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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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작품등록일 :
2023.12.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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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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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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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잘못되었다

DUMMY

내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남들과는 달리, 전생의 기억을 잃지 않고 환생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조금 재미를 보기는 했다.

예전에 습득했던 지식을 이용하여 어렸을 때부터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었고.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재화와 보물을 숨겨놓는 등의 방식으로 다음 생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놓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인생 날로 먹는다고 부러워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세월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맹세의 언약>이란 것 때문에 나는 에뮤리아 대륙이 혼란에 빠질 때마다 환생했고, 다른 영웅들과 함께 마왕을 봉인하는 걸 반복해야 했으니까.

말이 봉인이지,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겨우 잠들게 해놓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윤회를 거듭해도 어려운 일이었고 매번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그걸 나만 기억하고 다른 녀석들은 환생하고 나면 전부 망각해버린다.


“후우.”


나름 정신력이 강한 편이라 자부했는데 이 짓도 반복되니까 힘들었다.

결국, 기나긴 세월 속에서 내 영혼은 마모되었고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동료들에게 실력 면에서는 인정받았지만, 점차 심적으로는 멀어지게 되었다.


“저는 도구가 아닙니다, 시로네. 듣는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고 말해주세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태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제 기분을 이해하기는 하나요? 당신, 처음부터 그런 것 따윈 신경도 안 썼죠?”


어느덧 10번째 모험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는 이제 나를 괴짜 취급했고,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척받으면서도 이해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나의 비밀을 공유하거나 지난 일을 털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가 지금까지와 달리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 어떻게든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이어야 해.’


더는 동료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는 운명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서 그런지,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험난한 여정 끝에 이번엔 아무도 죽지 않은 채로 성공할 수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마왕 벨제리트.

녀석은 무자비하게 암흑 마법을 퍼부으며 몰아붙였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잘 버텨냈다.


“@#$&^@*!%#”


힘없이 무릎을 꿇은 마왕 벨제리트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간다.

한계가 다했는지 마족의 언어로 욕설을 내뱉을 뿐, 더는 수작질을 부리지 못한다.

이대로만 끝난다면 나쁘지 않은 결말.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발생했다.


“음?”


흡사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착각이 일더니, 강력한 마력 역장이 느껴졌다.

점차 걷혀가야 할 폭풍우가 더욱 거세졌고 지쳐있던 동료들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무, 무슨 일이야?”

“마왕은 확실히 해치운 것 아니었어?”

“이 정도로 주위에 영향을 끼치다니, 심상치 않아!”


마왕이 힘을 잃고 소멸한 건 확실했다.

마지막 순간에 뭔가 수작을 부리거나, 이상한 발악을 한 것도 아니다.

한 손을 들어 강풍을 막아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지난 모험 동안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던가.

무난했어야 할 결말이 완전히 이상하게 틀어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머릿속으로 정답을 찾으려 했지만, 짚이는 바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건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돌발 상황이다.


“몸집이 작아지는 것 같아!”

“어어, 뭐지?”

“점점 어려지고 있어!”


변화를 직감한 동료들이 소리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 눈높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하아.’


황당하게도, 영웅들은 모험을 떠나기 전의 앳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개인에 따라 적게는 수십여 년에서 수백여 년까지.

눈앞에 있는 에리나도 점차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원소 마법에 정통한 천재 하프 엘프.

다른 동료들과 달리 그녀만큼은 내게 신경을 많이 써줬는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시로네!”


눈이 마주친 에리나가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가가서 손을 붙잡으려 했으나 풍압 때문에 그녀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이건 시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초월 마법입니다! 누가 시전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기적의 성녀, 알리사가 나름대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런 짓은 신적인 권능을 빌리지 않고선 감히 시도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더더욱 배후가 누구인지, 목적은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다들 무사하길 바랍니다!”


붉은 머리칼의 검성, 카이젤이 소리쳤다.

몸부림치며 버티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한 상황.

작은 체구의 소년이 되어버린 카이젤을 따라서 한 명씩 상승 기류에 휘말려 사라져간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저 시공의 폭풍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진 모른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양발이 허공에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정신을 잃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시 눈을 떠보니 웬 허름한 마구간이었다.

비가 왔는지 축축해진 짚더미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볼품없이 누워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처럼 누더기 차림을 한 채로.


“···대체 어떻게 된거야.”


상황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아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모든 걸 뒤바꾼 원인은 마지막 순간에 발동되었던 초월 마법.

그로 인해 미묘한 균열이 발생했고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윽.”


시간 역전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두통이 밀려왔다.

잠시 몸을 비틀거리고 있는데, 별안간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멀리서 말발굽에 의한 땅울림이 느껴지며 바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비상소집?”


마을이나 도시에서는 긴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저런 식으로 대처하곤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는 문가로 다가가 상황을 엿봤다.


“다들 예배당으로 피신해! 마물이 쳐들어왔다!”


겁에 질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마물이라고?’


마왕은 확실하게 봉인되었을 터였다.

녀석의 권속들도 힘을 잃고 마계로 되돌아갔을 텐데.

역시 뭔가가 한참 잘못되어 있었다.


‘우선은 동료들을 찾아야겠어. 그게 어렵다면 이해관계가 맞는 조력자라도 구하자.’


