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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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작품등록일 :
2024.07.25 10:08
최근연재일 :
2024.09.16 22:2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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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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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347

Comment ' 48

  • 작성자
    Lv.46 IRI
    작성일
    24.09.07 06:09
    No. 3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7:58
    No. 3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g9******..
    작성일
    24.09.07 06:51
    No. 33

    교회,성당이 과확쪽을 어느정도 지원해 주기도 했는데 아비뇽 유수,흑사병 등등 큰 이벤트 터지고 잘 안하게 됨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7:59
    No. 34

    아비뇽 유수 이후론 여유가 없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노스아스터
    작성일
    24.09.07 08:03
    No. 35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나서 콜로세움같은 고대로마의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많은 구조물(예시:수도교)이 무지한(정확히는 잊혀져서...) 이들이 잘 가공된 석재로 재활용했죠...
    건축물인 유적과 유물은 잊혀진다면,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적으로 변했고요(잘 가공된 석재를 당연히 재활용 한다!)

    수도원은 도리어 잊혀지는 지식과 유적을 보존하려고 했고요. 수도원에서 수사들이 사용하기 위한 목욕탕이 있었던걸 보면 수도교같은거의 중요성을 모를수가 없어서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8:06
    No. 36

    예. 교회가 그 부분에서 큰 역할을 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노스아스터
    작성일
    24.09.07 08:06
    No. 37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수명이 짧아서, 금나라가 몽골한테 멸망한 시점에서 금나라의 지식인이 금나라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는걸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금나라의 사료를 최대한 지키면서(다행히도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준 몽골제국의 장군도 있었고) 자신이 사명을 금나라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은걸로 정한 금나라의 유명한 시인도 있었죠.
    제가 말한 금나라의 식자이자 시인이 어떻게든 금나라의 역사를 복원하면서 쓴 책의 내용이, 원나라에서 금나라의 역사서를 만들때 복사붙이기 수준으로 참고해서 금나라의 역사를 지킨다는 사명을 지켰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8:07
    No. 38

    이래서 책이 중요한 이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벚꽃고양이
    작성일
    24.09.07 12:02
    No. 39

    로마때 기술이나 문화생각해보면 ㄹㅇ 중세는 잃어버린 천년 ㄷ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12:02
    No. 40

    근대 유럽인들이 괜히 중세를 혐오한 게 아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9.07 16:22
    No. 41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16:23
    No. 4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초아재
    작성일
    24.09.07 21:22
    No. 43

    태클인지 모르게써습니다만, 당시 기후 연구 자료를 보면 5세기에 지중해성 기후를 유지하는 곳은 북아프리카가 유일합니다. 다른곳 다 대륙성기후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로마 말기부터 의식주 문화 전반에서 로마식에서 게르만식으로 전환되어 갔습니다.
    포도농사를 조지니 맥주를 마셔야 했고, 올리브 농사를 조지니 버터를 발라먹어야 했습니다. 로마식 밀농사도 ㅈ되는지라 게르만족들이 북방에서 가져온 호밀을 재배했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21:24
    No. 44

    그때 당시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그때 이후로 계속 대륙성 기후로 바뀐 건가요?

    기후가 바뀌었다는 건 따로 들은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의식주가 게르만 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말은 공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비호(肥虎)
    작성일
    24.09.10 02:26
    No. 45

    너무 위험한거 같은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10 08:11
    No. 46

    어떤 점이 위험한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n2******..
    작성일
    24.09.11 12:28
    No. 47

    이 시기 교황은 현대 혹은 중세 시절 수준의 권위를 갖지는 못했죠. 그저 로마 주교에 불과했을 뿐. 물론 기독교 5대교관구이며 나름 수위권이라는 것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봤자 로마황제 아래에 있는 대주교에 불과했죠. 서로마가 붕괴하고 로마를 지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로마주교는 교황이 되었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11 12:52
    No. 48

    5대 교관구 시절에도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지만 중세 시절의 권위까지는 아니었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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