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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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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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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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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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DUMMY

“갑자기 뭐야, 한국에 왜 돌아왔어?”


형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표정을 보니 진짜 갑자기 돌아왔나 보다.

원래 뭔 짓을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 지맘대론데.


“야, 너 MBTI T지. 4년 만에 형 얼굴 봤으면 뭐, 보고 싶었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런 걸 물어봐야지 왜 돌아왔는지 부터 물어보는 게 이게 말이냐?”

“별로 안 보고 싶었고 어떻게 지냈는지 별로 안 궁금해서 안 물어봤어.”

“아오~ 틱틱 거리는 거 봐~ 집에 돌아왔다는 게 확 체감되네~.”


형은 인사는 이 정도면 됐다는 듯 갑자기 호로록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우당탕탕 잔뜩 짊어지고 온 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랑 아빠는 대체 뭘 저렇게 많이 가져왔나 형의 방앞에 서 형이 하는 짓을 구경했다.


“⋯근데 준혁아, 너 진짜 갑자기 왜 돌아왔냐?”


형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살짝 물었다.


“혹시 어디 다치거나 한 건 아니지?”

“에헤이~ 아버지까지 왜 그러십니까? 그냥 계약기간도 끝났겠다 고향 그리워서 왔어~.”

“그럼 말이나 좀 하고 오지⋯.”

“백수 된 게 뭐 자랑이라고 소문까지 내면서 옵니까~.”


형은 지난 4년간 유럽 각국을 떠돌며 일했다.

직업은⋯ 나랑 같은 헌터였다.

그것도 무려 B급 헌터.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도 각성자 한 명 있기 힘든데 어쩌다 보니 우린 우애 좋게도 형제가 쌍으로 각성해 쌍으로 헌터가 되었다.


“그런데 대체 뭘 이렇게 많이 싸 들고 온 거야? 벼룩시장도 아니고 온 집안에 다 깔아놨네.”

“이거?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사다 보니까 이만큼 모이더라.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라.”


나는 형이 바닥에 쌓아둔 온갖 물건을 뒤적거려 쓸만한 게 있나 찾아봤다.


“오?”


그런데 형이 쌓아둔 물건은 의외로 벼룩시장이 아니라 보물창고였다.

명품의 본고장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에X메스, 샤X, 루X 비통, 구X.

그냥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의 옷이나 신발 같은 게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럼 나 이거 가질래.”


어차피 형제라 키든 체형이든 발 사이즈든 다 비슷비슷하기에 나는 구두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건 내가 전 여친한테 선물 받은 추억의 구두라 안 돼.”

“그럼 이건?”


이번엔 벨트를 골랐다.


“그건 전전여친이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준 거라 안 돼.”

“그럼 저 바지는?”

“그건 전전전⋯전전? 여친이 생일 선물로 준 거라 안 돼.”

“⋯너 계약만료가 아니라 제비짓하다 고소당해서 추방당한 거지?”

“우린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했어, 다만 너무 뜨거워서 빠르게 불타버렸을 뿐이지. 예술의 도시 파리, 낭만의 도시 로마, 열정의 도시 바르셀로나! 그런 곳에 있으면서 어떻게 사랑이 싹트지 않을 수 있을까? 뭐, 우리 만년솔로 남녀칠세부동석 박준호 씨께서는 모르겠지만~ 야 근데 너 설마 아직도 여자친구 없냐?”

“⋯⋯⋯⋯.”

“어머, 잠깐만! 너 그 반응 뭐야? 진짜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나는 못 들은 척 형의 물건을 뒤적거렸다.


“아빠! 얘 어떡해! 진짜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세상에 24살 넘도록 여자친구 한 번 못 사귀는 사람이 어딨어!”

“그⋯ 너무 그러지 마라, 애는 착하잖아.”

“준호야, 형은 네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어도 이해해 줄 수 있어, 혹시 그런 게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형제끼리 힘을 합쳐보자, 사랑한다 내 동생.”

“아, 그런 거 없다고 미친놈아! 그냥 일하느라 바빠서 그래!”

“바빠도 내가 너보다 더 바쁘면 바쁘지 않았을까? 너 지금 그게 핑계가 된다고 생각하니?”

“아, 몰라, 이거 내가 가진다!”

“어어, 야! 안 돼 이 새끼야!”


내가 셔츠 하나를 들고 방으로 도망치려 하자 형은 잽싸게 셔츠를 붙잡았다.

