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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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ha
작품등록일 :
2024.05.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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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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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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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와 또라이

DUMMY

서재에 틀어박혀 수 시간째, 식사도 거르고 무언가를 생각하며 조사하던 스카드는 펜을 들어 고급 양피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내려 갔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부 종이에 적었고, 서명을 앞두고 나서 다시 고민에 잠겼다.

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느꼈을까,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을까.


스카드는 책상에서 라벤더 향을 내던 초 위로 편지에 불을 붙이고 태워버린 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밝은 달을 바라보다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지만, 곧 백설공주를 떠올리고는 그대로 내려놓았다.

아이에게 담배가 해롭다는 걸 알고 있냐는 칸나의 잔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사건에 대해서나 다시 되짚어볼까.'



누군가의 이득이 없이는 불가능한 사건.

단순히 돈을 노리는 불행이라 하기에는 위험성이 컸던 도박.

사람을 믿는 것보다 의심하는 것이 더 익숙한 그였기에 의심이 갈만한 사람을 생각해 보니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날, 급하게 헤르나에게 쪽지를 전하기는 했지만 사건에 대해 의논을 할 여유는 없었던 터라 펜을 들었던 건데 그는 결국 편지를 불태웠다.



"괜찮겠지. 헤르나는 똑똑하니까."

"리온도 만만치 않으니까 대책을 마련했을 테고."




<또라이와 또라이>



사건이 있었던 해역으로 가기 위해 헤르나와 토마스, 그리고 뮐러 가의 용병들과 제르만의 군사들이 배에 올랐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토마스는 침실로 돌아가 누워버렸고, 그런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헤르나는 선원들을 지휘하며 문제가 발생한 곳으로 향했다.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배 위에 서서 가만히 구름의 움직임과 바람의 방향,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던 헤르나는 배 안에 마련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실에 누웠다.


어디로 사라졌을지 모르는 왕녀와 물건, 범인을 밝혀야 하는 이 상황에서 토마스의 최선은 무엇일까.

최대한 이사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이겠지.

그리고 책임질 타깃을 찾는 것.


나의 최선은 이 일이 제르만과 무관하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내가 더 불리하잖아...."



작게 불평을 중얼거리던 헤르나는 피로로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굿보이의 으르렁대는 소리에 눈이 떠진 그녀는 문 앞에서 쭈뼛대고 있는 토마스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뭐해요? 남의 방 앞에서."


"아.. 아니.... 웨.. 웬 개예요?"



헤르나의 침대 옆에 있는 굿보이는 젖을 떼자마자 그녀가 데려다 기른 사냥개로, 일명 '은색 유령'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개였다.



"남하고 별로 안 친하니까 함부로 다가오지 말고요."


"원래 당신 개예요?"


"남의 방 앞에서 뭐 하냐고요."


"....아... 의논할 게 있어서..."



그녀의 안내에 방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토마스는 차를 마시겠냐는 빈말을 거절하고, 용건부터 꺼냈다.

이런 일이 전에도 발생한 적이 있었는지, 문제를 일으킨 해적을 찾아 처벌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다.


헤르나는 어느 해역이나 해적들이 나타나고, 그로 인한 처벌이 있었지만 정확하게 왕실의 배를 노려온 해적은 없었음을 말하며 단순한 강도 같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쟁을 선포하는 게 아니고서야 왕실 기사단이 있는 배를 습격하는 머저리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약초값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그게 의문 아닌가?"



헤르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토마스에게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값이 아무리 비싸대도 대체 배 밑바닥에 있는 약초를 어떻게 알았냐는 거죠. 대놓고 여기에 포피랑 케비스 실려 있다고 광고하고 다니지 않잖아?"



그녀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와 목소리에 토마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배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미리 알았던 사람이 있지 않고서는 습격하기 어려운 일.

그녀의 말은 누군가 그 안에 해적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 또한 확증은 없습니다. 안 그래요?"



브리텐드의 사람들 중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발끈한 토마스가 반발을 하자 헤르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요. 확증은 없죠."


"그렇다면 그런 말은 삼가주세요."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리던 그가 의혹의 눈초리를 하고서 쏘아붙였다.



"설마 이게 리온 전하와 귀족원들의 공통된 의견인가요? 왕녀와 사람들, 물건도 모두 잃은 브리텐드의 슬픔이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 차, 너무 성급했나.



헤르나는 침착하게 말을 고르며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여러 가지 가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불쾌했다면 사과드릴게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건을 조사해야 하니까 그런 것뿐이에요."


"사건의 조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가장 피해야 할 가능성을 의심으로 삼고 있다니..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제르만의 수사 수준을 알만하군요."



