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메이저리그 - 현미경 분석 04 -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시카고에서 돌아와 홈에서 뉴욕 메츠를 상대했다.
뉴욕 메츠와 3연전 성적은 1승 2패.
2, 3, 4선발이 차례로 출전한 것을 생각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다만 전체적인 전력에서 뉴욕 메츠가 피츠버그를 앞섰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성적은 아니었다.
야구 전문가들이나 매니아들은 3차전에서 접전을 벌인 것이 오히려 예상 이상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내일 뭐 할 거야?”
이도현의 물음에 윤세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내일 뭐 하다니요?”
“이번 시즌 첫 번째 휴식일이잖아.”
피츠버그는 개막전 이후 9연전을 벌인 뒤 첫 번째 휴식을 맞이했다.
“휴식일이 아니라 이동일이 아닙니까?”
“이번 원정은 신시내티잖아.”
피츠버그의 다음 상대는 신시내티 레즈로, 레즈의 연고지 신시내티는 피츠버그에서 차량으로도 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신시내티에서는 딱히 할 게 없지 않나요?”
“왜? 클럽도 있고, 쇼핑도 있지.”
윤세호가 자동차 핸들을 틀면서 말했다.
“모래 등판이니, 상대 타자들 분석이나 할 겁니다.”
“재미없게 왜 그래?”
이도현은 원정 경기에서 클럽이나 바를 가는 타입이 아니었다.
윤세호는 그의 수행비서 겸 구단 스텝이었기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걸까?’
그가 슬쩍 던지듯 물었다.
“선배님, 브라운하고 신고식이라도 준비해 둔 겁니까?”
윤세호가 언급한 브라운은 포수 제이스 브라운이 아닌 3루수 헨리 브라운이었다.
헨리 브라운은 이도현과 관계가 좋았다.
“들켰나?”
“······.”
윤세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브레이크를 밟자 이도현이 어깨를 세웠다.
“워, 워······. 신고식은 아니고 그냥 식사 한 끼 하기로 했어.”
윤세호가 눈썹을 세우며 물었다.
“브라운하고 말입니까?”
“산토스하고 패트릭도 함께야.”
윤세호는 산토스와 패트릭도 함께라는 말에 눈썹을 아래로 내렸다.
“흐흠, 패트릭에게는 신세 진 게 있으니, 제가 밥을 사면 안 될까요?”
그는 지난 데뷔전에서 중견수 패트릭 브라이언트의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다.
“비싼 곳인데 괜찮겠어?”
“신시내티잖아요.”
비싸 봐야 신시내티라는 이야기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모양이군.”
“이번에 승격 보너스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첫 번째 주급도 들어옵니다.”
윤세호의 메이저리그 승격 보너스는 100만 달러로 세금과 수수료를 제외해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에 머무는 동안에는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 71만5천 달러(9억6천만 원)에 해당하는 주급을 받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한 명 더 올 거야.”
“한 명 더요?”
“내 통역.”
윤세호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님, 이제 3년 차인데 굳이 통역을 쓰셔야 합니까?”
이도현은 메이저리그 3년 차가 되자 팀원들과 무리 없이 대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운전은 아직도 무리니까.”
그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아직도 자동차 핸들을 잡지 못했다.
“운전은 제가 있잖아요.”
“너 마이너 내려가면 어쩌고?”
“선배님, 이거 한 방 먹이시는 것 같은데······. 맞죠?”
이도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사람도 만나고 해야 할 것 아니야. 언제까지 나하고 같이 다닐 건데?”
“저 만날 사람 없습니다.”
윤세호는 아직 한눈을 팔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매 경기가 생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승리한 것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몇 경기 더 등판하게 되면, 메이저리그 팀들이 현미경 분석에 나설 테지.’
그는 메이저리그 전력분석팀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내 피칭을 나노 단위로 쪼개서 분석하겠지.’
주자 견제, 셋업 모션, 티핑, 디셉션 그리고 구위와 무브먼트까지.
메이저리그 전력분석팀은 각을 잡고 그의 피칭을 분석할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시절 다 간다.”
“선배님은요?”
이도현도 미혼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난 나쁜 남자니까.”
“선배님이요?”
“한국에 있을 때, 많이 만났다.”
윤세호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그러십니까?”
그는 이도현이 한국에 있을 때도 야구에 전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흥을 좋아하는 선배들이 유혹해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지.’