머뭇거리던 걸 멈추고 일단 마구간 밖으로 나섰다.

한참이나 어려져서 소년이 된 상태라 강대한 마물과 조우하면 위험하긴 했다.

빌어먹을 초월 마법은 그동안 성장했던 것까지 무효로 되돌린 모양이니까.


‘대략 20년 전의 상태라고 보면 되겠군.’


신체 나이는 16살 정도 되었다.

아직 성장기가 끝나지 않은 시기인데, 그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잘 먹고 크면 되는 것 아닌가?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다시 한번 환생한 셈 치면 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성벽 도시인가?’


키가 작아져서 한눈에 주위 풍경이 들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엿보이는 내부 구조를 통해 내가 요새화된 도시에 있단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어서 예배당으로 가세요! 아이와 여자들이 먼저입니다!”


창을 든 병사가 어디선가 나타나며 고함을 질렀다.

분명 아까 들렸던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꼬맹아, 귀먹었어? 지금 당장 예배당으로 달려가라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화가 난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배당이 어딘데요?”

“이쪽의 중앙 가도를 따라 곧장 가면 된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지?”


사내는 이곳의 수비를 맡느라 함께 가줄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재차 질문을 던졌다.


“마물이 얼마나 쳐들어왔어요?”

“아주 많이.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목소리가 제법 비장한 게,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모습이다.

아마도 도시에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모양이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더는 사내를 귀찮게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대화가 가능할 리 없고, 필요한 정보는 예배당으로 가서 얻는 편이 더 좋아 보였다.


‘적어도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군.’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춘 자여야 이것저것 물어보기가 편했다.

도서관 사서나 교단의 사제 같은 이들 말이다.


타닥 타닥.


신속한 걸음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시를 가로질렀다.

아직 마물의 침공이 본격화되진 않았는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병사들만이 보인다.

수레로 공성 물자를 옮기고 길목마다 바리케이트를 치는데, 한두 번 해본 게 아닌지 상당히 능숙했다.


“비켜, 꼬맹아! 뭐한다고 근처에서 나돌아다니는 거야?”

“내버려 둬, 요새 부모 잃은 고아가 어디 한둘이야?”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보급품이나 날라! 우물쭈물하다 또 부관 놈에게 혼나지 말고!”


병사들이 투덜거리는 걸 한쪽 귀로 흘리고 있을 때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뭔가가 포탄처럼 날아오는 게 보였다.

다름아닌 이쪽으로.

나는 곧장 인근의 물자창고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어서 콰광! 하는 폭음과 함께 한 차례 소란이 벌어진다.


“시, 시작됐다!”

“제, 젠장!”

“어서 전투 준비해! 사격 부대 앞으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지점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자, 납탄을 연발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타당탕탕탕!


쉬이 걷히지 않는 먼지 때문에 공격 대상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괴한 실루엣을 통해 마물이라는 것 정도는 파악 가능했다.


‘마물이 하늘에서 떨어져?’


정확히는 포탄처럼 발사해서 성벽 너머로 날려 보냈다.

아마도 미리 보호막을 씌워 낙하 시의 충격을 흡수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마물이 도시를 침공한 사례가 있던가?

흥미가 동한 나는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전투의 양상을 나름대로 예상해가면서 말이다.


‘저런 전법을 구사할 정도면 한 마리씩 날려 보내지는 않을 거야. 금방 포위당해서 벌집이 될 테니까.’


조만간 대규모의 공습이 시작될 터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잇달아 몰아치는 폭음들이 병사들을 집어삼킨다.


콰광! 콰과과광! 콰과과과광!


여기저기서 마물들이 떨어지며 붉은 눈빛을 번뜩였다.

압도적인 열세에 처한 병사들을 보며 나는 더 방관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저기요, 이대로는 힘드실 것 같은데 도와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자 고참으로 보이는 병사가 눈을 부라렸다.

참으로 황당하다는 듯, 실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네가 무슨 대마법사라도 돼? 새파랗게 어린놈이 무슨 도움을 주겠단 거야?”

“아까 그 고아네요.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무시하시죠.”

“맞습니다. 졸지에 포위당한 상황이라 활로를 여는 것도 벅찹니다.”


병사들은 무시하고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런 녀석들을 지나치며 나는 한손을 들어올렸다.

가벼운 읊조림과 함께 푸른 불꽃이 일어났고, 순식간에 가까이 있던 마물을 덮쳤다.

그 모습을 본 고참병이 깜짝 놀라서 입을 벌렸다.


“대, 대체 뭐하는 놈이야? 너는?”

“일단은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어미 잃은 고아 새끼 정도로 해두지요.”


저들에게 굳이 정체를 밝힐 것까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겠지.

내 이름은 시로네 엘카만.

가문 대대로 전승받는 고유 마법, <소울 웨폰>으로 활약하며 7인의 영웅 중 한자리를 차지해왔던 인물이다.

갑작스레 어려졌다고 해도, 저들과는 전력 차이가 논외의 수준이었다.


‘마왕을 물리친 이후에도 혼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세상이라니, 조금 재미있겠는걸.’


예상치 못한 전개는 곤경을 낳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를 불러온다.

그동안 반복되는 모험에 질려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은 즐겨도 될 것 같다.

잠시 주춤하는 마물 무리와 마주하며 나는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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