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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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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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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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임재현 (3)

DUMMY

가운 차림의 임재현.

그는 다시 무너진 알현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잔해를 뒤져 망가진 왕좌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가 지도자가 된 이후 늘 앉아 있던 곳.

그리고 오늘 김윤을 맞이할 때 앉아 있던 곳이었다.


그는 그것을 바닥에 잘 세운 후, 그 위에 걸터앉았다.

가운에 흙먼지가 묻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위에 앉은 그는 자신의 마력을 일으켰다.

고유 능력, 땅의 주인.

자신의 마력이 스며든 땅 위에 있는 이들에게서 마력을 세로써 받는 스킬.


아직 그에게 세를 내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죽지 않았고, 김윤 역시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흐음······.”


임재현이 하나 남은 팔걸이에 왼손을 올린 후, 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격한 전투로 잠은 전부 달아났다.

그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가 이곳, 섬광의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의 일을 말이다.


그는 멸망한 세계에서, 아공간에서 지구를 되찾기 위해 힘쓰는 리터너였다.

C랭크로 리터너의 활동을 시작했던 그.


고유 능력이 달랐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뿐.


그는 그 시절 자신의 고유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의 고유 능력은 자신의 마력이 스며든 땅에서 세를 받는 것.

그리고 그 세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끝 없이 그를 향해 흘러들어오는 마력.

그리고 그것은 그가 품을 수 있는 마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야 이 때의 그는 마력 랭크 C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자신이 품을 수 있는 마력의 한계를 넘는 마력은 오히려 육신을 망친다.

넘쳐 흐르는 힘이 내부에서부터 그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고통스러운 나날이 시작됐다.

힘을 사용한 날은 함부로 잠들 수도 없는 나날이었다.


잠들었다가 마력의 한도를 넘어서 마력이 들어온다면, 그는 사지가 폭발해 죽을 것이니 말이다.

때문에 그는 능력을 사용한 날이면 늘 쪽잠만 자며, 그 마력을 다루기 위해 노력했다.


육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마력을 한계까지 방출했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했다.


모든 마력이 바닥나고, 모든 근육이 망가져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그는 늘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리터너로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포탈을 통과했다.


그는 늘 노력했다.

살기 위해, 지구를 되찾기 위해.

리터너로서.

자신에겐 힘이 있으니까 그것을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게 옳다고.

세상이 멸망했으니 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름과 마찬가지로 섬광, 신인천에서도 몇 번의 재건 원정이 있었다.

아름보다는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으나 지구를 완전히 되찾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욕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들이 말이다.


우리는 늘 사선에 서 있는데.

특히 나는 더욱이 그러한데.


짜증이 치솟았다.

분노가 치솟았다.

역겨움이 치솟았다.

하지만 참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인류.

자신과 동족 아닌가.

저들도 이곳의 삶이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여기며 참았다.


그리고 그는 단련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그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의 성장은 땅의 주인, 고유 능력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가 성장한 것은 순전 노력 때문이었다.


그의 마력의 랭크는 A를 돌파했다.

끝없는 단련, 그것을 통한 근육의 손상.

마력이라는 것을 통해 빠른 재생.

그리고 그 마력이라는 것 역시 완전히 소모하는 것으로 더욱 빠른 재생이 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체적인 총량마저 늘었다.


노력만 한다면 마력의 양은 늘릴 수 있는 것이었다.

육체 역시 단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용 스킬을 이용한다면 고유 스킬에 못지않게 힘을 다룰 수 있었다.


모두가 강해져 더욱 빠르게 지구를 재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그는 도시에 그것을 알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힘이 있다면 리터너를 했다고 불평하던 이부터.

자신의 가족을 찾아달라고 애원하던 이들에게까지.


하지만 그의 수련법은 고된 것.

그렇기 때문일까.

노력하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타인이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왜 우리가 강해져야 해? 우리가 지원해주는 물자로 리터너들이 먹고 사는 거잖아?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이 있는 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그들의 역할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물자의 재료는 누가 구해오지?

결국 그것 또한 리터너다.


그러니 너희의 그 입은 다물었어야지.

편안하게 아공간 내에서 아무런 위협 없이 살아가는 놈들이.

우리는 너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식량과 재료의 수급을, 지구의 재건을 해나가고 있는데.


다시금 분노가 치솟았다.

역겨움에 토악질이 치밀었다.

그들의 뻔뻔한 태도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놈들을 위해 자신은 지금까지 목숨을 바쳤는가.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를 떠올렸다.


나는 분명 길을 알려줬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너희들이다.

그저 해달라고만 주저앉아 입을 털던 것이 너희들이다.


그러니 그 나태의 죗값을.

가벼운 입의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리터너가 더욱이 존중받는 세상.

그들의 노력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

그 두 가지의 공존이 필요했다.


