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빌어먹을 헌터들이 다 내 뒤로 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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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1:14
최근연재일 :
2023.09.19 22:21
연재수 :
1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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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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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
글자수 :
694,692

작성
23.05.1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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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
추천
15
글자
21쪽

5화 우주탐험

DUMMY

“얘는 왜 이렇게 안 내려와?”


갈비를 뜯고 발라낸 뼈를 통에 넣으며 우주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우주를 기다리다가 가족과 친척은 먼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우주의 퇴원을 축하하고자 모인 자리이긴 하지만 가족과 친척에게 우주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우주의 어머니만이 식탁의 한쪽에 앉아 그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너가 한번 올라가 봐라.”


“기다리면 내려오겠죠. 뭐.”


자신에게 하는 할머니 말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놀리며 우주의 형인 우영이 중얼거렸다.


“오빠 내려오는 계단 못 찾는 거 아니예요?”


사촌 동생 민아가 입을 실룩거리며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어머니가 민아를 노려보듯 빤히 바라보았다.


“올캐두 뭘 그런 말 가지고 그래.”


고모가 민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어머니를 흘겨보았다.


“뭐, 우주가 조금 모자라는 건 사실이지, 뭘 그래요.”


막내 고모가 갈비를 질겅질겅 씹으며 끼어들었다.


“중학교 때 영국에서 그래도 몇 개월 살았대도 아마 알파벳도 모를걸?”


“알파벳은 무슨, 내 아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중학교 국어책은 읽을 수 있을지나 모르지.”


“여보!”


우주를 비웃는 고모들의 말에 장단 맞추고 있는 남편을 보고 우주의 어머니가 순간 화를 냈다.“


”에미야!“

할머니의 목소리에 어머니가 가까스로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한숨을 내 쉬었다.


그 순간 주방 안으로 우주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서 와라. 우주야.“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막내 고모가 우주를 보고 손을 들었다.


”저...“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기도 전에 우주가 어머니를 보고 입을 열었다.


”제 휴대폰은 혹시 어디 있나요?“


”아, 네 휴대폰... 여보?“


우주의 말에 어머니가 남편에게 고개를 돌렸다.


”AS 맡겼는데 못 고친다길래 버렸다. 새로 하나 사라.“


마치 별것 아닌 일처럼 말하고 그의 아버지는 손을 뻗어 갈비 조각을 집어 들었다.


”...예에.“


엉겁결에 대답했지만, 주혁, 아니 다시 태어난 우주의 눈에는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 평범한 가족은 아닌 듯 보였다.


- 튜토리얼을 모두 종료하시겠습니까? (Yes/No)


하필 그 타이밍에 허공에 글자가 떠올라 시야를 가렸다.


“예스”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 손을 들어 시야의 오른쪽 상단에 열려있던 메뉴 버튼을 눌러 닫았다.


돌아보는 그의 시야에 자신을 곁눈질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킥킥거리는 친척들이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갈비찜이 가득 담긴 그릇을 들고 와 그의 밥그릇 앞에 내려놓았다.



* * *



[첫 번째 미션 : 현재까지 써 놓은 일기를 찾아 읽으시오]


“...일기?”


허공에 떠 있는 확인 버튼을 누르고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기라....”


미션이라 해서 상당히 고난도의 일을 시킬 줄 알았는데 일기를 찾아 읽으라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가 책상 위에 있는 책과 노트를 모두 꺼내 훑어보기 시작했다.




작은 책장에 꽂혀 있던 책, 잡지 등도 모두 확인했지만 일기는커녕 손으로 쓴 글씨 비스무리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고개를 돌려 방 주위를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20대 초반의 남자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인 컴퓨터가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에 일기를 썼다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어딘가에 숨겼다는 일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매의 눈으로 그가 방의 모서리와 벽 여기저기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놓고 쓰지 않는다면 어딘가 비밀의 보관소가 있다는 뜻.


