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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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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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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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연공

DUMMY

낙담은 길지 않았다.

늦은 오후, 백연은 홀로 앉아 고민에 잠겨 있었다.

식사도 거른 참이었다.


본디 오후에는 신웅이 검법을 가르친다 들었는데, 오늘은 그가 바쁜 일이 있다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백연은 신유에게 부탁해 개인 수련장의 이용 허락을 맡았다.

문파에 들어온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건만. 과할 정도로 그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신유였다.


“운연공.”


소리내어 중얼거리자 공기가 화답하듯 옅게 흔들렸다.


확실히, 이상했다.


‘구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 차례나 확인했다.

제대로 완성된 심법이라는 뜻이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구결이 아니었다면, 심법을 운용하는 즉시 주화입마가 들었을 테니.

소주천을 제대로 마치고 단전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운연공은 분명 제 역할을 다했다.

헌데, 이 터무니없는 축기량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걸 갖다 버릴수도 없고.”


차라리 엉망인 심법이었다면, 다른 심법을 새로이 창안하기라도 했을테다.

그럴 수도 없는 문제였다.


“젠장......”


한동안 벽을 노려보던 백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려면 운연공의 공능을 속속들이 확인해야 했다.

다시금 가부좌를 틀고 앉은 백연이 눈을 감았다.


“후우.”


날숨과 함께 운연공의 구결을 떠올린다.

아침에 이은 두번째 운공이었다.

연속해서 운공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운공의 시작과 동시에, 해일처럼 몰아치는 자연지기.

의식 아래에서 기의 태풍을 마주한 백연이 이를 꽉 깨물었다.


‘천천히 하나씩 한다.’


이번 운공의 목적은 축기가 아니다.

기의 흐름을 보고 운연공의 공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어째서 이렇게 축기량이 적은지 확인하는 것.


마음을 다잡은 백연의 의식이 운연공을 하나 하나 낱낱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



“기재(奇才)입니다.”


운결은 시선을 들어 눈 앞에 앉은 신유를 바라보았다.

침착한 듯 앉아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채 숨기지 못한 흥분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첫 운공입니다. 첫 운공에 주변의 모든 자연지기가 그 아이의 호흡을 따라 맥동하더군요. 처음 봤습니다. 그런 광경은.”

“......백연을 말하는 것이냐?”

“예. 하잘것 없는 제 안법 성취로도 느껴졌습니다. 그 아이는 분명, 뛰어난 기재입니다.”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듯 주먹을 꽉 움켜쥔 신유의 모습에 운결이 수염을 쓸었다.


“너무 속단하는 것이 아닌가 저어되는구나.”

“속단이라뇨? 장문인.”


보기 드물게 단호한 목소리였다.

평시 이런 성정이 아닌 신유이다. 매사 침착한 그가 이리 흥분할 정도라니.

어떤 일이 있었기에.


“비록 제 성취가 미욱하나, 귀가 있으니 풍문은 들을 수 있습니다.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후기지수들의 소식은 자주 접하지요.”

“허허.”

“산동의 뇌룡. 약관에 이르기도 전에 연환창식의 전 초식을 깨우쳤다지요. 화산의 검룡은 열댓의 나이에 매화를 피워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조차 첫 호흡에 자연지기를 자신의 흐름에 가두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운결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그 아이는 곤륜파의 홍복이 될지 모릅니다.”

“홍복이라......”


운결이 생각에 잠겨들었다.


신유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분명, 재능이 있는 아이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작금의 곤륜파는 그러한 아이를 키워낼 스승도, 여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홀로 일어서 지고한 경지에 닿는 무인이 없는것은 아니다.

허나 그런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한명씩 등장하고, 그때마다 무림을 뒤흔들어 놓았다.

천고의 자질을 지닌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들. 문파를 일궈낸 개파조사들과 무맥의 뿌리를 만든 대종사들.


그러한 경지에 닿을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곤륜의 품에 안겨 있으면 날개를 다 펼치지 못하리라.


“우선은 잘 지켜보거라.”

“예.”

“백연 그 아이가 정말로 재능이 있다 하면 내 어떻게든 힘을 써볼테니.”

“감사합니다.”


신유가 고개를 숙였다.


“그거면 된 것이냐.”

“충분합니다.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가르쳐 보겠습니다.”

“알겠다. 나가 보거라.”

“예, 그럼.”


신유가 자리를 뜨고 적막이 드리웠다.

운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운연공이라.”


비급을 사고 팔아치우는 만금장조차 탐내지 않은 심법이다.

어릴적 곤륜에 들어와 이것을 배우고 난 후, 이런 심법을 문파의 기초공으로 삼은 선대들을 원망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수십년이 넘게 꾸준히 내공을 쌓아도 타 문파의 십분지 일조차 따라가지 못하니.


그럼에도 폐허가 된 곤륜에서 거의 유일하게 과거의 무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볼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어렵구나.”


중얼거린 운결이 몸을 일으켰다.

그간 수백번도 넘게 봐온 운연공의 비급을 한번 더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그가 선대들께서 숨겨놓은 것을 놓치고 있던 것이 아닐까.


막연한 희망을 품고 일어난 운결이 걸음을 옮겼다.



※※※



“하아, 하.”


새어나오는 숨결에서 비릿한 향이 느껴진다.

발치를 따라서는 붉은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위험했어.’


세 번이나 연속해서 운공을 끝마치고 보니 벌어져 있는 일이다.

