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13,055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5.18 20:00
조회
225
추천
7
글자
9쪽

18화 아! 이한율!!(4)

DUMMY

6월 9일 아침 7시 경. 연대 소크 전원이 학생회관 앞에 집결했다.


간단히 인원파악을 마친 김창수 대장은 단과대학 별로 그들이 맡게 될 위치와 각 상황에 따른 대응 방안 등을 하달했다.



“자, 다들 알아들었죠? 특별히 오늘은 여기 계신 국장님 말씀대로 좀 더 조심합시다. 다치지 말고요. 알겠습니까?”


“투쟁!”



고맙게도 김창수가 다시 한 번 내 뜻을 대원들에게 환기시켰다.


‘투쟁’으로 답을 하는 연대 소크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나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과 섞여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곤 다시 김창수를 비롯한 몇몇과 함께 연대 학생회관 근처의 시설관리과 창고를 찾았다.


그곳에서 나의 요청대로 소크 대원들이 사용하기 위한 손 방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뭐가 좋을까..’



학교안에서 그나마 쓸 만한 자재들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온 건데, 마땅한 것이 없다. 그때.



“대장님. 여기..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한 대원이 뭔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한쪽으로 9mm 두께의 합판이 제법 쌓여 있었다.


아마도 학교 행사 무대 바닥이나 전시 가벽 등을 제작하기 위해 들여 놓은 것 같았다.



“오케이, 좋습니다! 이거면 될 것 같네요. 관리 과장님껜 나중에 대장님이 말씀 좀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합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내가?’ 하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김창수가 이내 붙어 나를 거들었다.



“원래 이런 건 외부 사람인 제가 하면 절도고, 대장님이 하면 해프닝입니다.”



넉살 좋게 넘어가는 나의 말에 김창수가 실소를 터뜨렸다.


몇몇의 대원들이 그새 톱과 드릴 같은 연장들을 찾아왔다.


김창수가 대원들과 함께 미리 얘기했던 대로 그 합판들을 사람 몸통만한 크기로 잘랐다.


뒤이어, 내가 자른 합판에 구멍을 뚫고, 폐현수막 끈으로 묶어 팔뚝에 동여맬 수 있도록 했다.



“근데, 이거 아무래도..”



한 대원이 합판의 거친 절단면을 보며 걱정을 한다.



“네, 괜찮습니다. 우선은 당장 얼굴을 막고, 최루탄을 비껴낼 정도면 충분하니까요.”



내가 절단면을 대충 시멘트 바닥에 드륵드륵 갈아 뭉개며 답을 했다.


비록 일회용이고 투박했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니까.


나는 그보다, 톱이 부족해서 만들 수 있는 방패의 개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한율이는 어찌어찌 살린다 해도, 혹시라도 한율이 대신 다른 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작업을 마칠 쯤,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소크 대원들과 함께 그 방패들을 나누고 나르며, 그들의 무기이자 유일한 방어구인 쇠파이프를 점검해 주었다.


경험상 너무 무거운 것도 안 되고, 너무 가벼운 것도 안 되며, 너무 길거나 너무 짧아도 안 되었기에, 생각보다 쓸 만한 것들은 얼마 안됐다.



‘이런 거 들고 다니다간, 니들이 말려. 에혀.. 뭐, 원래 나 같은 깡패새끼가 아니니 당연하겠지만.’



나는 우물쭈물 내 행동을 지켜보는 그들에게서 오히려 짐만 될 것 같은 것들을 골라 망설임 없이 집어 던졌다.


그리곤 당황하는 그들에게 학생식당의 위치를 물어 앞장을 섰다.


어느 곳이든, 싸움에 임하기 직전엔 잘 먹어야 하니까.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12시 10분이었다.


각 단과대학별로 사전 집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종천이를 살려내라!”



학생들은 각 단대 학생회별로 더 작은 단위의 과학생회와 학년대표, 신입생들의 발언들을 들었다.


그들은 시위 때 외칠 구호와 노래들로 심장마다 예열을 마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헌법 쟁취하자!”



김창수 대장의 소카 사수대원들도 짧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연대 정문을 향해 떠났다.


쇠파이프와 밤새 채운 화염병을 들고 뒤돌아선 그들의 뒷모습이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결연했다.



‘그래. 니들도 힘들게 대학까지 와서 그런 거나 들고 다니고 싶진 않았겠지. 염병. 개 X같은 나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갑자기 그들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왠지 그걸 보고만 있는 내 꼬라지가 어른으로서 쪽팔리고, 미안했다. 그리고..



‘그나저나 얘는 대체..’



그 와중에도 나는 한율이를 찾아대느라 고개를 기웃거렸다.




***




1987년 6월 9일. 오후 1시 경.


드디어 최종적으로 연대 안의 모든 학생들이 그들의 교정 깊숙이 자리한 노천극장으로 모여들었다.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서인 총궐기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단대 별로 들어오는 깃발과, 학생들 사이사이 구호로 외쳐지는 현수막 글귀들이 보였다.



