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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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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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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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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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태풍 속으로 (5)

DUMMY

나를 포함한 민추협 상임위(상임 운영위원회) 인사들과 민통당 최고위 사람들 모두가 김상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무나 많은 외신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저들이 쏘아올린 올림픽 때문이지요. 게다가 지금은 미국 자체가 그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김상연이 잠시 말을 멈추고 DJ의 최측근 권노각을 바라봤다.


그 역시 훗날 40년 넘게 DJ의 조직과 자금을 관리하며, 3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DJ계 정당의 원로로 추대되는 인물이다.



“네. 그렇지요. 일단.. 광주 때는 가뜩이나 미국의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던 데다가,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주이란 미국 대사관에 인질 사건까지 발생했었습니다. 거기다가.. 마이애미 인종폭동에, 세인트 헬렌스 화산폭발까지.. 미국이 한국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여유가.”



능숙한 영어실력으로 해외 통으로 알려진 권노각이 차분하게 김상연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 중, 이번에는 권노각과 함께 DJ의 양각이라고 불렸던 한화각이 입을 열었다.



“네. 그 여유가 없어서 광주 때는 한미연합군사령관이 한국군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했지요. 결과적으로 미국이 광주에다가 군을 투입한 신군부를 묵인했다, 이겁니다.”



한화각이 잠시 분을 삭였다. DJ는 물론, DJ계의 대부분이 광주와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작년 필리핀 민주혁명을 계기로 수정된 레이언 독트린에는 공산주의는 물론, 반공친미라 해도 독재자와는 결별하겠다는 선언이 담겨있어요. 그건 이제 미국이 동맹국들을 향해서, 자국민에게 군을 투입하는 그 어떤 시도도 좌시하지 않겠다, 이거 아니겠습니까?”



역시 한화각. 말투부터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까지 리틀 DJ라고 불릴 만하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그렇습니다. 일단 서울 올림픽은 80년 모스크바와 84년 LA 때, 서방과 공산진영이 번갈아가며 불참을 한 뒤 열리는 첫 올림픽입니다. 오랜만에 평화와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는 올림픽에서 개최국이 계엄령을 내리고, 군을 투입할 수는 없죠. 게다가..”



김상연이 다시 올림픽 얘기를 이어간다.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사마란츠 역시 만일 서울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난다면, 올림픽 개최지를 유치과정 중에 낙선한 나고야나 다른 곳으로 변경할 수 있다고, 벌써 여러 차례 거론하지 않았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계엄의 가능성을 올림픽만으로 판단하기엔 부족하다.


전두안이라면 권력 유지를 위해서 계엄을 선포하고도 남을 것이고, 실재로도 명령을 내렸으니까.



“하지만, CIA 한국 지부장 존 스테인은 수시로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제가 총재님을 대신해서 지속적으로 강하게 항의하고는 있지만, 저들이야 우선은 정보를 수집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그래. 최형오. 그 또한 훗날, 두 번의 장관과 6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YS의 최측근이다.


YS의 사람들은 최형오와 김동룡을 가리켜 좌동룡 우형오라고 불렀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들이 정보를 취합하고, 대응하는 시간을 기다리다간, 제 2의 광주가.. 아니, 전국적인 규모의 광주가 재현될 수도 있습니다!”



최형오의 말에 힘을 얻은 김동룡이 목소리를 높였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사태의 엄중함이 그 일말의 가능성에도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었다.


만약에라도 정권이 지금의 사태를 계엄으로 맞선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남한 전체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됐다, 마! 먼저는 유일하게 한미앤합사 눈을 피할 수 있는 특전 사랭관 민뱅관이 부터가 그 쪽으론 회의적이라니까는.. 일단 믿고 가자. 저그들도 12.12 하면서 갱험해가 707 특임대를 특전사랭부 호위대로다 영내에 주둔시키지 않았나? 자승자박이라. 절마들 인자 특전사랭관을 쉽게 제거할 수도 없을끼다.”



