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신의 영역을 향해서 (2)
2068년 겨울. 별빛센터 B구역 옥상정원.
변 박사가 정원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왔음에도 그 사이로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파고든다.
후.
변 박사가 긴 한숨을 내뱉는다. 입을 통해 흘러나온 따뜻한 공기가 허공에 가득한 찬 공기와 만나 하얀 연기를 만들어낸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변 박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바닥에 쌓인 눈을 밟고 와서인지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변 박사가 살짝 고개를 돌린다. 정 박사가 보인다. 변 박사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정 박사가 아무 말 없이 변 박사 옆에 선다.
변 박사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정 박사가 변 박사를 흘끔 바라보다가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흐른다.
정 박사는 몇 시간 전 있었던 회의를 떠올렸다. 그 회의에서는 ‘제2시민 프로젝트 두 번째 연구’에 관한 보고가 이어졌다. 변 박사도 그 연구에 참여하고 있기에 회의에 참여했다. 그리고 성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성하 살린 거 후회해요?”
정 박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반반.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이 일을 하는 거니 잘 살렸다는 생각도 들고, 괜한 연구에 휘말리게 해서 이용당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변 박사가 말한다.
“그렇군요,”
정 박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여름, 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에 왔던 성하는, 결국 죽었다. 사고를 당했을 때 이미 많이 다쳤던 터라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변 박사는 성하를 ‘제2시민 프로젝트 두 번째 연구’의 대상자로 선정한 후, 성하를 살리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변 박사가 처음 실험을 시작할 때, 그 실험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변 박사를 말렸다. 하지만 변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 죄 없는 성하가 허무하게 죽었는데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실험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 결과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실험을 단 한 번 만에 성공했다.
“선배는 만약에 실험이 한 번 만에 성공하지 않았으면, 포기했을 거예요?”
정 박사가 묻는다.
“글쎄. 아마 포기했을 거 같아. 수십 번의 실험을 통해 그 사람을 살린다면, 그 사람에게 계속해서 고통을 주는 거일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으로의 의미가 사라져서 의미가 없을 거 같아.”
변 박사가 말한다.
“저랑 생각이 같네요.”
정 박사가 말한다.
변 박사가 희미하게 웃는다. 자신이 성하를 살리려고 노력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성하가 깨어나서 이 일을 알게 되면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할지, 원망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게 잘한 일이라고 믿었다.
“이제 슬슬 들어가자.”
변 박사가 말한다.
“네.”
정 박사가 말한다.
변 박사와 정 박사가 나란히 정원을 빠져나간다. 눈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함께 찍혔다.
*
며칠 후 D-2구역 제6실험실.
변 박사가 실험실로 들어온다. 실험실 가운데에는 수술용 침대가 있고 그 옆에는 수술 도구가 있다. 방금까지는 사용한 흔적이 가득했는데, 누군가가 치우고 갔는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말짱하다.
정 박사가 실험실로 들어온다. 변 박사가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한다. 정 박사도 변 박사에게 인사한다.
“성하 일어났다던데, 선배는 만났어요?”
정 박사가 묻는다.
“응. 만났지.”
변 박사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어때요? 좀 괜찮아요?”
정 박사가 묻는다.
정 박사의 물음에 변 박사가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긴다. 몇 시간 전에 성하를 만났을 때, 성하의 상태가 어땠는지를 떠올린다.
‘안녕.’
변 박사는 평소처럼 성하에게 인사했다.
‘어. 안녕하세요.’
성하는 당황한 얼굴로 변 박사에게 인사했다.
변 박사는 그런 성하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와 다른 모습 때문이었다. 성하가 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는 곧 밝혀졌다. 성하가 변 박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변 박사는 내색하지 않았다. 일단 성하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면 자극 하나에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
변 박사는 성하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변 박사의 물음에 성하는 ‘부모님과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라고 말했다. 그 부분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 왜 그날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있었는지,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는지도 기억해?’
변 박사가 이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하지만 성하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서주와 율주 중 어디서 살았는지 기억하는 게 없었다. 성하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 부모님이 있었다는 것, 부모님과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 외에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었다.
‘모, 모르겠어요.’
계속되는 변 박사의 질문에 성하는 당황했다.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변 박사는 성하에게 질문하는 걸 그만두었다. 괜히 성하를 괴롭힌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들었다.
“선배?”
정 박사가 변 박사를 조심스럽게 부른다.
“어?”
변 박사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너무 오래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성하는 괜찮아요?”
정 박사가 다시 묻는다.
“기억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 온전하지 않은 것도, 뒤죽박죽 섞인 것도 있는 것 같거든.”
변 박사가 말한다.
“그래요? 그럼 아직 지켜봐야겠네요.”
정 박사가 말한다.
“응. 그래야지.”
변 박사가 말한다.
흠.
변 박사가 작게 한숨을 쉰다. 일단 살리기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 하필 접근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도 일단 되는 데까지 해 봐야지.’
변 박사가 생각한다.
엎질러진 물이다. 성하를 살리기 위한 실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니 끝을 봐야 했다.