이도현은 프로에 데뷔했을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한 바 있었다.
‘처음부터 나하고는 격이 달랐어.’
그는 철저한 자기 관리의 상징이었다.
매일 같은 루틴으로 훈련하고 휴식일에도 친구를 만나는 대신 그라운드에 나가 배트를 휘둘렀다.
여기서 더 나아가 먹는 것, 자는 것, 마시는 것까지 신경을 썼다.
‘술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지.’
이도현은 오히려 미국에 와서 많은 것을 내려놓은 타입이었다.
“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제가 들은 게 있으니까요.”
“녀석······.”
“그래서 이번에 오는 친구는 어느 팀인가요?”
윤세호는 이번에 오는 통역도 이도현과 관계가 있는 프로 구단 출신 선수라고 생각했다.
“돌핀스.”
“또 돌핀스입니까?”
“내가 부탁한 게 아니야.”
“선배님이 아니라면······.”
이도현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찰리가 불러온 친구야.”
타이거 스포츠의 찰리 킴은 이도현의 에이전트이자 윤세호의 에이전트였다.
“타이거 스포츠에서 돌핀스와 접촉했다는 말입니까?”
“돌핀스에 접촉한 건 아니고, 타이거 스포츠에서 사람을 구했는데 돌핀스 쪽 친구가 이력서를 낸 거야.”
윤세호는 2년 전까지 돌핀스에서 배팅볼 투수를 한 바 있었다.
하지만 누가 통역으로 올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돌핀스에는 통역으로 올만 한 친구가 없었는데 말이야.’
그가 살짝 말끝을 높였다.
“그래서 누굽니까?”
“자네가 모르는 친구야.”
“신인 중에서 뽑았다는 말인가요?”
“신인이 아니라 프런트.”
윤세호는 프런트라는 말을 듣고는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돌핀스 프런트라면 가능하겠네요.”
프로야구 프런트 직원 중에는 의외로 유학파나 고학력이 많았다.
“연봉도 많이 못 주는데 온다고 하더라.”
“연봉을 많이 못 주시긴요. 제가 받는 돈만 주셔도 돌핀스 프런트 월급의 2배일 텐데요.”
KBO 프런트 직원의 월급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돌핀스 쪽에서 꽤 아까워하고 있겠어.”
윤세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돌핀스에서 아까워한다고요?”
“너 말이야.”
“저요?”
“돌핀스 이번 시즌 선발진이 무너졌다고 하더라.”
윤세호의 성공을 인천 돌핀스에서 아쉬워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선배님.”
“왜?”
“너무 갔습니다.”
윤세호는 인천 돌핀스가 그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돌핀스에서 나는 완전히 실패한 선수였으니까.’
그는 2군은커녕 흔히 3군이라 불리는 예비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였다.
* * *
인천 돌핀스 프런트 회의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인천 돌핀스 대표이사 송영기였다.
“자네들 내가 어제 회장님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알고 있나?”
“······.”
그의 앞에 얼굴을 굳히고 있는 인물들은 인천 돌핀스 프런트의 임원들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는 줄 아나? 돌핀스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승을 거뒀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정주현 단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희는 윤세호 선수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송영기 대표가 얼굴을 굳혔다.
“군대를 다녀온 선수를 바로 배팅볼 투수로 투입한 게 충분한 기회를 준 건가?”
윤세호는 전혀 몰랐지만, 스포츠 채널에서 윤세호의 메이저리그 데뷔까지의 과정을 짧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한 바 있었다.
정주현 단장은 대표의 한 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 그게······.”
인천 돌핀스에서 윤세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윤세호를 방출한 것은 그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이었다.
“회장님께서 그러시더군. 저렇게 좋은 선수를 뽑아놓고, 돌핀스에서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모기업 회장의 한 마디는 절대적이었다.
“죄송합니다.”
프런트 임원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버린 복권이 사실 당첨된 복권이었다는 말이군.’
‘근데 누가 버린 거야?’
‘그 친구 방출 결정한 사람은 속이 타겠군.’
이번 시즌 윤세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누군가는 그의 방출에 책임을 져야 했다.
“어쩔 거야?”
“스카우트 팀에서······.”
“스카우트 팀은 윤세호를 뽑은 것뿐이잖아.”