언제 군부의 동향까지 파악한 걸까. 좌중을 훑는 YS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하긴, 이 상황까지 와서 제 1야당의 총재라는 사람이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헌데.. 괜찮겠습니까? 시위의 양상이 갈수록 극렬해 지고 있는데다가, 군부 측도 오로지 강경 일변도라서 자칫, 또 참사라도 벌어지는 날엔..”



다시 김상연이었다.


근데 사실, 이 부분은 나도 대단히 궁금한 부분이었다.


첫째로 YS는 박종천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가장 먼저 알고서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둘째, YS는 DJ와 함께 지난 86년 5.3 인천운동에서, 직선제 개헌과 대학생들의 전방입소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한국대학교 학생 김세준과 이재하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소수 학생들의 반미, 용공, 과격 시위를 반대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말이다.


얘기인 즉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태도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아니면, 그때도 이들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내가 몰랐던 거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이어서 정확하게, YS 김영산의 입에서 나왔다.



“대체 괘안타고 맻 뻔을 말합니까? 그때는 아이고! 지금은 기다! 와 그걸, 그 쪽 김대종 의장하고 내만 이해를 하는지, 끌!”



YS의 눈이 대호처럼 번뜩인다.



“보소. 김의장님.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요. 인천 때도 그래하면 저것들한테 강갱진압의 빌미를 주기 딱 좋아서 말맀던 것이고! 박군 첨에 사인 나왔을 때만해도, 그걸로 강갱진압을 돌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안 했씹니까? 막 정치제한이 해금됐던 우리까지 다 딸려 드가뿔면, 이런 기회엔 대체 누가 남아 싸울낍니까? 하.. 안타깝지만서도. 이제사 마, 때가 된 깁니다. 학실히 이길 수 있는 때 말이오.”


나는 YS의 대답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된다는 저 말을, 나는 단순히 일관적이지 않다는 말로 폄하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싸움에서, 마지막 승자가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아래, 언제 어디서든 무한하게 변할 수 있는 원칙을 가진 것만 같았다.


때문에 참사를 외면했을 때는 물론, 그 참사를 기회삼아 이용하는 지금도 저리 당당할 수 있겠지.


또, 그걸 위해서라면 그는 누구와 어떻게 연대하고 결별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흐름에 맞고 명분만 만들 수 있다면 모든 게 괜찮은 걸까?


물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니, 충분히 있을 만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변한다.’와는 절대 같이 쓸 수 없을 같은 ‘원칙’이라는 단어가 그에게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공존했고, 심지어 어울렸다.



‘다르다! 이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이질감에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믿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다른 이의 참사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도, 영혼도 모두 다 기꺼이 장기 말로 내던지리라.


기가 막힌 건, 그게 이념이나 사상 같은 복잡한 영역도 아니라는 거다.


그건 아주 명료하게, 흐름을 읽는 본능이자 사냥을 위해 지형지물과 미끼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최상위 포식자의 영역이었다.



“바라. 우리 민추협 대학 조직국, 국장님아. 집회들 쫓아 뎅겨 보니까는 현장 분위기가 어떠노?”



나름 김상연을 향해 충분한 존중을 담아 반박했던 YS가 이번엔 나에게 호의를 가득 담아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번 생에서 처음에 재회했을 때만해도, 그저 환갑이 다 된 노인네의 다리를 부러뜨렸던 전생이 미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마치 눈동자만 해도 내 키를 훌적 넘길 것 처럼, 무슨 거대한 괴수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 뭐, 뜨겁습니다. 제 한 마디에 함께 울고 웃으며, 오랜 독재를 끝장내고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열의에 불타고 있죠.”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학가의 상황을 전했다.



“그래? 그럴끼다. 대학생들만큼 순수한 불꽃들이 어데 있겠노?”



어느새 YS가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순간, 묘한 오기가 생겼다.



“저, 근데 총재님. 이런 열기라면 정말 또 누군가가 죽어나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범국본 차원에서 각 대학과 지역별로 연계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말대꾸에 좌중에 있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점점 더 휘둥그레졌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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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90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5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1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3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3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6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8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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