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세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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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3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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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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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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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는 칼이

DUMMY

황보세가는 산동성(山东省)의 성도인 제남에 자리잡은 무가였다.

여러 명문정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태생 때문에 구파일방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따로 오대세가를 이루어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는 세가(世家)다.


이 근방에서는 감히 대거리할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이름값도, 가진 무력과 인맥도 만만치 않은 명문정파.


허나 그조차 오랜 옛말이라, 지금의 황보세가는 그 세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건 줄어든 문도수만 보아도 확연했다.

십년 전에 비해 절반. 이십년 전에 비하면 무려 오십분의 일로 줄어들었으니, 주변에서 황보세가를 어찌보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 들어서는 세가에 가입하려는 이가 아무도 없을 지경이었다.


가주 황보위헌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두툼한 손바닥이 붉어진 눈시울을 가려줬다.


‘할아버님께서 세우신 결단이 내 대에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황보위헌의 조부였던 황보궁.

당대 권왕의 칭호를 죽을 때까지 잃지 않았던 황보궁은 세가가 고인 우물처럼 썩어들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

해서 같은 핏줄이 아니면 무공을 전수하지 않는다는 세가의 철칙까지 깨면서 외부인들을 제자로 받기 시작했다.


전부 더 높은 경지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권왕이었던 그가 보기에도 작금의 황보세가는 끝물로 치닫고 있었으니.

무공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있는 무공조차 쇠퇴해 가는 지경.

스스로는 타고난 무재로 권왕에 올랐으나, 그렇기에 더욱 황보세가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느꼈을 터.

새로운 핏줄과 혁신을 받아들여 가문의 명맥이 끊기지 않게 하려던 그 결단은, 허나 이제는 전부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적룡방.’


사황련의 산동성 지부 중 하나인 적룡방.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야 사파의 비호를 구걸하고 있는 그저 그런 문파 중 하나로 인식하는 곳 중 하나가 적룡방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사황련이 정파의 세력권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단체였다.

별 볼일 없는 사내를 적룡방주로 내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고, 내부에는 사황련의 고수들로 채워 산동성을 집어삼키려는 전초기지, 그게 적룡방의 실체였다.


황보위헌은 오랜 시간 적룡방을 감시하며 그 실체를 파악했고, 곧바로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했다.

무림맹의 답변은 직속무력 단체 중 하나인 백호대였고, 그들은 보름도 지나지 않아 산동성에 당도할 것이다.


‘어찌한다.’


헌데 막내놈이 사고를 쳐버렸다.

사황련이 아닌, 적룡방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줬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적룡방주의 친아들, 그것도 명분이 있는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시비 끝에 벌어진 비무에서 암수를 사용했다.

그리고 졌다.


황보세가의 평판에 금이 가는 치명적인 일임과 동시에 적룡방이 강호 무림인들에게 대의를 내세울 훌륭한 명분까지.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이 사건도, 사건을 만든 자식놈도.


“가주.”


나직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자,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트린 노인이 보였다.

황보세가의 사람답게 장대한 체구, 그에 걸맞는 험상궂은 얼굴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다.

외양만큼 그 명성도 대단했는데, 한창 활동하던 전성기에는 산동성 일대의 모든 마두를 직접 찢어죽이며 정파무림인 보다는 사파에 가깝다는 평을 듣던 황보사준이었다.


“대장로님.”


대장로 황보사준이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건 위협이 아니라, 조카이자 가문의 기둥인 황보위헌에 대한 배려였다.


“이번에도 넘기시면 아니되오.”


한껏 낮춘 목소리가 마음을 괴롭혔다.

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너무나 잔인하게 들렸다.

허나 이번에는 황보위헌도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막내는 선을 넘었다.

이번 일은, 가문의 위세로 수습할 수 없는 종류였으니까.


대장로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식농사에 실패한 조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비단 안타까움만 들어있지는 않았다. 거기엔 엄한 질책도 섞여 있었다.


“열손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덜 아픈 손가락은 있는 법이오. 이제 그만 놓아주시구려.”

“···징벌동에 3년간 가두겠습니다.”

“10년을 그리해도 안 될 일이오. 이번 일은 흥정의 여지가 없소이다. 저들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을 터이니.”

“그 아이는 황보세가의 직계입니다!”


그 단호한 대답에 황보위헌이 급히 반발했다.

그건 아비로써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몸부림이었다.

허나 의미 없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상대는 그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장로회의를 주관하며 세가를 이끌어온 대장로였으니까.


“그럼 짊어져야 할 책임도 더 무거운 법이지. 그 아이가 그리 하더이까? 가주가 더 잘 아시지 않소?”

“···.”

“제명하시오.”

“대장로님!”

“호적에서 파내라고 하지는 않겠소. 허나 가문에서는 내보내시오. 그게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배려요.”


대장로가 어깨너머를 곁눈질하자, 등뒤를 채우고 있던 십여 명의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그리도 대립하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이번 안건에 한해서만큼은 일심동체나 다름없었다.


이미 답을 정하고 나온 것이다.


‘그래, 그렇겠지.’


사실은 이미 황보가주도 알고 있었다.

장로들은 수십년 동안 세가 곳곳에서 활약하며 가문을 지킨 사람들이다.

현역 때는 그 왕성한 활동력으로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경험과 무공을 베풀어 후학들을 양성해왔다.


