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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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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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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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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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29. 안개


튀르키예 동남부의 한 지방 도시, 아디야만.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역 상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가게 문을 열고, 신선한 상품을 진열하며 하루의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지역 상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여성 두 명이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눈부신 금발 머리를 자랑하는 화려한 모습에 건강미 넘치는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모습으로, 그 이름은 베아트리체였다.


다른 한 쪽은 품이 넓은 검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가히 폭력적이라고 할 만한 풍만한 몸을 숨기고 있는, 이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동양적인 외모의 갈색 머리 미녀로, 아릴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마침 가게 앞에 쌓아 놓은 밀가루 포대를 들고 가게 안으로 나르던 빵집 주인에게 다가간 그녀들은 다른 상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근처에서 평소에는 본 적 없는 대형 버스를 보셨나요?”

“저희가 이 지역으로 관광을 왔다가 가족과 떨어졌거든요. 꼭 부탁드려요”


빵집 주인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텔레비전에서도 흔히 볼 수 없을 정도의 미녀 두 명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마치 마법에 홀린 듯이 그녀들의 미모에 넋을 잃은 빵집 주인은 기억을 되짚어 그녀들을 위한 답을 끄집어 냈다.


“으음··· 어젯밤에 대형 버스 하나가 마을 동쪽 광장에 주차되어있는 걸 보기는 했지. 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다른 버스들과는 다르게 창문을 새카맣게 칠해놓아서 특히 기억에 남기는 하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족을 찾을 수 있겠어요”

“천만에, 아가씨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나야말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겠구만”


친절한 빵집 아저씨 덕분에 중요한 단서를 얻은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는 마을의 동쪽 광장을 향해 달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우중충한 날씨,

보기보다 넓은 마을 동쪽 광장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는 이상한 모양새의 동상 하나가 서 있을 뿐,

흔하디 흔한 화단이나 분수대 같은 다른 장식물 따위는 없었으며,

보도블록이 깔려 있는 바닥과 아무 장식 없는 주변 건물의 조화가 살풍경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한 광장 한 켠에 세워진 버스 한 대는 빵집 주인의 설명대로 창문을 시커멓게 칠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만 주의깊게 보더라도 그 버스가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버스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쪽으로!”


그 모습을 본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는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베아트리체는 일단 스마트폰을 꺼내 의심되는 버스를 발견했다는 메시지를 시현과 푸코 교수가 볼 수 있게끔 남겨둔 후, 아일라에게 말했다.


“버스에 인질이 있다면 분명 주변을 감시하는 녀석들이 있을거야”

“당장 보이는 건 없긴 한데,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조심하면서 접근해요”


그렇게 숨죽여가며 버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는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에 도착한 순간.


“이러언~ 장미십자회 여러분이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을까요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낡은 코트를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여자가 45구경 권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분명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죠?”

“글쎄요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답니다아. 중요한 건 여러분이 왜 이곳에 있는지가 아닐까요오?”

“너희가 납치한 장미십자회 학자들을 돌려받기 위해 왔다”


묘하게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말투와 상반되는 날선 분위기에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는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 전투 준비를 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가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들고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과 달리 정체불명의 여인은 겨누고 있던 총을 내리며 흔쾌히 답변했다.


“인질을 데리러 왔다고 했나요오? 그러면 원하시는 대로 데려가도록 하세요오. 여러분이 찾는 사람들은 그 버스 안에 있답니다아”

“무슨 수작이지?”

“수작이라뇨오 저는 그냥 여러분이 동료들과 재회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싶을 뿐이랍니다아”


그렇게 말한 여성은 당당하게 베아트리체와 아일라 사이로 걸어들어와 버스의 문을 홱 열었다.

그렇게 드러난 버스 안에서 나타난 것은 사지를 구속당한 상태로 내팽개쳐져 있는 인질들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아일라가 자신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뛰쳐들어갔지만, 베아트리체는 총을 든 여성을 경계하며 버스 내부에 진입하기를 꺼렸다.

