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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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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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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린이 은둔무재

DUMMY

겨울이 되었다. 전생의 기억을 찾고 처음 보내는 겨울이라 괜히 사색에 젖는다. 이전까지는 겨울마다 어린 몸으로 더 어린 동생들과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내느라 정말 말 그대로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올해는 넉넉한 장작과 옹기로 만든 화로 때문에 불씨조차 죽지 않는다.


공씨 삼남매는 지금 그 화로에 밤을 구워먹고 있다. 닭과 토끼 축사에도 각각 숯이 담긴 화로를 매일매일 교체하여 최대한 따뜻하게 유지했고, 도구집도 아궁이 옆 따뜻한 터로 이동했다.


계곡의 윗물이 모두 얼어서 대나무 수로는 창고에 모두 회수했고, 필요한 식수와 측간 물은 그날그날 얼음을 데워서 사용중이다. 근대식 화장실은 역시 최고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생존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이뤄냈다. 이제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마을에 다녀와야 한다.


오늘의 목적은 삼재심법(三才心法). 이제는 멸문한 도가문파인 전진파의 입문무공이지만, 저잣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죽간본으로 산다면 철전 두 냥이면 구할 수 있다.


물론 노상에서 팔리는 소면 한 그릇 값이 철전 두 닢이니, 그 열 배인 두 냥은 작년이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올해는 식량값이 많이 굳고, 모아둔 약초값이 있어 충분히 값을 치를 수 있다.


기껏해봤자 기본무공이자 삼류심법이라지만,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이기도 하다. 무림 고수가 되려는 생각은 당연히 없다.


그저 사람 목숨이 헐값이고, 살인과 인신매매까지 자주 일어나는 세상을 깨닫고 보니 실제적인 무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정말 운이 좋아서 인적 하나 없는 산꼭대기를 개척했을 뿐이다. 이제는 평민이라면 누구라도 욕심이 날 정도의 살림을 꾸렸다. 어린이 셋이 지켜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산적은커녕, 저잣거리 성인 왈패 한 명만 오더라도 이 모든 것을 빼앗기리라. 기왕 익힐 것이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익히고 싶을 뿐이다.


확실히 추운 계절이라 저잣거리도 비교적 한산하다. 이 시대의 평민들은 대부분 자급자족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겨울은 대다수가 생산활동 없이 버텨내는 시기라서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책점은 열려있어서 삼재심법 죽간본을 구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가 협객을 동경해서 무공을 찾아보는 일이 흔하다보니, 그런 아이를 연기하여 제값보다 조금 싸게 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동생들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무공을 읽어보는 데 집중했다. 워낙 흔하고 박한 평가를 받는 무공이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까지 더해지니 비루한 삼재심법도 내게는 대단한 신비로 다가왔다.


삼재심법은 입문무공의 구결답게, 기(氣)를 느끼는 것을 목표하는 구결이 주를 이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기(氣). 마찬가지로 신체에서 찾을 수 없지만 실존하는 단전.


시구같은 난해한 구결들을 작게 읊조리면서 나는 전자파라던가, X선 등의 비가시광선 등 현대인이라면 보이지 않지만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 순간, 오감이 예민해지면서 마치 공기처럼 주변에 퍼져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심법이 일러주는 순서대로 호흡량을 조절하자 기적처럼 주변의 기운이 내게로 들어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심법을 연공하자마자 단전을 형성했다.


정말 말 그대로 쌀 한톨 만한 단전을 만들었다. 신체적인 변화는 크지 않았음에도, 내면의 동요는 컸다.


현대인의 감성을 되찾고 모든 면에서 무림세계의 불편함을 느끼던 나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체험한 이 세계의 신비이다 보니 진정이 되지 않는다.


'내공이라니! 내공이라니요!'


몸이 조금 따뜻해지는 정도의 미약한 기운이지만, 이미 천하장사라도 된 기분이다. 이제 더 효율적인 노동이 가능해질 것이 가장 기대된다. 당장 동생들에게도 가르쳐줘야 할지를 고민했지만, 조금 더 지나서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아무튼 내공(內功)의 존재를 내 몸을 통해 직접 확인하니 욕심이 났다. 앞으로 신체단련과 내공수련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겠다.


“오라버니, 안 힘들어? 왜 혼자서 벌을 서고 있어?”


“형아, 그렇게 움직이면 금방 배꺼진다?”


아침부터 현대인의 기초 근력운동 스쿼트를 하고 있는 내게 동생들이 걱정스레 묻는다. 쌀 한톨 내공보유자인 무림인 공도유께서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고자 외공수련을 시작한 것을 이리도 몰라주다니. 오호통재라!


그나저나 나만 강해져서야 쓰나. 지고한 오라비의 뜻을 몰라줘서가 아니라 정말 필요하기에 동생들에게도 기초운동을 지도해주기로 한다.


사실 산생활을 오래 한 동생들이기 때문에, 어린 나이와 작은 몸에 비해 체력과 근력은 우수한 편이지만 앞으로 무재(武才)가 출중한 오라비(형)를 따라서 무림인이 되기 위해서다. 절대 내 마음 몰라줘서가 아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가혹함과 비정함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동생들, 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다고 산에서 범이 내려오면 어떻게 할거지?”


“토끼장, 닭장 먼저 열어두고 도망쳐야지!”


“나는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갈테야.”


“그렇게되면 우린 다시 옛날처럼 얼어 죽을 것을 걱정하면서 쫄쫄 굶게될텐데?”


“···.”


“그리고 만약에, 마을에서 나쁜 어른들이 우리 창고에 감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뺏으려고 올라온다면?”