거울의 뒤도 손을 더듬어 만져보고 책과 잡다한 것들을 모두 빼버리고 책장도 들어냈지만, 그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사방을 찬찬히 돌아보는 도중에 책상 위의 벽에 걸린 액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의자 위에 발을 올려 책상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액자를 떼어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흠...”

다시 걸 요량으로 액자를 들어 올린 그의 눈에 액자 뒤편의 벽지 한쪽이 찢어져 나간 것이 들어왔다.


“...뭐지?”


바짝 들이댄 그의 눈에 벽지의 표면에 자로 재어 칼로 그은 듯 미세하게 갈라진 틈이 보였다.


손 관절로 톡톡 치자 공허한 울림이 들려왔다.


책상 한쪽에 펜을 넣어 놓은 통 안에 세워져 있는 커터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손아귀에 쥐고 날 끝을 틈새에 집어넣었다.


“야.. 이런데다가.”


열린 사각형 판자 뒤, 벽 안의 공간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노트북을 꺼내는 그의 눈에 놀람과 감탄의 빛이 났다.


“금고라도 있던 자리야?”


중얼거리며 그가 바닥으로 내려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스무스하게 켜진 노트북 화면.


비번을 입력하란다.


‘...앗차.’


마음속에 기쁨은 사라지고 막막함이 그곳에 빽빽하게 자리 잡았다


“혹시...”


노트북 비번을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마지막 숫자 네 자리로 사용하던 것이 기억이 났지만, 우주의 주민등록번호는 알 수가 없었다.


“....이를 어쩐다?”


엄지와 검지로 턱을 문지르며 머리를 굴려봤자. 당연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를 숫자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안되면 가까운 A/S 찾아서 맏기지 뭐.”


중얼거리며 그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다.


0000


-PIN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십시오.


‘그렇겠지.’


확인을 클릭하고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1111


“....헐!”


화면이 넘어갔다.


우주란 녀석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단순한 놈이었던 듯.



노트북 안의 폴더를 하나하나 뒤져 보던 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한창 젊고 신체 건강한 남자의 숨겨놓은 노트북 안에 당연히 있을 법한 야동이 없다?


“키 크고, 몸 좋고 잘 생기기까지 하면 야동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


책상 위의 한쪽에 세워져 있는 작은 거울 속에 비치는 우주의 얼굴은 예전 자신의 얼굴과는 달라도 너어무 다르긴 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손은 노트북 안의 폴더 안의 폴더까지 하나하나 모조리 확인하고 있었다.


“찾았다.”


한순간 그의 눈에 빛이 났다.


갈가마귀라는 폴더 안에 적혀있는 내용은 분명 일기처럼 보였다.

마우스를 드래그하며 훑어보던 그의 눈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하필 주환이와 택시를 타고 광화문에 가던 도중에 아공간 소환 글이 떠버렸다.

그 1분 사이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급한 김에 택시를 세우고 주변 건물의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하필 문이 잠겨있었다.

구석에 바짝 붙어 가만히 서 있을 때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오는 주환이가 보였다.

허공에 0이 뜨는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옆집에서 키우는 진돗개만한 개미가 동굴 안에 나타났다.

인벤토리를 불러내려고 했지만, 주환이 얼굴이 떠올라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이 가로로 찢어진 놈에게 몇 번을 물린 후에야 인벤토리를 불러내서 무기를 꺼냈다.』


“뭐지?”


일기인 줄 알았더니 아무리 봐도 요즘 인기가 상당히 ‘핫’ 하다는 웹소설 같았다.


“소설을 직접 쓴 거야? 아니면 다운 받은 건가?”

노트북을 덮었다.


“혹시 손으로 쓴 일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던 그의 머릿속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다이어리에 손으로 꼭꼭 눌러가며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을 적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팀장으로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하던 일 중에 자신만 알고 있던 내용이 꽤 많이 있었다.