윤세호의 방출을 결정한 것은 운영팀이었다.
“그럼 운영팀장을······.”
송영기 대표이사가 다시 한번 말을 잘랐다.
“지금 운영팀장이 윤세호를 방출한 게 맞아?”
윤세호가 인천 돌핀스에서 방출된 것은 벌써 4년 전 이야기였다.
당시 운영팀장은 지금 부단장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윤성호 부단장은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방출 명단에 윤세호의 이름을 올렸으니까.’
당시 그는 윤세호의 부활 가능성을 제로로 판단한 바 있었다.
“책임은 어떻게 지려고?”
“옷을 벗겠습니다.”
“자네가 옷 벗는다고 회장님이 웃을까?”
윤성호 부단장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송영기 대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미국에 가서 윤세호 설득해.”
윤성호 부단장은 눈을 크게 떴다.
“예? 윤세호를 설득하라는 말씀은······.”
송영기 대표가 그의 말을 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절을 하든 사정을 하든 가서 어떻게든 친분을 만들라는 말이야.”
윤성호 부단장은 송영기 대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쯧, 윤세호와 친분을 만들어서 뭐하라는 말인가?’
그가 속으로 혀를 찼을 때였다.
송영기 대표가 덧붙이듯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그 친구 입에서 돌핀스 때 기억이 최악이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하란 말이야! 그리고 그 친구가 만에 하나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하면, 다른 팀으로 가지 않게 잘 설득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윤세호를 설득해서 인천 돌핀스에 관한 나쁜 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윤세호가 한국으로 리턴 했을 때 돌핀스에 재입단하게 하라는 말이었다.
“그, 그것은.”
“못하면 옷 벗어!”
윤성호 부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미국에 다녀오겠습니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도 옷을 벗는 것보다는 낫겠지.’
윤세호의 메이저리그 데뷔는 지구 반대편에서 예상하지 못한 나비 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 * *
신시내티 레즈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함께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 속했다.
과거 두 팀은 이렇다 할 라이벌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두 팀은 좋지 않은 라이벌리가 형성되고 있었다.
- 꼴찌 대결이네?
- 이게 그 단두대 매치인가?
- 피츠버그도 5할 아래지?
- 물론이지. 4승 5패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신시내티 레즈는 지난 시즌에도 지구 4, 5위를 나란히 기록한 바 있었다.
스포츠 매체 기자들도 두 팀의 대결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헤드라인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거야?”
“최하위 탈출이라고 쓰면 어때?”
“그렇게 쓰면 양쪽 구단에서 다 미움을 받게 될걸?”
“다저스나 양키스도 아니고, 꼴찌 구단 반응까지 일일이 신경 쓰면 기자 생활 못 한다고.”
기자들의 포커스도 꼴찌 탈출에 맞춰져 있었다.
“음, 그리고 보니, 피츠버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위닝만 해도 5할 복귀군.”
“6승 6패인가?”
승률 5할은 딱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5할 승률로는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경쟁에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피츠버그는 잘하면 플레이오프를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구 우승 같은 건 힘들어도 와일드카드 경쟁 정도는 해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스킨스가 힘내준다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스포츠 매체 기자들이 바라보는 피츠버그는 폴 스킨스와 미치 켈러가 버티는 다크호스 정도였다.
“내일 경기 선발은······.”
수염이 덥수룩한 기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일은 피츠버그가 지겠는걸?”
“왜? 선발이 누군데?”
“세호야.”
“레즈는?”
“헌터.”
헌터 그린은 신시내티의 에이스로 2017년 드래프트 전체 2번의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폴 스킨스와 마찬가지로 100마일(160.9km)을 훌쩍 넘기는 패스트볼을 지니고 있었으며, 비공식으로는 105마일(168.9km)의 최고 구속을 기록한 바 있었다.
덧붙여 말하면 지난 시즌에는 10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 150이닝과 150K를 동시에 달성해 유망주 딱지를 떼고, 에이스의 자리에 올라섰다.
“선발 투수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군.”
“한 경기 져주고 나머지 두 경기를 다 쓸어 담겠다는 전략인 것 같아.”
기자들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딕 워렌 감독이 지구 라이벌을 상대로 승부수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세호 다음은 스킨스와 켈러니까. 그런 것 같군.”
그 누구도 윤세호가 신시내티의 에이스 헌터 그린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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