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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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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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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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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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윗사람과 거리는 적당한 게 좋다

DUMMY

245화 윗사람과 거리는 적당한 게 좋다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을 기대했다.


그 기대어린 눈빛에 예부 승정 하다나라 만다르한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친왕께서 조금 한적하니 기분 전환이 하고 싶으신 모양이군.’


보국친왕이라는 거창하고 높은 직함과 달리 예부슈는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없는 정도가 전임자보다 더하니, 전과 달리 이번에는 대학사 범문정이 주도하여 이런저런 사무를 보기에 적당한 이들 위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팔기라 불리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나이가 차서 슬슬 은퇴를 고심해야 할 이들이 열댓 명 정도 있을 따름이다.


사정이 이러니 군사적인 일은 애초에 해서도 안 되지만 할 여건도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화살을 쏘고 말을 달리며 심신을 단련하는 일이 전부다.


그렇다고 실무로 뭔가를 하자니 예부슈에게 그런 걸 기대하고 조선에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아비인 홍타이지를 포함해 아직 십대 초중반인 예부슈에게 사람들이 품은 기대는 그저 평안 무사하게 있기를 바라는 장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저 자리만 지키고 건강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당사자가 그 일을 받아들였다고 하나 그저 하루하루 보내기만 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하물며 무언가 말이나 해봄 직한 이들은 모두 저보다 나이가 배는 많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러니 그간 예부슈가 그간 얌전히 있었던 것만으로 칭찬하기 마땅했다.


‘뭐, 나쁘지 않지.’


그리고 예부슈가 내세운 말이 아주 틀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청나라가 받지 못한 대우를 일본이 받는다니, 그건 영 입맛이 개운치 않은 일이었다.


“허면 조선왕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아니, 이런 일을 어찌 사람을 보내서 이르고 합니까? 내가 직접 가서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요.”


슬쩍 말을 내어 던지니 예부슈가 덥썩 물었다.


그에 만다르한은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과연 그렇습니다. 외교에 있어서 절차를 변경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분명 이 일은 전하께서 나서시는 것이 맞겠습니다.”

“흠흠, 그렇지요? 그럼 바로 출발합시다.”

“죄송하지만 그것은 멈추어주십쇼.”

“······.”


신이 난 얼굴로 바로 가려는 예부슈를 제지하니 그의 얼굴에 뚱하게 변했다.


그 얼굴을 보고 만다르한은 손자를 보는 거 같은 얼굴로 인자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번 일이 중요함도 그렇지만 친왕께서 가시는 일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 절차는 그렇습니다. 허니 미리 사람을 보내어 방문함을 알리고 그 후에 가시는 것이 예의에 맞습니다.”

“······.”


옳은 말로 알렸건만 예부슈의 얼굴은 여전하니 만다르한은 그 기분을 풀어주듯 말을 덧붙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사람을 보내면 저들이 내일이라도 친왕 전하 맞는 일을 준비하여 청할 것입니다.”

“크흠, 대뜸 찾아가는 건 실례지요. 그러면 그 일은 부탁합니다.”


예부슈는 그제야 얼굴을 풀고 몸을 돌렸다.


바삐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를 보며 만다르한은 가만히 보다가 몸을 돌렸다.


말은 간단했지만 하고자 하면 준비할 것이 사람 보내는 일을 포함해서 적지 않았다.


“서신 작성은 대학사가 붙여준 한인들에게 의지하는 게 빠르겠지. 사자는 팔기 중 하나로 하고······가만.”


할 일을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만다르한은 문득 의아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전하께서는 어디서 이 일을 들으신 거지?”


아직 만다르한도 모르는 일인데 예부슈는 알았다.


가만히 생각하던 만다르한은 이내에 그 출처를 짐작하고는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허? 그자, 생각보다 재주가 좋은데?”


만약 그 재주 좋음으로 인해 곤욕을 겪었다면 갚아줄 생각으로 마음에 담아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일, 곤욕이라고 하기에는 대단치 않으니 갚아줄 생각보다는 한번 써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했다.


“대학사가 보낸 사람은 과연 하나 남김없이 대단하구나.”


감탄하며 걸음을 옮기던 만다르한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서신을 하나 더 써야 할 거 같다고 말이다.



***



“친왕 전하,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상청이냐? 들어와라.”


안쪽에서 나오는 허락에 상인 강상청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르면 내일 한양에 갈 거다.”


예부슈가 이르는 말에 강상청은 자리도 잊고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껌벅거렸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단순하며 간단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자라면 강상청은 예전에 명나라에서 그 몸을 빼기 전에,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처음 청나라에 발을 디뎠을 때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이해하되 의도는 알기 어려우니 강상청은 쉬이 입을 열기 어려웠다.