그가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겠다며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헤르나는 굿보이를 불러 막아서게 했다.

큰소리로 짖으며 자신을 위협하듯 앞에 서 있는 개를 보자 감당할 수 없는 무례함에 토마스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뒤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여기는 바다 한가운데야. 당신이나 나나 땅을 딛고 서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제 가면 같은 건 벗고 서로 좀 솔직해지지 그래?"



조심스레 안쪽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대는 토마스를 보며 헤르나는 나지막이 경고했다.



"난 내 걸 좀 과히 아껴. 당신의 검이 내 개를 찌른다면, 난 양국 간의 입장이고 뭐고 당신을 바로 저 바다에 처박아버릴 거야."


"........."


"애초에 얘기나 좀 하자고 찾아온 놈이, 품 안에 칼은 왜 가지고 오는 건지."



헤르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서서 몸을 밀착시킨 뒤 안주머니에 넣어둔 단검을 빼서 이리저리 살펴본 후 뒤로 던져버렸다.



"단순히 호신이라기엔 과하지 않나? 저거.. 마검이잖아."



일반 무기를 마법이 깃든 검이나 활, 창 등으로 만드는 데에는 소모되는 마력의 양도 컸고, 광산에서 채굴한 마나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각국에서 생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나 광산과 다수의 마녀가 있는 에크나르프에 주로 의뢰를 해서 얻는 희귀품이며 최고가품으로 일반 사람은 거래할 수조차 없었다.

*마녀들이 마력 무기를 만들다가 마력을 전부 소진하고 시력이 손상되어 장님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에크나르프에서도 잘 생산하지 않는 품목이었다.



"이사벨한테 받은 건가?"


"........"



헤르나는 그에게 몇 걸음 떨어지며 피식 웃었다.



"사과할게. 당신을 너무 우습게 봤었어. 말 한 번 스스로 못 타봤을 거라고."



단검을 꺼내는 순간, 잠깐 사이에 만져본 토마스의 몸은 나무처럼 단단했다.

말랐지만 그 몸이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알게 된 순간, 그가 일반적인 귀족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드가 읽었던 것은 분명 이 자의 눈빛에서 읽히는 광기였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는 위험한 놈이라는 판단이었겠지.

하지만 몸까지 이렇다면...



"당신이 수시로 말했던.. '저 바다에 처박히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일 수도 있다는 거, 알겠어?"



살기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띠고 질문하는 토마스의 말에 헤르나는 가볍게 두 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근육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은 암살이던데."


"맞아. 여왕님이 나를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지."



사건 조사하라고 사절을 보낸다더니 살수를 보낸다고?

헤르나는 이사벨의 머릿속에 뭐가 들은 건지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런 인간이니까 지 오라버니도 죽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거겠지.



"나를 죽여서 책임을 물으시겠다?"


"답을 찾지 못한다면 말이지."



토마스는 그녀에게 사건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나치게 솔직하네."


"당신이 말했잖아? 이제 우리가 땅을 딛고 서 있는 게 아니니 가면은 벗자고. 그러니 겁먹지도 않았으면서 비위 맞추는 척, 어설프게 들고 있는 그 팔은 그만 내려."



헤르나는 팔을 내린 뒤 던져두었던 마검을 집어 들고 그에게 건넸다.



"이런 거 나한테 돌려주기엔 불안하지 않아?"



헤르나는 당신이나 나나 깃털펜 한 자루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간들이지 않냐고 답하며, 자신의 재킷을 열어 안주머니에 꽂혀있는 단검을 보여주었다.

검자루에서 박혀있는 마나를 본 토마스는 그녀 역시 마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떻게..?!"



'또라이는 또라이를 알아보거든.'



헤르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환하게 웃었다.




.........


"뮐러 후작."


"예, 전하."



무역선에 관한 회의가 끝난 뒤, 헤르나를 조용히 부른 리온은 그녀에게 마검을 한 자루 건넸다.



"미친놈을 상대하는데 무기 하나 없으면 곤란하잖아?"


"?"



이유 모를 고급 무기에 당황한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검을 받아 들자, 그는 다시 가져다가 헤르나의 재킷 안쪽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태연한 얼굴로 사건을 해결하고 와서 돌려주라며, 그동안 빌려주겠다 말했다.



"살아와. 반드시."


......




연약한 외교 사절을 흉내 내서 온 귀족은 사실 암살자였으며, 이사벨은 그에게 마검을 건네주었다.

여차하면 자신을 죽여서 일을 덮어씌우라고.


이런 또라이같은 여왕이 세상에 흔치 않지.

그런 사람이니까 평범한 사절을 보낼 리 없다고 판단한 리온이 토마스를 '미친놈' 이라 결론짓고 자신에게도 마검을 준 것이었다.