입과 코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피를 대충 닦은 백연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느새 창밖은 어두워진지 오래였다.

그러고 보니 해시 초(亥時:오후 9시)까지는 운향관으로 돌아가야 했던가.

이미 그 시간은 훌쩍 넘겨버린 듯 했다.


‘신웅한테 한소리 들으려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 그보다 백배는 중요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었으니까.


“후.”


어디선가 주워온 뭉툭한 나뭇가지를 들어올린 백연이 손끝에 기를 집중했다.

미약하게나마 쌓인 내력이 일순 모여들며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낸다.

순식간에 나뭇가지 끝이 반쯤 타들어갔다.


검귀 시절 익혀둔 잡기중 하나였다.

삼매진화(三昧眞火) 같은 고절한 무공으로 불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짧은 시간 열을 일으킬 뿐인 기술이었지만 매우 유용했다.


나뭇가지를 들고 바닥에 엎드린 백연이 바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탄 자국이 낡은 나무 바닥에 그어지며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움직이기를 한참, 마침내 백연이 나뭇가지를 내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대충 이정도인가.”


백연의 눈이 천천히 수련장 내부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 마다 목탄 자국으로 이루어진 글씨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전부 백연이 써내려간 것이다.


세 번 연속의 운공.


그 속에서 백연은 운연공의 구결을 낱낱이 분해했다.

순서가 거꾸로 된 일이었다.

구결로 인도되는 기의 흐름을 역산해 구결 자체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다시 정리해 풀어쓴다.


그렇게 수련장의 벽과 바닥은 비급의 낱장이 되었다.

달리 부르자면 운연공의 해석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백연은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삼류 심법이 아니었네.”


여러번의 운공 끝에 파헤친 운연공의 공능은, 그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무한한 잠재력이라 했지.’


허언이 아니었을 줄이야.


운연공 구결의 요체는 간단했다.


“천변만화(千變萬化)라.”


모든 것이 끝없이 변화해간다.

즉 심법이 지닌 방향성에 제한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였군.’


운연공으로 받아들인 내력은 유달리 자연지기에 가까웠다.

본디 심법은 어떤 식으로던 자연지기를 정제해 심법의 요체에 맞는 성질로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무당의 심법으로 쌓은 내력이 음양의 성질을 띄는 이유이며, 화산의 심법이 고강한 경지에 달하면 노을을 피워내는 이유이다.


한데 운연공은 달랐다.

정제되었어야 할 터인 내력이 거의 날것 그대로 몸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내력을 추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그 성질이 천변만화 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변화가 자유로운 풍(風)기에 가깝다만.’


그것은 대부분의 자연지기가 지닌 특성.


그러한 점에서 오는 변화무쌍함이 운연공의 공능이었던 것이다.


“......좋은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한이 없다는 것은, 곧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그런 말인즉슨 운연공은 익히는 이의 자질에 따라 공능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소리이다.

대방파로써 후인들을 키워내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무공이었다.


‘그리고 축기량.’


그가 운연공을 파헤치며 가장 깊게 파고든 부분이었다.


운연공의 축기량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심법 자체의 문제였다.

애초에 구결부터가 정말 미약한 축기를 위해 만들어져 있었다.

그 크기가 너무나도 작아서 숨쉬듯이 축기를 해도 쌓이는 양이 얼마 되지 않을 듯 했다.


그래, 마치 호흡처럼.


‘그게 핵심이야.’


피를 쏟아가면서까지 연속해서 운공을 하자 보이는 것이 있었다.

곤륜의 자연지기가 이리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백연 자신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리 강대한 기의 흐름에 맞설 일이 없을 터.


그것을 감안한다면 운연공은 말 그대로 ‘숨쉬듯이’ 운공을 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호흡만으로 운기를 하는 것.”


운연공이라면 가능했다.

모든 상황에서 숨을 쉬는것 만으로 운기를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백연이 파악한 바로는 운연공의 일정한 경지에 다다르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러하다 해도, 운연공의 축기량은 너무 적었다.

무공을 배우는 무인들이 사용하기에는 평생 연마해도 삼류 무인에 머무를 수준의 축기 속도.

그리고 심법이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아마도.


‘곤륜파가 본디 검문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곤륜의 역사는 길다.


허나 곤륜파가 검문이 된지는 그리 오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적어도 천마와 삼봉진인이 태조를 도와 함께 원을 멸한 시점.

그 이후에 곤륜파가 검문으로써 중원에 이름을 드러내니.


‘운연공이 곤륜이 도문이던 시절 만들어졌다면 이상할 것도 없어.’


그때는 수행을 위한 심법이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심법의 축기량도, 성질도 전부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운연공은 처음부터 도인들의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심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게 있어.’


백여년 전, 그가 검귀이던 시절.

그때의 곤륜은 육파일방의 일원이었다.

강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백연 자신도 몇번 부딪힌 적이 있었으니.


기억 속에는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 있다.

허공을 밟으며 검끝으로 용을 그려내던 곤륜의 검법이.

일검에 하늘을 양단하던 당대 곤륜 장문인의 개세적인 검이.


신교대전 당시 정파 무림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었던 곤륜파.

그때의 곤륜 무인들은 어찌 그리 강했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운연공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수준의 무위.

그것은 운연공의 공능이 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운연공의 공능을 발휘할 만큼의 시간 동안 내력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심법의 구결을 역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운연공을 완벽하게 해체해,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그 뿌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니.


운연공의 비급.


그것을 보관하고 있는 곤륜파의 무공서고에 방문할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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