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세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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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30 10:28
최근연재일 :
2024.08.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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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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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는 꿀이

DUMMY

“헉!”


비명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인가?’


목이 멀쩡하다.

분명 소수겁마의 혈수에 잘려나갔던 목이, 멀쩡히 붙어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섬뜩한 촉감은 진짜 같았는데···.


‘걱정 때문에 악몽이라도 꾼 모양이군.’


예지몽일까?

예삿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안 그래도 마교의 도발 때문에 정신이 없던 차다.

놈들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통에 하북과는 완벽히 연이 끊겼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비를 해서.


‘잠깐만.’


나 어떻게 일어나 있는거지?

분명 다리가 잘렸는데? 그럼, 그 꿈이라는 게 설마 내가 무협세계로 떨어졌던 것까지 포함해서?


그럼 차라리 잘된 일이다.

무협은 좋지만, 평생 앉은뱅이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건 이미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거기서 받은 무시와 무례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으니까.


‘그래, 차라리 잘됐어.’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그걸로 좋다.


‘당소소.’


하지만 거기서 만난 인연들은? 그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게 정말 다 꿈이었나.

내가 구했던, 그리고 나를 구해줬던 이들까지 전부?


“도련님!”


고함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고보니, 저 문은 현대식 문이 아니다. 방안에 놓인 집기, 벽을 수놓은 문양, 바닥을 차지한 탁상과 의자.

전부 중국식, 그것도 무협에서나 나올법한 고즈넉한 디자인의 물건들이다.


‘돌아가지 못했구나.’


거대한 아쉬움. 그리고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안도감?

그래, 안도감이다.

평생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랬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돌아가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쩌면 여기서 쌓은 인연이 너무 질기게 남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악연도 선연도. 잊어버리기 힘들 정도로 커져버렸다.

최소한 받은 것은 돌려주고 돌아가야지. 그게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방식이니까.


“도련님! 무슨 생각하십니까? 당장 가셔야지요!!”


그제야 눈앞의 사내에게 눈길이 갔다.

단정하지만 분명히 격의 차이가 느껴지는 복색.

이 집의 하인이 분명했다.


“너는. 누구지?”

“또 그겁니까? 기억 잃은 척? 이제 진짜 지겨우니까 그만하세요. 매번 기루에서 사고 치고, 도박하고, 사람 때리면 하는 말이 항상 기억이 안 난다. 어제는 내가 아니었다. 귀신이 들려서 그랬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다. 어휴, 지겨워.”

“···.”


아니, 정말 기억이 안 난다.

네가 누구인지, ···너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그런 변명이 통할 상황이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이런 불편한 상황은 익숙하지는 않아도, 경험이 있다.


‘전생했을 때와 똑같다.’


이곳에 태어났을 때, 그걸 태어났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 속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동일하다.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비슷하겠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 정도.


‘그것 하나만으로도 합격선이군.’


경험이 있었기에,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이름이 뭐지.”


하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또 참신하네요. 제대로 사고쳤다는 건 알고 계신 모양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시고?”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은 동길이고, 도련님은 저희 대(大)황보세가의 막내 도련님이신 황보강이십니다. 어떻게 이제 좀 기억이 나십니까요?”

“황보강.”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되뇌었다.

내가 아는 황보세가에 황보강이라는 인물은 없다.

그렇다는 건 시간대가 다르거나, ···정말 끔찍하지만 또다른 무협세계라는 것인데.


“현 무림맹주가 누구더냐.”

“얼씨구. 말투는 또 왜 그렇게 바뀌신, ···철검유수입니다요.”

“철검유수 원위?”


다행이군. 다른 세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대가 다르다는 의미인가.

동길이라는 하인이 질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가주께서, 지금 복귀하셨습니다. 패서라도 끌고 오라는 걸 겨우 달래서 제가 대신 온 겁니다. 그러니 정신 좀 차리세요. 그래야 한 대라도 덜 맞지요.”


멋대로 다가온 그가 내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줬다.

그 손길이 매우 익숙했다.

하는 사람도, 받는 내 몸뚱이도. 평생을 그런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대접 받는 삶을 살아온 몸이 버릇처럼 몸을 내맡긴다.


“가주, 아니, 가주님이라면 황보위헌을 말하나?”

“그건 또 용케 자알 기억하십니다? 선택적 기억 장애로군요? 그럼 당연하게도 어제 한 일은 기억이 안 나시겠지요?”

“내가 뭘 했지.”

“적룡방주의 큰아들에게 비무를 신청하셨지요. 그러고는 단 한 수! 딱 주먹질 한방에 박살이 나셔서는 여기까지 실려오셨습니다. 이제 기억이 나십니까?”

“별 일 아니군.”


난 또 누구를 찌르기라도 한 줄 알았다.

