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조상신이 도우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차훤
작품등록일 :
2024.08.03 13:25
최근연재일 :
2024.09.07 12:15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88,116
추천수 :
1,687
글자수 :
189,543

작성
24.08.08 08:15
조회
3,926
추천
70
글자
13쪽

정시은(1)

DUMMY

“여러분. 반가워요.”


돈의 노예.

나는 원래 돈의 노예였던 거다.


월급과 계약금에 홀랑 넘어가 나는 다시금 카메라 앞에 섰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들 앞에서.


“다들 저를 흑화쌤으로 기억하고 있겠죠? 그때는··· 좀 과하긴 했어요.”


지난번에는 너무 흥분했다.

앞으로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으니까.


“쌤. 제 옆에 있는 놈이 이번에 재수하는데 따끔하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래 저렇게 질문하면 무시하고 수업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내 맘대로 살기로 했다.

강태준도 내가 뭘 하든 꿈을 펼쳐보라면서 강의에서의 자유를 보장해 줬다.


“쌤이 관상을 좀 보거든요. 우리 학생 얼굴을 보니까 공부 말곤 답이 없는데?”


이번에는 과하지 않게.

하지만 이걸로 떴으니까 컨셉은 유지해야 한다.


“학생은 다른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어. 아님 희망이 없다니까.”


너무 심했나?

내가 생각해도.


“푸흡.”

“네 얼굴 개빻았다잖아.”

“미친놈아.”


어라?

왜 좋아하지?


“쌤. 얘도 그때 그 문제 틀렸어요!”

“그래요? 대가리 빠가는 백날 공부해도 소용없는데. 지금이라도 기술 배우는 게 어때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흥분한 어조로 쌍욕을 뱉어내는 건 애초에 내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쌤쌤! 얘는···.”

“눈 감아봐요. 뭐가 보이죠?”

“암것도 안 보이는데요?”

“그게 네 미래입니다.”


하는 말마다 폭소가 터져 나왔다.

원래 강의가 열리면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사람은 나였다.


학생은 시큰둥하게 빨리 수업이나 시작하지?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는데.


스타 강사의 삶이란 이런 걸까?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좋아한다.

무슨 짓을 해도 좋아할 것만 같았다.


“자,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봅시다.”

“쌤. 감사합니다.”

“진짜 재밌었어요. 쌤.”

“완전 귀에 쏙쏙 박히던데요?”

“감사함돠.”


그저 목례만 받았던 지난날과는 달리.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나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대화를 걸어왔다.


신기한 순간이다.

거기다 더 놀라운 건.


“우진 쌤. 수고하셨습니다.”


도도하기로 유명한 영어 담당 박미나 쌤.

해외파라는 이유로 난 너희들과는 달라 같은 느낌으로 철벽을 치던 사람이었다.


3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그 흔한 인사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먼저 인사한 적도 있었는데 대차게 무시당하고는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예쁘긴 겁나 예쁘다.

똘망똘망한 눈에 작고 도톰한 입술.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 좋아할 미인상이다.


“아뇨. 인사는 처음이라서요.”


자기도 민망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꽤 귀엽네.


“뭐··· 그럴 수도 있죠.”

“예. 당연히 그럴 수 있죠.”

“오늘 끝나고 뭐 해요?”

“예?”


사실 기분은 좋지만 박미나 쌤과 친해질 생각은 없다.

어정쩡한 무명의 강사일 때는 관심도 없다가.

반짝 떴을 때 저리 인사하는 걸 보면.


속물이란 소리다.

결국 인기라는 후광이 사그라들면 자연스럽게 떠나갈 사람.

굳이 연을 더 맺을 이유도 없었다.


“끝나고 가긴 어딜 간다고! 야, 우진아. 오늘 뒤풀이 가야지?”

“뒤풀이요? 내일도 수업 있는데요?”

“야야. 아직 젊잖아.”

“저희가요? 저 삭신이 쑤시는데.”

“클럽 가자.”


강태준은 와이프에 아들도 있으면서.

클럽엘 가고 싶을까.


“내가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젊은 혈기의 청춘들을 도와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다들 홍대 클럽. 어때?”

“전 좋아요.”

“저도요.”

“오올. 오랜만에 빵댕이 한 번 흔들어 봐?”

“우진아. 너도 갈 거지?”


난감하다.

클럽이라니.

생전에 클럽이랑은 연이 없었는데.


“전 진짜 피곤···.”

“우진아. 섭섭하다.”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클럽은 어떤 곳일까?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노는 걸까?


이젠 거절하기 힘들어서 거절 못 하는 병신 차우진이 아니다.

원한다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익숙해진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건 일종의 치유 과정이다.

착학 사람 증후군 치료.


“그럼 잠깐만···.”

“예에! 우진이도 간다. 자, 다들 정리하고. 밖에서 봐.”