“···.”


“아니면 철전 들고 장에 내려간 오라비를 누군가가 때리고 돈을 뺏고, 노예로 팔아버린다면?”


“흐아아아아아앙, 우리형 때리지 마.”


“안돼, 오라버니 죽지마! 으앙”


···. 짧은 순간에 얼마나 상상이 깊었는지 질문 몇 마디에 내가 잡혀가 죽는 상상까지 도달한 것 같다. 어린 아이들에게 다소 극단적인 자극이었지만 동기부여는 충분히 된 것만 같다. 이제 당근을 쥐어줘야 할 때.


“중턱에 살 때도 산적들에게 도망치다 여기까지 온 거잖아? 우리는 우리를 지킬 힘이 필요해. 물론 그렇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야. 나를 포함해서 너희들도 최소한 나쁜 어른들이나 맹수들에게 도망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마을에 내려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산에서는 못 먹어봤던 당과 같은 것도 먹을 수 있을 거야.”


“당과?”

“친구?”


어린 아이들답게 감정변화가 빠르다. 눈물이 아직 맺힌 채로 초롱초롱하게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아침에 일어나서는 나랑 같이 운동하는거야. 오라비가 괜찮다고 생각할 때, 같이 마을에 내려갈테니까.”


말은 이렇게 해도 몇 년간은 동생들을 마을로 내려보낼 생각은 없다. 셋이 되는 순간, 어디 흑도방파의 인신매매 일 순위가 되는 것은 당연하니까.


조금 외롭게 크더라도 안전한 게 낫다. 삼류무공 하나 배운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테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 공남매는 한 시진동안 근력운동을 했다.


전생에서 군복무 당시 선후임들과 일과후에 체련실에서 어울리던 것이 나름 도움이 되었다. 각각 자기 체격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세트 운동을 휴식과 병행했다.


뒤뜰에 온돌 욕조가 있어서 추운 겨울에 땀 흘리고도 온수로 깨끗이 씻을 수 있었고, 이틀에 한번씩은 닭장에서 계란도 꺼내 먹었다. 겨울은 이제 시작이지만, 온기와 여유가 충분했다.


나 홀로 삼재심법을 익힌지 한달이 지났다. 눈을 치우고 장작을 채우는 일 외의 시간은 모두 내공을 쌓고 운동하는 데에 썼다.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가축들 돌보는 시간과 도구와 산책하는 시간 외에는 외공수련에 집중했다. 그동안 내 단전은 체감상 쌀 한 톨 크기에서 몇 배는 커져서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가 되었다.


소주천 때마다 확실히 생기가 느껴지고, 몸에도 딱히 문제가 없어서 동생들에게도 심범을 알려주기로 정했다. 동생들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며칠에 걸쳐서 먼저 죽간본을 열심히 읽고 외우게 했다.


사흘이 지나서 동생들이 구결을 완벽히 외운 것을 확인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게 했다. 그리고 동생들이 구결에 맞게 호흡하는 동안 설명을 이어 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氣)는 존재해. 내 경우에는 눈을 감아도 햇빛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을 상상했어. 너희들도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기를 느끼는 게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해.”


X선과 전자파를 생각하며 기를 체감한 내 경우를 있는 그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최대한 동생들이 알기 쉽게 설명했다.


물론 심법을 익히자마자 단전을 형성한 현대감성 무림인, 어린이 은둔무재 나님 공도유와 다르게, 동생들은 맨 땅에서 삼재심법을 익혀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꽤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영영 단전을 못 만들 수도 있다. 누구나 기를 느끼고 내공을 쌓을 수 있다면, 이 무림세계는 지금보다도 더 끔찍한 무법천지가 되었을테니까.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더 노력해서 동생들을 지켜주면 되는 일이니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무색하게 동생들 자리에선 작은 운무처럼 연기들이 일어났다. 그러더니 연기들은 각각 동생들의 들숨에 빨려 들어갔다. 놀란 마음에 호다닥 동생들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살펴보려는 찰나에, 동생들의 눈이 떠졌다. 맑은 안광에서 동생들이 성공적인 연공을 해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소화, 도하 둘다 괜찮아? 어디 아픈데는 없고?”


“응, 오라버니 그냥 오라버니 말 대로 기가 느껴져서 숨 쉬면서 기운을 돌렸더니 아랫배에 모였는데? 이게 단전인 것 같아.”


“형아, 나도 단전이라는 거 생긴 거 같아. 이거 숨 쉬면서 몸에서 돌리면 따뜻해지는 게 기분좋다? 뱃 속에 감자 한 알이 들어선 거 같아”


“도하 너도 그래? 누나도 그 생각했어. 배고플 때 꺼내먹을 수 없어서 아쉽네.”


이게 머선 말인고. 감자라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고작 삼류무공 며칠 읽고 처음 소주천에 시도해서 감자만한 단전이라니요. 우리 동생들이 배가 많이 고팠나 보오. 단전 크기를 먹고 싶은 것과 착각하다니요.


“···기를 느끼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얼떨떨해 하는 내 질문에 동생 둘은 말을 맞춘 것처럼 동시에 대답했다.


“그냥 느껴지던데?”


마치 전생에 수능만점자의 인터뷰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공이 제일 쉬웠어요. 누구나 저잣거리 삼재심법 며칠 읽고 외우면 감자만한 단전 만드는 것 아닌가요? 라는 대사가 동생들의 눈빛에서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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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린이 은둔무재 +4 24.08.19 873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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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문명약진 (1) +6 24.08.19 992 27 12쪽
1 1. 공도유 십삼 세 +5 24.08.19 1,114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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