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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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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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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2)

DUMMY

Episode 1 - 세계는 지금 2



"어......"

정혁의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감각 자체가 사라지고 두뇌 회전이 느려진다.

머리에서는 간단 명료한 답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도망쳐야 할까, 근데 어디로?

맞서 싸워야 할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의 회로가 잠긴 것인지 물음을 던지는 것마다 공허로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 오지마......!"


정혁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데시벨로 소리를 질렀다.

혹여나 정혁의 자기 방어에 놀라 괴물이 뒷걸음질을 쳐주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 괴생명체는 곧장 정혁에게 달려들었다.


입을 쩌억 벌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로.

거대한 발톱을 바닥에 찍으며 굶주린 짐승처럼 정혁을 향해 돌진한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괴생명체는 이제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다리를 움직여야 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바닥에서 떼어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쿠당탕-!

"크워어어어어!!!"

괴생명체의 얼굴이 콘크리트 바닥에 쳐박힌다.


정혁이 숨을 고르며 놈의 눈을 마주한다.

'가...., 간신히 피했어....!'

괴생명체가 열이 받은 듯 곧장 다시 정혁에게로 달려왔다.

'이...., 이번엔.....!'


반응이 늦었던 지라 이번에는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는 찰나.


투두두두두두두--

거센 총격음이 들려왔다.

푸슉- 푸슉- 푸슉- 푸슉-


총알이 피부에 박히는 기괴한 소리와 괴생명체의 울음.

마치 RPG 게임에서 바바리안을 처치할 때와 같은 부류의 소음이었다.


정혁이 눈을 떴다.

괴생명체는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나더니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저....., 저 녀석.....!'


정혁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눈을 다친 거야!'

두두두두두두-

정혁이 공중을 올려다 보았다.

헬기 몇 대가 대지에 존재하는 괴생명체들에게 쉴 새 없이 기관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학생!"


바로 몇 미터 상공에 떠 있는 헬기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헬멧을 쓴 채로 괴생명체에게 총알 궤도를 맞추고 있는 군인.

정혁은 숨소리를 뱉으며 그저 멍하니 남성의 손짓을 바라보았다.


"뭐하고 있어, 빨리 사다리를 잡아!"

헬기에서 내려온 나무 사다리가 정혁의 허리 즈음에 다다랐다.

군인은 계속 올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시간 끌면 저 놈에게 당하고 말아, 어서 사다리를 잡아!"


정혁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신체에 힘을 주어 나무 사다리에 올랐다.

"크와아아아아아!!!"

괴생명체가 발톱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정혁이 탄 사다리로 다가온다.

"으, 으아아아!!"

정혁이 재빠르게 올라간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던 육체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무 사다리를 오르는 지금만큼은 세계 클라이밍 선수권인 인물들보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학생, 위험해!"

나무 사다리를 절반쯤 올랐을 무렵, 괴생명체가 사다리의 아랫부분을 부숴버렸다.

콰직- 소리와 함께 밧줄과 나무 판자가 힘없이 부스러진다.


"어, 어떻게 내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아는거야!"

감각인가.

아니면 아까 정혁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던 후각의 발달인가.

어느쪽이던 긴박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정혁은 더욱 빠른 속도로 사다리를 올랐다.


여섯, 넷, 둘, 하나..... 텁!

정혁은 군인의 손에 붙들려 헬기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체력의 방전과 약간의 타박상이 정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압박했다.

"학생, 어디봐. 다친 곳은 없어?"

헬기의 회전익 소리 때문에 자세히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전달 메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네, 심히 다친 곳은 없어요!"

빠악-

"읏!"

순간 정혁의 오른 어깨에서 뼈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퍼진다.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보통의 타박상은 아니다.

'아까 전에......!'

옥상에서 괴생명체의 공격을 피했을 때를 떠올린다.


'그 때 바닥에 어깨를 세게 부딪혔군.'

그 생각과 더불어 머릿 속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아!"

"왜 그래?"

군인이 기관총을 장전하며 물었다.

"지, 지금 당장 ××안 아파트 102동으로 가주세요!!"

정혁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두 손으로 군인의 한 쪽 팔 소매를 붙들었다.

"뭐, ××안 아파트?!!"

"급해요, 저희 부모님이 계시단 말이에요!!"

군인이 정혁의 두 팔을 뿌리쳤다.


"이미 외곽 쪽은 늦었어, 손 쓸 도리조차 없다고!! 지금 중요한 건 네 자신이야! 비록 가족의 생사는 안타깝지만 이제는 네 목숨을 생각해야 해!!"

'뭐라고?'

뚝-

정혁의 평정심이 끊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깔깔대며 같이 티비를 시청하던 아버지.

입이 심심하지 않냐며 과일을 깎아주던 어머니.

항상 게임만 하지 말고 다른 생산적인 일이나 하라고 간섭했던 여동생.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인가.

한 순간에 무너진 정혁의 멘탈이 산산히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개- 소리하지 마!!"

정혁은 군인의 몸체를 돌려 멱살을 잡았다.


"말이 안되잖아,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군인은 당황한 듯 정혁의 두 팔을 잡았다.

