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친 악녀가 날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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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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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DUMMY

"감히··· 감히 어떤 놈들이 내 딸을! 엘리제를 노렸단 말이냐──!"


대노한 버몬트 후작의 노성이 집무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귀족답게 항상 우아하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던 후작이다. 대귀족은 괜히 대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어지간한 일에도 좀처럼 감정을 내색하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총관 앞에서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그만큼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소식을 접했으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사랑스럽기만 한 딸이 암습을 당해 위험한 다리를 건넜다는데.


이중, 삼중으로 준비된 살계.


기사의 분전과 집사의 노력 덕에 결과론적으로 무사하긴 했지만, 이 소식을 듣고 부모로서 어찌 아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뿐인 소중한 자식을 죽이기 위해 누군가가, 혹은 어떤 세력이 그렇게 철저하게 칼을 갈았다는데 놀란 가슴을 쉽게 진정시킬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화낼 포인트는 추가로 존재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이런 밥버러지들 같으니!"


딸의 목숨이 위험했던 것도 화가 나는 일이긴 하다.


실로 흉측한 일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사전에 그 일을 알지 못했다는 무능함이었다.


후작가의 정보력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딸이 사적으로 형성한 정보망에 뒤질 때부터 심기가 불편하던 차였는데 아예 이런 식으로 대놓고 실망하게 해버리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보고만 봐도 심상치 않은 놈들이 엘리제를 노렸다.


암살자보단 특수목적으로 잘 훈련된 군인에 가까운 집단이었다고 한다.


그런 자들이 물밑에서 움직일 동안 그걸 전혀 몰랐다는 게 너무도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버몬트 후작이었다.


사교도가 됐든 아니면 정적이 됐든, 그것도 아니면 어떤 미친 불순 분자가 됐든 사람을 모으고 이만한 훈련을 시키면 흔적이 남긴 마련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타고 올라가 실체를 파악하고 그게 후작가에 해가 되진 않는지 체크하는 게 정보망의 역할이고.


그걸 제대로 못 했으니 후작의 히스테리도 괜한 생트집은 아니긴 하다.


설령 상대가 그만큼 은밀하고 정체 모를 집단이라고 해도 딸을 향한 암살··· 아니, 이런 테러가 일어나기 직전에는 파악했어야지.


그러라고 월급 주는 건데 그걸 못하면 어쩔 수 있나?

쓸모를 다한 개는 삶아야지.


"실망스럽기 짝이 없어! 부실한 첩보망 확실히 강화하고··· 그런 후에 물러나라고 해."


"예, 후작님."


그렇다고 정말 죽인다는 뜻은 아니다.


버몬트 후작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그 정도까지 비정한 인물은 아니라서 그간 버몬트가를 위해 충성한 게 있으니 정상참작해서 책임지고 사임하는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공백이 발생해서 지금보다 더 정보에 구멍이 숭숭 뚫릴 테니까.


이번 일로 부실한 면이 드러났으니까 철저하게 보완한 후에 책임자를 다른 인물로 갈아치울 작정이었다.


"후···."


깊이 탄식하며 얼굴을 쓸어내린 후작이 총관에게 묻는다.


"그래서? 사로잡은 암살자들은 입을 좀 열었나? 심문한 것 외에 따로 알아낸 정보는 없고?"


"아무리 고신을 해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백제도 통하지 않아 손쓸 도리가 없다는데··· 아무래도 마법사를 불러다 실토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약도 안 통한다고? 지독한 놈들이군. 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튀어나와 왜 하필 내 딸을 노린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버몬트 후작.


맞는 말이다.


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누군가 사주했다기엔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그렇다고 후작을 노리고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가족을 건드린 거라기에도 이상했다.


이 정도면 그냥 후작 본인을 노리는 게 맞지.


권력자의 가족을 노렸다기엔 또 지나치게 공을 들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한 것투성이였는데 그 의문을 해결해줄 명쾌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기껏 사로잡은 암살자들 역시 어찌나 지독한지 고문과 약 앞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나.


결국 마법사를 불러서 머리를 까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일말의 기대를 건 정보조직 쪽도 시원찮은 보고만 올라왔다.


이러쿵저러쿵 추측은 많은데 결국 모른다는 거였다.


"쯧."


지금까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한심하고 실망스럽다.


마탑 깍쟁이들 상대로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한다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약도 통하지 않는다니 어쩌겠는가?


이런 자백을 받아내는 정신계통 마법은 아무 마법사나 데려다가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탑에 아쉬운 소리 좀 하는 수밖에 답이 없다.