누군가 앞이라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에 강상청은 재빨리 눈알을 굴렸으나 다행스럽게도 그 누군가와 와 예부슈는 달랐다.


“그래서 말인데, 말 좀 해봐라.”

“친왕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인에게 무슨 말을 바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답하기는. 척하면 척이 아니냐.”


어떠한 단서도 주지 않고 답답함을 논하니 강상청은 생각 같아서는 그럼 니가 한번 해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위아래가 이만큼 확연할 수 없는 사이니 강상청은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소인이 눈치가 없습니다.”

“그래보인다.”


사람 속을 긁는 말을 입에 담은 예부슈는 선심 쓰듯 말을 꺼냈다.


“한양에서 볼 만한 거나 만나서 좀 이야기해볼 사람, 재미 위주로 논해봐.”


드디어 그 의도를 알았으나 강상청이 느끼기에는 오십보백보라,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젠장, 대학사보다야 낫다만 이거 너무하네.’


강상청은 자신이 철원에 있는 누구보다 조선을 돌아다니고 살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팔도를 방방곡곡 누빈다는 말이 아니라 한정된 장소나마 다 가본다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역시 한양은 가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심양에서 철원까지 쭉 이어진 길과 그 주변을 본 것이 전부다.


다만 상인답게 붙임성이 있어서 조선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가끔 전에 들은 것처럼 일본 사람들이 한양에 머물기로 하였다는 둥 제법 요긴한 소식을 듣긴 하나 그게 다다.


그럼에도 아는 것은 그가 제일이니 아무래도 예부슈에게 강상청은 이미 한양통, 아니 조선통이 된 모양이었다.


‘미치겠네.’


그렇게 아는 건 상관없으나 이렇게 직접 묻고자 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멀리 있어서 드러나지 않을 허세와 거짓이라면 방편이라 칭하나 당장에 드러날 허세와 방편은 웃음거리요 제 무덤을 파는 일이다.


‘호감을 너무 샀나? 아니,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안 했는데?’


그저 잘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 때마다 적당히 소문이며 맛 좋은 먹거리를 얼마간 바치길 꾸준히 했을 뿐이건만 이런 신용이라니, 강상청은 조금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 갖지 말고 말해봐라.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조선왕도 몇 명이 구경 좀 하겠다고 하면 거절하진 않겠지.”


여러모로 자기가 편할 대로 생각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 말입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꺼낸 강상청은 예부슈가 한껏 기대하는 시선을 보내니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의 머리는 간절함을 배반하지 않고 한가지 쓸만한 말을 흘려주니, 강상청은 화급히 말을 꺼냈다.


“전하, 한양이라고 한들 조선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 아닙니까.”

“그렇겠지.”

“그런 곳에서 볼 만한 일이라니, 조선왕이 거하는 궁궐을 제하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뭔가 흥미로운 것을 찾으시려다가는 자칫 저들이 분노할지도 모릅니다.”

“왜?”


진짜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지만 그건 괜찮았다.


예부슈가 스스로 떠올리는 것보다야 강상청 자신이 말하는 게 앞으로 할 말에 설득력을 한층 더해줄 테니 말이다.


“지금은 좋게 지내고 있으나 이 나라와 대청은 전쟁이 끝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긴 것은 대청이니 진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있다면 저들이 그 마음에 불만을 품을 것입니다.”

“흐음, 그건 곤란하지.”


느긋하여 한양 구경이나 생각하고 있는 예부슈라고 하나 머저리는 아니다.


당장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전장에 나가 그 지위를 다질 생각을 품었다.


가령 팔기를 이끌고 장성을 넘는다거나 혹은 잘 대해준 형 숙친왕 호오거의 원수를 갚아 아비인 홍타이지에게 상을 받는 형식으로 말이다.


이는 심양 황궁 기류가 이상함을 느끼고 품은 생각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보국친왕 자리며 조선으로 오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군공으로 얻은 지위가 아님은 살짝 아쉽고, 형 호오거를 위해 무엇이든 하나 정도는 더 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는 내려놓았다.


조선으로 가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쉽게 그의 지위를 다지는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만하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당장 미래에는 또 어떨지 모르나 이만하면 청나라가 망하지 않은 한 그는 천수를 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기껏 얻은 자리를 고작 유람 따위로 날릴 수는 없었다.


“끄응, 그렇다면 진짜 궁궐만 보고 와야 하나?”

“한양이 아니라 다른 곳을 구경하심은 어떠십니까?”

“다른 곳? 어디?”

