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빌어먹을 헌터들이 다 내 뒤로 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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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1:14
최근연재일 :
2023.09.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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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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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얼떨결에 빙의

DUMMY

자식을 앞세워 보낸 아비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는 듯 하늘이 스산한 봄비를 뿌리고 있었다.


예보에도 없던 갑작스러운 비에 핸드백을 머리 위로 올려 이마를 가린 여성이 부지런히 역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지붕에서 빗물을 쏟아내며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달리는 한 쌍의 남녀.

하지만 비로 흠뻑 젖은 그들을 뒤에 남겨놓고 버스는 정거장에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

운명이란 놈의 장난에 그렇게 힘없이 놀아나 주는 것.


그런 장난은 대부분 우리를 일시적으로 짜증 나게 하는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가끔은 견디기 힘들 만큼 큰 실망과 좌절을 선물로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으로 우리의 심장을 멎게 하고, 뻥 뚫린 공허감으로 갑작스레 의미 없는 삶 속으로 우리를 내던지기도 한다.


카페의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강주혁이 3년 전 오늘 그런 운명의 장난에 희생자가 되었다.




주혁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부모라면 누구라도 그렇듯,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녀석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큰 기쁨을 준 아들을 부부는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 ‘엄마’, 라며 해맑게 웃는 갓난아기였던 녀석이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는가 싶었다.


주혁은 아들 준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손재주가 뛰어난 그는 준이에게 보여줄 묘기를 터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저학년일 때에는 마술 놀이에 준이는 푹 빠져 있었다.

말이 마술이지, 모르는 타인이 보면 소매치기와 똑같은 짓이었다.

준이의 바지와 자켓 안에 있는 물건을 귀신같은 솜씨로 꺼내 아들 녀석뿐만 아니라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까지도 깜짝 놀라곤 했다.


“아들한테 정말 좋은 거 가르친다. 잘하는 짓이네.”


‘전직이 의심스럽다’라며 화난 아내가 내는 짜증에 그는 두 손을 들었다.


그래도, 아들에게 멋진 아빠, 수퍼 히어로 같은 아빠로 보여지고 싶은 욕심에 그는 서부 총잡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방아쇠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빙그르르 돌린 후, 총구를 입에 대고 ‘후우’ 하고 불 때면 ‘아빠 최고’ 라면서 아들 녀석은 깡충깡충 뛰곤 했다.


그런 녀석을 보며 더 멋진 묘기를 보여주겠다며 그는 회사 사무실에서조차도 툭하면 총잡이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러던 아들 녀석의 옆자리를 어느샌가 컴퓨터 게임이 빼앗아 버렸다.

주변 다른 아빠들이 ‘다 그렇게 커가는 거’라 웃으면서 그를 위로했다.


“엄마, 딱 한 시간만 더. 응? 응?”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노려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녀석은 두 손으로 컴퓨터 본체의 전원 버튼을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게임에 푹 빠져 엄마와 툭하면 실랑이를 벌이던 녀석이 중학생이 되고 다시 고등학생이 되었다.


죽은 아이도 살린다고 소문난 과외선생과 학원을 알아보랴, 복잡한 수시, 정시 전형의 설명회를 찾아다니랴, 엄마의 삶도 녀석의 입시 생활만큼 고단했다.


그래도 녀석은 남들이 말하는 ‘인서울’ 대학에 그럭저럭 합격했다.


처음에는 만족하지 못했던 주혁의 아내도 시간이 가면서 ‘그래, 뭐. 그 정도면..’ 으로 태도가 바뀌어 예전의 ‘아들바라기’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바라던 과엠티를 3월 중순 강화 석모도로 가게 되었다고 녀석은 며칠을 들떠 있었다.



한밤중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그와 아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아드님이 강이준 씨 맞으시죠?”

전화를 건 여경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그에게 그렇게 물었다.


이제 갓 스물 된 그의 아들이 3월 16일 새벽 1시 30분경, 석모도 매음리 선착장 1KM 떨어진 곳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기쁨에 겨워 해맑게 웃던 녀석을 보낸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의 죽음을 전화로 전해 들은 순간 주혁과 아내의 시간은 멈춰 버렸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껍데기로 살아가기 시작한 부부에게는 더 이상 대화도, 웃음도, 희망도, 같이 할 미래도 없었다.