그렇다고 모처럼 포로도 잡았는데 이걸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로 마탑에 연락을 넣기로 하고 편지를 작성하는 버몬트 후작.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참 피곤하게 됐다.


안 그래도 신경 쓸 일이 이것저것 많은 상황인데 딸아이가 암살 미수까지 겪으니 아주 머리가 펑크 날 지경인 후작이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도 있긴 했지만, 정신적 피로감이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피로를 더하는 스트레스 가득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점이다.


"죽었다고? 전부 다?"


마법사가 올 때까지 잘 감시하라고 했더니, 감옥에 있던 생포한 암살자가 전부 죽었단다.


심한 고문을 한 만큼 당연히 필요한 정보를 끄집어낼 때까진 죽지 않도록 치료도 해두었는데 죽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탑에 연락도 안 했지.


이렇게 된 이상 시체에서 뭐라도 알아낼 건 없는지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 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보고서를 집어 던지는 버몬트 후작.


결국 배후를 토설하지 않은 채 죽어버린 포로들을 생각하며 하늘이 범인을 돕는 것 같다고 원망하는 후작이었지만, 진실은 달랐다.


하늘은 생포 당한 암살자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 것은 엘리제였지.


"반가워요, 암살자 여러분. 이렇게 다시 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네요."


아직 살아남은 암살자 셋이 대충 치료된 후에 투옥된 감옥에 나타난 그림자.


아직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매혹적인 실루엣을 자랑하는 엘리제였다.


고통에 신음하며 빨리 이 모든 게 끝나기만 기다리던 포로들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엘리제는 마치 예술품이라도 감상하듯 처참한 고문의 흔적을 훑어본다.


쿡쿡 만족스럽게 웃는 엘리제.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적이 합당한 몰골이 된 것이 어지간히도 즐거운 눈치였다.


우민 주제에 자신의 목숨을 노렸으니 이런 형벌은 당연하다는 태도.


아름다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잔혹한 면모를 보이면서 엘리제는 문을 열고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꽁꽁 묶인 상태로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까딱할 수 없긴 하다.


자결하는 걸 막기 위해 재갈까지 물려둔 상태긴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들과 같은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건 너무도 이질적인 행동이었다.


당장 사로잡힌 암살자들조차 엘리제의 행동에 경악하고 있었으니까.


상식적으로 이런 곳에 후작영애가 얼굴을 비추는 것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수도 안 보이고 경호도 없이 단독으로 철창 안에 들어오는 건 더더욱.


애초에 착각이 아니라면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것만 같았는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가 안 가는 암살자들. 


더더욱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엘리제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포로의 재갈이 저절로 풀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재갈을 풀어버린 것처럼.


직후,


"내 눈을 봐."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뇌리로 파고들었다.


"자, 네 소속과 목적, 누가 내린 지시인지 모든 걸 털어놔."


인격을 모독하는 것만 같은 지독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은 독종이 고작 질문 한 마디에 실토할 리가 없다.


그게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당연한 것이 배신당하는 광경을 암살자 둘은 보았다.


"민중의 검··· 소속 제6부대, 말콤··· 동지의 뜻에 따라 위선자, 기만자를 제거해 투쟁을··· 으으윽! 투쟁을 위해···."


고통에 신음하며 더듬더듬, 하지만 숨김없이 엘리제가 알고자 하는 것을 실토하기 시작한다.


질문받은 그대로 명백히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서도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실토는 오래가지 못했다.


금제가 발동, 뇌가 타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말하지 않은 게 아니다. 금제를 당해 입도 벙긋할 수 없었을 뿐이다. 자결도 못 하고 금제 탓에 실토도 못 하는 상태로 계속 고통만 받고 있었는데, 그 고통이 방금 끝났다.


"이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볼에 손을 가져다 대고 한숨을 내쉬는 엘리제.


"중요한 대목에서 끝나버렸네." 


재밌게 보고 있던 연극이 갑자기 사고로 중단된 것 같은 기분에 짜증을 느끼지만, 아직 입은 두 개나 남았다.


기분을 전환하며 다음 상대에게로 다가간 엘리제가 손을 휙 저어 입을 봉해둔 재갈을 풀어준다.


너무도 불가해하고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어찌나 상식 밖이고 이상했는지 지독한 고문에도 꿈쩍 않던 포로의 입이 절로 벌어지더니,


"마, 마녀···?"


비명처럼 그 말이 나왔다.


재갈을 풀어준 건 그런 소리나 하라고 풀어준 게 아닌데 말이다.


마녀.


그 지긋지긋한 그 단어가 나온 순간이었다.


퍽.


