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불후의 명곡
조합이 이상했다.
2025년 9월 14일 날짜까진 맞는 것 같은데 3시 7분?
영 어색하기만 하다. 뒤에 남은 점도 그렇고.
다시 그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점 두 개가 걸렸다.
9월 14일 당장 사흘 뒤 일요일을 가리키는 것까진 대충 합의가 끝난 것 같은데.
나머지 ‘37.47127.09’가 풀리지 않았다.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하는 코드였다. 명철 앞에서도 어지간히 버티는 난해함.
머리가 팽팽 돌다 못해 김이 날 지경에 이르고서야 느낌이 팍! 왔다.
2025 | 09 | 14 | 37.47 | 127.09
좌표였다.
서둘러 인터넷에 들어가 쳐봤더니.
강남의 작은 도서관이 하나 나왔다.
“......나더러 여기 가란 거야? 사흘 뒤에?”
아는 장소이긴 하나 이제 나의 행동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아했지만.
“어게인 라이프가 나한테 해 될 일을 시킬 리 없으니 무조건 가봐야지.”
정리되니 눈앞 아직도 떠 있는 표절송 목록이 시선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터치했다.
- ♬♪♩♪♩♪♪♪♬♬♪♩♪♪♬~~~~~~~.
음악이 재생된다.
“헙!”
방안을 터트릴 것 같은 데시벨의 연주에 놀라 급히 문을 돌아봤는데 열리지 않았다. 누가 다가오는 기척도 없었다.
얼른 다시 터치했더니 재생이 멈춘다.
조용해진 세상.
5초? 10초? 그 정도 울린 것 같은데 집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거실만 나가도 어머니 아버지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릴 만큼 방음 안 되는 집에서 말이다.
“...나만 들리는 건가?”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었다.
벌렁벌렁하던 심장이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데.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록에 있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는 거구나. 기가 막힌 일이긴 한데. 이게 왜 혜택이야? ......설마 나보고 쓰라는 건 아니지?”
에바다.
표절곡을?
저 곡들에 표절 이슈가 있든 없든 용납이 안 된다.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어?! [케이팝의 완성자]라며? 그 위업이 고작 표절로 쌓아 올린 가짜라는 거야?!”
어게인 라이프 시작 이후 처음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확실히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집을 나서고 활기찬 교정을 걷노라면 뭐랄까.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마시는 한잔의 시원한 콜라처럼 청량한 기분이 들긴 했다.
시커먼 남고에서 이 무슨 망발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그랬다.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역량.
그 시선에 비치는 녀석들은 왠지 귀여웠다.
“서유은, 나 알지?”
교실 안, 자리에 앉아 흐뭇한 눈으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가 앞에 선다.
“어! 넌?!”
“그래, 학생회. 나 이태규다.”
“아...”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았다.
[퀘스트, 전설의 시작. 성공 완료.]
[보상을 인벤토리에 저장합니다.]
[스킬을 상태창에 등록합니다.]
“아아...”
“역시 기억하는구나!”
반색하는 이태규에 나는 더 이상 메시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찬솔 퀘스트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너 어제 장난 아니었다며?”
“뭘...?”
얼른 몸을 숙여 속삭인다.
“찬솔. 애들이 난리가 났어. 진짜 실력자라고.”
“아, 그래?”
“나도 어제 봤어야 했는데. 키키킥, 근데 너 광현 선배랑 한바탕했다며?”
“그것도 들었어? 사소한 오해로...”
“근육 몬스터... 쿠쿠쿡. 그래도 무사하니까 다행이다야. 그 선배 눈 돌면 진짜 장난 아니거든.”
장난 아니긴 했다.
열 명이 겨우 막아섰으니.
“힘이 좀 세긴 하더라.”
“그것도 봐준 거야. 진짜 힘쓰면 우리 다 덤벼도 못 막아.”
“뭐?”
“작년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찬솔이 해체될 뻔했거든. 그것 때문에 광현 선배가 엄청 예민해. 그래도 근래 본 도발 중 최고였어. 근육 몬스터라니. 그 선배 좀 고리타분하거든. 당해도 싸.”
“아, 근데 여긴 왜...?”
“맞다. 정식으로 인사하려고 왔지. 나 찬솔의 리드 기타이자 메인 보컬을 맡고 있거든.”
짐작하고 있었다.
활기찬 녀석에 나도 어젯밤의 내상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반갑다. 근데 오늘 너 기분 아주 좋아 보인다?”
“그러냐? 맞아. 어제 좋은 일이 있었거든. 히히힛.”
“좋았다니 다행이네.”