*
1년 후. A-2구역.
탁.
변 박사와 정 박사가 성하의 병실에서 나온다. 성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 막 나오는 참이다. 정 박사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방음앱을 켠다.
“성하, 기억이 돌아오기는 했는데, 뭔가 애매하죠?”
정 박사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묻는다.
“그러게요. 율주에 관한 기억이 특히 엉망이네요.”
변 박사가 말한다.
변 박사가 방금까지 성하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성하는 자신이 ‘서주에서 살다가 어렸을 때 율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살았고, 다시 서주로 이사 오게 되었다’라고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간을 부모님과 함께했다고 생각했다. 성하의 머릿속에 할머니에 관한 기억은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
그것 때문에 성하의 ‘율주에서의 10년’이라는 기억은 드문드문 빈 곳이 많았다. 율주에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건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이기에, 부모님과 함께했던 일들만 모아놓으면 빈 곳이 많은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성하는 괜찮은 듯 보였다. 그래서 기억을 찾는 게 중요한가 싶기도 했다.
‘자꾸 꿈에 이상한 사람이 나와요.’
성하는 어느 날 갑자기 변 박사에게 그 말을 했다. 변 박사는 성하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자신을 친근하고 다정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변 박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할머니가 성하의 할머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성하가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내가 옆에서 자기를 늘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동시에 성하의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변 박사는 그때부터 성하의 기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하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지냈던 그 시간이 힘들지 않았음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성하가 나중에 가서라도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변 박사는 성하의 기억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그러다가 찾은 방법이 ‘블루문’을 사용하여 최면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있지는 않았다.
“허 센터장님께서 계속 실험 잘 되냐고 묻는데, 걱정이네요. 계속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요.”
정 박사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게요.”
변 박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성하의 기억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허 센터장’이었다. 허 센터장에게 ‘제2시민 프로젝트 두 번째 연구’는 의미 깊은 연구였다. 죽은 사람마저도 살려낼 수 있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신의 영역을 향해가는’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 센터장은 성하에게 관심이 많았다. 변 박사에게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매번 묻고, 자신이 직접 변 박사가 쓴 보고서를 읽으며 이런저런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연구가 막혀 있을 때는 계속해서 압박을 주기도 했다.
변 박사는 그런 허 센터장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 센터장이 지시하는 실험의 강도가 높아서 그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 센터장은 그저 성하를 실험체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게 참 불편했다.
그래도 변 박사는 어느 정도는 허 센터장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줘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백설처럼 성하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지금은 성하의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어쩌면 자신의 능력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블루문’이 먹히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변 박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네?”
정 박사가 묻는다.
“어. 아니야.”
변 박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변 박사가 정 박사의 표정을 살핀다. 대수롭지 않은 척 넘어갔지만, 괜히 가슴이 쿵쿵거리며 뛴다.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정 박사가 내용을 다 들었을까 걱정된다.
“일단 좋은 방법이 더 없나 생각해 보죠.”
변 박사가 말한다.
“네.”
정 박사가 말한다.
변 박사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다행히 정 박사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들키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
1년 후. B구역 변 박사 연구실.
변 박사가 연구실에서 바쁘게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인데도 일이 많아 집에 가지 못했다.
지이잉.
한참 보고서를 정리하는데 온 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 박사가 스마트폰 뒤에 전파 방해 스티커를 붙인 후 전화를 받는다.
―성하가 윤리위원회에 편지를 보냈더라. 혹시 제2시민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니?
온 박사가 묻는다.
“네. 죽을 뻔했는데 연구를 통해서 살아났다, 정도만 이야기했어요.”
변 박사가 말한다.
―그랬구나.
온 박사가 말한다.
변 박사는 얼마 전 성하에게 성하를 살리기 위해 진행했던 연구에 관해 이야기했다. 성하에게 사실 사고를 당한 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살리기 위해서 새로 복제한 몸에 뇌를 이식하는 수술을 했었다고 이야기했다.
성하는 처음에 그 사실을 듣고 놀랐었다. 자신이 잠들어 있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오늘, 성하는 변 박사에게 말했다. 그 연구에 관해서 들었을 때 조금 놀랐지만, 변 박사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니기에 믿는다고 말이다.
다행이었다. 성하가 그 연구에 거부감이 없다니 말이다. 변 박사는 혹시라도 성하가 이 일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고민했는데, 그런 고민이 조금은 가셨다.
―성하가 참 강한 아이야. 기억을 찾아주겠다고 능력을 썼던 것도 괜찮다고 하고,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했던 것도 괜찮다고 하고.
온 박사가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성하가 사고당했을 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었대요.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변 박사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래. 아무튼 성하가 좋게 생각해줘서 고맙네. 성하한테 잘해.
온 박사가 말한다.
“네. 당연하죠.”
변 박사가 말한다.
그 후로도 온 박사와 변 박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가 인사를 나눈 후 전화를 끊는다. 변 박사가 잠시 머리나 식힐 겸 차를 한 잔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창문으로 다가간다. 창문을 통해 눈이 소복이 쌓인 바깥 풍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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