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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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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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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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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속으로 들어가다_3

DUMMY

학교 앞 호프집.

이미 손 선배는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선배는 질문을 했다.


“어땠어요, 면접?”

“먼저 오셨네요? 면접요? 글쎄? 면접이라고 하기는 그렇구요. 그냥 내일부터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 리정 씨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전시가 바빠서 그런 거 같아요.”

“설마? 박 실장님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 아니에요.”

“그래요? 이력서는 형식적으로 보시는 거 같았고, 사실 아직 제 이력이란 게 별 게 없지만요. 저, 실은 면접에서 무슨 질문나올까 엄청 긴장했었거든요. 현대미술 동향이나 미술시장 이런 거 물으면 어떡하나 엄청 걱정돼서 어제 가지고 있던 『아트 & 컬렉터』 좀 뒤졌어요.”

“뭐라구요? 하하하.”

웨이터가 와서 간단히 저녁 식사겸 생맥주와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분위기는 어땠어요? 어디서 면접 봤어요? 2층?”

“네, 맞아요. 2층 거실 같은 곳에서 박 실장님 뵜어요. 와~, 진짜 그런 곳이 있다니 깜짝 놀랐어요. 선배도 거기 가 보셨죠?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이 뭐 그냥 팍 걸려있고, 나라 요시토모가 테이블 위에 딱 있더라구요. 무슨 인테리어 잡지인 줄 알았어요.”

“뭐 거긴 그건 기본이고. 박 실장님 어땠어요?”

“뭐가요?”

“리정 씨가 볼 때 어떤 분 같아요?”

좀 뜬금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께서 잘 아시는 분 아니세요? 전 정말 잠깐, 아주 잠깐 뵀을 뿐이라서···. 갑자기 대표님 같은 분이 나타나셔서 면접이 금방 끝났거든요.”

“아. 그랬군요.”

선배는 맥주를 쭉 들이키더니 잔을 테이블에 놓으면서 날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눈길을 거둬 맥주잔을 보며 말했다.

“취재 때문에 서너 번 만났죠.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일적으로 사람이 신뢰감이 가더라구. 아무튼 박 실장님 실력 있으신 분으로 유명해요. 같은 전시도 박 실장님 손길이 가면 전시가 달라진다니까. 좋은 기회니까 있는 동안 잘 배워요.”


그때 주문한 맥주와 안주가 나와 대화가 끊겼다.

“아무튼 축하해요. 건배. 짠”

“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둘 다 맥주를 쭉 마셨다.

선배는 이상하리만치 집중하면서 포크로 소시지를 집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시지를 씹으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다.


“선배,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내가? 아니”하고 찡긋 웃었다.


좀 말하기 그렇지만 그래도 생각난 김에 빨리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런데 선배, 제가 얼마 받는지 알고 계셨어요? 일당 4만원이래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라고 해서, 뭐 물론 어시스턴트지만 그래도 큐레이터라고 해서 전 살짝 기대했었는데 아르바이트 수준이더라구요. 솔직히 좀 더 기대했었거든요. 그건 좀 아쉽더라구요.”

선배는 눈을 놀란 듯이 크게 뜨고는

“어머, 리정 씨 무슨 말이야? 뭘 모르는 소리하네. 그 자리 탐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자리는 돈 내 가면서 배우는 자리예요. 그리고 정식 큐레이터도 갤러리 월급이 뭐 거기서 거기지. 결국 회사원! 회사원 월급 얼마 되겠어요? 그게 얼만 게 무슨 소용이야. 거기 기회가 얼마나 대단한 건데. 내가 리정 씨 위해서 딱 낚아챈 거야.”

“저, 절 위해서요?”

“리정 씨 전에 보니까 일도 잘하고”

선배는 말을 하다가 말고 맥주를 쭉 들이켰다. 잔을 테이블에 딱 소리 나게 놓으며 말을 이었다.

“리정 씨 거기 어떤 사람이 가는 줄 알아요? 그런 자리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컬렉터 자제분들이나 갈 수 있는 자리예요. 다들 얼마나 줄을 서는데. 작품 쭉 컬렉션 하는 집에 외국에서 유학하다가 방학 때 한국에 오면 인턴으로 가는 자리예요. 경험 삼아서.

그 월급으로 뭐하나 싶죠? 그 친구들 모르긴 해도, BMW나 미니 타고 다닐걸요. 매일매일 옷이랑 매치해서 핸드백은 프라다, 샤넬, 루이비통 다른 거 매고 올 건데 그 월급으로는 택도 없지. 그런데, 그런 델 왜 가서 매일 그 고생을 하느냐? 갤러리에서 일한다 하면 선 자리가 달라지거든.