*



홍대 클럽.


첫인상은 신세계였다.

어두운 조명과 화려한 조명의 어우러짐이 이리도 정신을 사납게 만들 수 있구나를 느꼈다.


테이블을 얻어서 학원 쌤들끼리 앉았다.

약간 갑갑한 느낌도 들고.


흥겨운 노래와 주변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며 춤추는 사람도 보였지만.

나는 흥이 오르지 않았다.

나와는 맞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우진아! 마음의 상처는 방탕함으로 씻어내는 거다!”

“형. 저 아직 그럴 정도로 시간이 지난 건 아니거든요.”

“하하하. 그래. 선택은 네 몫이니까. 어쨌든. 즐겨!”


강태준은 나이도 잊은 채 젊은이들 사이에 몸을 맡겼다.

아직 나도 퇴물이라 불릴 나이는 아니었지만.

딱히 저기에 어울릴 정도의 나이도 아니라서.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조용히 술이나 홀짝홀짝 마셨다.


“덥다, 그쵸?”


그때, 내 옆자리에 불쑥- 앉은 박미나 쌤.

원래는 회식도 잘 참석을 안 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클럽까지 따라왔다.


“전 잘 모르겠는데.”


겉옷을 벗자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야한 옷이 까꿍- 하며 마중 나왔다.

디자이너가 돈이 부족했는지 천을 좀 적게 쓴 모양이다.


“짠.”

“예.”


갑자기 술을 맥이기 시작한다.

혼자 천천히 마시려고 했는데.


계속 부추기는 박미나 쌤.

취기가 오른다.


알딸딸한 게.

머리도 어지럽다.

공기가 탁해서 그런가?

아까 가슴이 답답하던데.


“우진 쌤. 술 많이 약하구나?”

“아, 뭐···.”

“후훗.”


왜 웃지?

어후. 앞이 잘 안 보이는데.


술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들어간 술 때문인지 이미 취해버렸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으음.”


정신이 들었다.

포근한 이불 촉감이 부드럽게 몸 전체를 감싼다.


어제 술에 잔뜩 취해서 무슨 사고라도 낸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집에 무사히 잘 돌아간 모양이다.

기특하다 나 자신.


음?

그런데.

내 집에는 이런 포근한 이불 같은 거 없는데?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모텔.


“씨발. 이게 뭐지?”

“으음~”


흠칫- 놀랐다.

옆에 누군가 있다.

혼자가 아니다.


모텔에 혼자가 아니다?

제발.

강태준.

평소엔 꼴 보기도 싫지만 오늘만큼은 제발 너여라.


근데 이미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아까 소리는 절대로 강태준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여자 목소리.


제길.

어제 마지막으로 같이 있던 사람이 박미나 쌤?


엮이기 싫었는데.

보잘것없을 때는 마치 벌레 보듯이 무시했던 사람이 상황이 달라졌다고 이렇게 돌변하면 결국 배신당하게 된다.


상황은 언제든지 바뀌기 마련이니까.

미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교수가 될 수 없다는 상황에 미영이는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박미나 쌤도 마찬가지일 텐데.

진짜 지랄 났다.


일단.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보았다.

돌아누운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단발에 파마까지 했네?

머리 색깔이 좀···.

백금발?


박미나 쌤이 아무리 어메리칸 마인드에 해외파라지만.

저런 색깔로 염색하진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염색을 했을 리도 없을 테고.


아니면 내 눈알이 삐꾸가 됐나?


“크흠. 저기···.”

“음?”

“흠흠.”

“일어났어?”


부스스 이불 밖으로 나오는 얼굴.

약간의 이국적인 모습과 한국인의 모습이 섞인 혼혈.

백금발에 옅은 푸른 눈이 신비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누구···?”


박미나 쌤은 일단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오히려 더 난감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잠자리를 가진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누구··· 신지?”

“설마. 기억 안 나는 거야?”

“네. 그렇··· 죠?”

“하.”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속옷만 입은 모습으로 일어난 탓에 나는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 와중에 내 눈은 얼마나 스캔을 빠르게 했는지 잘록한 허리에 탄탄한 복근이 눈에 띄는 몸매.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본능은 기어코 그걸 눈에 담아냈다.


“차우진. 최근에 이혼했고.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남자.”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가 다 알려줬잖아.”

“그, 그럼 당신도···?”

“나도 다 말해줬지. 기억 하나도 안 나?”

“예···.”


기억이 날 리가 없잖아.

만난 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 반말하기로 했는데?”

“그랬나?”

“응.”

“그러지 뭐.”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 안 나겠네?”

“그렇··· 지?”


진짜 기억이 아예 안 난다.


“취한 것 같긴 했는데. 워낙 찐득하게 들러붙어서. 수작 부리는 줄 알았지.”