꼭 연약한 물풍선이 바늘에 찔려 터지는 것과도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쓸데없는 소리를 한 암살자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코에서 피와 뇌수를 질질 흘리며 절명했다.


"아차."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엘리제가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입을 하나 더 줄여버렸네."


아휴, 실수했다.


경쾌함마저 느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엘리제가 남은 암살자에게 발길을 돌린다.


"읍! 으읍! 으으읍! 으으으으으!"


어떻게든 소란을 피워 간수든 누구든 제삼자를 불러들이고자 필사적인 모습.


"오, 오지 마! 괴물! 간수! 간···!"


재갈이 스르륵 풀리기 무섭게 악을 지르는 남자.


다 큰 어른이 사지가 결박된 채 자신보다 까마득히 어린 여성에게서 도망치고자 필사적으로 버둥거린다.


그런 그의 입이 보이지 않는 우악스러운 힘으로 틀어막았다.


괜한 말실수를 해서 방금 죽은 포로처럼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엘리제가 친절히 입을 다물게 해준 거다.


물론 강제로 입이 다물어진 충격에 이빨이 깨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긴 했지만, 괜한 소리 하다가 다른 동료처럼 염동력에 뇌가 터져 죽는 것보단 낫지.


"자, 그럼 방금 당신 동료가 하던 얘기를 이어서 얘기해보실까요?"


말하다 말고 금제가 발동해서 죽은 탓에 동료가 끝맺지 못한 이야기, 마저 해보라고 웃는 엘리제.


"말하고 싶지 않다고요? 괜찮아요. 당신도 당신 친구처럼 금방 날 위해 말하고 싶어질 테니까."


요사스럽게 빛나는 엘리제의 눈빛이 마지막 남은 포로의 뇌를 헤집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역시 쓰고 버리는 말이라 그런가. 쓸만한 정보는 딱히 없네."


금제가 발동해 침을 질질 흘린 채 뇌 신경이 타죽은 암살자를 보며 엘리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핵심과는 거리가 있지만, 몇 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얻었다.


물론 그 정보를 가지고 당장 무언가를 할 생각이 엘리제에겐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당연히 자신을 죽이려 한 불측한 무리에게 징벌의 철퇴를 휘둘러주고 싶었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그랬다간 더 주목받을 테니까.


이 타이밍에 혁명군을 들쑤시면 누가 한 짓인지 너무 뻔한 거 아니겠는가.


상대가 정보 누출이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짓이라는 걸 모를 때 나설 필요가 있다.


원래 썩기 직전의 고기가 가장 맛있다고 하잖은가.


그건 복수도 마찬가지다.


잘 숙성된 복수를 꺼내 먹는 날을 상상하며 엘리제는 이번 일을 잠시 마음에 묻어두기로 했다.


결코 잊지는 않고 말이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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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2 24.09.16 200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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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잊고 있던 일 +3 24.09.13 262 9 13쪽
33 아픈 교훈을 새겨주지 +1 24.09.12 288 11 12쪽
32 끝나지 않은 아가씨의 선물 +1 24.09.11 330 11 13쪽
31 정령의 가호를 얻다 +2 24.09.10 290 15 12쪽
30 보물의 주인이 바뀌다 +2 24.09.09 339 14 13쪽
29 집사와 함께 춤을 +3 24.09.08 345 14 13쪽
28 아가씨의 꿍꿍이 +1 24.09.08 340 13 13쪽
27 염탐과 다이어트 +1 24.09.07 341 12 14쪽
26 이솔렛 유스티치아 +2 24.09.06 370 12 13쪽
25 짜증 스택이 쌓이는 아가씨 +3 24.09.05 361 14 13쪽
24 불편한 동행 +3 24.09.04 380 15 12쪽
23 행운의 여신이 악녀를 비웃다 +2 24.09.03 408 15 12쪽
22 아가씨는 상사상애가 하고 싶다 +1 24.09.02 446 13 12쪽
21 네 초콜릿에 약을 탔어 +2 24.09.01 453 16 13쪽
20 산 제물을 준비하자 +2 24.08.31 478 14 13쪽
19 휴가 복귀 +2 24.08.30 475 19 13쪽
18 장가는 언제? +1 24.08.29 488 18 12쪽
17 전부 아가씨 손바닥 위 +1 24.08.28 476 19 13쪽
16 시련이라는 이름의 선물 +3 24.08.27 495 22 13쪽
15 내조의 여왕 +1 24.08.26 530 19 12쪽
14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5 24.08.25 574 23 12쪽
13 해충을 제거하다 +3 24.08.24 571 22 12쪽
12 악녀는 사라진 게 아니다 +1 24.08.23 586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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