로 들어가 안쪽의 그을음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굴뚝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한구석에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발견했지만, 이미 비에 폭삭 젖어 썩 좋은 땔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굴뚝 아래쪽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기르불은 그 연기에 몸이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른 굴뚝 입구로 몸을 옮겼다.

연기는 다름아닌 순수한 석유를 태워서 내는 연기였다. 만칼리 인간들이 기르불을 압박하기 위해 벽난로에 석유를 뿌려서 불을 붙인 것이었다.


굴뚝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윽고 다른 굴뚝으로도 은은한 석유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르불은 저 젖은 쓰레기더미를 태우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때 빗소리 사이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제 옷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기르불.”


기르불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그쪽으로 날아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지원이었다.


“지원아! 너 왜 여기에 있어? 밑으로 내려갔잖아?”


타카슬을 데리러 가기 위하여 해변가로 갔다던 지원은 나실 호텔의 옥상에서 검은 망토를 쓴 채 기르불을 위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옥상까지 올라온 거지? 그 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지원의 등 뒤에서 루니가 빼곰 튀어나왔다.


<그건 이쪽에서 물어야 할 말인데. 찬호는 어쩌고 왜 너 혼자 여기 있냐?>

“루니? 네가 염력으로 지원을 여기까지 옮겨줬구나······. 넌 서로만으로 가지 않았어?”

<멍청한 츠카가 영웅 놀이한답시고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렸어. 너희를 구하러 가겠다던데, 츠카 못 봤어?>


기르불은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들은 지원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좋습니다. 그럼 찬호와 다른 분들이 살아남았는지는 아는게 없다는 말이로군요. 일단 루니를 5층으로 보내서 확인을 해봅시다.”


만칼리 군인들이 12층까지 진입했다는 건 기르불에게 있어 5층에 있는 인간들이 다 죽었다는 뜻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원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지시에 루니는 옥상에서 밑으로 뛰어내려 곧바로 5층 창문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이 생겨도 루니는 인간들을 죽이고 날아서 다시 되돌아올 수 있으니 별 걱정은 되지 않았다.


루니가 없는 동안, 지원은 기르불과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찬호가 죽었다면 어떡할거야?”

“찬호가 죽었든, 살았든, 저희에게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기르불,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


기르불은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빗소리 사이로는 사이렌 소리, 총소리만 알음알음 들려왔다.


“빗소리, 사이렌 소리, 그리고 총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바로 그 총소리에 집중해보십시오. 총소리가 너무 가깝지 않습니까?”


기르불은 다시금 청각을 곤두세웠다. 마그마 속에서 살았을 때에는 주변의 미세한 진동조차도 빠르게 감지해내고는 했다. 그때의 감각을 되새기니, 쉽게 지원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음, 그러네. 혹시 만칼리 인간들이 자치군들을 다 쓸어버리고 벌써 최상층까지 올라온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스위트룸 앞에서 만칼리군과 교전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인간들이 총을 가지고 싸울 때에는 보통 총알 대부분을 탄막을 형성하기 위해 빠르게 소모해버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총소리는 교전을 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간헐적입니다.”


기르불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순간 정말 기분나쁜 상상이 그의 심지를 스쳐지나가버렸다.


기르불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알아챈 지원이 뭔가 짚이는 게 있냐며 그를 캐물었다. 기르불은 마지못해하며 대답했다.


“혹시······고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들은 서로에게 신체적이나 심리적인 고통을 주는 걸 즐긴다고 들었어. 물론 네가 그런 인간이라는 건 아니야! 그건 내가 잘 알지.”

“만일 저라면 총으로 고문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총알 한 발 한 발이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고문치고는 너무 오래, 꾸준히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원은 기르불을 옥상의 끄트머리로 데려가 터리놀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곳곳에서 화재와 총소리가 일어나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저는 터리놀 시내를 가로지르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습니다. 제아무리 만칼리군의 수가 많다고는 해도, 이곳은 터리놀의 한가운데입니다. 하지만 터리놀군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지요. 어느 한 곳에도 터리놀군이 집결해있지 않았습니다.”

“본론만 말해줘.”

“강대한 터리놀군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지형적 이점을 완전히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지형? 여기에 지형이랄게 있나? 있어봤자 나실 호텔이 작은 산······아니 언덕 위에 있을 뿐이잖아.”

“바로 그겁니다. 놈들은 어젯밤부터 나실 호텔의 최상층을 점령하여 곳곳에 저격과 난사를 가하고 있었던 겁니다.”


기르불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최상층? 거기는 우리가 청소한 다음에 죽 비어있었잖아. 전용계단은 막아놨고 엘레베이터는 끊어놨고······. 인간들이 창문을 통해서 올라가려면 총이나 그런 걸 옮길 수는 없을 텐데?”