하도 요살을 떨기에 뒷처리를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고민들이었군.


‘약점을 잡을 필요도 없겠어.’


뒷처리를 하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으뜸은 상대가 밝히고 싶지 않은 약점을 잡아 입을 봉하는 것이다.

나와의 인연을 완전히 잊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약점을 잡는 것.

그게 으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번잡한 일까지는 필요가 없겠다.

이 몸의 나이는 대략 이십대 초반.

상대도 도련님이라 불리는 걸 보아하니 비슷한 연배일 터.

어린 아해들이 싸우다 일어난 단순한 사고에 불과한 일이다.


이걸 키워 약점으로 만들기에는 황보세가의 이름값이 너무 두텁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하인, 동길의 표정은 썩 편안하지 못했다.

정말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어둡고, 동공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적룡방이 무서우냐.”

“아니요. 겨우 그깟 것들이 뭐가 무섭겠습니까요.”


진심인 것 같다.

그럼에도 두려움이 남았으니,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몇 없을 터.

그걸 물었다.


“그럼 그 뒤의 놈들이 무섭더냐.”

“···.”


동길이 고개를 숙여 내 눈을 피했다.

그것으로 충분히 답이 되었다.


“마교?”


동길이 기겁한 표정으로 내 입을 막았다.


“마교는 무슨! 그런 말씀 하지도 마십시오. 그놈들 없어진 지가 벌써 수십년입니다요. 괜히 경을 칠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다 아시면서. 사황련 때문입니다. 사황련.”

“음.”


사황련이면 충분히 걱정할만 하다.

하지만 그쪽도 나름 대비할 방법이 있다.


“지금이 몇년도지?”

“···허순 7년입니다.”

”그렇군.”


아슬아슬하지만, 어떻게 맞출 수 있겠다.


”가자.”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된 옷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내 수십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선두에 있는 두 명은 과연 황보세가의 직계인지, 기골이 장대했다.


“이놈!!"


두 명의 청년 중 하나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가오더니 내 멱살을 붙잡았다.


“이제야 나오는구나.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아느냐?”

“예. 그런데 댁은 누구십니까.”

“댁? 이놈이?”


사람 머리통만한 거대한 주먹이 지척에서 흔들렸다.

동길이 얼른 달려와 사내의 팔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두, 둘째 도련님 제발 진정하십시오. 저희 도련님이 기억을 잃으셔서, 어, 어이쿠.”


한 대 얻어맞은 동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정말 전력으로 쳤는지, 순식간에 뺨이 부풀어오른다.


그걸 보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오늘 처음 본 아주 잠깐의 인연에 불과하지만, 그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너무나 확연히 느껴졌다.

그런 이가 맞아서 뒹구를 걸 보자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상대의 팔목을 잡아 비튼 다음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뿌드득.

손목을 잡자 처음에는 허하며 비웃던 상대가 뼈에서 나는 괴상한 소리에 크게 놀라더니 급히 고개를 비틀었다.

하지만, 빠각. 이미 그 얼굴에 내 주먹이 꽂힌 뒤였다.


“끄어.”


건장한 사내가 바닥을 나뒹굴자, 그를 수행하던 이들과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놀라 눈을 치떴다.

나 또한 놀라서 내 주먹을 내려다봤다.


‘어떻게?’


방금 내가 무공을 썼나?

설마, 황보세가의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데?


“막내야.”


눈을 가늘게 뜬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사내, 여기서 가장 신분이 높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풍기던 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너, 설마.”


***


황보세가의 장남, 황보사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매일 사고만 치던 막내, 사실상 내놓은 자식이던 황보강이 기어코 사단을 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사고.

도박에서 수천냥을 날리거나, 엄한 여자를 건드리거나, 불량배들과 싸움이 붙던 것과는 격이 다른 사고였다.


‘적룡방.’


사황련의 비호를 받는 적룡방을 건드린 것.

그로인해 사파가 황보세가의 세력권에 간섭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아버지는 그럼에도 막내를 감싸려 하셨지만, 황보사영과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에는 기필코 가문에서 내보낸다.'


어차피 천한 핏줄의 소생.

뒷배도 없는 놈이니, 이 참에 집안의 호적에서 파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어느새 무공을 익혀 둘째를 한방에 날려버리다니?


‘이 정도 무공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째서 적룡방주의 큰아들 따위에게?’


그냥 진 것도 아니고 한수에 박살이 나서 실려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 안 된다.

적룡방의 기룡한은 둘째보다 두 수, 아니, 세 수나 아래인 놈이었다.


‘일부러 그랬군.’


막내를 노려보는 황보사영의 눈이 더욱더 가늘어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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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뱃속에는 칼이 24.08.30 31 0 11쪽
» 입에는 꿀이 24.08.30 36 0 10쪽
1 소수겁마 24.08.30 50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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