"나를 죽인다고 제르만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우리 전하께서는 그걸 너무도 잘 알고 계시고."



토마스는 코웃음을 친 뒤 자신 역시 그런 입장이라는 것은 잊은 듯 비꼬며 물었다.



"....그럼 너희 국왕 역시 나를 죽여서라도 책임을 떠넘기라 한 건가?"



그런 하수 같은 생각은 너희에게나 가능한 일이야.

리온은 그저 자신의 수하가 남보다 못한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성미일 뿐이고.

널 죽여서 해결이 될 것 같았으면, 죽이라고 하지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겠니?



"아니. 당신이 이럴 걸 잘 아니까 조심하라고 전해준 거지. 우리 전하를 너무 너희 여왕처럼 매도하지 마."



눈썹이 꿈틀대던 토마스는 성큼 다가와 헤르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녀가 굿보이를 저지시키는 손이 없었다면, 개는 그를 물며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다.



"......."



이사벨을 건드리면 확실히 발끈하는 게 있단 말이지...

미친 충견? 미친 연인?

뭐든지 미친 건 확실해.


스카드는 눈빛으로.. 리온은 이사벨로.. 너를 읽어냈다.

그걸 모르는 너나 나는.. 살기는 있지만, 총기*는 부족한 거겠지.

*총기(聰氣) - 총명한 기운.



"또라이의 광견끼리 싸우지 말고, 일이 해결될 때까지 협력하자고."



헤르나는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릴 듯 힘을 주어 하나씩 떼어냈다.


협력하자는 것치고는 적대적인 그녀의 몸짓에 토마스는 당황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

그는 헤르나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아무런 표정 없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적대감을 내려놓고 밤에도 만나보고 싶다고 저질스럽게 요청했다.



".....이사벨이랑 헤어지면 한 번쯤 만나줄 수도 있고."


"........."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헤르나는 짓궂게 웃으며 비수를 꽂았다.



"아하~ 못해서 차였구나?"




<마녀와 마녀>



리온의 곁에서 그를 조종하는, 아니 그에게 조언하는 마녀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던 칸나는 그의 방 근처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멀리 문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은 이제까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악한 기류였다.



'흑마술이다...!'



마녀들 사이에서 금기로 불리는 흑마법을 사용하는 마녀라니.

예상보다 더 위험한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칸나의 마음이 동요하고 있었다.


지오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그의 방으로 간 칸나는, 마치 그녀가 올 것을 기다린 것처럼 때맞춰 열리는 문 너머 방 안에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늙은 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아 나른한 얼굴로 바라보는 리온의 가까이에 서 있던 늙은 마녀는 칸나를 환영한다는 손길로 맞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문을 열어준 이안이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문을 닫으며 방 밖으로 나가자, 함께 있는 것이 낯설고 기묘한 세 사람의 조합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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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그의 이름 24.09.16 3 0 10쪽
35 작은 걸 주십시오 24.09.09 4 0 11쪽
34 누구랑 손을 잡아? 24.09.01 5 0 11쪽
33 빼돌리기 24.08.25 7 0 13쪽
32 계획된 악몽 24.08.22 11 0 10쪽
31 마음과 입을 맞췄습니다 24.08.11 10 0 11쪽
30 베갯머리 송사 24.06.16 18 0 12쪽
29 너, 내 편이 돼라 24.06.15 19 0 12쪽
28 그를 죽여줘 24.06.14 23 0 13쪽
27 똥개 24.06.13 19 0 13쪽
26 조세핀 랑 24.06.13 17 0 11쪽
25 그날, 키스 24.06.12 18 0 11쪽
24 네가 왜 여기서 나와 24.06.12 16 0 12쪽
23 돌팔이 약사 24.06.11 16 0 14쪽
22 핑크빛 세상 24.06.07 14 0 13쪽
21 또라이들의 광견들 24.06.06 18 0 11쪽
20 마녀? 지오니 24.05.30 21 0 11쪽
19 마녀, 이다 24.05.26 25 0 12쪽
18 마녀와 마녀 24.05.26 22 0 10쪽
» 또라이와 또라이 24.05.25 20 0 13쪽
16 비꼬고 있습니다 24.05.25 20 0 11쪽
15 안돼. 하지 마. 멈춰! 24.05.21 23 0 15쪽
14 눈 왜 그렇게 떠? 눈 감게 해 줘? 24.05.19 25 0 15쪽
13 어찌됐든 평화 24.05.19 24 0 14쪽
12 거울아 거울아 (Mira? Mirror?) 24.05.16 25 0 18쪽
11 나쁜 X 24.05.16 24 0 11쪽
10 첩자 24.05.14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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