“그래, 나중에 보자. 같이 합주해야지. 아 참, 야자도 고맙다. 너 정말 짱이야.”
쿨하게 왔다가 가버리는 이태규가 만족스러우면서도 나는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댔다.
듣기로는 한 또라이 한다고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능력치도 쿨.
[이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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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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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기타가 4성? 내 연주랑 맞먹는다는 거잖아.”
기특한 건지 기가 막힌 건지 어이가 없어서 ‘프로듀서의 눈’을 켜둔 채 시선을 돌렸는데.
[송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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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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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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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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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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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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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하였다.
“그건 그렇고 사람이 이렇게도 음악적 소양이 없을 수 있나?”
거의 1성, 조금 나은 건 2성이었다. 아예 없는 놈들도 부지기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래라도 부를 줄 안다면 ‘보컬 : ◐’ 반성이라도 나와야 예의일 텐데 정말 반성해야 할 삶이었다.
“너무 남 말 하나? 나도 작곡이 반성인데. 쿠쿠쿡.”
담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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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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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재능이 터졌다.
노래방 좀 다닌 모양.
보기 싫어 속으로 off를 외치니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오던 그래픽들이 싹 사라졌다.
대충 둘러본 담임은 출석부를 턱 내려놨다.
“다 왔군.”
늘 하듯 엄한 당부 말씀을 늘어뜨리던 중 나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웃는다. 요즘 좋다는 얘기다.
나도 웃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이득 앞에선 적도 친구가 된다.
제아무리 낭만을 지향한단들 기본을 놓치면 유지가 힘들었다. 스승의 은혜 같은 건 전인교육 시절에서나 우러러볼 일이고 선생도 사람이었다. 윈윈에 적절한 기름칠은 필수.
“뭔가 술술 풀리는 느낌이긴 해.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러다 도파민 중독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한가위만 같아라.
담임이 나가고 막간을 탄 난 화장실에 가다가 박종수 오인방을 만난다.
“요우~맨.”
“어! 너희들 웬일이야?”
이 녀석들 반은 한층 높았다. 거기도 화장실이 있다.
“너 보러 왔지.”
“오늘 저녁에 어때?”
“좋은데 가자.”
“우리가 살게.”
밥 먹자는 것 같았다.
“저녁 먹자고? 너희가 쏜다고?”
“그렇지.”
“콜?”
“당삼 콜이지.”
“오케이, 이따 학교 끝나고 보자.”
건들건들 잘도 계단을 올라가는 녀석들이었다.
귀여운 놈들.
돌아와 앉으니 1교시 시작.
하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인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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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벤토리 :
능력치 성장 알약 9개. 제3의 인격.
2025091437.47127.09
2026년도 표절송 목록.
불후의 명곡 선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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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티켓 형태의 아이콘이었다.
궁금했다.
‘세상에 없던 천상의 곡을 준다는 건가?’
건드려봤다.
티켓이 찢어지며 내용물이 튀어나왔다.
[선택하세요.]
[1. 빌보드 핫100 25주 연속 1위]
[2. 그래미 어워드 본상 2개 부문 수상]
[3. 너튜브 150억 뷰]
“!!!!!!”
전신으로 소름이 쫙!
이런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중에서 고르라고?!’
이때 깨달았다.
머리통을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내가 그동안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그럼 그렇지. 케이팝의 완성자가 표절 따위에 휘둘리는 건 아니잖아!’
첫 번째 선택지는 빌보드 핫100 25주 연속 1위였다.
세계 디지털 싱글 부문에서 반년을 독식한다는 것.
해당 연도에 나온 곡들을 평정했다는 뜻이다. 요즘 같이 취향이 휙휙 바뀌는 때에는 어울리지 않은 이변이라는 것.
‘어이구, 살 떨려라.’
두 번째는 그래미 어워드 본상 2개 부문 수상이란다.
한 곡일 테니. 올해의 앨범상은 아닐 테고 올해의 레코드나 올해의 노래, 최우수 신인상 중에 2개를 받는다는 것.
시작부터 업계 정점을 찍고 간다는 것.
‘그래미가 또 아른거리네.’
세 번째, 너튜브 150억 뷰.
그 무지막지한 Baby Shark Dance가 144억 뷰였다.
개인 계정 개설하고 업로드만 해도 150억 뷰가 터진다는 얘기다.
‘이 돈이 대체 얼마야?! 유명세는?’
과연 [케이팝의 완성자] 소리를 들을 만한 파괴력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늘에서 막 금덩이가 떨어지는 느낌.
반성한다.
어게인 라이프를 조금이라도 의심한 나에게 채찍질을 하겠다.