“그 일본인들, 그리고 저 멀리 화란이며 불란국 막가외 상인들이 오가는 제물포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색목인이 있다고 합니다.”


색목인이라는 말에 예부슈는 흥미가 동하는 걸 느꼈다.


그런 사람이 있음은 들었으나 그는 아직 연이 닿지 않아 그러한 이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허면 조선왕께 그것을 청해야겠다.”

“헤헤, 과연 보국친왕 전하께서는 영명하십니다.”


자신이 한 말이건만 예부슈가 알아서 정한 일이라는 듯이 말한 강상청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나갈 생각으로 고개를 숙였다.


“허면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잠깐만.”


그러나 그 시도는 허무하게 무산되니 강상청은 속으로 이를 악물고 멈췄다.


“선물이 좀 필요해.”

“조선왕께 드릴 것을 구하십니까?”

“그것도 있고, 제물포에 가면 일본인들이니 화, 화······.”

“화란과 불란국입니다.”

“그래, 그놈들. 내가 친왕 체면이 있지, 어떻게 빈손으로 가서 말만 묻고 오냐?”


곤란하지만 또 딴에는 맞는 말이라 강상청은 제가 할 일을 알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조선왕께는 아마 제가 준비하는 것보다 이곳 철원에서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어찌 일개 상인과 청나라 조정을 비교하겠습니까.”

“그렇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가벼이 수긍하는 말을 들으니 강상청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어쩔 도리는 없으니 강상청은 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곳이야 초피 가죽 모자나 목도리라도 하나 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날이 안 추운데?”

“그런 거야 금방 변하지요. 그리고 초피 가죽은 자체로 귀하지 않습니까.”

“나쁘지 않구나. 마침 이곳에 여분이 조금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 말이지.”

‘휴, 이제 끝이구나.’


이제 끝났다, 그렇게 여기며 강상청은 이번에야말로 물러나려고 했다.


허나 그가 다시 물러나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예부슈가 다시 입을 여니, 그 열린 입에서는 실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나왔다.


“아, 그래. 이국적인 것들이라면 심양에 선물 삼아 보내기도 좋겠다. 상청아, 너도 제물포에 따라와라.”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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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272화 술은 흐려진 이성과 넘치는 감성의 친구다 +1 23.07.04 348 18 13쪽
272 271화 시기에 맞지 않는 초청 +1 23.07.03 350 24 13쪽
271 270화 더 잘 싸울 수 있는 장소 +2 23.07.02 369 22 14쪽
270 269화 우선할 사람 +2 23.07.01 357 19 11쪽
269 268화 부족한 숫자 +5 23.06.30 380 26 13쪽
268 267화 계승과 충성 +1 23.06.29 378 24 15쪽
267 266화 다음가는 자 +4 23.06.28 363 27 14쪽
266 265화 하늘의 부름은 피할 수 없다 +1 23.06.27 370 18 13쪽
265 264화 사랑을 크기로 표현하면 23.06.26 362 22 12쪽
264 263화 알맞은 일 +2 23.06.25 358 20 11쪽
263 262화 소식을 전하는 순서 +4 23.06.24 387 22 15쪽
262 261화 두 전령 +2 23.06.23 375 22 13쪽
261 260화 보따리 뺏을 궁리 +5 23.06.22 361 24 17쪽
260 259화 쫓고 쫓기고 +1 23.06.21 359 20 12쪽
259 258화 누구도 바라지 않은 결과 +3 23.06.20 371 22 13쪽
258 257화 이기기 위한 손실 +4 23.06.19 390 23 16쪽
257 256화 정해진 선택 +1 23.06.18 353 22 13쪽
256 255화 죽음의 무게는 같지 않다 +2 23.06.17 361 21 14쪽
255 254화 달콤한 제안 +1 23.06.16 367 18 12쪽
254 253화 보이는 것과 의도는 다르기 십상이다 +2 23.06.15 364 20 13쪽
253 252화 도이 +2 23.06.14 373 24 12쪽
252 251화 거짓은 항상 커진다 +2 23.06.13 367 18 12쪽
251 250화 은밀한 일 +2 23.06.12 362 19 12쪽
250 249화 오래전에 했던 일 23.06.11 356 19 12쪽
249 248화 다가온 구실 +1 23.06.10 355 16 13쪽
248 247화 바다를 향한다 +3 23.06.09 383 19 11쪽
247 246화 소년의 마음은 +3 23.06.08 377 24 13쪽
» 245화 윗사람과 거리는 적당한 게 좋다 +2 23.06.07 361 24 12쪽
245 244화 어린 친왕 +2 23.06.06 405 21 12쪽
244 243화 오고 감은 같아야 한다 +4 23.06.05 383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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