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특성(3)
“말이 되냐?! D가 말이 돼?! 씨발! 말이 되냐고!”
욕이 절로 나왔다.
아니 솔직히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다. 튜토리얼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싹 다 얻었고 심지어 약자를 도우면 또 도움 된다길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여자애들 데리고 튜토리얼 했을 뿐만 아니라 끝판왕 흑호도 죽기 직전까지 가면서 극적으로 잡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지랄을 떨든 말든 시스템은 묵묵부답이다. 이 개같은 녀석!
"상태창!"
확인하려고 [상태창]을 외친다. 하지만 마치 지금은 그냥 닥치고 따지지 말라는 듯이 확인도 못하게 한다.
“그럼 사천성으로 보내줘! 빨리!”
일단 나가서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진짜인지 아닌지. 진짜 [고통 내성]인가 뭐시기면 피켓들고 일성을 찾아갈 거다.
그래. 내가 잘못 본 거일 수도 있으니 일단 사천성으로 가보자.
빛무리가 내 몸을 감싸며 눈을 뜨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게 보였다.
곧바로 상태창을 켠다.
이름 : 허은호
레벨 : 10
특성 : 고통 내성(D)
직업 : 무직
칭호 : 없음
업적 : ‘수련 따위 필요 없어’
힘 : 40, 민첩 : 40, 체력 : 30, 지혜 : 10, 운 : 15
보유 포인트 : 5
스킬 :
육합공六合功 Lv2 32%, 삼재검법三才劍法 Lv2 12%, 육합권六合拳 Lv2 76%, 삼재보三才步 Lv2 55%
“······”
“은호 빠 여깄다!”
“은호 오빠!”
“은호야! 특성 뭐 나왔어?!”
우리 파티원들이 해맑게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들이 내 심장을 후벼팠다.
“에이 도훈 오빠도 참 당연히 S급 특성이죵!”
“맞아요. 은호 오빠는 당연히 S급이죠.”
“나도 당연히 알지! 그냥 무슨 S급인지 궁금해서 그렇지! 와 근데 개쩔지 않아?!”
도훈이 형은 좋은 특성이 나왔는지 평소의 그 조용함과는 달리 잔뜩 흥분해 신나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우리 파티에서만 S급이 두 명이나 나오냐고! 이게 말이 돼?!”
“?”
엥? 두 명?
“······누, 누가 S급 나왔어요······?”
그때 하니가 화알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든다.
“저요! 제가 S급 특성 공령지체空靈之體 받았어요! 그리고 은서는 A급 음정신맥陰精神脈! 도훈 오빠는 B급 현려賢慮! 이게 다 은호 빠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진짜루!”
“······”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어찌어찌 참는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하는데 입꼬리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그때였다.
“야! 허은호! 왔으면 왔다고 보고를 해야지! 장난쳐?!”
하늘에서 난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면사를 쓴 여자가 샤랄라 마치 선녀처럼 내려온다.
“와······”
누군가의 감탄처럼 대단히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선녀의 등 뒤로 눈이 부실 정도의 후광이 마치 태양처럼 뿜어져 나왔다. 면사를 썼지만 그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었다. 확실히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훈이 형이 멍하니 묻는다.
“······누구······?”
나도 묻는다.
“누구?”
사박-
내 앞에 내려서며 삿대질을 한다.
“아니! 동생도 못 알아봐! 이 멍청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금방 온다며?!”
갑자기 나타난 샤랄라한 아름다운 고수의 등장에 사람들은 홀린 듯이 우릴 바라봤다.
보통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무림이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들 그러려니 했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무림오화의 힘이 강력한 것 같았다.
주변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신에 홀린 듯이 멍하니 바라만 본다.
물론 난 아니었다.
허은하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그 신비로움은 즉각 사라지고 허망함만이 내면의 심연에서 마구 솟아오른다.
‘하······ 허은하도 A인데······ 내가 D라니······’
인정할 수 없었다······
허은하도 A인데······ A인데······ A인데······
“허은호! 뭐야?! 얼굴이 왜이래?! 누가 괴롭혔어?!”
“은하야······”
기겁하며 뒷걸음질 친다.
“왜, 왜이래? 뭔데? 왜 그러는데?”
“······나 사실······”
"?"
"······나 사실 D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어 대신 로그 아웃을 누른다.
***
허은하가 연락했는지, 한 시간 채 되지 않아 아랫집 사는 허은하를 비롯해 현준, 예나가 찾아왔다. 나는 차마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소파에 돌아누워 있었다.