공허한 눈빛으로 살아가는 아내에게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또한 처음 얼마간은 폭음으로 녀석의 빈자리를 채웠다.

터무니없게도, 가지 말라고 잡지 않은 그 스스로와 아내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주위의 만류에도 취기로 입수했다는 아들의 같은 과 친구들의 진술을 믿지 못하고, 급기야 집단따돌림과 학교 폭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피폐해지기 시작한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 녀석이 떠난 지 3년이 되는 날,

아내에게서 건네받은 이혼서류를 자동차 조수석에 던져 놓고 그는 아들 녀석을 보러 인천가족공원 납골당에 들렀다.


이제 영원히 스무 살로 남아 있을 녀석의 얼굴을 보고 돌아서는 그의 앞에 아들의 단짝이었던 진헌이가 나타났다.


노란 국화 한 아름을 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뻘쭘하게 서 있던 녀석이 그가 길을 비켜주자 머쓱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다가섰다.

정성들여 꽃잎을 다듬어 싱싱한 것만 몇 송이 아들놈 옆에 장식하고 나머지 꽃은 다시 포장지 안에 둘둘 말아 넣었다.


“고맙다.”

그의 말에 녀석이 그를 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납골당 밖으로 나와 몇 걸음 옮기기가 무섭게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 가느다란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차장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던 그가 아들 녀석에 대한 그리움에 슬며시 진헌이를 돌아보았다.


“시간 괜찮으면 같이 커피 한 잔 할래?”


주혁의 얼굴에 깃든 쓸쓸한 표정을 읽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평삼거리역 2번 출구 앞 2층, 프랜차이즈 카페인 <별박스>의 창가에 자리를 잡고 그가 녀석과 마주 앉았다.


“툭.툭.툭.툭.툭....”


굵어진 빗방울이 눈앞의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비가 오면 유치원 때 이준이 생각이 나요. 장난꾸러기였거든요.”


슬며시 그의 눈치를 보면서 진헌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


씁쓸한 웃음을 짓던 진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노란 장화 신고 다니면서 여자애들 옆에 고인 빗물을 발로 밟아 흙탕물 튀기고 그랬거든요.”


진헌의 말에 주혁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흘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게임을 얼마나 잘 했는지...”


눈가에 웃음을 가득 담고 진헌이 말을 이었다.


“적들을 완전히 휩쓸고 다녔어요. 탑에 있나 했는데 미드에 가 있고 순식간에 바텀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었죠.”


“우리 준이가 그렇게 게임을 잘했어?”


“그럼요. 게임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됐나? 골드 티어라고 하더니 또 금방 플래티넘이라고...”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던 주혁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헌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들이 게임에 진심이었던 듯 느껴졌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그랬었는데...”


그렇게 말한 진헌이가 다시 씁쓸하게 웃었다.


“상대하고 싸워서 승리하고 몬스터 잡는 게 짜릿하다고...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순간, 주혁의 눈앞에 아들 녀석이 아닌, 화가 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흐, 쟤, 공분 안 하고 맨날 겜 만 하는 통에 내가 못 살겠어. 진짜.”


“친구들끼리 툭하면 그랬거든요. 이준이 아버님도 분명히 게임 도사이실 거라고. 저 정도면 아버지 잘 둔 덕분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진헌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 * *




“그래서, 진짜 이혼 한다구?”


“벌써 이혼 도장 찍어서 보내줬다.”


“미친... 다 늙어서 이혼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혁의 친구가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아직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슬며시 눈을 피하는 주혁을 친구 녀석이 빤히 바라보았다.


구로디지탈단지역 근처에 있는 건물의 10층에 위치한 JH 소프트웨어.


인천 남동산단에 있는 철강회사의 팀장인 주혁이 오랜만에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렀다.

업무에 JH 제품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면서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주혁의 근황이 궁금했던 지한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야, 강주혁.”


사뭇 진지하게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에 주혁이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보았다.


“우리 아직 마흔아홉이다. 제수씨랑 어떻게든 다시 잘해 보든지...”


“우리 별거한 지 일 년 넘었다.”


툭하고 내뱉고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는 주혁을 본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뭐...”


딴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낮은 한숨을 쉬고 있는 지한의 사무실 문에 노크 소리와 함께 그의 비서가 들어왔다.


“사장님 미팅 시간 다 됐습니다.”


“응, 알았어.”