그동안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의 내용을 몰라 발 동동 구르며 지냈을 직원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 모습으로 회사에 돌아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아내와 별거하면서 세를 살던 송도 오피스텔에서 자신의 컴퓨터로 회사 일을 정리해 보내주면 되는 일.


자신이 힘들게 발로 뛰며 체결한 계약이 한두 건도 아니고....


“그래, 가서 일도 처리하고 필요한 물품도 있으면 챙겨서 가지고 오자. 그리고 지한이에게 지인인 척 문자도 보내서 위로해주고.”


반팔 셔츠를 벗어버리고 옷장을 열었다.


눈에 띄는 것은 모두 낡은 청바지, 면바지에 칙칙한 티셔츠...


20대 초반 젊은 남자들은 패션에도 민감하고 외모도 가꾸고 하는 줄 알았더니 우주는 전혀 아니다.


낡은 옷을 입어도 태가 날 만큼 옷걸이가 좋으니 뭐 딴이 할 말은 없지만.


검은 캡모자를 눌러써 짧은 머리를 가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소파에 혼자 앉아 있던 우주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친척들은 모두 돌아갔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저, 어...어머니.”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 그녀를 불렀다.


“어디 가게?”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그를 보고 놀란 듯 몸을 일으키며 그녀가 물었다.


“저...휴대폰 좀 사주시면...용돈도 필요하고요.”


‘이 나이에 모르는 사람에게 어머니라고 하며 용돈을 달라니...’


그런 자신이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은 더 이상 주혁이 아니라고, 이제부터는 100 퍼센트 우주라는 남자로 살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맹세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러는 그의 눈앞에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가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 한쪽이 시큰거렸다.


“잠시만 기다려...”


그렇게 말한 그의 엄마가 침실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뉴스를 방송하고 있는 거실 한쪽의 커다란 티비로 그가 시선을 돌렸다.


“이 동물이 이번에 후쿠시마 근방에서 잡힌 변종 동물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 동물에 관해서 학자들 간 의견이 분분한데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동물이 자연적인 진화를 거쳐 변모한 외형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건데요.”


그렇게 말하는 아나운서와 리포터의 뒤에 변종 동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겨우 시바견 정도의 크기인 놈의 온몸은 마치 타오르는 듯 시뻘건 비늘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더욱 기괴한 것은 놈의 얼굴이었다.

악어와 같이 툭 튀어나온 주둥이를 가지고 있는 놈이 카메라를 향해 아가리를 벌릴 때마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춤추듯 너울거렸다.


“자연 상태에서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형태가 바뀌는 변종이 생길 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아무래도 원전 오염으로 인해서 생긴 변종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 학계에서 지배적인 의견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변종의 출현이 처음이 아니고요. 이전에도 한번 이것과 비슷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가 티비 화면에서 시선을 돌렸다.


“여기...”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새 지갑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병원에서 네 소지품이라고 받은 지갑이 좀 낡았길래 엄마가 새 걸로 하나 샀다.”


건네받은 지갑을 열자 5만원 권 지폐 몇 장, 주민등록증, 그리고 운전면허증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지갑을 확인하고 있는 우주의 눈앞에 엄마가 현금카드를 하나 내밀었다.


“이걸로 휴대폰 사고 필요한 거 있으면 써. 옷도 요새 애들 잘 입는 거, 그런 걸로 사서 입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우주의 낡은 겉옷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엄마가 같이 가 줄까?”


“아.. 아니예요. 여기저기 좀 돌아다녀 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라. 그럼.”


한번 희미하게 웃어 보인 그녀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여려 겹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뭐예요?”


“가족 전화번호야. 휴대폰 개통되면 잊지 말고 제일 먼저 입력해 둬. 알았지?”


“....예.”


받아 든 종이를 지갑 안에 넣고 현관으로 그가 몸을 돌렸다.


“너무 늦지는 말고, 일찍 들어와.”


걸음을 옮겨 현관 앞까지 따라온 그녀가 우주를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일렀다.


“알겠습니다.”