누가 B급 헌터 아니랄까 봐 움직임이 더럽게 빨랐다.


“내놔!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가지라며!”

“이건 안 돼!”

“뭐 다 안된대! 대체 되는 게 뭐야?!”

“일단 이건 안 돼! 어어, 놔라, 찢어진다? 이거 470유로짜리다? 찢어지면 물어내라?!”


- 삑, 삑삑삑삑.

- 툭.


“으아악!”


형과 셔츠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현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형은 셔츠를 확 놔버렸고 나는 뒤로 확 자빠져 굴렀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어머, 준혁아!”


가게를 닫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집안 꼴에 한 번 그리고 형을 보고 두 번 놀랐다.


“여~ 어머니~ 우리 집안의 기둥 장남 박준혁이 왔습니다~. 우리 엄마 한 번 안아보자~.”

“준혁이 너⋯!”


형은 엄마를 보자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갔고 엄마는⋯.


“너, 이놈 시키 집에 오자마자 한다는 짓이 동생 괴롭히기야?!”


자빠져있는 내 모습을 보고 형의 등짝을 때렸다.


“아! 아! 아니야! 지 혼자 넘어졌어!”


형이 엄마에게 제압당한 사이 나는 후다닥 방으로 도망쳐 침대 밑에 셔츠를 숨겼다.




***




“아, 거길 왜 들어가냐고!!!”


- 탁! 타닥! 탁탁탁!


“아니, 우리 팀 진짜! 나한테 뭔 반응속도 같은 소리를 처하고 있어!”


잠을 자던 나는 갑작스런 형의 고함에 깜짝 놀라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대체 뭔 일인가 했는데 형은 어느새 내 방에 들어와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대체 몇 신데 저 지랄을 하고 있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아오⋯ 꼭두새벽부터 뭐 하는 거야⋯.”

“어, 깼냐?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잠이 안 오길래 겜 한 판 하고 있었지. 다시 자.”

“옆에서 소리를 지르는데 어떻게 자, 미친 인간아⋯.”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자려고 노력 해봤어?”

“헛소리하지 말고 나가⋯.”

“내 방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심심해.”

“그럼 피시방을 가든가⋯.”

“안 돼, 사람들이 나 알아보면 귀찮아져.”

“듣보잡 B급헌터 아무도 모르니까 피시방 가라고⋯.”

“이잉~ 싫어잉~.”

“하아⋯ 할 거면 조용히 해라⋯.”


안 그래도 피곤한데 형의 짐 정리를 돕느라 저녁에 쉬지도 못해 졸음이 쏟아진 나는 형을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 탁! 타닥! 타다닥!


“아! 우리 팀 오라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어, 쏘리쏘리.”


- 탁! 타닥!


“아! 진짜 뒤지게 못하⋯!”


두 번까지 경고한 나는 형이 세 번째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바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형을 향해 돌진했다.


- 푸다닥!


하지만 형은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자기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고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방으로 돌아와 살포시 잠에 들⋯.


-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살포시 잠에 들으려는 순간 알람이 울렸다.

하⋯ 박준혁 저 새끼를 진짜 어떡하면 좋지?

나는 치솟는 짜증에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했다.


“뭐야, 어디 가냐?”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형이 화장실 문 앞에 서 물었다.


“⋯일하러 가야지.”

“일? 너 엄마 가게 일 돕는다고 하지 않았냐? 엄마는 진작에 나갔는데?”


그러고 보니 형은 지금까지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지난 4년간 나랑 형은 서로의 생일 정도에만 딱 한 마디씩 주고받고 일체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까지 형과 대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냥⋯ 형제니까, 그게 다였다.


“나 다시 헌터해.”

“오~ 그래? 파티 들어갔냐?”

“아니, 길드.”

“박준호 출세했네, 길드도 다 들어가고? 무슨 길드 들어갔는데?”

“들어갔다기보단 세웠어.”

“지랄하지 말고.”

“진짜 세웠다고.”

“그럼 네가 길드 마스터라고?”

“아니, 마스터는 다른 사람인데 같이 세웠어.”

“그럼 마스터는 누군데?”

“윤아린.”


내 말에 형은 오만상을 쓰며 잠시 멈칫했다.


“세상에 윤아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고 많겠지만 네가 말하는 윤아린이 내가 아는 그 윤아린은 아닐 거고?”

“그 윤아린 맞는데?”

