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색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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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2.11.26 23:54
최근연재일 :
2012.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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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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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래(3)

DUMMY

"뭐라고?"

라냐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인지, 반문하는 현수의 목소리는 한층 날카로워져 있었다. 격정을 품은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저와 거래한 뒤, 제 거래자라는 걸 뱀파이어들에게 알리세요. 그러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에요."

"……."

"당신의 어머니로 있었던 여신이 살해당한 이상, 당신이 여신의 조각이라는 건 라비스라면 모두 알고 있어요. 뱀파이어도 그렇고요. 홀로 있으면 위험해요."

현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최대한 냉정해지려 애썼다. 열기 서린 한숨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라냐는 강하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신 이상 나 혼자 사는 것도 큰 문제고……. 라냐가 제안하는 걸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겠지. 아르비스가 나중에라도 다시 날 찾아올 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현수의 표정이 다소 굳었다.

"애당초 아르비스를 죽였으면 상황이 나았을 텐데."

현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차갑고 날선 목소리였다. 아차 싶어 라냐의 안색을 살피자,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제가 몰라서 죽이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나요?"

여전히 예의를 차렸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힘이 들어간 목소리는 그녀가 화가 났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순수하기까지 한 그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현수는 괜스레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돼. 그럼 설명을 해 봐! 왜 안 죽인 거야? 아르비스까지 죽였으면 후환이 없었을 거야. 나도 좀 더 안심할 수 있고, 너도 쓸데없이 힘 안 빼도 됐잖아!"

막말에 가까운 언사임을 스스로도 알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라냐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좋아요. 설명이 필요해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라냐가 벌떡 일어나 뒤돌아섰다. 작은 등이 그의 눈앞을 메웠다.

"해가 지면 다시 오겠어요. 그 때 설명하죠."

"야!"

현수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라냐는 거침없이 걸어갔다. 현수가 일어나서 쫓아갔지만 라냐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 정말!"

짜증과 울분이 치솟은 나머지 현수는 현관문을 발로 거세게 걷어찼다.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어쩌다가 이 따위 일에!"

고함이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

-전화왔어요~

휴대폰이 큰 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분을 삭히며 핸드폰을 집어들고 보니, 화면에 찍힌 건 다름 아닌 담임 선생의 이름이었다.

'휴교는 며칠 더 하지 않았나?'

그의 기억으로 휴교는 3일 동안이었다. 전화를 바로 받으려던 현수의 손이 멈칫했다. 뱀파이어에 관한 건 일반인들도 알고 있지만, 라비스와 여신, 여신의 조각에 관한 정보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에 대해 물어보면 어쩌나, 하고 한참 동안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현수니?"

"아, 네.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에 다소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었다. 조금쯤은 원래 알고 있던 세계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이 아까 뉴스를 봤는데 말야. 그쪽 동네에서 일이 크게 벌어진 것 같거든."

젊은 이 여선생은 세심한 편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학생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이런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에 마음을 쉽사리 가라앉히지 못했을 터였다.

'아마 다른 애들한테도 전화하셨겠지.'

담임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상, 무조건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싫지도 않은 현수였다.

"어디 다치진 않았니?"

따뜻한 목소리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야 할 터였다.

"저, 사실은…… 아빠…께서… 그만……."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펑펑 울어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 그렇구나."

여선생도 할 말이 없었는지,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조용했다. 조금 뒤, 현수가 그래도 학교는 나갈거라고 예의상 이야기하려는데 저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장례는 어떻게 치룰지 생각했니?"

불타오르던 시신이 떠올랐다.

"화장… 하려고요. 친척분들이 도와주신댔어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화장한 건 맞는 말이었지만.

"다행이네. 그래도 도와주실 분들이 계신다니…… 오늘 저녁에 시간 되니? 선생님이 저녁 한 끼라도 좀 사주려고 하는데……."

해가 지면 다시 오곘다는 라냐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너무 늦지만 않으면 돼요."

"그래, 그럼 6시에 학교로 나올 수 있겠니? 선생님 차로 데려다 줄게."

못 나갈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럴게요."

전화를 끊은 뒤, 현수는 방으로 돌아와 메모장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이미 내용은 머릿속에 모두 들어와 있었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어제 있었던 일의 경과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과 뱀파이어, 라비스의 관계도 이제는 헷갈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가 의문인 것은 하나였다.

'라냐……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유도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단 말야. 왜지.'

뭔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찜찜했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답답한 기분에 씻지도 않고 의자에 기댄 채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덧, 6시가 가까워졌다.




대충 준비하고 학교에 다다르자마자, 검은 색의 아담한 승용차가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부드럽게 내려가더니 익숙한 여선생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서 타. 너 말고 다른 애들도 있어."

"네?"

반신반의하며 뒷문을 열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여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친하진 않았지만 얼굴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수지네.'

중키에 하나로 묶은 머리, 그리고 옅은 화장기가 보이는 평범하고 동그란 얼굴이 그를 마주보았다.

"안녕."

"어, 안녕."

이수지는 교복 차림이었는데, 꾸깃꾸깃 구겨진 것이 아무래도 어제부터 옷을 갈아입지 못한 것 같았다.

문을 닫자마자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거에요?"

"서현 쪽에. 세 명인가? 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아아……."

서현이라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가까운 곳이었다. 할 이야기가 없어지자 현수의 시선은 자연히 이수지에게로 향했다.

화장기로 감추려고 애썼지만 퀭한 안색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손동작이었는데, 계속해서 양 소매를 붙잡고 있는 것이 영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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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거래 12.11.29 7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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