“아니. 그래서 특성이 고통 내성이 나왔다고?”
“말이 돼? 업적까지 딴 플레이어한테 겨우 D급을 준다고? 은호야. 이건 고소해야 해. 가자 내가 도와줄게.”
은하와 예나는 아무리 그 대단하고 완벽한 에덴이라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다며 내 슬프고 허망한 감정을 공감하며 함께 화를 내줬다. 반면 박현준 저 웬수같은 놈는 이때다 싶어 나를 공격한다.
“이 새끼 원래 마조잖아. 그래서 그래.”
“?”
“분명 이번 튜토리얼에서도 줘터지면서 싸웠겠지. 내가 너 업적 딸 때 영상 보니까 나도 때릴테니 너도 때려다 식으로 마구잡이로 싸웠더구만. 그렇게 싸우니까 업적도 그딴 게 나오지.”
아니! 그건 그렇게 안 싸우면 못 이기닌까 그런거고! 그런 거 아닐 때는 나도 안 맞고 깔끔하게 이겼다고!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보일 것이기에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면 뭐하나. 이미 다 끝났는 걸.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아······ 맞다······ 은호가 좀 그랬었지······”
“맞아······ 오빠가 좀 그러긴 했지······”
“그렇다니까? 진성 마조라서 그렇다니까? 내가 시스템이라도 고통 내성 주겠다. 진짜 그게 제일 이 새끼를 대표하는 특성이라니까?”
박현준 이 개새에게 사커킥을 한 대 날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등을 돌려 살기를 담아 노려보자 그제서야 허은하가 팔꿈치로 박현준을 툭툭 치며 눈치를 준다.
“흠흠! 그것보다. 오빠. 아까 진짜 난리도 아니었어. 아까 로그아웃하고 잠깐 커뮤니티 들어갔었는데, 와 오빠 글로 커뮤니티가 완전 도배가 돼서는.”
“네가 화란 길드 애들 팼다며?”
“그 녀석들이 지들 처맞은 거 커뮤니티에다가 악마의 편집 해서 올렸더라고.”
“맞아. 그 나쁜 놈들이 작정하고 너 묻으려고 하더라고.”
“언니 그치? 나도 처음엔 깜빡 속았다니까? 난 진짜 오빠가 예전 버릇 못 버린 줄.”
“에이 나는 딱 보고 아닌 거 알았는데?”
“에이 그건 아니지. 아무튼 오빠. 근데 파티원 잘 꾸렸더라. 애들이 참 괜찮아.”
하긴 그러니까 S급 하나에 A 하나 B 하나지.
근데 셋 다 특성에 욕심도 없었는데 하아······ 또 한숨이 나온다. 요즘들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은서라는 애한테 밥 한 번 사야겠더라.”
“······왜?”
“걔가 편집 안 된 풀영상하고 당시 내용을 상세하게 써서 올렸더라고. 그게 여론을 반전시켰지.”
“그래그래······”
“어. 걔가 논란 일자마자 바로 올려서 여론이 완전 바뀜. 키킥- 그거 실시간으로 보는데 겁나 웃기더라고.”
은서가 똘똘하긴 했다······ 역시 A급 받을만 했다······
그래도 그게 말이 돼······? 몬스터는 나 혼자 다 해치웠는데······?
진짜 이 그지 같은 게임 만든 일성 앞에서 시위를, 아니 예나 말대로 고소해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걔네들은 뭘 한 게 없었다!
“······근데 이거 뭐 튜토리얼에서 플레이 한 게 평가에 들어간다 하지 않았나······? 어떤 특성 받을지······?”
“아 그거? 당연히 들어가지. 근데 그것도 들어가지만 현실에서의 특성도 반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반반 평가해서 더 큰 특성을 준다고 하던데?”
“그냥 넌 마조라서 그렇다니까?”
“은호야. 근데 너무 걱정마. 고통 내성은 그렇게 나쁜 특성은 아니니까.”
“예나야. 그렇게 거짓말 안 해도 돼. 고통 내성 쓰레기인 거 엑더에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은호도 현실을 알아야 대처를 하지.”
“아니야. 진짜 나쁘지 않아.”
“뭐 노가다 수련하기엔 나쁘지 않긴 하지.”
박현준 이 십만따리가 이때다 싶은 것 같다. 날 놀리고 조롱하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물론 전투 때도 나쁘지 않긴해. 고통을 줄여주니까. 아 전투 보조 시스템 키면 똑같나? 풋-”
하지만 예나는 진심으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현준을 향해 말한다.
