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빌어먹을 헌터들이 다 내 뒤로 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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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1:14
최근연재일 :
2023.09.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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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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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오즈의 도로시

DUMMY

“기억 상실증이 확실한 건가요?”


뷰박스에 걸린 뇌 정밀사진들을 설명하며 의사가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자 그 앞의 소파에 앉아 선글라스 너머로 그를 빤히 바라보던 여성이 물었다.


다리를 꼬고 소파 시트에 편안하게 등을 대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이 반짝였다.


“틀림없습니다. 역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들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환자는 현재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증상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요?”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실이 견딜 수 없이 힘든 경우에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니까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는.. 뭐, 리플리 증후군을 생각하시면....”


“혹시 그게 이번에 뇌 속의 칩을 바꾼 것과 연관이 있나요?”


“그것과는 상관이 없을 겁니다. 다른 뇌의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정밀하게 교체 수술만 한 거니까요.”


“A-42 형으로 바꾼 것 맞죠?”


“그렇습니다. 지난 모델과 전혀 다른 유형이니까 놈들도 쉽게 우주군을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알겠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손을 어깨 위로 올려 가슴 위로 쏟아져 내린 자신의 금발 머리를 뒤로 넘긴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 계속 관찰해 주시고 작은 변화라도 확인되면 잊지 말고 보고하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문손잡이를 잡는 여성의 뒤를 따라온 남자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녀가 고개를 돌려 선글라스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아공간으로 소환이라도 된다면...“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느낀 그가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두려움에 현실 도피 증상까지 보이는 자라면... 우리가 정말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렸다.


”우리 일은 끝났으니 환자 부모 면회는 이 선생이 알아서 결정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외상이 모두 사라졌어도 붕대는 풀지 마세요. 앞으로 열흘 정도. 11층에서 떨어졌는데 상처 하나 없으면 그것도 이상하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녀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그녀가 ‘이 선생’ 이라고 부른 의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책상 위의 인터폰이 울리자 그제야 그는 고개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책상 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왜, 무슨 일이지?“


”저, 선생님. 강우주 환자 부모님이 또 오셨어요.“


왼손으로 수화기를 든 간호사가 오른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은 꼭 환자를 보고 가겠다고.. 막무가내 십니다.“


그녀의 목소리 뒤로 담당 의사를 찾는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내 방으로 모시고 와.“


”알겠습니다.“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간호사가 뒤로 돌아섰다.


”그래, 뭐래요?“


카운터 위에 팔꿈치를 대고 안절부절못하던 여성이 통화를 마친 간호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담당 선생님이 만나 뵙겠다고 하십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앞장서는 간호사를 여성이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뒤에 넉넉한 거리를 두고 그녀의 남편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병원 침대에 누워 주혁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왜 병원에 누워있는지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를 기다리며 옥상에서 담배 한 가피를 피워 물은 것까지는 기억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후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간호사가 부른 이름이었다.


”강우주라니...“


정신없이 병실문을 열고 나가는 간호사를 보며, 처음엔 그녀가 다른 환자와 이름을 착각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간호사와 담당 의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자신은 강우주가 아니고 강주혁이라고.

인천 송도에 거주하는 마흔아홉 먹은 남자라고...


하지만 곧 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 그를 대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표정과 반응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확실하건만,

그의 귀에 들려오는 이질적인 타인이 목소리.


틀림없이 자신의 팔에 붙어있건만,

그의 눈에 비친 터무니없이 젊고 탄력 있는 타인의 손등과 손바닥.


쇠꼬챙이가 뚫려 천장을 향해 들려있는 다리조차.

절대로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주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죠?“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에 그들은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스물셋의 재수생이라고.

카츄사로 군 복무를 마치고 스파르타 입시학원에 다니며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중이었다고...

어떻게 사고가 난 것인가 하는 질문엔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기억해야 부작용이 없을 거라 했다.


그 주변의 간호사들은 그가 여태까지 알던, 어느 정도 대충 인간미가 있던 그런 간호사들이 아니었다.


”...휴머노이드 인가?“


그의 질문은 완전히 무시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리겠다’ 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음의 고저 없이 책을 읽는 듯한 말투는 거기에 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그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왔다.


누군지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방문객들.

그의 몸뚱이 주인인 강우주의 부모.


”아이고, 우주야!“


병실 문이 열리자마자 여성이 그를 향해 미친 듯 달려왔다.


두 손을 벌려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고 있는 그녀의 두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완전한 타인의 억센 손길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그가 그녀에게서 간호사에게 눈을 돌렸다.


”어머님, 조금만 진정하시고요.“


간호사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드렸다시피 환자는 아직 기억상실증 때문에 자신이 누군지...“


”에그. 불쌍한 내 새끼...“

그녀가 그의 손을 두 손에 쥐고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등 뒤로 뻣뻣하게 서 있던 남자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했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미안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여성이 흐느끼며 손끝으로 그의 볼을 만졌다.