다시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지한이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왔으니 미팅 끝나고 술이나 거하게 한잔하자. 내가 좋은 곳으로 모실 테니까.”


“미팅은 얼마나 걸리는데?”


“오래 안 걸려. 한 삼사십 분 정도. 여기서 편하게 기다려.”


“그럼, 그사이에 바람이나 쐴 겸, 위층 테라스에 가서 있을게. 담배도 한 대 피우고.”


“뭐야. 너 담배 피워? 제수씨 싫어한다고 결혼 전에 끊은 놈이.”


“그냥,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빤히 그를 바라보던 지한이 혀를 찼다.


“그래. 뭐, 니 속이 속이겠냐.”


‘어휴.’ 하고 한숨 섞인 헛기침을 한 번 한 지한이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 * *



11층 건물 옥상 한쪽에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테라스.


옥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뽀얗게 흐려져 마치 주혁의 내면을 비추듯이 답답하고 갑갑했다.


텅 빈 테라스 한쪽에 놓여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휴우..”


한숨을 내쉬고 담배 한 가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바닥을 펴고 양쪽 바지 주머니를 문지르듯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다.

양복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가락에 잡히는 것을 몽땅 끄집어냈다.

낡은 지갑, 구겨져서 활자가 지워진 영수증, 접혀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티슈 몇 장.


라이터가 없다.


“다시 내려갔다 와야 하나?”


자리에서 일어난 주혁이 양손으로 옆구리를 잡고 뻐근해진 허리를 슬그머니 한번 돌렸다.

그런 그가 문으로 향하는 대신 허리를 굽힌 채 테라스의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있다.”


바닥에 깔아 놓은 나무 타일 한쪽 틈새에 콕 박혀 있는 일회용 라이터.

쪼그리고 앉아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그가 일회용 라이터를 힘들게 끄집어냈다.


“착.착.착...”


몇 번의 시도 끝에 희미하게 올라오는 불에, 꺼질까 노심초사하며 그가 담배의 끝을 갖다 댔다.


힘껏 빨아 벌겋게 불이 붙은 담배 끝을 확인한 그가 ‘휴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준이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했거든요.”


그렇게 말하던 진헌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 온 거냐?”


중얼거리던 주혁의 입 밖으로 ‘크윽’ 하는 소리가 깊은 한숨과 함께 튀어나왔다.


딴에는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 녀석은 자신의 꿈조차 아빠한테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들이 그렇게 떠난 후에야 비로소 주혁은 알게 되었다. 녀석과 자신은 다른 세계에 살았다는 것을...


끝에 붙어있던 시뻘건 불이 쑤욱 타들어오도록 힘껏 빨고는 허공을 향해 ‘후우’ 하고 내뱉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주혁과 아내는 소위 말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서로 죽고 못 살던 둘 사이에 어쩌다 덜컥 아이가 생겼다.

양가 부모님 허락을 받고 결혼식부터 올렸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남동산단에 있는 작은 철강회사에 부지런히 입사했다.


원자재 철판을 수입해서 회사 내의 공장에서 압연과 절단(slitting)을 거쳐 반제품을 수출.

회사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말뿐이던 수출입팀에 지원해 동남아 쪽에 거래처도 뚫었다.


중소기업 중 대부분이 그렇듯 야근은 선택 아닌 필수.

너튜브도 활성화되기 전 시절부터 틈틈이 카세트테이프와 CD를 들으며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해 어느 때부턴가 미국에서 살다 왔냐는 말까지 듣는 실력이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기업과 거래를 시작하게 되면서 회현역 뒤에 있는 프랑스어 전문학원도 다녔고, 큐슈에 있는 기업과 거래를 트며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아들의 교육을 아내에게 완전히 일임하고 일에 전념하는 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당뇨 초기 단계, 허리통증을 견뎌내면서, 이 모든 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노력한 결과와 보상이라며 흐뭇해했었다.


그 모든 노력의 목표와 결실이었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뒤 따라온 가족의 붕괴.


한순간 모든 게 덧없어진 삶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렸다.


“준이야....”


벌려진 입 밖으로 자신도 모르게 아들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내 아들 강이준!”


자신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워 보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져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그날 물속에서 가족의 품을 떠난 게 아들이 아니라 자신이었더라면..