그런 이들이 아무 대비도 없이 왔을까.

여기서 반발해도, 결국은 저들의 뜻대로 될 것이다. 이번 일은 가주의 이름으로, 아니 가주이기에 더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었으니까.

차라리 이게 나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장로들의 배려로 호적에는 남지 않았는가.


‘건드리는 자는 없을테지.’


황보(皇甫)라는 성씨를 달고 있는 이상, 어디서 눈 먼 칼에 찔려 죽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터.

그걸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앞길이 창창한 아들이 둘이나 더 있었다.

가문을 물려받아야 할 그들의 앞길을 막지 않으려면, 이제 망나니인 막내를 치워야 할 때였다.


“알겠습니다.”


결단을 내린 황보위헌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로가 안쓰러운 눈으로 물러났다.

단호한 얼굴로 그를 주시하던 장로들이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한 번 뱉었으니 지킬 것이다. 가주란 그런 자리였으니까.


“마침 오는군.”


장로들이 눈을 돌려 거대한 전각의 정문을 바라봤다.

때마침 가문의 망나니를 잡으러갔던 이들이 전각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음?”


장로 중 하나가 의문 섞인 물음을 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둘째, 이공자 황보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거기다 머리도 다쳤는지 팔다리가 달달 떨리기까지 했다.


“준아!”


육장로가 놀라서 뛰쳐나갔다.

황보준의 몸을 여기저기 꼼꼼히 살피던 육장로가 서슬퍼런 기세로 수행하던 이들을 나무랐다.


“이게 무슨 일이냐!! 당장 소상히 고하거라!”

“그, 그것이.”

“당장 답하지 못할까!!!”


내력이 실린 외침에 대기가 뒤흔들렸다.

파스슥. 그 내력에 전각 너머 십오장이나 떨어져 있던 거대한 버드나무가 요동치며 이파리를 떨궜다.

육장로가 그토록 분노한 것은 그가 황보준의 스승이면서도 누구보다 끈끈한 혈육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하십시오. 육장로님.”


첫째 황보사영이 웃으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육장로의 눈에는 그 모습이 가당찮게 보일 뿐이었다.

따라간 이들 중 둘째를 이리 만들 수 있는 자는 황보사영뿐이다.

다른 이들의 무공실력은 황보준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걸 알고 있기에 이토록 분노했던 것이다.

범인이 황보사영임을 장담했기 때문에.


‘감히 이번 일을 빌미로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해? 그것도 자기 동생을!?’


열이 뻗쳐 올랐다.

감히 여동생의 친아들인 황보준을 건드리다니.

그것도 가문의 일을 행하는 중차대한 때에.


'무슨 짓을 벌인거냐 이놈!'


당장이라도 저 뻔뻔한 낯짝을 잡아뜯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되려 그가 대장로에게 전신이 뜯겨나갈 터였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몸을 떠는 육장로 대신 대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일공자. 무슨 일인지 알려주시오.”

“예, 대장로님. 막내, 그러니까 삼공자 황보강이 이공자 황보준을 공격했습니다.”


모든 이들의 눈이 삼공자를 향했다.

참고 있던 육장로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차라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고 하시오!! 어디서 가당찮은 변명을 하고 있, 이거 놓으시오! 내 당장 일공자에게 식솔을 공격한 책임을 물어야겠소이다!”


발작하는 육장로를 여러 장로들이 진땀을 흘리며 말리는 사이 대장로와 황보가주가 막내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보기에 일공자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고수는 그보다 하수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능히 판단할 수 있다.

관심법 같은 허무맹랑한 신통력을 쓰는 것이 아니다.

거짓을 뱉을 때 보이는 여러 징조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매, 아주 얇게 떨리는 목소리, 마주치지 못하고 은근슬쩍 피하는 눈까지.

일반인은 알아차릴 수 없을 그런 미세한 징조들로 말의 진위여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고수.

그것도 절정에 오른 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기예였다.


그걸 능란히 펼칠 수 있는 초절정 고수들인 대장로와 황보가주가 보기에 일공자는 진실만을 말했다.


‘정말 막내가?’

‘삼공자가 힘을 숨기고 있었나.’


확실히 삼공자 황보강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감히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던 한심한 행태와 달리, 두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쳐온다.

심지어 그 안에 들어있는 건 뒤를 쫓기는 사람처럼 강력한 불안함과 권태, 그리고 한심함이었다.


‘한심함이라.’


대장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앞의 두 가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심함은 되려 이쪽이 보여야 할 감정이 아니던가.

계속 사고만 치다 미쳐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정말 가문의 현 작태를 보며 마음 깊이 실망했다는 뜻일까.


어느쪽이든 정상은 아니었다.

막내에게 정상이란 망나니 같은 그 삶 자체였다. 일반인과는 결을 달리하는 행태였으니, 그게 맞다.

헌데 그 괴이한 모습들이 지금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숨기고 있었구나. 그래, 너도 살려면 그 작은 뱃속에 칼 한자루는 품어야 했을테지.’


대장로의 눈이 얇게 가늘어졌다.

그건 일공자의 눈매와 기묘할 정도로 비슷했다. 같은 성씨니 당연하다며 웃어넘기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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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입에는 꿀이 24.08.30 35 0 10쪽
1 소수겁마 24.08.30 50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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