요즘은 부잣집도 그냥 집에서만 있는 며느리 안 원해요. 그런데 또 매일 나가서 일하는 며느리, 전문직 며느리 그거 별로에요. 왜? 자기들 손자, 손녀 교육하는 데 방해되니까.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투자용으로 작품 사 모을 텐데 미술 쪽 아는 며느리가 좋잖아요. 집안 잘 꾸미고, 있는 자산 관리해야 하는데 얼마나 좋아. 뭐 먼 미래에 갤러리, 아니 미술관도 하나 차릴 수 있고.”

속사포같이 막 쏟아내는 선배의 설명을 듣자 아르바이트로 잠깐 하면서 한 달 받을 돈만 계산하는 내가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기자라서 그런가? 뭐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 이면을 봐라는 그녀의 말이 설득이 되면서도 당장 논문 쓸 동안 생활비와 논문 제작비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겠네요. 거기 거실만 봐도 사실 좀 주눅 들던데···. 뭔가 제가 사는 세상이랑 다르더라구요.”

“괜찮아, 괜찮아요.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친구도 있다 이 말이지. 갤러리도 일 안해도 되는 그런 친구들 프론트나 가벼운 일 잠시 시키는 거구. 그러면 또 자제분 맡긴 컬렉터가 작품 또 사 주니까. 실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건 아니에요. 알잖아요? 미학, 미술사 공부 빡센 거.”

“그래요?”

“그렇다니깐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 화려해 보여도 꽤 괜찮아요. 오히려 순수하고 베풀 줄도 알고.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있는 집 자제들 알아 놓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요즘 거기에 동화면세점 딸이 잠깐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결혼이야 나도 선 서너 번 보면서 왠지 천칭저울 위에 앉아 각자가 가진 것들 하나하나 올려 재 보는 건 익히 알고 있다. 선배가 선 자리 이야기하는 건 인정하겠는데 친구를 그런 속셈으로 사겨보라는 건 좀 선을 넘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야지 뭘 계산을 하고 사귀라고 하는지.


“그런데 리정 씨 이렇게 꾸미니까 평소랑 좀 다르다.”

선배는 나를 쓱 훑으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정말요? 그냥 있던 옷 입은 거예요. 그래도 면접이라서 정장에 가까운 걸로 챙겼어요. 선배님께서 소개시켜 주신 곳인데 기본은 하고 가야죠. 그런데 학교 다시 들어가고는 몇 년 정장을 안 샀더니 입을 게 이거 밖에 없더라구요.”

“리정 씨 내가 아까 그런 말 했다고 거기 다니면서 너무 옷에 신경 쓰고 그러지 마요. 잠시 일하러 가는 건데 너무 옷에 신경 쓰는 거처럼 보이는 것도 오히려 마이너스야.”

그녀는 오른손 둘째 손가락까지 들어 흔들며 그 말을 강조했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거 기분 나쁘게 생각지는 마요. 어차피 거기 오는 친구들 신경 쓰고 따라 하려고 해도 제대로 따라 하지도 못하고 골치만 아파. 그냥 편하게 학교 가듯이 다니고 일만 잘하면 돼요. 알았죠?”

손 선배는 전에도 그렇고 도움을 줘서 고맙긴 한데 뭐든지 다 아는 듯이 말하면서 너무 남의 일을 이래라저래라하는 경향이 있어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어제 전화를 받고 내일 뭘 입고 가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나름 면접이니 적당히 격식은 갖춰야하지만 또 너무 갖추면 촌스럽게 보일 수 있으니 세미 정장 정도의 옷차림으로 블랙 반코트와 블랙 바지를 골랐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면접용 옷이 이 정도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나는 키가 크진 않지만 다리가 긴 편이라 와이드 팬츠가 잘 어울리는 편이다. 화장도 과하지 않게 하면서 마스카라로 눈에 힘을 주었지만 입술은 누드톤으로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생기가 돋도록. 나도 간만에 메이컵을 정성 들여 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지난번에 선 본 남자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 준 향수, 샤넬 알뤼르를 뿌렸다. 그리고 마지막, 검은색 스트레토힐은 온몸에 긴장감을 주었다.


