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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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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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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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프롤로그


19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저서 <즐거운 학문>에 서술했다.


[신은 죽었다]


이 짧은 문구는 그리스도교의 ‘야훼’나 이슬람교의 ‘알라’로 대표되는, 이상적인 존재가 인류의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으로 존재해서는 안되고, 그저 현세의 삶에 가치를 두고 충실하게 살아가야 함을 주장하는 니체의 사상을 담은 말이다.

다만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그 시대적 배경과 함께 실제로 종교적 가치에 의해 인간 문명의 의사를 결정하는 세태가 종식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구절로, 근대 시대를 대표하는 슬로건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인류의 역사 뒤편으로 사라진 신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어린 인류의 손을 잡고 이끌어 최초의 문명을 이룩하고, 인류가 홀로서기를 마칠 때까지 그들을 보호해 주었던 신들은 정말로 니체의 말처럼 죽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놀랍게도 신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니체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보게 된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할 지 궁금하다.


어느 겨울날, 사막 위에 세워진 어느 도시에서 나는 신을 마주하고 있다.


“신이시여, 이 재해를 멈추어 주십시오! 이대로 가면 당신의 백성들이 몰살당할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것일까?

거구의 중년이 나를 돌아본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의 비범한 정체를 감출수 없다는 듯 그의 눈과 입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그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와도 같이 천지를 울렸다.


“짐의 백성들은 짐을 잊은 지 오래일세.

그들은 이미 타락하여 서로를 미워하고 차별하고 있지.

내가 그들을 벼락과 홍수로 벌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바람이라네.

그들은 둘로 나뉘어 반대편을 죽여달라며 저마다 소원을 빌고 있지.

설령 그것이 나에게 하는 기도는 아닐테지만, 그게 뭐 별건가?

내 영토 위에서 기도를 한다면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겠나”


틀렸다.

이 신 뭐시기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기도니 뭐니 하는 것은 핑계일 뿐.

그냥 괘씸하니 다 죽여버리겠다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먹을 쥐는 순간 내 등을 떠미는 손길이 있었다.


“다녀오게나, 내가 뒤를 지킬 테니. 저 고집불통 구닥다리에게 한방 먹여주거라”


내 등을 떠민 것은 또다른 신. 이 도시를 멸망시키려는 거구의 남성과 대조되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한 신이다.


은실로 수를 놓은 듯 고운 머릿결,

밤하늘을 담은 듯 별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장미잎을 물고 있는 듯 생기 넘치는 붉은 입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인화한 것 같은 여신이 나를 사지로 떠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발적으로 앞으로 한걸음 나선다.


“예 예, 굳이 등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갈 생각이었다구요~”


나에게는 고작 한 걸음이지만.

내 등 뒤에 있는 도시에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내가 내딛은 이 걸음이 인류의 홀로서기를 알린다.


.

.

.


1. 이웃


서울 외곽의 한 원룸.

23세의 청년 이시현은 박스 하나를 품에 안고 204호의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한 집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썰렁하다.

혼잣말로나마 귀가를 알리고 가방과 외투를 내팽개친다.

10평 남짓한 단칸방에 냉장고, 싱크대, 책상과 컴퓨터를 제외한 가구는 없다.

그것이 시현의 자취방

그 곳에 신나는 마음으로 택배 상자를 뜯어 그 안에 있던 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택배상자에서 나온 것은 전자레인지.

기쁜 마음으로 전자레인지에 전원을 연결해본다.


“띵!”


맑은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온 전자레인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이야~ 드디어 이 방구석에도 전자레인지가 들어오는구나!”


사실 이전에도 이 방에는 원래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그러나 낡아빠진 가전제품의 사망선고는 예고없이 찾아왔다.

다시는 음식을 데워주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근처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한 지 1개월째.

옆집이 이사를 가면서 전자레인지를 넘겨주고 간 것이다.


“은혜로우신 이웃을 둔 덕분에 이번 위기도 가까스로 넘겼네”


일찍이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여의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시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 지 20년.

이후 해외 분쟁 지역으로 출장을 가셨던 아버지가 실종된 지도 이제 3년째다.

실종된 아버지의 상태는 서류상 사망으로 처리되었으나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 탓에 다니던 대학을 휴학한 후 아버지가 남기고 간 집을 팔고 새로 살 집을 구했다.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서울 한 귀퉁이의 원룸을 구해 살 수 있었으나 아버지와 단 둘이 살 때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습관이 남아 극도로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새로 생긴 전자레인지에 어떤 애칭을 붙여 줄까 고민하던 찰나에.


똑.똑.똑


“계신가요?”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더니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지금 나갑니다~”


예고 없는 방문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응답하며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모자를 깊게 눌러썼으나 한 눈에 외국인임을 알아 챌 수 있는 외양의 소유자였다.


금발 머리를 하고 있으나

염색한 머리가 아닌 생기 넘치는 황금빛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키 차이가 다소 있는 덕분에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눈은 대양을 그린 듯 한 깊은 푸른색이었다.

주근깨가 뿌려진 콧날은 날카롭고 오똑했고,

피부는 대리석과 같은 창백한 상아색이었으며.

조막만한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어떤 여배우를 데려다 놓아도 그 빛이 바랠 만큼 아름다웠다.


잠시간 그 외모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으나 상대방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오늘 옆집에 이사와서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예?”

“바로 옆에 203호에 오늘부터 살게 된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왔어요.

벽에 못을 좀 박으려고 하는데 좀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미리 양해 부탁드리려고 해요.

아! 집주인 아저씨한테는 미리 허락을 받았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금발 미녀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잠시 할 말을 잃고 0개국어 능력자가 되어버린 시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기소개를 했다.