그래서 임재현은 움직였다.

모든 도시에 자신의 마력을 흩뿌렸고, 자신을 한계 그 이상으로 밀어붙였다.


1년, 그리고 2년.

그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평범한 인간은 품을 수 없는 거대한 마력을 품는 육신.

그리고 그 거대한 마력을 공급해주는 고유 능력.


모든 것이 완성됐다.


그는 자신과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시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장을 죽였다.


간단했다.

그에겐 압도적인 힘이 있었으니까.


몇몇 길드의 반발이 있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그에게는 압도적인 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모은 모든 돈을 투자해 그들은 수많은 무구를 준비했다.

이날의 반란을 완벽하게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이날, 섬광에 있는 모든 길드와 정부는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바라던 세상이 시작되었다.


힘이 있는 자는 대우 받는다.

노력한 자는 대우 받는다.


반면 그러지 않는 이들은 죗값을 치른다.

멸망한 세상, 모두가 힘써야 하는 세상에서 그것을 하지 않는 이들은 말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제도를 위해 했던 일은 옳다고 할 수 없었다.

평화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이어 그는 도시의 이름을 바꾸었다.

노력하는 이들의 빛, 섬광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노력은 빛 그 자체이니.

그는 그것을 존중할 것이다.


이제 섬광은 그런 도시였다.

노력하는 이들이 빛을 발하는 도시.

멸망한 세상, 몬스터와 맞서야 하는 세상에 걸맞게 힘이 있어야 하는 도시.


-······사람마다 맞는 삶이 있는 거다. 모든 사람이 너와 같을 순 없어.


임재현은 김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정말 이 길이 옳은 것일까.

그 말로 인해 의문이 솟았다.

노력은 그가 했던 힘에 대한 추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너는 힘을 길렀지?”


임재현이 허공을 향해 물었다.

당연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지도 제작자지 않나? 그것도 아공간의 지도를 만드는 별종.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도 아닌 이가 왜 힘을 길렀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쾅!


임재현이 하나 남은 팔걸이에 주먹을 내리쳤다.

팔걸이가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자기방어를 위한 단련이라면 다른 놈들은 왜 그 정도로 단련하지 않는 거지?! 그저 시간만 허비하며 지구를 되찾기를 바라기만 하는 놈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면서 목숨을 바치는 우리를 욕하지. 성공하지 못했다고. 우리의 노력, 죽음과 마주하는 일면은 보지도 못한 것들이-!!”


임재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아공간의 천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게 자신의 것을 되찾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했어야지-!!”


그럼에도 분노가 식지 않는지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주먹을 타고 풍압이 일며 일대의 대지가 벗겨져 나갔다.


“이 길이 맞다.”


임재현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겼다.


“놈들은 빈민이 맞아.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다. 이렇게 바뀐 세상에서도 노력조차 하지 않는 그놈들은 그대로 사는 게 맞아. 네가 틀렸다. 지도 제작자.”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김윤이 그와 싸우다 떨어뜨린 것들이었다.


“네가 그려야 할 지도의 길은 이미 완성되어 있으니까.”


임재현이 발걸음을 옮겼다.



***



“후······.”


김윤이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툭. 투둑.


그러자 그의 뺨을 타고 흐른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김윤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 자신의 손을 살폈다.


그에게 혈액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충분히 많은 피를 보아오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가 수행한 비밀 지도의 의뢰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한 공포는 그에게 남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하나와 조합한다면 방아쇠가 될 수는 있었다.

그의 트라우마를 불러와 발작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손이었다.

그의 손을 통해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 피의 온도, 피의 점도.

그 모든 것이 그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가 아공간에만 있는 것이니 말이다.


포탈, 그것 역시 그에게 트라우마를 일으켰다.

포탈이 가까워졌을 때 느껴지는 마력의 움직임.

포탈을 탔을 때 일어나는 미약한 멀미.


그것들이 그를 발작으로 밀어 넣었다.

그날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김윤은 다시 바닥을 물들인 피를 바라보다 인벤토리를 열어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피를 닦아낸 후, 그것을 바닥에 버렸다.

정확히는 그 피 위에 떨어뜨려 그것을 가린 것이었다.


-내가 틀렸나? 나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놈들에게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줬을 뿐이다.

-그럼 너는, 네게 맞는 삶은 지도나 만드는 건가?


피로 물들어가는 손수건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는 임재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은 노력했던 것일까.

지금 지도를 만들고 있는 삶이 옳은 것일까.


김윤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있는 중앙 구역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곳에 있는 자가 선택한 길은 옳지 않다.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막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받은 의뢰이며, 이곳에서 해야 할 일 같았으니 말이다.


김윤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뒤를 잡고, 입을 막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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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기억과 길 (2) 23.09.26 7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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