“저희가 묵었던 스위트룸을 말하시는 거라면 그곳은 최상층이 아닙니다.”


어리둥절해하는 기르불에게 지원은 인간에게는 자신과 남을 분리하고자 하는 선민의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트룸이 좋기는 했지만, 그곳도 결국 충분한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평범한 방들 중 하나였습니다. 오랜 기간 나실 호텔, 그리고 터리놀과 우호 관계를 유지한 고위 인사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초호화 비밀 객실이 있을 겁니다.”

“그 비밀 객실이 어디 있는데?”

“스위트룸이 한 층을 방 두 개가 공유했으니, 아마 그 객실은 한 층 전체를 점유했을 겁니다. 초호화니까 당연히 최상층에 있겠지요. 바로 이 밑입니다.”


지원은 발로 옥상 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기르불은 충격에 빠졌다.


“왜······왜?”

“왜라니요? 무엇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겁니까?”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거야? 잠깐만······나는 인간들에게 ‘사회적 욕구’가 있다고 들었어.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인간들은 특별 대우를 받되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고 자신을 부러워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저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개체마다 다른 법이니 그런가보다 해주십시오.”


곧 루니가 돌아왔다. 그는 피를 한바탕 뒤집어쓴 채였다.


<감지되는 뇌파가 없었어. 다 죽었더라고. 시체는······못 찾았어. 방해하는 놈들이 있어서.>

“기르불, 포탄이 맞은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찬호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합시다. 하지만 이 호텔 안에서 구조 활동을 벌일 필요는 없어졌으니 저희는 저희가 할 일을 합시다. 이 나실 호텔이 점거된 상태라면 저격의 위험 때문에 기차역도 대사관도 항구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할 겁니다. 터리놀군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저희 역시 한시가 급하니 저희가 처리하는 게 낫겠지요.”


지원은 기르불을 옥상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수많은 출입구 중 하나에 놔두었다. 그곳에는 빗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옥상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기르불은 왜 그들이 옥상을 점령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실 호텔의 서북쪽으로 600m 떨어진 곳에는 화령탑이 우뚝 서 있었다. 나실 호텔이 아무리 높아봤자 지사리들에게 협조를 구할 수 있는 화령탑보다는 낮기 때문에 옥상에 있다가는 화령탑 쪽에서 저격을 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오는 경로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방어선을 구축하기 번거로웠을 것이다.

또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는 화기를 관리하기도 어렵다.


지원은 어디선가 꺼낸 밧줄을 굴뚝 중 하나에 묶고 있었다.


기르불이 옆에서 자신을 지키던 루니에게 말했다.


“쟤는 정말로 찬호가 살아있는 거라고 믿는 건가? 난 걔가 거기서 살아남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슬퍼하거나 상심해도 바뀌는 게 없으니까. 참고 있는 거야. 지원이니까 이 정도지 다른 인간들이었으면 지금쯤 내 텔레파시를 통해서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을 걸.>

“자치군 인간들을 지키겠답시고 5층에만 내내 있었어. 생각해보니 그건 책임감이 아니라, 그냥 이곳저곳 바쁘게 움직이는게 귀찮아서 그랬던 거였어.”

<글쎄. 너는 군인이야, 기르불. 군인은 상관이 내린 명령 말고는 다 귀찮아해야 돼. 찬호가 따로 뭐라고 하지 않았다면 괜히 뭔가를 하지 않는게 맞아.>


지원은 자기 혼자서 대여섯개의 밧줄들을 굴뚝들에 계속 묶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밧줄들을 전부 사용한 뒤, 그녀는 기르불과 루니에게 다가왔다.


검은 망토 위로 빗물이 뚝뚝 흐르는 모습이 정말 음침해보여서, 누가 보면 엄청난 음모를 꾸미는 만칼리군으로 오해할 것 같았다.


“지금부터 최상층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루니는 미리 말했듯이 제 움직임을 보조하고 창문을 깨뜨려주십시오. 기르불은 늘 그랬듯 주 화력과 정찰을 담당하고, 저는 지휘와 보조 화력입니다. 얼마 안 걸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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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의 이름으로 22.09.15 26 1 9쪽
61 저격 22.09.10 36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8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6 1 10쪽
58 단둘이 22.09.02 36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28 1 9쪽
» 대장과의 합류 22.08.27 28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6 1 11쪽
54 함필규 22.08.21 22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25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7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5 1 10쪽
49 불안 22.08.06 25 2 11쪽
48 인질들 22.08.05 23 1 9쪽
47 몰살 22.08.03 20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5 1 10쪽
45 블러핑 22.07.28 33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9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30 1 9쪽
42 모함 +2 22.07.21 34 1 11쪽
41 감금 +1 22.07.09 44 2 13쪽
40 진술 +2 22.07.06 42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34 2 9쪽
38 패륜 +2 22.07.03 3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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