그러자 베아트리체를 향해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는 들어가보지 않아도 괜찮나요오?”

“당신이 무슨 속셈으로 인질을 풀어주겠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순순히 믿을 바보는 아니라서 말이야”

“흐으음··· 그렇다면 먼저 들어간 아가씨가 인질을 풀어주는 동안, 우리는 서로 통성명이나 할까요오?”

“그래, 나는 장미십자회 단원,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한다. 너는 누구지?”

“저는 나더슈디 부인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어요오. 저는 여러분 같은 어린 여성분들을 참 아낀답니다아”


상대방의 이름을 들은 베아트리체는 기시감을 느꼈다.

‘나더슈디 부인이라는 이름을 분명히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이럴 때 푸코 교수님이 있다면, 필호 아저씨가 있다면, 하다못해 못미더운 아버지라도 있다면 뭔가 아실텐데’

지금은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이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30. 아난시


한 편, 버스 안에 들어간 아일라는 인질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기겁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십수명의 인질들 모두, 어제,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비쩍 말라 마치 해골과도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반백의 머리칼과 긴 수염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인 아버지, 이스마엘 귀네슈는 볼이 음푹 파여 눈 밑과 광대뼈 밑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순간 죽은 건 아닐까 쓰러진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심장은 빠르고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순간 무언가 세게 충돌한 듯 버스 전체가 크게 좌우로 흔들렸다.


“크읏! 아버지, 괜찮아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간신히 중심을 잡은 아일라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굴러다니는 인질들의 몸상태부터 챙겼다.

그러나 밖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총성과 충격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버스 밖으로 나선 아일라에게 닥쳐오는 것은 아까 전 보다 훨씬 더 짙어진 안개 속에서 불을 뿜는 총구.

난데없는 공격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아일라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이 짙은 갈색 눈동자를 꿰뚫으려는 순간,

투명한 방벽에 막혀 우그러지는 총알의 모습이 주먹만큼 크게 눈에 들어왔다.


“아일라! 숙여!”


베아트리체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자 측면의 사각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아일라의 목이 위치했던 공간을 가르며 지나갔다.

베아트리체의 도움으로 간신히 적의 공격을 피해 낸 아일라는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 사이 아일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게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무 건물의 벽에 딱 달라붙어서 등쪽 방향을 보호한다면 전방에서 다가오는 공격에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시에 공격하는 것을 피해낼 수 있을 것이다.


벽에 찰싹 달라붙은 아일라는 목에 걸고 있는 장신구를 만지작거렸다.

아버지와 함께 방문했던 서아프리카의 한 시장에서 발견한 유물.

나무 진액이 굳어져 만들어진 호박에 거미가 들어간 보석.

서아프리카 아샨티 족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미 신, 아난시의 힘이 담긴 유물이다.

아난시는 아샨티 신화의 트릭스터, 잔꾀와 속임수로 여러 고난을 헤쳐가는 장난꾸러기 신이다.

옥수수 한 알로 100명의 하인을 들이기도 하며,

해와 달을 보따리에 넣어 가져가기도 하고,

빛나는 달을 하늘에 걸어놓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런 여러 신화들 속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아난시의 여섯 아들 이야기이다.

아일라가 거미 신 아난시에게 빌리는 권능은 그 여섯 아들의 능력.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누군가의 팔이 아일라에게 총구를 겨눈 순간

아일라는 외쳤다.


“여섯째!”


그러자 절대 끊어지지 않는 거미줄로 만든 그물이 날아오는 총알을 붙잡아 충격을 흡수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능력


“첫째!”


아난시의 첫째 아들의 능력을 얻은 아일라의 시야에는 흐린 안개 속, 총과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베아트리체와 적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안개에 시야가 가려 매 순간 위태위태하게 적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이 전부였으나,

적은 안개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베아트리체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아일라는 베아트리체를 돕기 위해 새로운 능력을 준비했다.


“다섯째!”


이번에 선택한 능력은 돌팔매질에 능숙한 다섯째의 능력.

