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의 역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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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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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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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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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DUMMY

뽀드득.

손으로 문대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미친게 아니라면, 이 17이라는 숫자가 바로 내 역량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한 것이다.


‘미친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피곤할 일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겨우 이런 숫자 하나로 단언할 수는 없지.


‘확인해보자.’


마침 오늘은 야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거리는 꽤 멀지만, 그래도 차를 몰고 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축구와 달리 야구경기는 꽤 길게 치뤄지니까.



2.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이름이 길어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잠실야구장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곳이었다.


부채꼴 모양의 홈에서 시작해 끝에 위치한 센터까지의 거리가 120m를 넘고, 좌우로는 100m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야구장이다.


크기가 큰만큼 홈런도 나오기 힘들다.

홈런의 기준은 선수가 공을 쫓을 수 없는 외야 펜스를 넘어 관중석이나 전광판까지 날아가는 것이니까.

그 정도 장타력을 가진 선수는 흔치 않다.

만약 있어도 높은 연봉을 받는 일부에 불과하거나, 실력을 더 길러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러 떠나기 때문이다.


“퉤!”


김일중은 그런 선수 중 하나였다.

안타가 아니라 홈런.

아무리 좋은 공도 홈런을 칠 수 없을 것 같으면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

타격코치가 어르고 달래도 듣지 않고, 감독이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날려도 무시했다.

오직 홈런. 그것만 노렸다.

그게 타자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큰 지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독한 고집은 결국 김일중에게 홈런을 밥먹듯이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을 안겨줬다.


“김일중 화이팅!!!”

”일중아! 나 오늘 반차 내고 왔다! 너만 믿는다!!”


관중석에 답례하는 대신 발을 비틀어 배터박스에 처박았다.


쪼그려 앉아있던 포수에게 흙이 튀었다.

그가 눈쌀을 찌푸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 정도 신경전은 야구에서 흔한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안하는 놈이 이상한 수준이었다.

공을 받는 포수가 실수를 하면,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소용없다.

거기다 포수가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그건 투수에게도 심리적인 부담으로 다가간다.


‘흔들었고.’


최근 들여온 배터리라더니 생각보다 강단이 약하다.

김일중을 보고 바짝 쫄은 게 겉으로도 느껴졌다.


눈을 슬쩍 돌리자 마운드 위에 오른 투수가 보였다.

투수는 말없이 껌만 씹고 있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여실히 느껴졌다.

홈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보자.’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지켜봐도 된다.

감독도 코치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계속 공을 흘리면서 지켜만 볼 생각이었다.

좋은 공이 올 때까지.


“빨리 준비해.”


포수 뒤에 있던 심판이 조용히 경고하자 그제야 김일중이 자세를 낮췄다.

적당히 구부러진 등과 느슨하게 잡은 배트.

누가 봐도 공을 칠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


하지만 포수와 투수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김일중이 저 페이크 모션으로 얼마나 많은 홈런을 뜯어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힘을 뺀 척하다가 좋은 공이 오는 순간 곧바로 후려칠 터.

적당한 공은 던질 수 없었다.

그게 김일중을 상대하기 피곤한 이유 중 하나였다.


“···.”


포수가 싸인을 보내자, 투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몇번이나 싸인을 주고 받았을까.

포수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이 되어서야 고개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그걸 보고 있던 김일중이 속으로 웃었다.


‘바짝 쫄았군.’


첫판에 좋은 공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거짓말처럼 커브가 날아왔다.

던지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속도 또한 느려터진 커브.

그렇기에 홈런으로 만들기 가장 쉬운 녀석이었다.

완성도가 높다면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그런 대단한 녀석이 대한민국 판에 몇이나 있을까.

오늘 처음보는 저 어린 투수에게 기대하기에는 과분했다.


“흡!”


김일중이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커브가 날아드는 궤적에 맞춰 정확히!

하지만 거짓말처럼, 배트가 빗나갔다.


“···?”


김일중의 귀에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손과 배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걸 못치다니?


‘뭐지? 공이 휘어들었나? ···아닌데? 분명 궤적에 맞춰서 휘둘렀어!!’


그가 멍청히 서 있는 사이 투수와 포수가 준비를 마쳤다.

급히 자세를 잡자 다시 한 번 커브가 날아왔다.

이번에도 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칠 수 없었다.


김일중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제야 원인을 파악한 탓이었다.


‘내가 못 친거야!’


어깨인지 손목인지 모르겠지만, 몸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뻔한 공을 못 칠 리가 없었다.

그를 응원하기 바쁘던 관중석의 환호가 조금 더 높아졌다.

더 힘을 내라고, 널 보러 왔다고 소리치며 응원했다.

하지만 그 응원은 김일중이 쌓는 실패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줄어들어 갔다.


9회 말.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치지 못한 김일중의 얼굴이 결국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3.

탁.

들고있던 메모장을 덮었다.

볼펜을 꽂아둘 곳이 없어 빙글빙글 돌리다 할 수 없이 귀에 꽂았다.


“맞네.”


정신병이 아니다.

진짜다.

게임스킬이 내게 깃들었다.

아니 생겼다고 해야하나?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겠지.

내게 처음 생긴 능력이니까. 누가 이런 일을 겪어봤겠어?


‘김일중. 역량이 하락했어.’


타격코치 앞에 선 김일중의 머리 위로 12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걱정하지 말라며 격려하는 코치. 그 앞에서 죽을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김일중.


‘부럽네.’


그들을 지켜보는 사이 숫자에 변동이 생겼다.

126에서 125로.

