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RUT
작품등록일 :
2024.08.11 20:56
최근연재일 :
2024.09.18 20:2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20,384
추천수 :
745
글자수 :
219,356

작성
24.09.12 08:20
조회
287
추천
11
글자
12쪽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DUMMY

"한심한 녀석."


이 자리에 부외자, 버몬트 가문의 기사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유스티치아 기사단의 단장은 혀를 찼다.


아름다운 레이디의 미모에 홀려 잘 보이고 싶어 혀를 잘 못 놀린 젊은 기사의 혈기,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타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선 겸손하게 버몬트 기사단은 왕국에서도 알아주는 기사단이고 우리 유스티치아 기사단 역시 그에 못지않은 곳이다, 같은 식으로 서로 금칠해주는 대답이 베스트였다.


그런데 그걸 못해서, 영애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공작새 꼬리 펼치듯 싸우면 내가 이긴다는 식으로 말을 해서는 파문을 일으키다니.


이번 소란, 기사단끼리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잘 수습한 후에 젊은 녀석들 정신교육 좀 강화해야겠다고 단단히 다짐하는 기사단장.


"무승부가 가장 좋은 결과일 것 같으니 봐서 무승부로 판정을 내리게."


"예."


일단은 성립된 시합부터 신경 쓰는 게 맞다.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궁리한 결과 집사라는 청년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다.


기사단 소속도 아니고 애초에 기사도 아니니까 진다고 해도 버몬트 기사단이 체면 구길 일은 없다. 반대로 이긴다고 해도 그건 버몬트 기사단 소속 기사가 이긴 게 아니기 때문에 유스티치아 기사단의 수치가 아니다.


사태를 기사단 간의 기 싸움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스케일을 확 줄일 수 있다.


마침 서로 실력이나 성취도 비슷하고, 어떻게 구르든 좋은 승부였다는 식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다만···.


"졸지에 끌려 나와 싸우게 된 저 친구에겐 좀 미안하게 됐군."


딱 한 사람 빼고는 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데 그 한 사람이 된 레오는 불쌍하게 됐다는 점이다.


모시는 아가씨 따라서 얌전히 유스티치아 기사단의 훈련 구경하다 말고 기사와의 대련에 끌려 나오는 봉변당하게 됐으니까.


어떤 심정일지 지금 레오의 표정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동정이 가진 않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레오가 지금 왕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행운의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유스티치아 기사단장만 해도 남의 영지에서 정령의 가호를 받아 가게 된 맷값 같은 거라고 생각하라고 동정은 넣어두고 있다.


물론 이 사실을 레오가 알게 된다면 억울한 마음도 있겠지.


의도적으로 꿀꺽한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게다가 사람들 생각처럼 정령의 가호라는 게 그렇게 무적이고 엄청난 것도 아니다.


부풀려진 소문처럼 날아오는 건 뭐든 자동으로 막아주며 무슨 마을 하나를 수호할 수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전부 헛소문이라는 거다.


물론 가호 그 자체가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생각만큼 엄청난 건 또 아닌데 국보라도 훔쳐 간 도둑놈처럼 취급하니 레오로서는 속 터질 수밖에.


아무튼 최근 유스티치아 가문의 기사가 되었다는 18살의 젊은 기사 안젤로 막심.


레오보다 2살이 어리지만 벌써 소드 엑스퍼트 하급.


그것도 괜히 기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2성이었다.


신동 소리 들으면서 기사가 되기 충분한 재능을 지닌 남자로 혈기가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 혈기만큼이나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유스티치아 기사단에서도 기대하는 유망주였는데, 그런 그가 레오와 시합을 벌이게 됐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예의를 잃지는 않았지만, 무시──라기보다는 제대로 상대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


아무래도 레오가 집사인 것도 있었고 의욕이나 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연무장에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쪽은 한없이 진지한데 상대는 똥 씹은 표정으로 내켜 하지 않는다?


존중하고 싶어도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닐 수밖에 없지.


물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 못할 건 아니겠지만, 넌 매사에 너무 진지해서 탈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안젤로로서는 유쾌하지 못했다.


이쪽이 진지한 만큼 너도 좀 진지해라.


그런 눈빛을 보이면서 칼부림 전에 레오와 짧게 얘기를 한다.


"이렇게 버몬트의 검을 견식 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 음··· 버몬트의 검은 아닙니다만."


물론 부친이 버몬트 기사단의 기사였던 건 사실이고 그라함에게 교습을 받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자신의 검은 어디까지나 번스타인의 검이지 버몬트 기사단의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 레오.


그러는 편이 나중에 귀찮은 말 안 나오고 좋다는 걸 알기 때문에 확실히 짚고 가는 것도 있다.


엘리제를 모시고 다니면서 여러 높으신 분들 만나본 경험이 있는 레오였다.