“상위 무공들 중에 무공 수련할 때나, 사용할 때 전투 보조 시스템 안 되는 무공들이 있어. 특히 외공들이 그래.”
외공이라······
무협 마니아로써 나름 무공에 대해 잘 아는데, 원래 외공 중에는 절정 이상의 무공이 없는 법이었다.
예나가 날 위로한다고 말하긴 했는데, 미안하지만 전혀 위로가 안 됐다.
축 늘어진 내 어깨를 현준이 토닥인다. 그 얼굴이 이젠 충분히 놀렸으니 봐준다는 듯한 여유 있는 얼굴이다. 인심 썼다는 듯이 툭하고 내뱉는다.
“은호야. 이 형님이 좋은 거 알려줄 테니 잘 들어.”
그래. 랭커 따까리지만 그래도 나보단 잘 알겠지.
진짜 내게 필요한 걸 조언 해준다면 이때까지 조롱한 거 용서해주기로 한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이때까지 나온 무협 창작물 중에 고통 내성과 잘 맞는 무공 있나 구글링 해봐. 보니까 시스템이 이때까지 나온 무협이란 무협은 다 갖다 때려 박아서 웬만한 창작물에서 나온 무공은 동대륙에 다 있더라.”
그 말에 눈이 번뜩 뜨였다. 이건 오늘의 만행을 용서할 만한 조언이었다.
“진짜?!”
“그래 임마. 잘 찾아보면 외공 말고도 고통 내성에 맞는 초절정 무공 있을 거다.”
그래서 그날부터 구글링만 했다.
***
결론은 현준의 말이 맞았다는 거다.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협 창작물이 얼마나 많은데!’
덕분에 고소를 안 해도 됐다.
물론 선수 때 일성에서 날 후원했었기에 당연히 진짜 할 마음은 없었지만, 아무튼 안 해도 된다는 데에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래서 구글링 결과 지금 내가 찾아야 할 무공으로 중국의 전설적인 작가 고룡 선생님의 무협 소설 절대쌍교絶代雙驕에서 나오는, 천하제일신검天下第一神劍이라 불린 연남천의 가의신공嫁衣神功으로 정했다. 그게 나의 [특성 - 고통 내성(D)]과 가장 잘 맞을 것 같았다.
가의신공嫁衣神功은 신공神功이라 불릴 만큼, 다른 무공들이 하찮게 보일 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무공이었지만, 마치 신이 이 강력한 무공의 남용을 걱정하여 제재를 가한 것 마냥, 무공을 쓸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무공이었다.
그 끔찍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선 최소 7성까진 올라야 했는데, 그 부작용을 이기고 7성까지 오르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고 했었다.
‘그러니 고통 내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 딱이야. 그리고 현재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유니크함도 있고.’
커뮤니티 엑더에서 진심 샅샅이 뒤져봤는데, 현재 그 누구도 이 신공을 쓰는 플레이어가 없었다. 간혹 써 봤다는 플레이어가 있긴 있었는데 고통 때문에 결국 다 포기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너무 뛰어난 무공이라 [전투 보조 시스템]을 못 쓰게 막아놨다는 거다!
‘근데 고통 내성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나?’
딱 들어도 [고통 내성]은 엄청 흔한 [특성] 같았다. 웬만하면 가의신공을 혼자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특성]이라면 그 부작용을 이겨내고 같이 쓸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에덴 최대 커뮤니티 엑더에서 [고통 내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겸 글을 한 번 써본다.
-형님들. 동대륙 특성 [고통 내성] 평가 좀?
10초도 안지나 댓글이 달린다.
-걍 쓰레기임.
-인정. 걍 쓰레기. 어디 쓸 데가 없음.
가혹한 팩트 폭력에 가슴이 미어터지는듯 했다.
-근데······ 고통 내성 흔한 특성임······?
-솔직히 흔한 특성은 아님. 가끔 마조인 애들이 얻긴 한데, 걔네들도 존나 쓸데 없다고 욕하는 특성임.
-걔네들은 고통받아야 좋은 건데, 고통 내성은 고통을 줄여주는 거다 보니까 그렇지. 그래서 나오면 그냥 새로 키운다더라.
-나라도 고통 내성 나오면 바로 계정 새로 판다.
계정을 새로 만들 수는 있었다. 대신 다시 만들려면 삭제 후 6개월 뒤에나 새로 만들 수 있었다.
-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수정하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ㅜ
다음주에는 또 일요일에 연참을 해서 투베에 도전해보겠습니다..!(힘들 것 같긴 하지만....)
독자님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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