“깝치지마, 그럼 우리 길드 마스터는 잔 다르크였다.”

“믿던가, 말던가, 마음대로 하세요~.”

“어어~? 야, 똑바로 말 안 해?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너네 길드 따라가는 수가 있다? 내가 못 따라갈 것 같지?”


나는 쓸데없이 형을 상대하다가는 지각할 것 같아 무시하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형은 진짜 나를 따라 나와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하아⋯ 하여튼 제정신 아니야.


“나왔어.”


길드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 그냥 생각 없이 걷고 싶어서 출퇴근은 도보로 했다.


“아, 좋은 아침! 왔⋯어⋯?”


나보다 일찍 출근해 이미 갑옷까지 다 챙겨입은 아린이는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니 기어코 길드까지 따라온 형을 보고는 당황스러워했다.


“그, 그런데⋯ 누구⋯?”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형이야.”


당황스러워하는 건 아린이 만이 아니었다.

형도 실물 윤아린을 보고는 입을 떡 벌리고 굳어 있었다.


“형? 형이면 가족? 아⋯ 음⋯ 안녕하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부족한 동생 뒷바라지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형은 괜히 내 머리를 눌러 같이 인사시켰다.


“자, 확인했으니까 됐지? 이제 나 일 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말고 집에 가.”

“아니, 어? 진짜라고? 왜? 왜 네가 윤아린 헌터님이랑? 어?”

“나중에 시간 나면 알려줄게. 나 오늘 진짜 바빠.”


길드 사무실에서 형을 밀어내자 형은 나가지 않으려 버티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요구했지만 나와 아린이가 여기까지 온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서 이야기해줄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나중으로 미뤘다.


“왜, 왜 너 업무가 뭔데 바빠.”

“헌터 업무가 레이드 뛰는 거 말고 또 있겠어?”

“그래봤자 너 F급 레이드 갈 거 아니야, 생각 그만 내고 꿀잼 썰 좀 풀어줘봐!”

“오늘 D급 3개 가야 해.”

“윤아린 헌터님이랑 같이 뛰냐? 근데 고작 D급을 간다고?”

“D급은 내가 가는 거고 쟤는 C급 3개.”

“아니, 잠깐만. 너희 길드 헌터가 몇 명인데?”

“나랑 아린이랑 둘 뿐인데?”

“근데 너 혼자 D급을 들어간다고?”

“응.”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형이 마지막으로 기억하기로 F급 던전이나 전전하던 애송이가 갑자기 혼자서 D급 던전 3개를 뛴다고 하니 놀랄 만도 했다.


“글쎄 그걸 나중에 알려주겠다니까!”


슬슬 던전으로 출발해야 했다.

우리끼리만 일하는 거면 상관없겠지만 던전수거업체의 직원들이 오기로 한 시간이 있으니 어지간하면 그에 맞춰 레이드를 끝내야 했다.


“저, 저기! 윤아린 헌터님! 감히 한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형은 무작정으로 아린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네⋯ 네? 무슨 말씀이신데요?”

“저 오늘 일일 알바로 채용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 인간이 뭐라는 거야⋯ 형의 갑작스런 헛소리에 아린이는 당연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 그게⋯ 돈은 많이 못 드리는데⋯.”


그런데 아린이가 곤란해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

아, 하긴, 아린이 정도면 형을 보는 순간 던전에서 싸울 만한 힘이 있는 각성자라는 건 바로 알았겠구나.


“땡전 한 푼 안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준호 따라가게만 해주십쇼! 헌터 면허도 있습니다!”

“주, 준호야, 넌 괜찮아?” “난 싫어.”

“쟤가 부끄러워서 말은 저렇게 해도 저랑 같이 레이드 가면 분명 좋아할 겁니다!”


아니, 진짜 싫은데.

난 그냥 내 페이스대로 조용하고 여유롭게 레이드를 뛰고 싶었다.


“준호만 괜찮다면 저도 괜찮긴 한데⋯.”

“그럼 저도 참가하는 걸로!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 박준호! 집 갔다 오자! 나 연장 챙겨올게!”

“형 혼자 다녀와, 난 귀찮아.”

“나 집 가면 바로 튈 생각인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준호야, 내가 너 하루 이틀 상대해봤니?”


와, 들켰네.

나는 형에게 잡혀 집으로 끌려갔다.

참나, 살다살다 형제 동반 레이드를 뛰는 날이 올 줄은 또 몰랐는데.

하여튼 재밌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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