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메이저리그 - 프롤로그 -
- 프롤로그 -
어떠한 기술의 정점에 오른 사람을 장인이라 한다고 하면, 나 또한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익힌 기술이 배팅볼이라는 것이다.
* * *
모든 배팅볼 투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처음부터 배팅볼 투수를 지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배팅볼 투수들은 프로야구 선수였거나 선수를 지망했던 사람들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5년 전 프로구단에 드래프트 되었을 때, 1억8천이라는 적지 않은 계약금을 받으며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길게 말해서 무엇하겠나.
다 옛날 일인 것을.
지금은 하루에 200개씩 배팅볼을 던지며 프로야구 선수들의 눈치를 보는 게 일상이다.
“커브!”
내게 목소리를 높인 녀석은 돌핀스 2루를 차지한 정현식이다.
녀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얄미운 꼬마다.
나보다 2년이나 늦게 입단했으면서도 선배 취급을 전혀 해주지 않는 녀석.
물론 녀석은 1군 레귤러고 나는 2군 선수도 아닌 배팅볼 투수에 불과했지만······.
“오케이. 커브.”
커브 그립을 잡고 한가운데에 떨어지게 공을 던졌다.
녀석이 딱 좋아하는 코스로 말이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날아갔다.
장타가 나오자 배터 박스 뒤쪽에 선 이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배팅!”
배팅볼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타자가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공을 던져주는 것?
전혀 아니다.
배팅볼 투수는 애초에 1군 투수들과 같은 공을 던져줄 수가 없다.
배팅볼 투수가 1군 투수처럼 빠르고 제구가 잘 된 공을 던질 수 있다면?
그는 배팅볼 투수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1군에서 던지면 되니까.
그렇다면 배팅볼 투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다음!”
역시 녀석이다.
쯧, 내가 설명하고 있는데 말을 끊다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직업이 배팅볼 투수인 것을.
“오케이!”
따악!
이번에도 시원한 타구.
“아! 그게 안 넘어가네.”
그게 안 넘어가는 게 아니고.
넘어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녀석의 파워는 미국으로 떠나버린 도현 선배에 한참 미치지 못하니까.
자, 배팅볼 투수에게 중요한 것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배팅볼 투수에게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경기 전 만만한 공을 던져 1군 타자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것이다.
이상한가?
이상할 게 없다.
프로구단은 160km를 쉽게 발사 수 있는 피칭 머신을 두고 130km도 던지지 못하는 배팅볼 투수를 쓴다.
사람이 던진 공을 담장 밖으로 넘길 때 감각과 흥분을 기억에 새기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 내게 최고의 배팅볼 투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최고의 배팅볼 투수는 홈런을 최고로 많이 맞은 투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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