무조건 믿었어야 했다!
당장에라도 손을 뻗어 터치! 그 길로 가려는 걸 갑자기 명철이 막았다. 냉정하게 분석해라. 이도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다.
‘그...렇군. 어느 길도 현재 나에게는 과분하다는 말도 모자랄 만큼 엄청난 사건이야. 좋아 보인다고 덥석 물었다간 폭풍에 휩쓸려 갈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해. 네가 원하는 삶을 생각해. 단지 그 자리에 있고자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되고 싶을 뿐이지 그 자체가 되는 건 아니야. 네 킬워드를 기억해.’
복수와 화목한 가족.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말인즉 이 두 가지를 벗어나는 순간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행해진다는 것.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는데 거꾸로 간다고?
원하는 방향성이 아니었다.
‘너무 큰 화제는 오히려 주인을 삼킨다더니. 그 말이 틀린 것이 없네.’
차분해졌다.
국가대표 양궁 선수처럼 심박도 잦아들었다.
‘사실상 쩌리인 나한테는 세 선택지 모두 비슷한 거나 마찬가지야. 출발이 어디냐는 차이인 거지. 어디에서 1위를 찍냐.’
그러나 아무리 냉정해지려 해도 후끈 올라오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선택해야 한다는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그래미 어워드만큼은 아니어도 아주 큰 명성과 부를 얻는다. 조회수도 따라올 테고.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명성과 명예. 부는 첫 번째만큼은 어렵고 조회수도 역시.
세 번째는 오직 조회수였다. 따라올 명성과 잇따른 부는 뭐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제일 균형 잡힌 건 첫 번째인데... 그래미도 만만찮아. 시작부터 그래미를 받는다면 인생의 격이 달라는 건데... 어떻게 할까? 뭘 선택해야 현재 나에게 최선일까?’
***
“자, 여기 어떠냐?”
“죽이지?”
방과 후 박종수 오인방이 나를 데려간 곳은 껍데기집이었다.
굴다리 옆 작고 허름한 가게.
끝나자마자 나를 데리러 온 녀석들은 대뜸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 구두를 꺼냈다. 갈아입으라고. 내 가방을 학교 비품실에 처박을 때만 해도 이것들이 무슨 사고를 치려나 했는데.
귀여웠다.
‘아무리 막 나가도 노상에서 교복이나 체육복 입고 소주 까기는 어렵지.’
다들 덩치와 외모가 탈고교급이라 누가 붙잡을 일도 없고. 낭만도 쩔고.
나도 소주는 처음이었다.
안 그래도 싱숭생숭했는데 도전!
자리에 앉으니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연탄불을 가져왔다. 날 보고는 고개를 갸웃.
박종수가 선수 쳤다.
“주먹고기랑 껍데기 좀 주세요. 두꺼비로 일단 두 마리.”
“알았다.”
아저씨가 돌아가자 백돼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었다.
“네가 너무 어려 보여서 그런 거야. 자신 있게 행동해.”
“유은이가 좀 어려 보이긴 하지.”
“쫑이랑 같이 다니면 조카 같다니까. 키킥.”
“거기서 내가 왜 나오는데?!”
“지나가는 사람 불러서 물어봐라. 너랑 유은이랑 동갑인 걸 믿겠냐?”
“너는 나보다 더 많아 보이잖아. 자식아.”
“나는 이미 중학교 때 얼굴에 관해서는 달관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늙으면 역전된단다. 어릴 때 동안인 놈들 전부 자글자글할 때 혼자서 팽팽해진다고.”
큰소리 뻥뻥치는 아재에게 은근슬쩍 어깨동무하는 허수였다.
“아재야. 늙어서 젊어 보이는 게 좋아? 지금 인기 많은 게 좋아?”
“......!”
“쿠쿡, 그러네. 지금이 제일 중요하지. 늙어서 뭔 동안이래. 크칵! 쿠키키키키키킥. 이왕이면 유은이처럼 생겨야 여자한테 인기가 많을 거 아냐.”
백돼가 마구 웃어버리자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아재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 명만 딱 만나면 되거든! 여러 명한테 인기 많으면 뭐?! 마누라 여러 명 둘 수 있어?! 어차피 한 명밖에 못 두면 한 명만 제대로 만나면 돼!”
“그래그래, 그 한 명 기다리다 쫑처럼 돼라. 키키킥.”
비아냥거리며 놀리지만, 순전히 나 때문에 이러는 걸 난 알았다.
주인아저씨 들으라는 소리였다.
얘, 우리랑 동갑이니까 괜한 의심 말라고.
나도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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