이내 124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옆에 달린 가로에는 (149)라는 숫자가 파랗게 점멸하고 있었다.


‘149가 최대치.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아마 그쪽이겠지만. 아무튼 124까지 떨어졌다. 오늘 경기 중에만 12가 하락했어.’


처음 야구장에 도착했을 때 김일중의 역량수치는 분명 136이었다.

그게 두시간 만에 12나 떨어졌다.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을 17이라는 숫자의 태반이 소실된 것이다.


꼴 좋다는 생각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김일중은 내가 좋아하던 선수 중 하나였으니까.

인성 빻은 선수들과 달리 한번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고, 자신의 야구관을 끝까지 밀고가 마침내 성공한 선수다.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뭐.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있어야지.”


분석해놓은 게 있기는 한데, 전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듣지 않을거다.

김일중의 팀에는 실력 좋은 코치들이 그득하니까.

일개 관중에 불과한 내 조언을 듣는다면, 미친놈 지랄하지 말라는 소리가 날아올거다.

팀이 아니라 팬이 그러겠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시원하게 한 발 빼고 세면대로 다가가자, 내 역량을 알려주는 17이라는 숫자가 여지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쯧.’


17이라니.

그래도 나름 노력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김일중처럼 (_)에 갇힌 숫자도 없다.

아마도 그게 최고치일텐데.

그것도 없다는 건 이 17이라는 숫자가 내 최고점이었다는 뜻이다.


“세상 불공평하구만.”


그렇게 노력하고도 이게 전부라니.

차라리 그때 꿈을 접은 게 올바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손을 씻는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내 우당탕거리며 변기칸이 거칠게 닫혔다.


거 시끄러운 사람이군.

오늘 경기에 불만이라도 있나? 김일중 팬인가?

뚱한 얼굴로 손을 씻고 나가려는데, 방금 전 그 사람이 들어간 화장실 칸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건 변기물을 내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울먹이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뭐지? 경기에 졌다고 울기까지 한다고?

아니 울거면 나가서 울지.

같은 심정인 관객들 사이에 섞여서···.


“아.”


선수구나.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울만한 선수는 김일중뿐이다.

다른 선수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자기 몫을 해냈으니까.

여실히 수치가 떨어진 선수는 김일중 그 하나였다.


“큼. 크흠.”


잠시 고민하다 화장실 칸으로 다가갔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다가간 다음 조용히 속삭였다.


“김일중 선수. 오늘 경기 멋졌어요. 팔을 그, ···이런 말하면 미친놈 같겠지만 오른팔을 조금만 더 뒤로 당겨보세요. 한 0.5cm정도? 저번보다 자세가 무너졌어요. 초창기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때는 수치가 높았, ···어, 그리고 오른발도 조금 앞으로 나갔고요.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휘어진 것이 아마도 골반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 짧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길게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욕설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에는 또 누군가 싶었더니 코치였다.

방금 전 마주쳤던 타격코치가 아니라 다른 코치.

무슨 직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과 얼굴은 안다.


기름진 얼굴이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왔다.


“여기 저희 선수 한 명 들어오지 않았, ···너 강선우?”

”오늘 참 좆같네.”


입이 써서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에다 뱉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폭행죄로 끌려가겠지.

개같은 법.

꿍얼거리며 코치놈의 어깨를 밀며 밖으로 나갔다.

안에서 욕설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개같은 날이다.



4.

“아, 저 아래위도 없는 새끼.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개차반이네.”


어깨를 툭툭 털어낸 최선호가 강선우가 서 있던 칸막이로 다가갔다.

여기만 잠겨 있었다.

노크를 하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김일중이 걸어나왔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잘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치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실력보다 우선되는 게 있는 법이다.

힘들 때 곁을 지켜준다면 없던 정도 싹트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걸 노리고 감독도 최선호를 여기로 보낸 것일 터.


최선호가 입술을 슥 핥았다.


“일중아. 너무 상심하지 마라.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하루 정도 실수할 수도 있어.”

“형, 방금 전 그 사람 누구에요?”


최선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고보니 화장실이라 욕설이 너무 쉽게 울린다.


“아. 욕한 거 들었구나. 강선우라고. 예전에 선수하려던 놈인데 아주 쓰레기 새끼야. 전에도 감독님 멱살 잡고 염병 떨다가, ···왜 저 새끼가 너한테 뭐라 그랬어? 내가 쫓아갈까?”

“됐어요. 형, 핸드폰 있죠. 나 좀 줘요.”

“어? 그래. 여기 있, ···네 옛날 영상은 왜 찾아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김일중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눈이 액정에 박혀 있었다.


“오늘 경기 나왔죠.”

“그야 생중계 됐으니까 당연히 올라갔지.”


급히 자기 스마트폰까지 꺼내 영상 두 개를 동시에 튼 김일중이 그걸 유심히 지켜봤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네. 진짜 뒤로 밀렸어. 이걸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몰랐는데?”

“뭐?”

“형, 나 그 사람 연락처 좀 알려줘요.”

“누구? 강선우? 너 뭔 말 들었구나!! 나한테 말해. 선수가 일반인이랑 싸우면 문제 생겨!”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줘요! 급한 일이니까!!”


최선호가 한참을 어르고 달랜 뒤에야 김일중의 생각이 병원에 가닿았다.

분명 골반에 문제가 있다고 했었다.

감독에게 말하고 급히 병원으로 간 뒤, 골반에 작은 염좌가 있다는 소견을 받아들었다.


한참을 말이 없던 김일중이 최선호에게 연락했다.

전화번호를 알아봐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애원이 뒤따랐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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