우주의 모습이 현관 밖으로 사라지자 그녀가 낮은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우주, 나갔어?”


방에 들어오는 그녀를 향해 남편이 입을 열었다.


“휴대폰 필요하잖아. 한창 젊은 앤데.”


외출 준비를 하느라 옷을 갈아입던 남편이 거울에 비치는 아내를 흘끗 바라보았다.


“혼자 내보내도 괜찮겠어? 집에 못 찾아오면 어떻게 해?”


남편의 말에 그녀의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의사가 그랬잖아. 그냥 인간관계하고 자기 경험 대부분만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다른 지식이나 지능은 사고 나기 전하고 똑같이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걱정되니까 하는 말 아냐.”


화가 난 아내의 표정을 살피며 그가 말투를 부드럽게 하면서 마치 그녀를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놈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니니 다른 기억도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는 그를 무시하고 그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남편의 옷을 집어 들어 팔에 걸었다.


“자살하려고 11층에서 뛰어내렸대.”


갑작스레 울먹이는 말투로 툭 내뱉은 그녀가 팔에 걸려있던 옷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우리 애가 죽겠다고, 빌딩 꼭대기에서... 내 아들 우주가...”


바닥에 쓰러지듯 쪼그리고 앉은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녀린 그녀의 어깨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꼭 죽으려고 했겠어? 어쩌다가...”


“당신은 어떻게... 경찰이 하는 얘기 못 들었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는 그녀의 눈 속엔 원망과 후회가 가득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그 나이 든 남자 만난 거랬잖아! 삼 년 전에 아들 잃고 이혼당한 남자.”


“그거야 경찰이 추정한거고...”


“애가 얼마나 기댈 곳 없고 힘들었으면..."


”.......”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형제들하고 비교만 하고....”


그녀가 손등으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문질렀다.


“형, 누나 반만 닮으라고 구박이나 하고, 어린 게 뭐라고 말하면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말대답하지 말라고 혼내기나 했으니, 그런 내가 무슨 엄마라고....”


“애가 좀 이상한 말 한 건 사실이잖아.”


“여보!”


몸을 벌떡 일으킨 그녀가 마치 노려보듯 남편을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 내 말 똑똑히 들어.”


결혼 이후 항상 순종적이었던 그녀의 갑작스럽게 명령하는 말투에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난, 여태까지 당신 말이라면 하늘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근데, 이제는 아냐. 아깐 어머님이 같이 있었으니까 내가 간신히 참은 거야.”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가 마치 속사포를 쏘듯 남편에게 쏘아댔다.


“이제부터 우리 가족, 친척 중에 어느 누가 우리 우주 우습게 보는 말 한마디라도 하는 거 내가 들으면 나 절대로 가만 안 있어.”


“당신 왜 그래?”


똥그래진 눈으로 남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마찬가지야.”


그런 남편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이제부터 우리 아들 우주 방패로 살다가 죽을 거야. 이제부터 누가 뭐라고 해도 우주는 내가 지켜.”


말을 끝내고 빤히 남편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집 밖으로 나온 그가 큰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딴에는 천천히 걷는다고 생각하는데도 발걸음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어깨를 펴고 양손을 벌리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예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신체의 가벼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후우우’ 하고 내뱉었다.


폐활량조차도 예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바로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렸던 젊음이라는 건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가 슬며시 제자리 점프를 해 보았다.


마치 새 한 마리처럼 가볍게 허공에 떠올랐던 몸이 슬며시 바닥에 착지했다.


“...헐.”


몸 전체에 잘 발달 된 근육을 보았을 때만 해도 몸만들기에 진심인 녀석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20대 남자의 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 타고난 운동선순가 보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손바닥이 굳은살투성인 것을 보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여전히 허공을 찢고 나타난 우주와 공중박치기를 했던 기억을 해내지 못하고 있던 그는 새로 얻은 우주의 몸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 * *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던 그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인천행 1호선 전철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 이번 정차역은 부개, 부개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차 내 방송을 들은 그가 편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피스텔이 있는 테크노파크역에 가려면 다음 역인 부평역에서 인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그의 바로 앞에 서 있던 키 작고 붉은색 외투를 입은 50대 여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의 눈앞 광경이 한순간 완전히 바뀌었다.