아일라는 바닥의 아무 돌이나 집어들고 적을 겨냥했다.

등 뒤로 잡아당긴 팔이 한계에 도달해 부들부들 떨리며 근육이 팽창했다.


‘아직은 아니야’

‘지금인가? 아냐, 아직이다’

‘호흡을 멈추고, 목표를 똑바로 바라보고,’

‘디딤발을 반대쪽으로 내딛으면서!’

‘바로 지금!’


극한까지 긴장되어있던 팔의 근육이 빠르게 수축하며 돌을 내던졌다.


31. 안개 속의 사투


베아트리체는 점점 더 짙어지는 안개 속에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만져지는 것은 은으로 만들어진 동전.

여신의 형상이 새겨진 유물이었다.


“로마를 수호하는 유노 여신이시여, 당신이 거위의 입을 빌려 갈리아의 군세를 막아낸 것과 같이 당신의 권능으로 나의 적을 물리치소서.

이 자리에 나의 금을 바치노니 당신께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바친 장군, 카피톨리누스와 같이 적과 맞설 힘을 주시옵소서”


베아트리체가 기도문을 외우며 지갑을 꺼내자 두툼했던 지갑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으으··· 이번에는 돈을 별로 챙겨오지 못했는데”

“돈을 제물로 바쳐 힘을 얻는 능력인가요오? 그 힘이 어느 정도일지 한 번 보도록 하죠오”


짙은 안개로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더슈디 부인이 총을 겨눴다.


탕!

“팔랑크스!”


나더슈디 부인의 공격에 재빨리 주문을 외치자 갑작스럽게 불을 뿜은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이 투명한 보호막에 막혀 튕겨나갔다.


“호오~ 반응은 꽤 좋군요오”


베아트리체는 굳이 적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 없이 곧바로 눈 앞의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시현과 비등비등하게 겨루었던 것과 달리 그녀의 검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적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분명히 적에게 명중했을 공격은 적에게 닿는 감촉 없이 헛손질이 될 뿐이었다.


“이러언, 깜짝 놀랐네에. 보기보다 과격하신 분이로군요오”


능청을 떨던 나더슈디 부인은 안개 속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더니 베아트리체의 등 뒤에서 다시 나타나 단검을 휘둘렀다.


“크읏!”


가녀린 나더슈디 부인의 외견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잠시,

이번에는 옆에서 나타난 적의 다리에 걷어차여 크게 밀려났다.


벽돌 바닥을 박살내며 뒤로 밀려나던 베아트리체는 인질이 타고 있는 버스에 충돌하면서 자리에 멈출 수 있었다.


로마 조폐소를 수호하던 여신, 모네타 유노에게 제물을 바쳐 일시적으로 큰 힘을 얻은 베아트리체는 초조함을 느꼈다.

상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정면 대결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베아트리체의 장점은 그 빛을 잃는다.

그런 베아트리체에게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소지금을 모두 소모하고, 그 이후로는 무력하게 당하는 미래만이 그려졌다.


‘이 상황을 뒤집을 수단이 필요하다’


그 때 버스에서 내리는 아일라가 베아트리체의 시야에 간신히 보였다.

그녀를 향해 겨눠지는 45구경 권총의 총구가 빛나는 것이 보이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어의 주문을 외쳤다.


“팔랑크스!”


간발의 차이로 아일라를 향한 총알을 막아 낸 베아트리체는 곧바로 아일라를 향해 외쳤다.


“아일라! 숙여!”


베아트리체의 외침에 반응한 아일라가 고개를 숙이자, 나더슈디 부인의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아일라가 무사히 몸을 피하고,


이후 베아트리체는 안개 속에 숨어 기습을 반복하는 나더슈디 부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막아내는 것을 반복하며 수 차례의 죽음의 위기를 견뎌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베아트리체의 정면에 나타난 총구를 본 순간,

베아트리체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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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24.08.10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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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24.08.08 32 1 12쪽
16 16화 24.08.07 35 2 12쪽
15 15화 24.08.06 3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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