귀족이라는 이들이 단어 하나 가지고 얼마나 예술적인 곡해를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레오로서는 지금이 말 한마디 조심해야 할 상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의욕이 없다고 해서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기에 버몬트 기사단과는 거리를 둔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어릴 적부터 칼만 휘두르고 갓 기사단에 입성한 안젤로는 레오가 굳이 이렇게 정정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기사는 아니지만 버몬트 가문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얼굴.


‘어리다, 어려. 몸만 큰 애네.’


고작 2살 연하였지만 그런 안젤로를 보고 레오는 속에서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긴 그러니까 생각 없는 소리를 해서 이 상황을 만든 거겠지.


분명히 이 시합이 끝나고 나면 정신교육이라는 이름의 기합 잔뜩 받게 생겼다고 살짝 동정 아닌 동정을 하면서 자세를 다잡는 레오.


어찌 됐든 다른 무파의 무인과 검을 섞게 됐다.


그 이유가 레이디에게 잘 보이고 싶은 어린 기사의 철없는 말실수 때문이라고는 해도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했다.


‘이 또한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오는 마인드를 전환하고 진지하게 엘리제가 깐 판 위에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시합, 시작!"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공에 나서는 레오와 안젤로.


후의 선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 시합을 벌이는 둘 다 패도적인 중검을 익히고 있었기에 선수 필승의 기치 아래 치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솔렛은 두 손 모아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저러다 크게 다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상냥한 성격에 어울리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그런 이솔렛 옆에 앉아 대련을 구경하는 엘리제는 지금 상황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지금은 풋내가 다 날 지경인 저 어린 기사가 훗날 유스티치아 기사단의 최연소 부단장 자리에 오른다는 것을.


지금은 미숙하다고는 해도 떡잎은 어디 안 간다고 하지.


미래의 부단장이 휘두르는 그 실력, 레오가 견식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오랜만에 남심이라는 것에 헛바람 좀 넣었다.


말 몇 마디로 정·재계의 거물들 가슴도 두근거리게 할 자신이 있는 엘리제에게 인생 경험도, 여자 경험도 일천한 기사 하나 희롱하고 뜻대로 주무르는 정도야 일도 아니지.


원하는 대로 살살 충동질해 말실수를 유도하고 이 판을 짜냈다.


자신이 준비한 무대에서 열심히 경험을 쌓고 있는 레오를 보며 엘리제는 농부의 즐거움을 실감하며 느긋하게 시합을 관전했다.


마침 둘이 성취도 비슷하다.


이제 엑스퍼트 초입인 레오는 하급 1성이고 상대는 2성이긴 하지만, 그 정도면 좋은 승부를 낼 수 있을 거다.


격상의 참관인도 다수 있으니 안전 걱정할 거 없이 검기까지 사용할 수 있다.


분명 가슴 뛰는 훌륭한 시합이 되리라.


"쇼를 하는군."


"안젤로야···."


"요즘 애들 기강이 왜 이래?"


그렇게 생각한 게 무색하게 상황이 조금··· 선임 기사들 보기 마뜩잖은 구도로 흘러갔다.


첫 합을 겨를 때는 나쁘지 않았다.


강 대 강의 대결.


날을 세우지 않은 가검이 교차한 순간 불똥이 튀면서 마치 철퇴로 철퇴를 후려친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시작부터 검기를 두르진 않았지만 마나가 담긴 검이 서로 부딪혔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 첫수를 나누는 모습은 다른 기사들 보기에 흡족했으나 이어진 공방이 문제였다.


레오를 제대로 된 맞수로 생각하지 않은 안젤로는 진지함을 덜어낸 채 실력을 레이디들 앞에 과시하는 쪽에 집중했다.


그 태도가 다른 기사들 보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지.


기사도 아닌 집사는 졸지에 끌려 나왔지만 진지하게 임하는데 이 소란을 일으킨 놈은 정신 못 차리고 꽁지깃 편 공작새처럼 실속 없이 화려하기만 한 예식용 검술을 펼치고 있다.


저러다 지거나 낭패라도 당하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고 시합 끝나고 보자며 이를 간다.


그리고 물론 엘리제 역시 지금 상황이 그리 보기 좋진 않았다.


검술에 대해선 잘 모르는 엘리제였지만, 싸움이 뭔지는 안다.


사랑에 미친 끝에 인류마저 배신한 마녀를 잡아 죽이고자 한 강자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 기억이 있으니 엘리제 눈에는 지금 안젤로가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 아닌지 훤히 보였다.


"쯧."


좋은 시합이 될 거라 기대했더니, 아직 어린 미래의 부단장은 정말 여러모로 기준 미달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카데미에서 보여준 모습도 썩 좋진 않았던 것 같고···.’


나이가 적당한 것도 있고 실력은 있어서 이솔렛의 호위로 아카데미에 가게 될 안젤로 막심.


뒤늦게 안젤로의 미숙하던 시절을 떠올린 엘리제가 한숨을 쉬었다.


너무 최연소 부단장이라는 미래의 모습에 매몰되었던 것 같다.