동암역 북광장 공영주차장 한쪽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별박스> 앞에, 방금 본 그 여성이 험상궂게 생긴 남자 둘과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다.


”돈은 약속대로 마련해 놨습니다.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확인하시죠.“


구레나룻이 듬성듬성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묵직하게 보이는 가방을 들어 보였다.


여성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모텔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가로등이 들어오지 않는 어둑한 골목의 구석에서 그들이 발을 멈췄다.


”확인하시죠.“


가방을 여자의 눈앞에 들어 올리고 남자가 지퍼를 열었다.

동시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어느 틈에 움켜쥐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거칠게 휘둘렀다.


”뻐억!!!“


그녀의 두개골이 박살이 나며 시뻘건 핏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아아아아....!“


온몸에 그녀의 혈흔을 뒤집어쓴 그가 냅다 비명을 질렀다.


”뭐야..?“

”왜 그래 저 사람?“

”미쳤나 봐!“


벌떡 몸을 일으켜 돌아보는 그의 시야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는 전철 안의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 이번 역은 부평, 부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때마침 그가 내릴 역을 말해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를 그냥 지나쳐 내려버리기에는 그가 본 것이 너무나 생생했다.


거뭇거뭇한 구레나룻의 중년 남자와 머릿기름을 발라 넘긴 음흉한 눈빛을 발산하던 젊은 남자.


그리고 허공으로 터져 나오던 시뻘건 핏물과 비린내.


”....아주머니! 동암역에서 내리시는 거 맞죠?“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가 환영 속에 봤던 여성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그냥, 어떤 미친놈이 이상한 말 했다고 해도 좋아요. 그러니까...“


놀라서 초점도 맺혀지지 않은 듯한 여성의 눈을 그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남자 둘이서 으슥한 데로 가자고 하면 절대로 따라가시지 마세요. 가면 죽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가 부지런히 발을 옮겨 열린 문 사이로 황급히 뛰어내렸다.




한참이 지났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성의 머리가 깨지며 곤죽이 된 회백질과 핏덩이가 튀는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사실적이었다,


”휴우...“


가슴을 부여잡은 그가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인천 지하철의 맨 뒷 칸에 앉아 있는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거나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표정으로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열려있던 문이 닫히고 다시 지하철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정차역은 캠퍼스타운, 캠퍼스타운 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이제 진짜 집에 거의 다 왔다.

들어가서 좀 쉬면서 안정을 취한 후에 회사 일을 시작하겠다고 그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경고! 제한구역에 진입합니다. 곧 starting point 로 소환됩니다]


눈앞에 붉은 글씨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어. 어...“


당황한 그가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그리고 곧,

눈앞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쿵....!“


마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넘어진 모습으로 그가 그의 방바닥에 굴렀다.


방 밖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문을 활짝 열었다.


”무슨 일이야?“


몸을 일으키는 우주를 보면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그녀가 그를 부축했다.


”언제 들어왔어? 좀 전에 와 봤을 때도 없던데. 저녁 같이 먹으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그런 그녀를 보며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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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화 우주의 일기 +3 23.05.12 596 11 18쪽
7 6화 아공간으로 소환당하다 +5 23.05.11 663 13 17쪽
» 5화 우주탐험 +7 23.05.11 738 15 21쪽
5 4화 우주로 다시 태어나다 +5 23.05.10 784 15 13쪽
4 3화 오즈의 도로시 +5 23.05.10 948 16 12쪽
3 2화 얼떨결에 빙의 +7 23.05.10 1,313 20 18쪽
2 1화 우주의 위기 +14 23.05.10 2,020 28 15쪽
1 프롤로그 +13 23.05.10 2,335 4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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