‘종천이를 살려내라! 직선개헌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



명동 성당의 그날 이후, 6월을 뜨겁게 달궜던 그 외침들이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흐릿한 게, 현실감이 없다.


노천극장 바닥을 가득 매운 학생들의 분노와 열기는 물론, 마이크로 찢어지는 엄청난 소리조차 분명치 않게 그저 웅웅거린다.


내가 지금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히 그동안 해왔던 그 무수한 말들과 다름없는 말들일 텐데.


지원연설을 하기 위해 오른 무대 위의 소리조차 온통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하다.


아마도 지금 내 머릿속을 울리는 이 선명한 소리 때문이겠지.



‘대장님! 지원발언만 마치고 달려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본대가 내려올 시간도 벌어야 하니, 절대 시작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한율이는, 한율이는 꼭 제 서포트로 후방에 남겨주셔야 합니다.’



나는 소크와 헤어지기 직전, 내가 몇 번씩이나 김창수 대장에게 한 말을 끝임 없이 되감고 있었다.


의아한 표정의 김창수 대장이 내 성화에 못 이겨 알았다고 대답했던 그 얘기를.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이 마당에 왜 그러냐고 꼬치꼬치 따질 것도 아니고.’



어떻게 끝냈을까.


발언을 마무리 지은 나는 인사를 건네는 우상우의 손에 내 양복 재킷을 벗어 대충 떠안기곤, 미리 챙겨두었던 방패를 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내 왼쪽 팔뚝으로 묶은 거친 손방패의 끈을 질끈 당기고 또 당겼다.


정문을 향해 질주하는 내 뒤로 사회자 우연이 나의 목적지라도 알려 준 듯,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그런데..



- 펑! 퍼버벙! 펑! 펑! 퍼벙!.. -



정문이 눈앞에 보이고, 이제 100 여 미터 남짓. 조금만, 조금만 더 달리면 되는데, 달리면 되는데!



‘이런 X발! 대체 왜 벌써..’



연대정문 길 건너 굴다리 밑에서 방패로 벽을 세운 전투경찰들이 최루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노천극장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경찰의 봉쇄를 뚫어 진출로를 확보하려는 김창수 대장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김창수 이, X새끼. 내가 그렇게 말을 했건만.. 하여튼 말들은 드럽게 안 들어요.’



나는 김창수의 판단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튀어 나오는 욕설을 멈출 수 없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직사는 아니었어!’



자욱한 최루연기 사이로, 십여 명씩 줄을 지어 스크럼을 짜고 버티는 소크 대원들이 보였다.


200여 명, 아직까지는 막을 수 있다! 막을 수 있어!


나는 사력을 다해 정문으로 질주했다.


그런데 그런 내 두 눈에 소크 대원들을 건너, 전경들의 방패 벽을 건너, 최루탄 총을 들고 있는 전경들의 방어 헬멧을 두드리며 걷고 있는 개새끼가 보였다.


나는 김창수가 총학생회실에서 보였던 그 수신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새끼들이 진짜!



“방패 앞으로!!”


가까스로 소크 앞으로 도착한 내가 벼락같은 사자후를 토했다.



- 퍼버벙! 퍼벙! 펑! 펑!.. -



이어, 간발의 차이로 전경들의 두 번째 최루탄이 발사됐다.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나름 훈련된 소크 대원들은 일제히 전위에서 손방패를 들었다.



‘빡! 빠각!’



한 두 개의 손방패가 묵직한 최루탄 통에 맞아 부서졌다.



‘괜찮아! 좋아! 이 정도면 충분..’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전경들의 방패 벽이 열리고, 사복차림의 체포조 병력들이 튀어나올 준비를 한다.



‘백골단이다! 엉? 백골단? 그럼.. 그럼 최루탄은 끝인가?! 사.. 살린거야 내가? 한율이.. 한율이는..’



나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한율이를 찾았다.


이미 두 번째 최루탄과 백골단을 피해 흩어지기 시작한 소크 대원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한율이는 보이지 않고, 정문 앞엔 백골단과의 일전을 각오한 십 수 명의 학생들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악마를 보았다.


아까, 최루탄 직사 수신호를 보냈던 그 개새끼가 다시 백골단을 방패 벽 안으로 들이곤, 그 사이로 최루탄 총을 내밀게 하고 있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987 미안해 아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34화 설계된 엔딩 (2) 23.05.26 151 5 9쪽
34 33화 설계된 엔딩 (1) 23.05.26 164 5 9쪽
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31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9 5 9쪽
30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5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90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5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9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1 7 10쪽
»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6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3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3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6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9 9 11쪽
9 8화 시국사범 (4) +1 23.05.13 324 8 10쪽
8 7화 시국사범 (3) +2 23.05.13 337 11 10쪽
7 6화 시국사범 (2) +1 23.05.12 357 10 11쪽
6 5화 시국사범 (1) +1 23.05.12 418 1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