”저... 환자분이 안정을 취하셔야 하는데...“


뒤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간호사의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 여성은 여전히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그 후로 며칠이 더 지난 후에야 그는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몸을 일으켜 양쪽 겨드랑이에 클러치를 끼고 화장실로 향하는 내내 그는 호기심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50이 다 되도록 익숙한 얼굴이 아닐 것이라는 건 뻔한 일이었다.


다행하게도, 화장실 안은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면대로 걸음을 옮긴 그가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자신이 짓는 씁쓸한 미소가 낯선 젊은 남자의 얼굴 위에 번졌다.


박박 밀어 버린 머리에 파르스름하게 남아 있는 뇌 수술의 흉터.

그 아래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크고 맑은 눈.

일자로 곧게 내려온 높은 콧대.

양 꼬리가 슬며시 내려와 일그러진 듯 보이는 도톰한 입술.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어리고 뽀얀 피부.


고작해야 아들인 준이 또래 남자의 얼굴.


하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생 다 산 듯한 건조한 표정.


다시 한번 젊은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그의 머릿속에 순간 떠오르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깨어나기 전 터널 안에서 정면으로 달려와 부딪친 젊은 남자.


”그래. 그랬구나.“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현실에서 그에게 일어나버린 일.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의 시야 오른쪽 상단에 떠 있는 4KM 라는 글자.


”...후우.“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다시 오랫동안 거울 속의 젊은 남자를 들여다보았다.




* * *



사지 멀쩡하고 아픈 곳도 없었지만, 병원은 그를 계속 붙잡아 두었다.


그러는 동안 우주의 어머니는 매일 그를 찾아왔다.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그녀에게 그도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형과 누나와 비교해서 미안하고, 학교 성적으로 화내서 미안하고, 그가 말하는 것 제대로 진지하게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붉어진 얼굴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렇게 말끝마다 사과하는 그녀를 보며 어느 순간 그는 준이를 대하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예요. 어머니. 제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무슨 자존심에서인지 절대 아들이 입 밖으로 내지 않던 그 말.

아내가 아들에게 그렇게 듣고 싶어 하던 말을 그가 우주 어머니에게 건넸다.


그 말에 그녀가 순간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손을 부여잡은 그녀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흐느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는 그저 멍하니 병원의 하얀 천장만 올려다 보고 있었다.


한참 후,

마스카라가 시커멓게 번져 팬더의 눈을 한 그녀가 퉁퉁 부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멋쩍은 듯 검지 끝으로 눈 아래를 문지른 그녀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가야겠다. 내일 다시 올게. 편하게 쉬어.“


그의 손을 다시 한번 다정하게 잡은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발생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그가 주변에서 얻어들은 이야기는 그와 우주라는 젊은 남자가 11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것.


자신이 기억하는 한, 그 건물 옥상의 테라스에는 자기 혼자 밖에, 다른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도대체 왜 자신은 일면식도 없는 낯선 남자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단 말인가?


전화라도 있다면 친구에게 연락해서 자신의 몸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묻기라도 할 수 있으련만.


외부 전화는 사용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던 수간호사가 떠올랐다.


기분전환으로 산책이나 하려고 계단으로 향하던 그에게 가능한 4층을 벗어나지 말라며 그녀는 마치 경고라도 하듯 앙칼진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었다.

그놈의 코로나 핑계는...

사고가 있기 전 이미 곧 마스크 의무 착용도 해제될 것이라 했건만...


어떻게 된 병원이 병실에 당연히 하나씩 있어야 할 티비도 없다.

게다가, 자신이 입원해 있는 4층 건물의 4층에 입원해 있는 사람은 그 혼자뿐.

다른 병실은 모두 텅텅 비어있었다.


간호사의 눈치를 보며 화장실 가는 척하며 병원의 계단을 몰래 내려온 그가 건물 앞의 작은 공원으로 발을 옮겨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졸지에 토네이도에 휩쓸려 오즈로 떨어져 버린 도로시가 된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허수아비하고 양철 나무꾼하고, 또 뭐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가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겁쟁이 사자... 걔네들 만나서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야겠네.“


도대체 그 주위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에게 이해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가 언뜻 고개를 돌렸다.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70대 할머니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손녀뻘 되는 여성과 공원 산책을 하던 모습을 병실 창밖으로 몇 번 본적이 있었다.

항상 함께 산책하던 젊은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예,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벚꽃도 보기 좋구요.“


그의 말에 그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어떻게 보호자 없이 혼자 나오셨어요?“


”잠시 화장실 갔어.“


”아. 네...“


언뜻 그녀의 손에 쥐어있는 휴대폰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죄송한데...혹시 괜찮으시면...“


주변의 눈치를 살핀 그가 슬며시 그녀에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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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우주로 다시 태어나다 +5 23.05.10 784 15 13쪽
» 3화 오즈의 도로시 +5 23.05.10 949 16 12쪽
3 2화 얼떨결에 빙의 +7 23.05.10 1,313 20 18쪽
2 1화 우주의 위기 +14 23.05.10 2,020 28 15쪽
1 프롤로그 +13 23.05.10 2,336 4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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