“내가?”

“응. 네가.”

“저, 혹시. 우리··· 했어?”


꼭 물어봐야 한다.

요즘 대한민국도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선비의 피가 내 몸에 흐른다.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식으로 몸을 섞는 건 당치도 않다.

게다가 나 얼마 전에 이혼했는데.


“했지. 그것도 여러 번.”

“지, 진짜?”

“응.”


하나도 아쉽진 않다.

진짜로.

어떤 느낌이었는지 좋았는지 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근데 이놈의 기억력은 왜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는 거야.

이건 반칙이지!


“잘하더라?”

“어?”

“너 말이야. 기술이 좋던데?”


뭔가 모르게 수치스러웠다.

낯선 여자가 저런 칭찬을 하니까 더더욱.


“근데 아까 내가 누군지 다 안다고 했잖아? 근데··· 왜··· 했어?”


이혼한 것도 알고 있었던데.

이렇게 예쁜 여자가 굳이 돌싱남이랑 잘 이유는 없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해?”

“아니.”

“그냥 끌렸어.”


와.

이게 그 유명한 MZ식 대화법?

맥락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됐지? 나 배고픈데.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래?”

“어? 어어. 뭐. 그러자.”



*



배가 살짝 드러나는 흰 티에 청바지.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구나.


저리 입기만 해도 홍대 클럽에서 가장 핫한 여자처럼 보였다.

내가 정말 저 여자랑 방금 모텔에서 나온 게 맞나 싶었다.


약간의 죄책감과 쾌감.

그런 게 느껴졌다.


“이 근처에 브런치 같은 거 먹을 곳은 없는 거 같은데?”

“브런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여자.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


“아, 근데. 이름이···?”

“아직도 기억 안 나?”

“어.”

“정시은.”


정시은.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처럼.

몸매처럼.


“어쩌지? 택시 타고 다른 곳으로 갈까? 내가 아는 브런치 집이···.”

“뭔 소리야? 해장엔 국밥이지.”


솔직히 놀랐다.

도도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얼굴.

그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얼굴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당연히 브런치 같은 걸 먹을 줄 알았다.


“단골집 있어. 따라와.”


그녀를 따라 국밥집에 들어왔다.

국밥 두 개를 시키고.

소주 한 병을 또 주문했다.


“아, 나는 오늘 수업이 있어서.”

“그 입시학원?”

“맞아. 하하.”

“나도 수업 있어.”

“대학생이야? 어디?”

“··· 진짜 짜증 나네.”


정시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다 얘기했잖아?”

“그게··· 진짜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이런 나도 내가 원망스럽다.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 생각엔 최근에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서 몸이 어떻게 됐던 것 같다.


“미안. 그냥 국밥이나 먹자.”


나는 더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 않은가.

저런 여자와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


순식간에 국밥을 비웠다.

슬슬 학원 갈 준비도 해야 하니까.


“저기··· 일단. 크흠. 미안했고.”

“···.”


팔짱을 낀 채로 도도하게 나를 노려본다.

얼른 꺼지라는 거겠지?


“가볼게.”

“어딜?”

“집에. 수업이 있어서.”

“안 물어봐?”

“뭘?”

“연락처.”

“아, 연락처. 그렇지. 응? 무슨 연락처?”


정시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폰.”

“어?”


손에 들고 있던 폰을 빼앗겼다.

그리곤 토도독-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시은의 연락처를 겟또.


“연락해. 주말에.”

“어? 어어. 어어?”

“어제랑 다르게 둔탱이가 됐네?”

“그, 그랬나?”

“그래도 이런 모습도 귀엽긴 해. 적당히 하면. 차우진. 한 번만 말할 테니까 똑바로 들어.”

“어어.”

“나 너 맘에 들어. 내 스타일이야. 또 보고 싶어. 가능하면 모텔까지 또 가면 더 좋고. 너 잘하거든.”

“쿨럭.”

“그리고! 나 너보다 어려, 오빠.”


이게 정시은과의 첫 만남이었다.

가히 충격적인 만남.

이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정시은과 앞으로 엮일 일이 얼마나 더 많은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혼 후 조상신이 도우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오늘 차쌤 근황.jpg] +3 24.08.12 3,125 60 12쪽
7 이상한 인연 +1 24.08.11 3,209 55 12쪽
6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3 24.08.10 3,317 62 12쪽
5 정시은(2) +2 24.08.09 3,506 66 12쪽
» 정시은(1) +3 24.08.08 3,927 70 13쪽
3 이게 된다고? +11 24.08.07 4,151 70 12쪽
2 선행이 쌓이면 덕이 되고 덕이 쌓이면 복이 된다 +6 24.08.06 4,232 75 12쪽
1 착한 사람 증후군 +9 24.08.05 4,986 6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