지금의 안젤로 막심은 그냥··· 유망하긴 하지만 정신 수양이 덜 된 어린 기사였다.


안젤로에게 레오의 호적수가 되어주길 기대한 엘리제로서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작태였다.


기대하니까 실망하는 거라고 했던가.


사람의 성장에 라이벌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엘리제였다.


성녀에게서 어떻게든 왕자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나태한 후작영애가 해낸 것들만 봐도 그렇다.


그 라이벌 앞에 선의의 경쟁까지 붙으면 더없이 좋겠지. 안젤로와 레오가 그런 관계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엘리제였지만 이젠 그냥 레오가 괜히 안 좋은 물이나 안 들었으면 싶었다.


잘 그려가던 그림이 완성을 앞두고 중요한 물감이 동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 승부가 완전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 친구 기본기가 훌륭하군."


"검술 교본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정석적인 검술이 살짝 아쉽군."


"저 정도면 적당히 페이크도 쓸 줄 알고 괜찮지 않나? 변칙에 맛 들여서 이상한 버릇 든 것보다 낫지."


"그건 그렇긴 한데 실전 경험 부족해 보이는 게 티가 나는군."


"그렇게 치면 우리 막내도 비슷하지. 게다가 지금은··· 어휴."


기사들 사이에서 레오의 평가가 오르고 있다.


라이벌을 얻는 대신 평판이 오른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


다른 의미로 만족감을 느끼며 부채를 활짝 펴고 입가의 미소를 가리는 엘리제.


이제 남은 건 이 승부의 어떤 식으로 끝날 것이냐 하는 점인데 최상의 결과는 기사단장 말처럼 무승부로 끝나는 거다.


그게 가장 뒤탈 없이 베스트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저 집사 친구가 이겼으면 좋겠어."


"저놈 자식, 코 한 번 깨져봐야 정신을 차리지."


"저저, 겉멋 들어서 쓸데없이 동작 크게 하는 거 봐라."


"격하의 상대로도 실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방심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일렀는데···."


"아가씨들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주 그냥 정신이 나갔지."


"어휴, 유스티치아가 기사단 망신은 다 시키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레오의 승리를 응원하기 시작한 거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엘리제와 이솔렛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승부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멋있는 모습에 집중한 안젤로 막심의 한심한 행동 탓이다.


재능도 있고 딱히 근성이 글러 먹은 것까진 아닌데··· 역시 아직 어리다.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모른다.


그걸 이번에 패배를 통해 아픈 교훈을 좀 얻었으면 하는 선배들 마음.


"커헉?"


얻어맞은 복부를 움켜쥐고 비틀비틀 물러서는 안젤로 막심을 보니 이루어질 것도 같다.


작가의말

내일부터 업로드 시간을 오후 8시 20분으로 변경할 생각입니다. 시간대를 좀 바꿔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24.09.05 41 0 -
공지 오후 8시 20분에 연재됩니다 24.09.01 247 0 -
39 귀찮은 건 피하는 게 상책 NEW 20시간 전 115 8 12쪽
38 아가씨의 사상검증 +2 24.09.17 179 8 12쪽
37 레이디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2 24.09.16 199 8 12쪽
36 소란스러운 귀로 +1 24.09.15 226 13 12쪽
35 집으로 +1 24.09.14 262 8 13쪽
34 잊고 있던 일 +3 24.09.13 261 9 13쪽
»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1 24.09.12 288 11 12쪽
32 끝나지 않은 아가씨의 선물 +1 24.09.11 330 11 13쪽
31 정령의 가호를 얻다 +2 24.09.10 290 15 12쪽
30 보물의 주인이 바뀌다 +2 24.09.09 339 14 13쪽
29 집사와 함께 춤을 +3 24.09.08 345 14 13쪽
28 아가씨의 꿍꿍이 +1 24.09.08 340 13 13쪽
27 염탐과 다이어트 +1 24.09.07 341 12 14쪽
26 이솔렛 유스티치아 +2 24.09.06 370 12 13쪽
25 짜증 스택이 쌓이는 아가씨 +3 24.09.05 361 14 13쪽
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80 15 12쪽
23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408 15 12쪽
22 아가씨는 상사상애가 하고 싶다 +1 24.09.02 446 13 12쪽
21 네 초콜릿에 약을 탔어 +2 24.09.01 453 16 13쪽
20 산 제물을 준비하자 +2 24.08.31 478 14 13쪽
19 휴가 복귀 +2 24.08.30 475 19 13쪽
18 장가는 언제? +1 24.08.29 488 18 12쪽
17 전부 아가씨 손바닥 위 +1 24.08.28 476 19 13쪽
16 시련이라는 이름의 선물 +3 24.08.27 495 22 13쪽
15 내조의 여왕 +1 24.08.26 530 19 12쪽
14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5 24.08.25 573 23 12쪽
13 해충을 제거하다 +3 24.08.24 571 22 12쪽
12 악녀는 사라진 게 아니다 +1 24.08.23 585 2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