“아, 반갑습니다. 여기 204호에 사는 이시현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아! 맞다 이거 받으세요”


그렇게 말한 베아트리체가 내민 것은 친숙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시루떡이었다.


“이사왔을 때 이웃에게 떡을 돌리는 것이 한국의 풍습이라던데··· 맘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아···예 감사합니다 이 반찬통은 잘 씻어서 돌려드릴게요”


그렇게 새 이웃과의 인사를 끝내고 문을 닫자 잠시 후 예고했던 대로 벽을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겉보기에는 여리여리해보이던데, 망치질은 되게 터프하게 하시네”


여러 차례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현은 잠시 외출을 다녀오기로 했다.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오면 저 망치질도 끝나있겠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서서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나섰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외근을 나온 영업직 사원, 길가에 차를 대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택시기사들, 장을 보러 나온 아주머니들, 수업이 끝나 신나게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도달한 곳은 한적한 놀이터였다.

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인 야트막한 언덕의 중턱 정도에 낡아빠진 벽돌집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보면 아무도 찾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놀이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놀이터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주머니속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서늘한 느낌이 드는 푸르른 가을 하늘에 떠가는 조각구름들 사이에, 입으로 내뱉은 연기가 제 몸을 보태어 떠내려갔다.

허공에 손을 뻗어 연기를 휘저어 보면 내 손길대로 구름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묘한 전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놀이터는 이 동네 꼬맹이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으나 그 꼬마들은 어느 새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 이 방치된 구석탱이를 벗어난 지 오래다.

그 결과 가뜩이나 줄어든 출산율에 더불어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자 이 동네에는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만 남고 놀이터를 찾는 이는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사색에 잠겨 있다가 타들어가던 담배가 입술 바로 앞까지 짧아질 즈음, 재떨이로 쓰는 빈 깡통에 꽁초를 튕겨 버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삼촌 접니다. 시현이요”

[어 그래 시현아 집세 입금한 거 방금 확인했다]


전화를 받은 상대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지금 사는 원룸을 시세의 절반 가격에 내어 준 집주인 정필호였다.

시현은 평소 필호를 은인으로 여겨 건물 복도 등을 청소하거나 간단한 민원 처리 등을 도우며 실제 친 삼촌처럼 가깝게 지냈다.


“예 삼촌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고요, 오늘 203호에 누가 새로 이사를 왔던데...”

[아~ 그 아가씨? 왜 관심있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왠일로 외국인이 왔나 해서요”

[내가 아는 분 따님이신데 지낼 곳을 찾는다길래 우리 원룸으로 오라고 했지]

“뭐 아는 분이 세계 방방 곡곡에 다 있으시네요 정말로”


과장이 아니라 필호는 정말로 아는 외국인이 많았다.

이 동네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로 나가면 음습한 뒷골목에 필호가 운영하는 바가 하나 있다.

나는 그 바에서 종종 허드렛일을 도우며 알바비를 받는 와중에 그 바의 손님들은 유달리 외국인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중 몇몇은 거의 매주 한번씩은 찾아오는 단골인 듯 했다.


[아무튼 그 아가씨도 너랑 동갑이라니까 친하게 지내라]

“그런다고 친해질 것 같으면 서울의 대학생들 4분지 1은 다 제 친구게요?”

[암튼 이따가 저녁때쯤 일하러 와라 오늘 뽀너스 두둑히 챙겨줄게]

“예~ 오늘 좀 바쁠 예정인가보네요?”

[그래. 아! 맞다! 그 옆집 아가씨도 같이 데리고 와 그 아가씨도 오늘부터 같이 일할거야]

“예?”

[그럼 난 바빠서 끊는다. 이따 보자]


그렇게 전화는 끊어지고 나의 마지막 물음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황량한 놀이터에 울렸다.


2. 출근


다시금 돌아온 집.

망치질 소리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204호 문 앞에 서서 바로 옆 203호의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방 안에 들어갔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익숙한 방 안에 들어와 출근 준비를 하며 고민에 잠겼다.

오늘 처음 만난 외국인 여성에게 다짜고짜 같이 일하러 가자는 소리를 하려니 괜히 망설여졌다.


23년의 세월을 모태 솔로로 지내온 숙맥 이시현에게 이탈리아 출신의 미녀는 말 한 마디 붙이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플라스틱 반찬통.

잽싸게 그것을 잘 씻어 손에 들고 203호의 문 앞에 섰다.


“휴우”


망설이던 마음을 추스르고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문이 열렸다.


“아”

“어···”


아까와는 다르게 가벼운 회색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베아트리체가 나오다가 눈을 마주쳤다.

문을 두드리려던 자세 그대로 멈춰 선 시현은 어색하게 말을 건넸다.


“아까 그 반찬통 돌려주려고요”

“아. 예··· 감사합니다”


반찬통을 받아들고 다시 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베아트리체를 붙잡아 말을 건넨다.


“집주인 아저씨한테 말씀 전해들었습니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되었다고요?”

“아 그 바에서 일하시는 분이셨구나 마침 곧 출근하려던 참인데”


베아트리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가 이 동네 지리를 잘 몰라서요.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하나 고민이던 차에 잘됐네요”


당황스러워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다시 눈에 담긴다.


방금 막 씻고 나온 듯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금발 머리에서 은은한 샴푸 냄새가 풍겨왔고 그녀의 하얀 피부는 분홍빛으로 상기되어 생기가 넘쳤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준비하고 나올게요”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청바지에 흰 티로 갈아입고 검은 볼캡을 눌러쓴 모습으로 다시 나왔다.


“그럼 출발할까요?”

“네 바로 가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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