그동안 공부한답시고 너무 대충하고 살아서 점점 더 추리해졌던 거 같다. 옷도 그렇지만 발표로 바쁠 때 잠도 잘 못 자니 렌즈 끼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안경을 끼고 다녔다. 선배네 잡지사 아르바이트할 때도 자료 정리하느라 옛날 잡지 뒤지니 먼지도 많고, 컴퓨터로 엑셀 작업을 하다보니 눈이 피로해서 거의 매일 안경을 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장도 더 안 하게 되고, 옷도 캐주얼만 입고 다녀서 선배한테 나는 청바지 입고 안경 낀 후배로 기억되었을 거다.


“원래 안경 끼지 않았어요?”

“네,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서 안경 썼어요. 오늘은 면접이라서···.”

“안경 안 끼니까 느낌 너무 다르다.”

“그래요? 저두 안경 쓰는 거 싫어하는데 학교 다닐 땐 렌즈 낄 상황이 아니잖아요.”

“우리 회사 아르바이트할 땐 안경 쓰고 왔잖아.”

“그땐 컴퓨터 작업도 많고 자료 뒤지다 보면 먼지가 많아서요. 그래도 처음엔 렌즈 끼고 옷도 좀 챙겨입고 갔었는데 별 소용이 없더라구요. 하하하. 선배, 제가 그렇게 대충하고 다녔어요?”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니고 아무튼 렌즈 끼고 화장하니 우리 회사 아르바이트할 때랑 느낌이 다르다고.”

“네.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나는 선배에게 맥주잔을 내밀며 서로 잔을 부딪혔다.


맥주를 한 잔 다 마시자 배가 확 고파졌다. 감자튀김과 소시지를 좀 먹었다.

“선배 거기, 그 거실에 걸린 작품들 파는 건가요?”

“갤러리 2층? 당연히 팔지 않을까요?”

“그래요? 앤디 워홀은 얼마나 하나요?”

“작품이 뭐였는데요?”

“꽃이였어요.”

“꽃. 아크릴? 아니면 실크스크린?”

“앤디 워홀 작품이 아크릴화도 있어요?”

“그럼요. 판화만 한 게 아니라 직접 그리기도 했어요. 다들 앤드 워홀하면 실크스크린만 한 걸로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판화면 몇 백, 아크릴화면 몇 천 정도 할 꺼예요. 뭐 때론 경매에서 억으로 가는 것도 있구요.”

“선배, 그러면 그 누구죠? 요시토모! 나라 요시토모는 어때요?”

“나라 요시토모 작품도 거기 있어요?”

“회화는 아니고, 작은 인형이 테이블 위에 있더라구요.”

“그건 모르겠네. 일단 그 작품이 작품인지, 아트상품으로 만든 건지 모르니까요. 그 정도로 작은 거면 에디션(edition) 엄청 많은 아트상품일 가능성이 크네요.”


그녀는 피곤한지 손으로 목뒤를 감싸고 주무르며 말했다.

“나라 요시토모는 한국에 작품 안 판다고 하더라구요. 워낙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어서 대기자가 줄을 서 있어서, 작품이 한국까지 올 게 없데요.”

“사람들이 작품을 대기한다구요?”

“그럼요.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요. 그러니까 팔면서 재판매는 3년 이후 가능하다는 조건을 걸어요.”

“정말요? 그런 게 가능해요?”

“가능하죠. 사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는데 작품은 한정된다. 그럼 다들 사고 싶어서 난리지. 그러니까 사자말자 프리미엄 얹어서 팔면 바로 돈 되거든요. 그런데 너무 그러면 작가는 작품 관리가 안 되니까 그런 조건 달아서 파는 거예요. 돈 있다고 좋은 작품 아무나 못 가져요. 갤러리도 컬렉터 엄청 골라요.”

“그래요?”

“일본에 나라 작품 관리만 하는 갤러리가 있어요.”

“회화는 얼마나 하는데요?”

“아무리 작은 작품도 억에 가까울 껄요?”

“네? 억이라구요? 앤드 워홀보다 더 비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작품에 따라서는 그렇죠.”

“앤디 워홀은 죽어서 더 이상 작품이 안 만들어지고, 나라 요시토모는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잖아요. 그런데 살아있는 작가 작품이 더 비싸다구요?”

“아무튼 현재는 그래요. 여기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돼요. 지금은 앤디 워홀보다 나라 요시토모 인기가 더 높으니까, 즉 수요가 더 많다 이 말씀.

미술시장이 그냥 보면 좀 요지경 같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철저히 경제적 원리가 적용돼요.”


“리정 씨,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한 번씩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알았죠?”

그녀는 나에게 건배를 하자면 맥주잔을 내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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