그래서 지금 아들이 한없이 밝은 얼굴로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세계에 신이 있어서 아들을 다시 돌려주기만 한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지옥의 불 속에서 영원히 타오르는 고통을 견뎌 내리라.


손끝으로 튕겨 담뱃불을 끈 주혁이 꽁초를 떨구고 두 손을 펴고 얼굴을 문질렀다.


[아들을 살리고 싶나?]


갑작스레 머릿속을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그가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진정, 네 생명을 바쳐서 아들을 되살리겠나!!]


그의 귀에 울리는 근엄한 목소리에 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돌아보지만, 그 이외에 테라스에는 아무도 없다.


[신에게 맹세하는가!!]


마치 포효하는 듯한 강렬한 목소리가 그를 압도했다.


“예...”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뗀 그가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보았다.


“예! 아들만 살려주신다면... 제 목숨 따위야..”


‘도대체 어디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그의 시야에 주변 건물들의 후줄근한 풍경만이 눈에 들어왔다.


황망히 시선을 움직이던 그가 언뜻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의 뿌연 하늘이 마치 파도가 일 듯 갑자기 일렁이더니 주름이 잡히듯 일그러졌다.


“....뭐지?”


주혁이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허공에 마치 매직으로 그은 듯 점선이 그려졌다.


“...어!”


곧이어, 점선을 따라 칼로 그어지듯 허공이 갈라져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입을 떡 벌린 채 똥그래진 눈으로 주혁이 올려다보았다.

갈라진 틈으로 인간의 손이 삐져나오는가 싶더니 한순간 남자의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다음 순간 그 남자의 전신이 주혁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대포알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어어어어....”


무슨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남자와 정면충돌한 주혁의 몸이 다음 순간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어두운 터널 안을 한없이 걸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것도, 마음속에 드는 감정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저 멀리 동그랗게 보이는 빛을 향해 쉼 없이 걸음을 옮겼다.


한순간 빛의 한 가운데 흐릿한 점 하나가 나타났다.


점점 커지던 점은 어느 순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몸통과 머리, 팔과 다리.


그를 향해 점점 커져 오는 것은 누군가의 모습.


“....누구?”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남자의 흐릿한 모습에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뒤로 또다시 생성된 세 개의 점.


“...잡아!”


인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세 점이 앞서서 달려오는 남자를 쫓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맹렬하게 달려오는 남자가 이제 지척에 다다랐다.


“.. 저 놈 죽여!”


악다구니를 쓰며 그의 뒤를 쫓던 남자들의 형태가 한순간 바뀌었다.


“....괴물?”


공포감이라도 밀려와야 하건만 여전히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든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저 좁은 터널 한 가운에 꼼짝 못 하고 서 있을 뿐.


“......어어어.”


마치 자신이 앞에 서 있다는 걸 보지 못하는 듯, 젊은 남자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로 뒤에서 거대한 낫으로 변한 앞다리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초거대 사마귀.


등 뒤에서 휘둘려지는 낫을 피하며 창백한 얼굴의 젊은 남자가 정면으로 그에게 돌진했다.




“으아아아아아....!”


깜짝 놀란 주혁이 냅다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괜찮으세요?”


눈이 왕방울처럼 커진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두른 하얀 띠가 보이고 그 너머로 흰 천장이 올려다보였다.


“여..여긴...어디..”


“움직이지 마시고 누워 계세요. 여기 병원입니다.”


“...병원? 내가 왜?”


주혁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사고의 기억도 전혀 없었다.


“담당 선생님 곧 모셔 오겠습니다.”


침착함을 되찾은 그녀가 옷자락에 걸린 작은 마이크를 손끝으로 만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강우주 환자분 방금 깨어나셨습니다.”


“에? ....강우주?”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몸을 돌려 부지런히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띵똥]


그가 ‘강우주’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자 청명한 벨 소리와 함께 갑자기 그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 4KM

- Move to starting point.


‘뭐지?’


허공에 떠 있는 글자를 향해 그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글자는 손에 잡히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


시야 한 가운데에 떠 있던 글자가 한순간 그의 시야의 오른쪽 위로 이동을 한 뒤 서너 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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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우주로 다시 태어나다 +5 23.05.10 784 15 13쪽
4 3화 오즈의 도로시 +5 23.05.10 949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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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화 우주의 위기 +14 23.05.10 2,020 28 15쪽
1 프롤로그 +13 23.05.10 2,336 4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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