"이거 안 놔?!"

"갑자기 괴생명체가 나타나서 도시를 죄다 때려부수고 있는 이 상황이 말이라도 된다 생각하냐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었지만 정혁은 그런 사고 회로가 돌아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위험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정상적인 판단이 설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이 손을 놓지 않으면 널 제압할 수 밖에 없어!"

군인의 확고한 대답에도 정혁은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안이야, ××안! 지금 빨리 그 쪽으로 가서 우리 가족 생사만 확인한다고!!!"

'이 멍청한 새끼!'


군인은 곧바로 정혁의 턱을 잡아 벽으로 몰아세웠다.

쾅-!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군인의 손이 정혁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빡-!

"커헉.....!"

정혁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헬기 내부에는 회전익의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진짜 기절시킨거야?"

조종사가 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 이 상태로 놔두면 계속 난리칠 게 뻔하니까."

군인은 정혁의 축 늘어진 몸체를 바로세웠다.

앞 쪽에서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일단 안전지대로 데려가야지."

"그래."

조종사는 몇 개의 조작키를 만지작 거리더니 궤도를 틀었다.


군인은 다시 기관총을 잡고 대지에 흩뿌려져 있는 괴생명체를 조준했다.

"지옥이 따로 없구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회전익 소리에 파묻히며 총알이 발사되었다.


-------


[ 이 친구, 데려온 지 얼마나 됐어? ]

작게 울려퍼지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 2시간 조금 넘었습니다. ]

이번에는 여성의 목소리.


희미한 의식 너머로 밝은 빛이 정혁의 눈을 정면에서 내리쬐고 있다.

[ 도대체 언제 깨어나는 거야, 다른 인원은? ]

[ 3 휴게실 병상에 눕혀 놓았습니다. ]

[ 일단 이 친구 깨어나면 다시 불러줘. ]

[ 알겠습니다. ]


여성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중단된 듯 보였다.

정혁은 희미한 눈꺼풀을 위로 치켜올렸다.

하얀 천장 라이트 빛이 비춰지자 자연스레 한 쪽 눈을 감고 팔을 들어 빛을 차단하였다.

"으으으으......, 여긴......?"


[ 응, 깨어난건가? 지휘관님, 이 친구 일어난 것 같습니다. ]

[ 정말이야? ]

작게나마 들려오는 목소리 뒤로 군화가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 보십쇼, 팔로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

[ 어이, 친구. 괜찮아? ]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와 함께 한 글자를 내뱉었다.

"ㄴ, 네.....?"

[ 라이트 꺼봐. ]

남성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정혁의 눈을 부시게 하던 하얀 라이트가 꺼진다.


그제서야 정혁은 팔을 내린다.

[ 일으켜 세워봐. ]

등 쪽에 감촉이 느껴진다.

하나는 거대하고 하나는 얇다.

그리고 서서히 힘을 준다.

정혁의 몸이 곧게 세워진다.


우득- 우드득-

곧게 뻗은 느낌과 함께 뼈 소리가 모두의 귀를 덮친다.

"어때, 정신 좀 차릴 수 있겠어?"

이제서야 제대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눈에 들어온 두 명의 실체.

흑발의 긴생머리를 지닌 아리따운 여성과 짧은 머리를 지녔음과 동시에 눈가에 흉터를 보유하고 있는 남성.


대충 어림잡아 30대 중반 쯤으로 보인다.

"몸은 좀 어때, 특별하게 아픈 곳이 있나?"

정혁은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초록 매트가 깔린 병상 위에 누워있는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수술용 도구들.

그리고 피가 묻어있는 붕대와 진열장을 가득 채운 알약통.


'치료실인가.....?'

정혁은 눈의 초점을 남성에게로 맞췄다.

"여긴 어디에요?"

군인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잠시 쳐다본다.

"여긴, 고릴라4 막사기지야."


"고릴라, 막사....., 뭐라고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막사는 무엇이고 고릴라4는 또 어떠한 은어인가.

정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 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아,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해버렸군."


남성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난 후 말을 이었다.

"여긴 쉽게 말하자면 너희같은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된 안전지대야. 또한 군대를 운영하는 적당한 크기의 막사이기도 하지. 어, 막사가 뭐냐면......."

"그냥 군인들이 생활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여성이 말했다.


"위치는 어딘데요?"

정혁의 두 번째 물음이 이어졌다.

"춘천 방면이야."

"춘천이요?!"

정혁은 입을 벌리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먼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쭉 기절을 해왔던 것인가.


오른쪽 머리가 띵해졌다.

턱 쪽에는 감각이 없었다.

문득 드는 한 가지 생각.

가족.


"저, 저희 가족이 아직 동네에 있을 거예요! 저 좀 데려다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아직 집 안에 숨어있을수도 있고, 아니면 거리 밖에서 도망치고 있을지도 몰라ㅇ.....!!"

쾅-!!

남성 군인이 옆 테이블을 내리쳤다.


곧이어 정혁을 노려보았다.

"너......,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무언가 막을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두려움의 아우라가 감지된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정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말이야......"

남자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엄청난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작가의말

끝가지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를 표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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